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관용과 넓은 도량으로 각성에 이르다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수련 중에서 나에게 가장 깊은 체험은 관용이었다. 관용은 간격을 제거할 수 있고, 관용은 협조를 잘할 수 있게 하며, 관용은 바르지 못한 요소와 사악을 해체시킬 수 있다. 명백히 말해서 관용은 경지이고 자비의 체현으로, 다시 말해서 대각자의 풍모이다. 더구나 대법제자는 마땅히 넓은 흉금을 갖추고 실천 속에서 되도록 관용으로 타인을 대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 닦아야 한다. 아래 세 가지 방면에서 본인의 체험을 말하고자 한다.

1. 억울함을 당하는 것은 좋은 일

수련하기 전에 나는 신체적으로 고달파도 체면치레 때문에 겉으로 나타내지 않았는데, 낯 뜨거운 것을 싫어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체면을 차리려는 마음이 무척 강하여 무슨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하더라도 모두 성과를 바랐고, 잘하지 못하면 남들한테서 이러쿵저러쿵 (비평적인) 말을 들을까봐 걱정했다. 하여 어릴 적에 학교 다닐 때도 또 커서 직장에 다닐 때도 처세를 모두 이렇게 했다. 속인의 삶을 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은 칭찬 속에서 걸어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건 더욱이 참기 어려웠다.

나는 현지에서 설비와 재료 구입을 책임진 협조인이다. 당시 대량으로 션윈 DVD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므로, 나의 손을 거처간 자금은 매년 십여만 위안에 달한다. 그런데 한번은 어느 수련생이 무슨 일을 하는 과정에서 협조인과 모순이 발생했는데, 그 관을 넘지 못하게 되어 나까지 연루되었다. 그는 다른 한 수련생이 보는 앞에서 나를 향해, 현지에서 가장 큰 해충이라고 말했고, 또 나의 손자가 사망한 것은 내가 대법자금을 사사로이 써서 보응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듣고 참기 힘들었는데, 그런 분노와 격동, 억울한 정서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워 스스로 감정적 통제가 안 되었다. 나는 즉시 그녀를 찾아가 잘잘못을 따지려고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만약 내가 대법자금을 마구 썼다는 증거를 찾아낸다면 나는 벼락을 맞을 것이며, 만약 내가 대법자금을 마구 쓰지 않았는데 당신이 그렇게 말했다면 당신이 어떻게 어떻게 될 것임을 ‘맹세’하라.”고 하고 싶었다.

후에 수련생들로부터 (위로의) 설득을 당해 화가 풀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그 후부터 더는 그 수련생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만나기도 싫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도 이 일이 떠오르기만 하면 너무 억울한 마음으로 가슴이 꽉 막혀 답답했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 절약한 나의 개인적 자금을 수시로 대법항목에 보충해 넣으면서,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하는 속에서도 나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법을 실증하였는데, 이런 모함을 당하다니 참으로 억울하다.’ 하는 생각이 떠올라 좀처럼 심리적으로 평형을 이룰 수가 없었다. 법공부에서 ‘맨해튼설법’을 배울 때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줄곧 자신이 옳다고 강조하는데, 당신이 옳았고 당신이 잘못이 없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법에서 제고했는가? 사람의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강조하는, 이 자체가 바로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속인의 이치로 당신 자신을 가늠하고 있고, 다른 사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볼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박수) 아무리 큰 억울함에 직면해도 모두 아주 태연하게 대할 수 있고,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며, 모두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지 않는다면, 많은 일에서 당신은 논쟁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는 이 길에는 어떠한 우연한 일도 없기 때문인데, 아마 서로 이야기하는 중에 당신을 건드리고 당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모순을 발생시키는 이런 요소는 바로 사부가 마련해준 것일 것이다. 아마 그가 말한 그 한 마디가 당신에게는 매우 자극적이고, 당신의 아픈 곳을 건드렸기에, 당신은 자극을 받았다고 느낀다. 아마 당신은 정말로 억울하겠지만, 그러나 그 한 마디 말은 꼭 그가 말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아마 내가 말한 것일 수도 있다.(뭇사람 웃음) 그때 나는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려고 하는데, 그때 당신이 그를 들이받는다면 사실 당신은 나를 들이받고 있는 것과 같다. (웃음) (뭇사람 웃음, 박수) 우린 오늘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그러한 것들을 내가 당신들을 위해 모조리 떼어버릴 수 있으나, 양성된 습관은 당신들이 반드시 제거해야 하며, 반드시 제거해야 하고,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때 나는 비로소 각성했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에게 안을 향해 찾으라고 점화해 주신 것이라고 인식했다! 이 일은 나의 어느 마음을 향해 온 것인가.반성하고 안을 향해 찾으니 온 몸에 식은땀이 나왔다. 그렇게 많은 한 무더기 집착들이었다. 체면을 차리는 마음, 명을 구하는 마음, 남한테 억울함을 당하기 두려워하는 마음, 원망, 질투심, 자아를 강조하는 마음 등등. 종합해보니 역시 마음이 좁고 수련생을 포용하지 못하고 자비와 선심을 수련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용량을 확대하고 심성경지를 마땅히 제고해야 했다. 바다는 백 갈래의 강을 받아들이니 용량이 크다. 당신이 나한테잘해주면 나도 당신한테 잘해준다고 하는 것은 속인도 해낼 수 있다. 당신이 나에게 잘해주지 않아도 나는 원망 없이, 구함이 없이, 당신한테 잘 해준다면 비로소 수련인의 경지인 것이다. 이때 나는 비로소 억울함을 당하는 것이 좋은 일임을 깨달았다. 나의 심성과 관념이 바뀐 후 정말로 다른 한 정경들이 모두 바뀌었는데, 마음이 깨끗하고 상쾌하며 유암화명(柳暗花明)이었다.

후에 나는 내심으로, 이 수련생이 나를 도와 심성을 제고시켜 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자발적으로 이 수련생과 접촉하면서 예전과 똑같이 대했는데, 그래도 그녀는 내 앞에서 아주 부자연스러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종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난 후부터 우리는 아주 잘 협조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관용은 모순을 녹일 수 있고, 관용은 선의 체현이며, 관용은 자비의 흉금이며, 관용으로 도량을 넓히는 것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심경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사부님의대법이 나의 곤혹과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셨다. 변화무쌍한 세상을 마주하고억울하고 불공평함을 마주하고, 내가 자비와 관용의 흉금으로 대할 수 있는지는 나의 수련에서 엄숙한 과제였다. 나는 사부님께 그리고 전에 나에게 무한한 희망을 기탁했던 무량한 중생들에게 만족스러운 답안지를 올릴 것이다!

2. 인정을 없애고 중생을 선하게 대하다

수련 이전에 나는 생활과 회사업무에서 일부 억울한 일들을 겪었는데, 가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뒤집혀 올라온다. 진상을 알리어 사람을 구도할 때도 분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사부님의 법이 생각나서 선택하려는 염두와 선하지 못한 생각을 없애고, 관용하고 도량을 넓히니 자비는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25년 전의 한 속인(현재 사당의 사법부문에서 근무)은 품행이 좋지 못했는데, 그가 어느 일에서 나를 모함하고 공갈 협박한 적이 있었다. 이 속인을 떠올리면 생각할수록 뼈에 사무치도록 미웠다. 수련한 후 10여 년 동안 이 일을 거의 잊었다. 그런데 지난 해 한 수련생이 우리 현지 사법부문에 속해 있는 십여 명의 명단과 전화번호를 나에게 가지고 와서, 밍후이왕에 보내어 해외 대법제자들이 전화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3퇴를 시킬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명단 중에서 과거 나를 모함하고 공갈했던 그 사람의 이름이 포함돼 있음을 단번에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 여전히 마음이 괴로워 그의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때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사람을 구도한다는 것은 바로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라, 고르는 것은 자비가 아니다.”[1]

이번에 나는 또 환하게 깨달았다. ‘내가 어찌 한 속인과 같은 인식을 할 수 있는가, 과거의 은원은 모두 윤회보응인데, 내가 어느 한 세에서 그에게 빚진 것이거나 그를 해친 것일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이 들자, ‘마땅히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 사이에 또 큰 연분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더욱 그를 구도해야 하지 않는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자비와 관용의 마음이 생겨, 즉시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밍후이왕에 보냈다. 그 당시 심경은 또 즐겁고 뿌듯했다.

또 두 명의 세인이 있는데, 속인일 때 전에 상사 위치에서 같이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명리와 지위에서 나를 해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즉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위해 방법을 바꿔가며 이간질하며 나를 다스렸다. 그들은 모두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그 당시 많은 친구들과 지기들이 화가 나서, 나를 위해 방법을 강구하여 그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후에 각종 원인으로 이런 일들이 흐지부지되어버리고 말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이런 일들을 모두 생각하지 않았으나, 몇 년 전 나와 함께 일을 했던 동료들을 찾으면서 그 두 사람도 함께 찾게 되었다. 나는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과일을 사들고 그들을 찾아가서 진상을 알려 3퇴를 시키려고 했다.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서 일종 괴로워하는 느낌과 부끄러워하는 느낌을 보아낼 수 있었다. 서로 접촉하고 소통하면서 거리는 좁혀졌고 간격도 없어졌다. 그들에 대한 원한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모두 사라졌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2] 비록 3퇴는 못 시켰지만 후에 구도될 수 있도록 양호한 기초를 만들었다. 나는 기회가 되면 또 그들을 찾아가 구도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동안 자신의 심성이 제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신체는 강대한 에너지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용은 정말로 일종의 아름다움이고, 그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과 유쾌한 느낌을 준다.

3. 자비심이 생기자 마난이 풀리다

나는 2012년 10월말 국보대대와 파출소에 의해 납치된 후 현지 세뇌반에 감금되었다. ‘610’요원은 사오한 유다(전향한 수련생)와 함께 나를 찾아와서 대화를 했는데, 진실하지 못한 말로 대법을 비방하고, 대법수련생의 인격을 모욕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대법을 모독하는 동영상과 불교의 그런 것들을 시청하게 하여 수련생으로 하여금 소위 전향의 목적에 도달하려고 시도했다. 특히 ‘610’ 두목은 날마다 나를 찾아와 대화를 했는데, 아침, 점심, 저녁에 틈만 나면 나를 찾아와서 유혹하고 기만하고, 위협하고 공갈협박을 하는 등등 각종 수단과 방법으로 ‘전향’을 위한 핍박을 가했다. 그들은 8일 동안 이런 짓을 지속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나 역시 동시에 발정념을 하여 그의 배후의 사악을 제거했지만 효과가 좋지 못했는데 왜, 효과가 좋지 못했는지 원인을 찾았다. 이때 ‘610’ 두목이 또 나의 방에 찾아와 대화를 하는 중에 나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들 파룬궁(法輪功)이 나의 사진을 온 거리에 가득 붙여서 나를 폭로했다. 나를 미워하고 나를 다스리려고 하는데 당신이 말해보라. 그러니 내가 다시 당신들을 호되게 다스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때 나는 비로소 청성해졌고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내가 납치되어 세뇌반으로 끌려오기 전에 마침 현지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종합보도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정리하는 과정 중에서, 대법제자가 악경, 구치소, 노교소, 감옥, 세뇌반 등에서 잔인무도한 혹형의 박해를 당한 것을 보았는데, 정말로 섬뜩했으며 사람의 염두가 움직였던 것이다. 특히 ‘610’ 두목에 대해서는 더욱 미움에 미움이 더해져 심지어 그를 보면 화가 가득 차올라왔다. 납치되었기 때문에 이것 역시 그중의 한 가지 원인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체에 기(氣)가 있기만 하면 이 사람은 바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이 한 층차 중에 있기 때문에, 아직 연공인(煉功人)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에게 기(氣)가 있기만 하면 이 사람은 아직 신체를 고도로 정화(淨化)하지 못했음을 설명하며 바로 병기(病氣)가 있는 것인데, 이것은 확실하다.”[3] “기(氣)와 기(氣)사이에는 제약작용이 없다.”[3]

이때 나는 깨달았다. 그가 나에 대해 그렇게 흉악하고 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놓아주지 않은 것은, 원래 나의 원한과 질투심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이 두목은 비록 흉악하기 그지없지만 그 역시 사람이다. 그는 사당 사령의 조종을 받아 비로소 그렇게 흉악하게 드러내는 것이고, 사실 그 자신도 박해자인데 얼마나 가련한 생명인가. 나의 관념이 바뀌자 더는 그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고, 그의 배후의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체 사악을 제거했을 때 그의 태도는 갑자기 변했다. 즉시 내가 수감된 방에 와서 이런 말을 했다. “모모모 당신은 전향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더는 너를 찾아와서 말하지 않겠다.” 그 후로 정말로 그는 나를 찾지 않았다.

현지 세뇌반은, 나를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여겼다. 그들은 나를 성의 세뇌반으로 이송시켰으며, 그곳에서 사악은 또 한 차례 박해를 더욱 강화시켰다.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와 감옥에서 나온 십여 명의 유다들이 번갈아 가며 나를 세뇌하고, 박해하고, 위협하고, 공갈협박하며 벌칙을 세웠다. 그리고 잠을 못 자게하며 장기간 강제로 대법을 모함하는 영상 등을 보게 했다. 이 기간 나는 날마다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했으나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이때 나는 또 안을 향해 찾았는데, 내심 깊은 곳에 여전히 미움과 쟁투심,그들을 깔보는 마음이 있었고, 또 두려워하는 미묘한 마음이 있었다. 더 깊이 파보니 두려움은 사심으로 사심이 없어야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 이때 나는 또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법이 커서, 우주대법이잖은가, 일체를 풀 수 있으며, 오직 마음만 열어놓으면, 오직 관용할 수만 있으면 내 생각에 무엇이든 모두 개변할 수 있다.”[1] 법을 외우고 발정념하여 좋지 못한 사상과 집착을 제거하면서 사부님의 가지를 청했다. 관용과 선념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정말로 이런 사람들을 보니 너무나 가련했다. 마음속으로 그들의 중생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며칠 뒤 나에 대한 박해형세가 급속히 변화했다. 후기에 세뇌반이 해체되기 전 보름간 감옥의 교도관이든 사오자이든 감시자이든 나를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른 바 ‘전향’된 수련생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돌아간 그날부터 사악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후에 교도관이 자발적으로 나의 방으로 찾아와 진상을 들었고, 아울러 나에게, 사부님의 교공 비디오영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또 나를 그들(이른 바 전향자)과 함께 석방하여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했다. 성의 ‘610’주임은 세뇌반이 해체되기 전 ‘전향’하지 않은 몇몇 대법제자들을 한 곳에 집합시켜 놓고 이런 말을 했다. “당신들도 교류하며 감상을 말해보라.” 물론 우리 몇 명은 속으로 이해가 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특히 그는 단독으로 나를 찾아와서 상의하는 어투로 말했다. “당신은 조금 영활하면 안 돼요? 먼저 연마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표시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연마해도 누가 압니까.” 나는 이렇게 말했다. “ 파룬궁은 진선인(眞善忍)을 말합니다. 우선 먼저 행해야 할 부분이 진실입니다. 어찌 거짓말을 할 수 있나요?” 이어서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비록 삼퇴를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이미 진상을 안 것으로 보였다. 그는 탄식하면서 말했다. “정말로 당신은 방법이 없네요. 좋다고 여겨지면 집에 돌아가서 혼자서 연마하세요!”

이 속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안을 향해 찾는 이것은 하나의 법보이다”[4]의 깊은 층의 내포를 깨달았고, 동시에 한 수련자로서 관용과 넓은 도량을 닦아내고 자비를 늘 품을 수 있는 심태와 경지를 닦아내면, 사악을 해체할 수 있고 마난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여 사존의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 사람을 구하는도다.”[5]의 위대한 경지와 내포는 정말로 언어로 형용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나는 비로소 사존의 박대한 법리가 나를 이끌어주어 마난을 없애주신 것임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나는 관용으로 가족, 친구, 동료, 안면이 있는 사람. 안면이 없는 사람, 전에 나를 해친 적이 있는 사람, 심지어 전에 나를 박해했던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기로 결심했다. 내 곁의 매 한 명의 생명을 관용하고 선하게 대하고, 그들을 열심히 구도할 것이며, 시간을 아끼고 연분을 아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라고 할 수 없는 몇 마디로, 자신이 각자의 관용경지에 진정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독촉하고자 한다.

옛날 사람들은 관용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렸고

바다는 수많은 강을 품을 수 있었네

한신은 사타구니 밑으로 들어가는 치욕을 참아냈고

재상은 만사를 품을 수 있었네

법도수련은 경지가 높아

포용하고 도량을 넓히며 따지지 말고

억울하고 마음 상해도 평온하고

원망 없으니 즐거워서 구속이 없네

각자의 관용은 우주와 같고

염두는 세속 밖에 있어 자비가 거대하구나

무사무아하여 적이 없으니

층층의 우주가 가슴 속에 들어오누나

적절치 못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

주:

[1] 李洪志사부님 경문:‘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2] 李洪志사부님 저작:‘정진요지-경지’

[3] 李洪志사부님 저작:‘전법륜(轉法輪)’

[4] 李洪志사부님 경문:‘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5] 李洪志사부님 시사:‘홍음2-법정건곤’

문장발표 : 2013년 11월 12일

문장분류 : 밍후이 법회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2/2816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