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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제자가 사부님의 은혜를 회상하다

글/ 베이징 대법제자

[명혜망] 1994년 말, 업무 이동 관계로 저는 아쉬운 마음으로 사부님의 고향이자 제 새 생명의 터전인 창춘(長春)을 떠나 귀에 익숙하지만 낯선 도시 베이징으로 왔습니다. 떠나기 전, 저는 무척 슬펐고, 앞으로 사부님을 뵙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속으로 계속 자문했습니다. ‘왜 베이징에 가야 하지? 왜 꼭 떠나야만 하지?’

베이징에 갓 도착했을 때, 저는 집착이 심했습니다. 사부님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쉬웠고, 그 정토(淨土)와 익숙한 환경, 수련생들이 그리웠습니다. 밤에 꿈을 꿀 때도 몸은 베이징에 있으나 마음은 고향으로 날아갔습니다.

베이징에 도착해서 시련은 계속 이어졌고 개인 수련의 어려움도 맹렬하게 닥쳐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법의 요구대로 하려고 노력해도 견디기 힘들었고, 눈물과 고통을 속으로만 삼키며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생각했습니다. 가정 문제로 꼬박 일 년을 괴로워했고, 일 년 동안 깨닫고 나서야 법에서 명백해졌으며, 마음을 평온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고비를 넘기자 새로운 경지가 열렸습니다. 그제야 저는 봄날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듯 깊게 숨을 쉴 수 있었고, 그 공기가 마음을 상쾌하게 하며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했습니다.

1996년 11월 2일은 제게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저는 베이징 디탄(地壇)에서 열린 국내외 제자 국제교류회에 참가했는데, 이렇게 큰 규모의 국제법회는 처음이었습니다. 디탄은 매우 아름다운 고풍스러운 건물로, 행사장은 안쪽과 바깥쪽 두 개의 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바깥 홀에는 주로 여러 나라에서 온 대법제자들이, 안쪽 홀에는 주로 중국 대륙의 대법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각자 비용 부담) 조용히 국내외 대법제자들의 발언을 경청했습니다. 저는 안쪽 큰 홀의 문 가까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 “사부님이 오셨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제히 일어나 문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들어오셨고, 바깥 홀의 제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신 후 안쪽 홀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사부님은 문 앞에 서시더니 단번에 저를 보셨고, 저는 재빨리 사부님과 악수했습니다. 두 손으로 사부님의 손을 꼭 잡았는데 마음이 너무나 격동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한쪽으로 이끌고 가시면서 고개를 숙여 물으셨습니다. “어떻게 지냈어요?” 너무 기뻐서 사부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베이징에서 정말로 다시 사부님을 뵙게 됐습니다. 사부님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제 대답을 기다리고 계셨고, 행사장은 조용했습니다. 사부님께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하여 간단히 큰 고비를 넘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들으시고 “알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이 다 아신다고 하시니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제가 더 말이 없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 곧 매우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저는 속으로 ‘어떤 변화일까?’ 생각했지만 잘 이해가 안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여러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셨고, 저는 사부님 곁에 서서 열심히 박수를 쳤습니다. 사부님이 몇 걸음 더 앞으로 가시더니 다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 곧 매우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저는 여전히 반쯤 이해하며 사부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부님은 계속 앞으로 걸으시며 제자들에게 손을 흔드셨고, 얼마간 걸으신 후 다시 멈추시더니 저를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 곧 매우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세 번이나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단 하나의 생각만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부님이 말씀하신 변화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분명 모두 좋은 일일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사부님의 말씀은 법이고, 말씀하시면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나중에 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에 관한 많은 지식을 저는 잘 몰랐습니다. 이번 디탄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많은 법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서방삼성(西方三聖), 수미산(須彌山) 등 다양한 법리를 말씀하셨고, 저의 사상 경지도 그에 따라 끊임없이 높아졌습니다.

대략 1997년(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 납니다)에 베이징 보도원 회의에서 저는 또 한번 사부님을 뵙게 됐습니다. 긴 테이블이 있었고 사부님은 테이블 맨 앞자리에 앉으셨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긴 테이블 양쪽에 앉았고, 뒤로는 여러 줄로 많은 제자들이 둘러앉아 사부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각 지역 책임자들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모두에게 법공부를 많이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사부님과 매우 가까운 테이블 옆(한쪽 테이블의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딴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수련이 왜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른지,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서는 마치 제 생각을 아시는 듯 저를 보시고 화제를 바꾸시며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수련하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럽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역사를 펼쳐 당신이 했던 일들을 보세요,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부님의 이 말씀에 저는 순간 깨달았고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 고통에는 원인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저는 아주 나쁜 일을 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매우 고통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제 고통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제가 한 일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저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때 저는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과거 역사가 부끄러웠고, 이 정도의 업력을 갚는 고통조차 견디지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주로는 아직 법리에서 진정으로 깨닫지 못해 이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법리가 매우 명확해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고비를 넘길 때는 완전히 맑은 정신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수련 중에 만약 사부님께서 이 부분의 업력 대부분을 없애주시지 않았다면, 그것은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살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며, 하물며 수련은 더욱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어려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고, 빚진 업력은 고통을 통해서만 갚을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두 갚아야 하며, 갚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조금도 감당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부님의 은혜를 되새기고, 사부님의 은혜를 그리워하며, 사부님의 은혜를 만난 것이 저는 너무나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정진하여 원만에 이르러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십니다. 사존(師尊)과 함께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사존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받았던 저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지금 저는 오직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려고 노력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수련을 처음처럼 하며 용맹정진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합시다. 일분일초를 소중히 여깁시다.

 

원문발표: 2014년 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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