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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사부님의 보호 하에서 줄곧 걸어오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남편은 “당신 이번 인생에서 수련은 가장 정확한 일이다”고 했다. 그때 동창, 동료, 친구는 나를 보기만 하면 “딴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아.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라고 한마디 했다. 나는 “파룬궁을 연마했어. 이전에 어땠는데?”라고 하면 그들은 “무슨 좋은 일이든 가시 돋친 말만 했고 뾰루퉁했지……”라고 했다.

1999년 4월 초 우리 지역에서 대형법회를 개최했는데 나는 강단에서 대법 속에서 받은 혜택을 말하다가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리고 흐느꼈고 객석 수련생들도 따라서 울었다. 속인 노부인 세 분이 복도에 서서 ‘와, 와’라고 끊임없이 감탄하기에 한 수련생이 “왜요?”라고 물었더니 “강단에서 발언하는 사람은 우리 직장의 한 지도자 아내인데 어찌 이렇게 변했어요?”라고 했다. 수련생이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는데요?”라고 묻자 노부인들은 “이전에 누가 감히 그녀 앞에 갈 수 있겠어요? 누구나 다 깔보고 얼마나 대단했는지 말도 말아요. 이 공이 그녀를 이렇게 변하게 했어요. 너무 대단해”라고 했다.

그렇다! 법을 얻기 전에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장소에서 앞다퉈 몸과 마음이 많이 상했다. 장염이 발작할 때 아파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침대에서 뒹굴어도 내가 ‘깊이 사랑하는’ 남편은 문밖에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콧노래를 불렀고, 신장병이 심할 때 머리가 크게 붓고 고막함몰로 수술을 하는데 얼굴을 절반 넘게 뒤집어야 했기에 얼굴이 망가졌다. 그때 매우 낙심했고 가정의 모순, 질병에 시달렸으며 또한 아이와 노인을 돌봐야 했기에 각 방면의 압력으로 인해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나는 한번 또 한 번 반항했고 한번 또 한 번 실패해 그 결과 불면증, 우울증까지 걸렸고 이후에 이 생을 빨리 끝내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고통에 곧 삼켜지려고 할 때 나는 목숨을 구하는 대법을 얻었다! 이 대법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늘 만면에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었다. ‘나는 어찌 이렇게 운이 좋지? 어느 생에 덕을 쌓았기에 대법제자로 될 수 있었을까?! 만나기 어려운 이 기연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꼭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야, 돌아가야, 돌아가야 하고 다시는 사람이 되지 않고 이런 윤회의 고생을 하지 않겠어……’ 이런 강렬한 소원은 수련을 시작할 때의 근본적인 집착이었고 어떤 때는 정진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1. 정념정행 이야기

큰 마차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더욱 잘 알았기에 법을 얻은 후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해줬고 수련 후 내가 좋게 변하고 가정도 화목하게 되자 남편도 내가 홍법(洪法)하는 것을 지지했으며 당시 2400위안짜리 VCD도 사줬다. 나는 자주 혼자서 VCD를 들고 다니면서 도처에서 법을 전했다.

1998년 한겨울, 한번은 시골에서 사부님의 설법녹화를 틀어주고 공을 가르쳐주고 돌아갈 때 차를 타지 않았다. 설날이 다가오자 설맞이 준비를 하느라 시내에 가는 사람이 많아 차에 사람이 꽉 찼기 때문이다. 당시는 영하 30도였었기에 가만히 서있으면 몹시 추워 걸으면서 차를 기다리려고(시골이라 고정 정거장이 없고 손을 흔들면 차는 멈췄다) 했으나 차가 한 대 한 대 지나가면서도 멈추지 않아 아예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가면서 기뻐서 ‘난 왜 이렇게 운이 좋지? 이 생에 이렇게 좋은 대법을 얻고 병이 없어 온 몸이 가뿐하게 되어 매일 기분이 좋아. 이는 돈을 얼마나 써도 살 수 없는 것이야, 어떻게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하지? 나와 사부님은 어떤 인연일까? 아! 인연이 얕은 내 탓이야, 사부님께서 국내에서 몇 년간 법을 전하셨는데 내가 전혀 몰랐으니. 국내에 계신다면 어디에 계시든 사부님을 한번 꼭 뵈야겠다’고 생각하는 부지불식간에 눈물이 고드름으로 됐다.

시내에 도착할 무렵 앞에 3마리 말이 끄는 큰 마차가 있었는데 차에 쌀을 실었다. 마차 주인은 내게 “여보세요! 마을을 나설 때부터 봤고 달리는 내내 지켜보고 있었어요. 빠르게 걷는 것 같지 않는데 이 큰 마차가 당신을 뒤떨어지게 못했네요. 도대체 사람이에요? 신이에요?”라고 하자,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에요. 이 공은 매우 좋아요”라고 했다. 그는 “알아요. 우리 마을에도 연마하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했다.

집에 도착한 후에야 구두 변두리가 휘어 꺾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전혀 힘들지 않았고 시장에 가서 소고기를 사고 많은 교자를 빚었으며 많은 옷을 빨았다. 이후에 내가 바른 일을 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을 걷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념이면 다 된다

사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99년 7월 22일 저녁에 우리는 성 정부에 청원하러 갔는데 현지 법원으로 보냈고 각 직장에서 사람을 데려갔다. 법원에서 나올 때 어떤 사람이 우리의 동영상을 찍었다. 그날 나는 머리도 빗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새벽 3시에 나왔다. 게다가 하루 종일 햇볕에 쬐이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머리는 푸시시했고 얼굴에는 때가 묻었다. 속으로 ‘이 영상이 만약 우리 지역에서 방송돼 아는 사람이 나를 알아보면 파룬궁을 연마해 이런 꼴이 됐다고 오해하지 않을까? 이것은 대법에 먹칠하는 것이 아닌가? 얼굴이 찍히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녹화되지 않았다.

아마 대법의 명예를 지키기겠다는 것이 바로 당시 그 층차에서의 정념이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도와주셨을 것이다.

은신(隱身)

2003년 파룬따파의 날 저녁,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나가서 현수막을 걸겠다고 약속했다. 사악한 경찰들도 오늘 저녁에 무엇을 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나와 두 수련생은 번화한 한 주택단지에 와서 가장 큰 현수막을 나무에 걸려고 현수막을 펼쳤는데 크게 와르르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내건 현수막을 보고 기뻐하고 있는데 멀지 않는 곳에서 경찰차 한 대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무에 건 현수막을 본 것이 분명했다. 경찰차는 우리와 몇 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서 멈췄다.

대로는 100여 미터 밖에 있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우리 셋은 나란히 하고 가다가 갑자기 ‘그들에게 몽땅 잡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서(당시 더 생각할 여유도 없었음) 작은 소리로 “빨리! 당신 둘은 저쪽 길로 가요”라고 하고 혼자서 경찰 쪽으로 걸어갔다. 밤은 깊어 조용했고 행인이 없었다. 경찰차에서 경찰 두 명이 내려왔고 내게로 걸어오자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게 은신한다! 보이지 않게 한다! 은신할 줄 안다!’고 생각하고 태연자약하게 걸어서 지나갔다. 두 경찰은 마치 나를 못 본 것처럼 그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몇 걸음 걷다가 지갑에 아직 진상자료가 있는 것을 보고 진상자료를 다 배포하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 두 수련생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내가 틀림없이 잡혀갔겠다고 생각해 집에서 울고 있었다. 내가 돌아와 그녀들에게 아슬아슬했지만 안전했다고 경과를 말하자 그녀들은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네요”라고 했다.

위험한 시각 나는 자신이 아니라 수련생의 안전을 생각했기 때문에 긴급한 시각에 은신술, 바로 신통(神通)이 생겼고 아마 이것이 바로 정념이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도와주셨을 것이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으시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2. 중생을 구하는 이야기

대표이사를 구제하다

내가 있던 직장은 과거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고 원래 국가 한 부서에 속했으므로 그때 국가 일류 대학을 졸업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고 각 부서 지도자의 학력도 높았다. 2000년 사악의 박해는 창궐했고 우리 성은 박해가 가장 심한 지역 중의 하나였으며 우리 직장의 박해는 우리 지역에서 가장 사악했다.

2000년 때 우리 직장의 대표이사는 젊은 연구생이었는데 그는 무신론의 영향을 많이 받고 거기에 사당의 거짓 선전, 또 매우 젊어 ‘문화대혁명’을 겪지 않아 매우 사악하게 표현했다. 큰 회의 작은 회의에서 파룬궁을 비판했고 끊임없이 아랫사람에게 “반드시 자신 부서의 사람을 지켜야 한다. 아니면 해고당한다!”고 했다. 2000년 설 명절 때 시장은 베이징에 갔던 파룬궁 수련생을 모두 구치소에 수감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 직장의 이 대표이사는 “베이징에 갔던 가지 않았던 ‘연마한다’고 하면 모조리 잡아라. 편안하게 설을 보내자”라고 했다. 이렇게 섣달 29일 저녁에 공장의 경비처는 현지 파출소 경찰과 함께 집집마다 다니면서 ‘연마한다’고 말하는 파룬궁 수련생을 몽땅 잡아갔다. 한 시기 공장 지역에는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내일은 그믐날 밤이고 한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이며 일 년 내내 일하고 이때 가족이 함께 모이지 못한다면 매우 슬픈 것이다. 하물며 백발노인, 가족을 억지로 구치소로 끌고 가는데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 우리 직장 파룬궁 수련생은 거의 다 잡혀 들어갔다. 잡혀가지 않았어도 집의 앞뒤에 모두 사복경찰이 매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비록 도망쳐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사당이 한차례 또 한 차례 운동 중 사람을 모두 두렵게 만들어놨고 이번에는 더욱 흉악스러웠으며 사람을 다 놀라게 만들어 어느 집도 감히 수련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낮에 아이를 데리고 큰 눈이 내리는 거리에서 걷고 걸으면서 날이 어둡길 바라고 저녁에야 친척 집에 갈 수 있었다. 그 느낌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낫지 않았다.

선악유보는 하늘의 이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이사의 아내가 포동포동한 남자아이를 낳았는데 며칠 안 돼서 죽었고 이 소식을 꽁꽁 숨겼지만 결국 알려졌다. 이 사건은 젊은 대표이사에게 큰 타격을 줬다. 우리는 대표이사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했으나 그는 출근할 때 전용차량이 있고 근무할 때 경비가 지키고 있어 아예 그를 만날 수가 없었으며 전화해도 받지 않고 진상편지도 보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오직 진짜 이름으로 서명하고 그에게 진상편지를 쓰는 방법 밖에 없었다. 비록 위험성이 있지만 승산도 크다’고 생각했다. 나는 며칠 동안 밤새 심사숙고한 끝에 7~8장의 진상편지를 쓰고 두 수련생에게 읽어줬더니 그녀들도 울었다. 나도 글 쓰는 과정 중 몇 번이나 흐느끼며 써내려갈 수 없었다. 나는 내 마음으로 그에게 이 편지를 보내면 그는 꼭 구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름을 편지 맨 끝에 썼고 편지의 서두는 ‘내 이름이 편지에 있으니 보고나면 내가 누군지 알 것입니다’라고 썼다.

먼저 나의 전반생은 항상 ‘우수’했다는 것을 썼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나이가 어리지만 학교를 다니겠다고 고집부리는 바람에 교장에게 시험 점수를 보여주고 앞당겨 학교에 다녔고 4학년 때 또 월반(越班)하고 앞당겨 졸업했으며, 열 몇 살 때부터 지식 청년은 농촌에 가자는 호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농촌에서 온몸에 병이 생겼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학시험을 복구된 첫 해 농촌에서 시험을 봐서 대학에 붙었으며, 졸업 후 공장에 배치를 받았고 얼마 안 되어 국가 미 개척분야의 과학연구 항목에 참여했는데 몇 편이 논문도 국가급 간행물에 발표되어 파격적인 승진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을 해서 온몸에 병이 생겼는데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 파룬궁을 연마해 병이 다 나았는데 오히려 문밖으로 내쫓고 해고하고도 원한이 풀리지 않아 굳이 감옥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파룬궁을 연마하고 질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누굴 방해했어요? 왜 못살게 굴어요? 헌법 제36조에 공민은 종교신앙의 권리가 있다는 규정이 있고 민법통칙 제98조에 공민은 생명을 건강하게 하는 권리가 있다는 규정이 있고 파룬궁은 예외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룬궁은 합법적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파룬궁이 무엇이라는 것을 썼고 또 “파룬궁의 모든 서적은 국가의 출판허가를 받고 공개적으로 발행하는 것입니다. 지금 연마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또 ‘사악’하다고 합니까? 법을 얻기 전에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나요? 같은 나이의 동료가 임금이 반급도 올라가지 못해도 저는 한급 반씩 파격적으로 올라야 했고, 같은 나이 동료가 숙소를 얻지 못해도 저는 큰 숙소에서 살아야 했어요. 어느 한 가지 이익도 갖지 못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이유 없이 해고당했어도 누구도 미워하지 않아요. 파룬궁을 연마하기 전에 누가 감히 저를 이렇게 대하겠어요?! 지금 좋게 변했는데 오히려 감옥에 집어넣으려고 하네요. 도대체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하죠? 지금 표면상 우리가 박해를 받고 있지만 사실 진정으로 박해 받는 사람은 당신 같은 사람입니다. 당신 부부의 신체가 좋고 선진적인 의료수준이 있는데 왜 당신의 아들을 살려내지 못했을까요? 당신은 상급의 명령을 집행한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사실 구체적인 일은 당신이 한 것이고 피동적이 아니고 주동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다릅니다. ‘문화대혁명’ 때 3종류 사람의 결과는 매우 비참했어요. 부모님께 물어보시면 알 것입니다. 파룬궁의 질병을 없애는 효과는 빠르지만 집에서 혼자 연마하면 힘들어 견지하지 않으려 해요. 특히 가부좌할 때 다리가 아프면 견지하지 않으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연공하면 다리가 아파도 남이 견지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견지하게 되죠. 오랫동안 가부좌할 수 있어 질병을 없애는 효과가 좋기에 함께 연공하는 것이지 무슨 정치 도모 같은 것은 없어요. 당신들은 파룬궁을 잘 몰라서 오해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당시 많이 썼지만 지금 일부분은 생각나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에서 큰 대회를 열었는데 젊은 대표이사가 회의를 주최했다. 그는 상품품질, 안전생산, 판매목표 등을 반나절 말하고는 회의를 끝낸다고 선포했다. 이때 사당서기(지금 암에 결렸다)가 조급해 “여보세요, 파룬궁 문제는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라고 했다. 젊은 대표이사는 파룬궁이란 말을 듣자 감전당한 것처럼 강단에서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머리를 테이블에 대고 말하지 않았다. 객석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된 거지? 설날 전만 해도 파룬궁을 말하기만 흉악스럽게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더니 오늘은 어떻게 된 거지?”라고 속닥거렸다. 침묵이 길어지자 사당서기는 멀리서 마이크를 가져가 “각 부서는 돌아가 여전히 자신의 파룬궁 수련생 부하를 잘 지켜야 한다……”라고 했다.

이후로 우리 직장에서는 다시는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 이후에 국가 제도개혁으로 된 우리 직장은 노동자를 세 등급으로 나누고 각 부서로 배치했다. 가장 좋은 직장은 월급이 높고 대우가 좋은 공직이었는데 사람마다 비집고 들어가려고 애썼다. 그때 나는 이미 해고당한지 6년이 되어 인사과 과장은 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삼아 배치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 젊은 대표이사가 나를 공직에 배치했는데 가장 좋은 부서였다. 온 공장 사람들은 무슨 원인이지 몰랐지만 나는 매우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가 진상을 알고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한 체현이었다.

모두 내가 구해야 할 사람

2009년 어느 날, 본사의 한 노 지도자가 세상을 떠서 추모회를 열었다. 이전에 별로 왕래가 없어 참가하지 않으려 하다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참가했다. 그날 나의 상태는 매우 좋았고 거의 한 사람에게 삼퇴를 권하면 한 사람씩 탈퇴시킬 수 있었다. 과정 중 ‘이 사람은 평소 나와 사이가 좋지 않는데 그가 나를 고발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즉시 ‘이 일념은 바르지 않다. 제거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날 온 사람은 보통 지도층이었고 평소에 만날 수 없었기에 오늘 반드시 똑똑히 진상을 잘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25명 삼퇴를 시켰는데 다수가 당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앉은 나는 기뻤고 자신이 더욱 예뻐보이고 온 몸이 가볍고 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백화점에 들렀다. 벌써 봐둔 옷이 있었지만 비싸서 여태껏 사지 못했는데 오늘 150위안 할인한 것을 보자 즉시 샀다. 판매원은 예쁜 처녀였는데 매우 친절하게 접대했다. 이것은 진상을 들으러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옷을 입어보면서 처녀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흔쾌히 받아들였고 삼퇴를 동의했으며 거듭 감사하다고 했다. 계산할 때 젊은 가게 주인은 카운터에 100위안만 받으면 된다고 했다. 직원은 사장이 헷갈린 줄 알고 “이것은 150위안짜리 옷입니다.”라고 했더니 사장은 안다고 했다. 직원은 내게 “사장을 알아요?”해서 나는 “몰라요”라고 했다. 나는 옷을 들고 나가려다가 ‘이 사장은 왜 이유 없이 내게 50위안을 할인해줄까? 인연 있는 사람이고 진상을 들으려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웃으면서 사장에게 다가가 “저를 아세요?”라고 했다. 그는 “몰라요.”, “그런데 왜 이렇게 하시죠?”, “고객님은 보통 사람과 달라보여서요.”, “예, 그래요! 참 보는 눈이 있군요. 저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에요.”, “금방 판매원과 말하는 표정을 보고 짐작했어요.”, “파룬궁을 잘 알아요?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 한다는 것을 알아요?”, “몰라요”라고 했다. 그래서 또 사장에게 진상을 한번 말해줬더니 그도 잘 받아들였고 삼퇴에 동의했다. 집에 돌아와 오늘 잘했다고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시려고 50위안을 깎아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50위안이 비록 많지는 않지만 이는 내게 바르게 걸었고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3. 소굴에서 진상을 알리다

우리 지역 한 농촌 남자 수련생은 대륙 가장 사악한 한 교도소에서 구타당했다. 가족이 면회할 때 그에게 “구타당했어?”라고 묻자 그는 “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교도관은 돌아와서 더욱 잔혹하게 수련생을 박해했고 오랫동안 면회하지 못하게 했다. 이후에 교도관 소장이 편지로 수련생의 정서가 의기소침해 하는데 가족보고 말 좀 하라고 했다. 면회 후에야 수련생은 박해를 받아 폐결핵에 걸렸고 팔이 부러졌는데 치료받지 못해 고름이 생겼고 이미 못쓰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번에는 가족과 수련생이 합쳐 모두 7~8명 갔는데 그들은 모두 교도소 수련생을 보러 간 것이고 나와 A수련생은 가족과 함께 교도소 부소장을 찾아 보석 치료를 받는 것을 협상했다.

교도소 부소장을 만나 온 목적을 말하자 처음에 그는 관리의 말투로 수련생이 ‘전향’하지 않고 죄수복을 입지 않는다 등이라고 했다. 좀 있다가 A 수련생은 가방에서 한가득 자료를 꺼내서 부소장에게 주자 열심히 봤고 매우 자세하게 봤다. 갑자기 테이블을 두드리고 “말해! 이것, 누가 썼지? 말해! 누가 사당이야? 어느 것이 가짜 법원이야? 오늘 똑똑히 말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가족은 놀라 그 자리에서 울었고 A수련생도 놀라 한마디도 감히 하지 못했다. 공기는 마치 굳어버린 것 같았다. 대치 중 한 여자 교도관이 들어왔는데 부소장과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엄숙해요?”라고 했다. 부소장은 자료를 가리키면서 “봐, 네 아빠도 있네”라고 했다. 그제야 그녀가 바로 소장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고 이 여자가 나타나 더욱 방해할까 봐 즉시 사부님께 ‘1대1로 부소장에게 진상을 알리겠어요. 이 여자가 빨리 나가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다. 이때 여자의 핸드폰의 벨소리가 나더니 그녀는 전화를 받으러 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부소장을 구하겠다고 사부님께 가지해 달라고 했다. 나는 태연하게 “왜 이러시죠? 할 말이 있으면 천천히 말해요. 급할 것 없죠?”라고 하자 부소장은 나를 향해 “당신은 누구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오기 전에 내가 할 역할을 상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련생의 가족은 다급히 “저의 언니에요”라고 했더니 부소장은 의심스러운 말투로 “당신 언니라고?”라고 했다. 나는 급히 “처형 알지요? ○○의 처형이에요”라고 했다. 나의 우스개 말투는 단번에 이 공포스러운 기분을 깼고 부소장도 웃으면서 “비슷하게 생겼군요”라고 했다. 수련생 가족은 하루 종일 밭에서 바람을 맞고 햇볕에 쬐이면서 일하는 농촌 부녀자였고 나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인데 우리 둘이 어찌 비슷하게 생겼느냐! 내가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사부님께서 그 배후의 요소를 제거하시고 그렇게 보이게 만들어내신 것이다. 나는 우스개 반으로 “누가 썼어요? 당신 생각엔 누가 썼을 것 같아요? 우리 중에 누가 쓸 줄 알 것 같아요? 남에게 부탁해 쓴 것이죠! 법률을 안다면 여기에 앉아있을 수 없고 변호사가 됐죠”라고 하자 부소장은 웃으면서 담배 한 대를 붙이고 내게 비위를 맞추려는 말투로 “당신들 오늘 나를 만나서 그렇지 다른 사람으로 바꿔봐, 당신들은 죽었어”라고 했다. 이때 A수련생과 가족도 제정신이 돌아와 서로 한마디씩 했다. 마지막에 나는 “관청은 철로 만든 것이고 관리는 흐르는 물이다(관리의 변동이 빈번하다는 뜻)는 속담이 있잖아요. 나이가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몇 년 있으면 퇴직할 때가 안 됐어요? 지금 권력이 있을 때 덕을 쌓고 좋은 일을 하지 않고 뭘 해요? 오늘 우리를 도와주고 일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온 가족 노소가 당신을 잊지 않을 겁니다. 퇴직한 후 아들과 손자들에게 당시 파룬궁을 박해하는 가장 심한 시기 누구를 보호했고 누구를 도와준 적이 있다고 말하면 아들과 손자들도 ‘대단하다!’고 말할 것이고 할 말도 있지 않겠어요. 오늘 우리를 돕지 않거나 난처하게 하면 당신에게 무슨 이익이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지나가면 이름을 남기고 학이 지나가면 소리를 남겨요. 하물며 기공을 연마하는 일 뿐인데요.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정식적인 규정이 없답니다. 새로운 지도자가 올라와 파룬궁에게 누명을 벗기는 일이 있을지도 몰라요”라고 하자 부소장은 입을 오므리고 웃으면서 썼다. 다 쓰고 문을 안에서 닫아걸고 그가 쓴 ‘보석 신청서’를 가리키고 한번 베껴 쓰고 어디 어디에 가서 수속을 밟으라고 했으며 절대 그가 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부소장과 작별하고 사무실에서 나오니 이미 점심이 됐다. 보석되어 치료를 받는 것을 신청하든 면회하든 모두 오후에 해야 했다. 삼복철이고 무덥고 그늘도 없었다. 교도소 편의점의 물건은 품질도 좋지 않고 바깥보다 몇 배 비쌌고 인근에 식당도 없었다. 가족들은 아침부터 6~7시간 동안 차를 타고 밥도 먹지 못했다. 면회하러 오지 않고 아예 관심도 갖지 않는 가족이 많다. 가족들이 면회하러 오면 교도소에 있는 수련생에 대한 격려고 자신의 위치를 배치하는 것이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그들의 선량한 마음에 복이 있게 해야 하고 그들이 수련생을 면회하러 온 것은 고생스럽고 고통스러운 일로 생각해 다음에 오기 싫어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밥 먹고 휴식할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고 생각하고 햇볕이 내리 쬐이는 곳 이리저리 찾아다녔는데 문득 직원 같은 한 여자아이를 봤다. 멀리서 부터 나를 향해 웃고 있어 빨리 다가가 “여보세요. OO시에서 면회하러 왔는데 오후에야 만날 수 있어요”라고 했다. 그녀는 매우 놀라서 “예, 그렇게 먼 곳에서요?”라고 했다. “그래요! 어르신도 왔고 신체도 좋지 않은데 우리에게 죽 같은 것을 구해줄 수 없어요?”라고 하자 그녀는 “기다리세요”라고 했다. 좀 지나 그녀는 기뻐하며 뛰어오더니 “반장이 허락했어요! 따라 오세요”라고 하여 우리 몇은 따라갔다. 넓은 방을 안내하고 그녀는 “여기는 전문적으로 교도관에게 밥을 해주는 식당인데 교도관들은 다 먹었어요. 마침 아직 신선한 채소가 남아있어요. 원가만 받을 것인데 나가서 말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감사하는 것도 모자라는데 마음 놓으세요. 말하지 않을게요”라고 했다. 그녀는 또 “방에 싱글 침대가 있고 선풍기도 있는데 다 드시면 거기에서 쉬세요. 교도관들이 출근하면 일을 보러 가세요”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 몇은 채소 몇 개, 밥 한 사발씩 주문하고 배불리 먹었는데 30위안 밖에 쓰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신 것이고 우리가 오전에 교도관 소장에게 진상을 알린 것이 정확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우리를 격려해주신 것이다.

검찰관에 압력을 가하다

밍후이왕에서 각지 검찰원에서 해마다 검찰관 한 명을 각 큰 교도소에 파견하고 교도소에 위법행위가 있는가를 감독한다는 것을 봤다. 그래서 교도소 주재 검찰관을 찾아서 A수련생이 구타당해 불구자로 된 사실을 이 검찰관에게 말했다. 이 검찰관은 우리에게 “지금 XX당의 교도소는 인간성 있게 관리하기에 사람을 불구자로 되게 만들 수 없다”는 등 관료적인 말투로 지껄였고 피해자가 파룬궁 수련생이라는 것을 알자 즉시 음성을 높이고 그가 위법했다,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등 말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어느 검찰원에서 파견됐죠? 이름이 뭐죠?”라고 반문하자, 그는 “당신 왜 이래요?”라고 했다. “한참 들어보니, 당신은 법률의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찌 남이 위법했는지 알겠어요? 지금까지 중국의 어느 법률에도 파룬궁을 연마하면 위법이고 파룬궁은 ×교라고 규정한 것이 없어요. 인민대표대회 만이 입법권이 있고 ‘인민일보’ 논설위원 및 장쩌민이 말한 것은 법률을 대표하지 않아요, 그렇죠?!”라고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있게 말하자 그의 태도는 즉시 누그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교도소에서 사람을 구타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승인하지 않았다. 면회 시간이 된 것을 본 나는 “들어올 때 문패에 쓰여 있는 당신 이름을 봤어요. 이렇게 합시다. 제가 가족이 구타당한 상황을 설명한 자료를 쓰고 그 위에 당신은 ‘열(閱)’이란 글자와 이름을 서명하고 이 사건을 알았다는 것을 증명하세요. 다음에 또 왔을 때 해결해주지 않으면 독직죄로 고소할 겁니다. 이러면 이치에 부합되죠?!”라고 하자 그는 바로 A수련생의 상세한 상황을 기록했다. 우리가 나가려 할 때 꼭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거듭 말했다. 나는 “다음에 왔을 때 가족의 상처가 심해졌으면 당신이 교도소와 결탁하고 보복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한마디 보충하자 그는 “그럴 리가 있겠어요? 마음을 놓으세요. 그렇게 안해요”라고 했다.

이런 사악한 소굴에 가서 진상을 알릴 때 정념은 꼭 족해야 하고 탄연해야 하며 말끝마다 이치가 있어야 하고 그들이 스스로도 꿀린다고 생각되게 하면 자연적으로 날뛰지 못한다. 평소에 열심히 진상자료를 많이 보고 일부 법률 기본상식, 일부 데이터는 기록해두고 진상을 알릴 때 사용해야 한다. 감옥은 사악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거기에 가면 꼭 이지로 지혜로 해야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성 교도소 관리국에 가서 사람을 구하다

이전에 교도소 관리국은 기타 정부 부서와 별 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교도소 관리국에 도착하자 멀리서부터 헬멧을 쓰고 총을 든 군인이 앞을 보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을 봤는데 그 기세가 무서웠다. 나와 M수련생은 가족을 따라 들어갔는데 빌딩마다 진짜 총을 들고 보초를 서있는 병사가 있었고 오는 사람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검사했다. 우리는 모든 보초를 지나 주관 부서를 찾아갔다.

이 부서에는 두 근무원이 있는데 남쪽에는 남자가 앉아있었는데 지도자 같았고 북쪽에 여자 서기원, 즉 접대원이 앉아있었다. 그때 일을 보러 온 사람이 많아 우리는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때 M수련생은 그 남자에게 진상을 알리고 나는 앉아서 발정념을 했다. 좀 지나 그 남자는 일어나 우리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소리를 질렀고 듣기 싫은 말을 했다. 나는 즉시 M수련생을 끌어오고 발정념을 하라고 암시하고 그 남자에게 “가족이 교도소에서 구타당해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아요. 잘못 말한 것이 있으면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는 “무슨 가족이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 같은데”라고 했다. 이런 상황 하에 많이 말하면 유리하지 않아 발정념을 하자고 했다. M수련생은 우리 지역에서 진상을 매우 똑똑히 잘 알리는 사람이었다. ‘여기는 정말로 사악이 집중되어 있어 진상을 알리기 어렵구나. 상황을 봐서 하자’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생기자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다.

겨우 우리 차례가 됐다. 서기원은 기록하면서 “무슨 일이에요?”, “남편이 교도소에서 구타당해 불구자가 됐어요. 교도소는 범인도 처분하지 않고 사람도 석방하지 않아 할 수 없이 여기에 상황을 반영하러 왔는데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어요. 지금 교도소는 인간성 있게 관리하기에 그럴 리 없는데?! 가족이 어느 교도소에 있죠? 이름이 뭐죠? 몇 대대죠? 몇 년 판결했어요?”라고 했다. 우리는 “10년!”이라고 하자 그녀는 상냥하고 매우 동정하는 태도로 “무슨 죄를 범했어요? 왜 그렇게 심한 판결을 받았어요?”라고 했다. 우리는 “파룬궁을 연마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자, 서기원은 감전된 것처럼 펜을 책상에 던지더니 얼굴이 어두워지고 흉악스럽게 “파룬궁이야? 상관하지 않겠다! 어디에 가서 고소하고 싶으면 고소해! 다음!”이라고 했다. 가족과 M수련생이 한참동안 좋은 말을 했어도 소용없었다. 서기원이 나쁜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보고 속으로 그녀를 구하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청했다. 나는 “파룬궁이면 왜 상관하지 않죠?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도 사람인데! 마땅히 법률의 보호를 받아야 하지 않아요! 더 말해서 지금까지 어느 법률에도 파룬궁은 위법이라고 규정하지 않았어요! 믿지 않으면 한번 확인해 봐요”라고 하자 서기원은 침묵했다. 계속해서 나는 “농촌에서 집에 남자가 없으면 이 가정은 산산조각 나요. 여자가 가정을 지탱하기가 쉬울까요?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한번 오는 것도 쉽지 않아요. 착하게 생긴 얼굴인데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이 상황을 반영하고 그 교도소를 좀 관리해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도 사람이고 함부로 때려죽여서는 안 되지 않아요? 오늘 당신이 우리를 도와 공정한 말을 해주면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을 구한 것입니다! 얼마나 큰 덕을 쌓겠어요! 당신 말이 쓸데 있든 없든 사실대로 반영한다면 우리 온 가족이 당신을 고맙게 생각할 겁니다”라고 말하며 울었다. 서기원은 한참 말하지 않더니 좀 지나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그런 것을 왜 연마해요?”라고 했다. 나는 “당신 몰라요, 10여 년 전에 그는 불치병에 걸렸는데 집이 가난해 돈이 없었고 돈이 있더라도 치료할 수 없었어요. 파룬궁을 연마했는데 짧은 시간 내에 다 나았어요”라고 했다. 서기원은 “정말이에요?”, “이런 것이 가짜가 있겠어요?”라고 하자 그녀는 혼자말로 “그러기에 그렇게 탄압해도 연마하는 것이군요. 먼저 돌아가세요. 마음을 놓으세요. 꼭 상급에게 반영할게요, 전화번호를 남기고 소식이 있으면 전해드릴게요”라고 했다. 뒤에 아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녀는 “제가 바래다줄게요”라고 했다. 우리가 난처함을 당할까 봐 그러는 것이었다. 그녀는 줄곧 우리를 대문 밖까지 바래다줬고 우리가 멀리 갔는데도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중국 대륙에 그녀 같은 사람은 진상을 매우 듣기 힘들 것이다. 전생에 내가 그녀와 약속이 있어 이런 환경 속에서 그녀를 구해야 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금방 들어왔을 때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에 사악한 그 남자가 나를 한바탕 놀라게 하고 진상을 알리지 못하게 했다. 서약을 실행하도록 가지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이는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라 그때 한 많은 말은 지금 생각나지 않는다. 평소에 진상을 잘 알리는 것도 아닌데 사악이 집중된 곳에서는 진상을 잘 알려 그녀가 울게 했다. 이것은 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소원이 있기에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해주신 것이다. 나는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는 법에 또 새로운 깨달음이 있게 됐다.

4. 이지로, 지혜로 진상을 알리다

상대방의 각도에 서서 선(善)을 권하다

금방 박해 때 현지 경찰국의 부국장(전문적으로 파룬궁 박해를 관리)은 매우 사악했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진상을 알려도 듣지 않았다. 그가 동료들과 자주 놀고먹기에 경찰 신분으로, 경찰의 각도에서 그에게 편지를 썼는데 대의는 이러했다. ‘파룬궁을 박해하는 명령은 구두통지 혹은 서명하지 않는 문서를 사용하는데 왜 이러는지 아는가? 한번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운동마다 오늘 때려 엎고 내일 누명을 벗겨주고 마지막에 일부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민중의 분노를 가라앉게 하지 않았는가? 누가 희생양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한 것이다. 지금 모질게 손을 쓰면 이후에 누가 우리를 감싸줄 수 있을까?! 지금 자신을 위해 좀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짓을 하면 가정에 불리하다고 들었다……’ 얼마 안 되서 수련생 가족이 부국장을 찾아가 사람을 석방하라고 했는데 그의 태도는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얼마 후 그는 전임했다.

박해 초기, 우리 지역의 한 수련생의 남편이 유언비어를 날조한 매체 선전의 나쁜 영향을 받아 수련생이 교도소에 납치당해 박해를 받고 있는데도 그는 동정하지 않고 교도소에 가서 자꾸 수련생과 이혼하자며 협박했다. 그에게 진상을 알려도 듣지 않았으며 그는 말재주가 좋아 보통 사람이 말로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수련생들은 “누가 그와 말을 걸 수 있을까?”고 교류했다. 수련생이 출소할 때가 되어 시간이 매우 긴박했다. 당시는 사악이 미친 듯이 날뛰는 시기라 가족이 데리러 가지 않는다면 번거로움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걱정했다.

어느 날 남편이 “당신 하루 종일 마음이 딴 곳에 있는 것 같은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어?”라고 했다. 내가 이 일을 남편에게 말해주자 남편도 저녁 내내 하소연 했다. “우리(그 남편을 가리킴)는 같은 처지지. 우리의 심정을 당신들은 몰라. 공산당은 사람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을 것이고 당신들은 저마다 고집을 부리는데 언제 끝이 있겠어? 아이들도 이후에 영향 받을 텐데. 이혼, 그건 부득이한 일이야.” 나는 이튿날 펜을 들고 당시 남편 마음의 고통스러운 과정, 인성이 어떻게 악을 이겨내는 과정을 썼고 그리고 같은 남편으로서 타인은 자신보다 양심 있고 자신보다 인간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과연 그 남편은 편지를 보고 변했고 수련생이 만기되어 석방할 때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다. 반년 후 그 수련생이 남편 옷을 빨아줄 때 지갑에서 이 편지를 발견했다. 이 편지가 그를 감동시켰기에 보고도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 편지의 한 단락이다. “보세요! 지금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같은 경험이 있었고 십자로에서 주저하고 방황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내는 이전에 온몸에 병이었기에 간신히 번 돈은 모조리 그녀가 약을 먹는데 썼고 병마에 시달린 그녀는 성격이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그녀가 연공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이혼했을 겁니다. 그녀가 연공한 후 정말로 병이 나아졌고 성격도 좋아졌어요. 그런데 막 화목한 생활을 하게 됐는데 또 연마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당의 기세를 봐서 그녀들을 죽이지 않더라도 껍질을 한층 벗길 것 같으니 걱정이 되어 그녀에게 연마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연마하지 않고 병이 발작되면 누가 돌봐줘요?’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말한 것도 이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직장에서 찾고 파출소에서 잡아가고 아이가 울고 아내는 연마하겠다고 해서 하루하루 걱정에 싸여있었지요. 언제 끝이 보일까? 드디어 어느 날 견딜 수 없어 저도 이혼하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혼하면 아이가 울고 엄마를 찾겠다고 난리 나고 어린 아이가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엄마가 아이를 그렇게 예뻐하는데 아이가 커서 ‘왜 엄마랑 이혼했어요’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네 엄마가 기공을 연마해 ××당에게 잡혀가 연루될까 봐 이혼했다’고 할까요? 이러면 아이는 나를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주위 사람도 저에게 양심이 없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부부는요! 그녀가 일생을 내게 부탁했고 그녀가 무슨 나쁜 일이라도 하지 않았고 몸을 건강하게 하겠다는데 이혼을 하면 되겠습니까? 너무 인정이 없는 게 아닐까,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습니다. 어느 날 대학 동창을 만났는데 그가 나를 일깨워줬습니다. 그는 ‘헌법 36조에 공민은 신앙하는 권리가 있다고 규정되어 있고 민법통칙 98조에 공민은 생명이 건강하게 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파룬궁은 예외가 아니라고 쓰여 있지 않기에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면 사람을 함부로 잡아갈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나는 다시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법률의 무기를 들고 제 아내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뒤에 무엇을 썼는지 지금은 잊었으나 이 남편 마음의 고통스러운 과정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이 한통의 편지는 화려한 언어가 없었고 그를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각도에서 서술했기 때문이다. 억지로 설교하지 않았고 서술하는 과정에 그의 양심과 선한 마음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많은 수련생들의 남편도 본 후 모두 좋다고 했다. 이는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당시 쓸 때 정말로 눈물로 쓴 것이고 진심으로 그에게 서술했던 것이라는 점은 기억하고 있다.

얼마 안 되어 우리 지역 나와 매우 가까운 수련생이 납치됐다. 나는 그녀의 딸을 보기만 하면 며칠 동안 울어야 했다. 어느 날 딸은 내게 “엄마, 그들(박해에 참여한 사람을 가리킴)에게 편지를 써서 박해하지 말라고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아이가 줄거리를 쓰고 내가 정리했다. 편지를 쓰고 수련생에게 보여줬더니 많이 복사했고 어떤 사람은 진상편지로 다른 사람에게 붙여주기도 했다. 이후에 어느 수련생이 밍후이왕에 보냈는지 밍후이왕에도 발표됐다.

당시는 박해초기라 진상자료가 없었다. 이후에 밍후이왕에 진상자료가 많아지자 나는 쓰지 않았다. 지금 어떤 때 인터넷에 박해에 참여한 악인 및 악행을 적고 그에게 진상편지를 보내줬는데 서두는 “안녕하세요! 인터넷에서 당신의 이름을 봤습니다. 당신이 지금 ‘불놀이’를 하고 계신 것을 아십니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파룬궁은 불법(佛法) 수련이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바른 믿음을 박해하는 자는 모두 좋은 결과가 없습니다. 믿지 않으면 역사를 한번 확인해보세요”라고 그에게 압력을 주고 ‘아이고! 내가 한 일을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겠구나’를 알려준다.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므로 친척과 친구 앞에서 머리를 못들고 정신적 부담감을 갖게 하면 그는 좀 삼갈 수 있다. 그리고 또 이 사람의 악행을 겨냥해 밍후이왕의 권선편지를 함께 보내준다.

상황에 따라 같지 않은 방법으로 진상을 알리다

어떤 사람은 “파룬궁은 병을 없애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지만 국가가 연마하지 말라고 하면 연마하지 않으면 되지? 국가와 맞서면 무슨 좋은 점이 있느냐?”고 하면 나는 “옛날에 도가는 ‘진(眞)’만 수련하고 불가는 ‘선(善)’만 수련하지만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하는데 틀린 것이 뭐죠? 누구와 고집부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 파룬궁은 사람에게 하나의 문화를 가져다 준 겁니다(이것은 ‘9평공산당’ 중의 한마디다).”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분명히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과 대법제자가 무고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공의 폭정이 두려워 파룬궁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며 이렇게 저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은 “좋다면 집에서 연마하지, 도처에 가서 말하는데 그들이 왜 붙잡지 않겠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면 나는 “헌법에 공민은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은 호흡을 못하게 하고 숨 쉬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박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이런 실례를 든다. 한 프로 권투선수가 많은 사람 앞에서 한 소녀를 한 주먹 한 주먹 때리고 있고 소녀가 주위 사람에게 구해달라고 하는데 방관자들은 비위를 맞추며 “왜 소리 지르냐? 더 괴롭히게”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런 사람은 도덕과 양심이 있어요?!”라고 반문하고 이런 사람들의 양심을 불러일으킨다.

한번은 고급 엔지니어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녀는 “당신들은 선을 논하지 않아요, 일부 전단지에 왜 누가 찢으면 누가 보응을 받는다고 쓰여 있는데 이것은 남을 저주하는 게 아닌가요?”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진상 전단지는 마치 한 장의 ‘구인벽보’와 같은데 당신이 찢어버리면 집을 찾지 못하는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찢어버린 것이 아닌가요? 만약 신체가 약한 아이가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어 얼어 죽거나 굶어죽을 수 있는데, 그러면 그의 죽음과 당신이 관계가 있는 겁니다. 진상자료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기에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을 훼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훼멸시키는 것이라면 말해 봐요, 이것은 작은 일입니까? 이렇게 큰일인데 보응을 받지 않겠어요?”라고 하자 그녀는 맞는다고 했다.

어떤 때 진상을 알리면 어떤 사람은 위협하는 말투로 “파룬궁을 선전하고 탈당하라고 권하는데 고발하면 판결을 받을 것이다”라고 한다. 이렇게 호의를 갖지 않고 말하면 “아, 지금 법제국가에서 백성들은 반드시 법률을 알아야 해요. 아니면 ××가 갖고 노는 것도 몰라요. 헌법에 공민은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규정했어요. 둘이서 여기서 말하고 있을 뿐이고 무슨 화제를 의논하든 법을 위반하지 않는 것이며 사람의 기본권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말하기 싫으면 말죠, 누가 꼭 당신과 말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말하는 일 가지고 무슨 고발한다는 소리를 해요?”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기도 하네요”라고 한다.

2005년 ‘삼퇴’를 권하고 진상편지를 붙일 때부터 사람들이 진상자료를 끝까지 보게 하기 위해 나는 직접 짧은 글, 사람을 감동시키는 몇 마디로 그가 계속 보게 하고 또 인터넷에서 출력한 전단지와 함께 그에게 붙여준다. 이 짧은 글이 밍후이왕에서 발표된 후 카드로 만들고 변두리에 꽃무늬로 장식했더니 매우 보기 좋았고 소책자에 끼워 넣었더니 효과도 좋았다. 이 짧은 글의 서두는 이렇게 썼다. ‘친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진상자료마다 모두 사랑의 끈이고 이는 당신과 저의 인연을 연결시키고 사전(史前)의 큰 소원-재난이 오기 전에 꼭 서로 돕고 일깨워야 한다는 것을 실행합니다. 그러므로 온갖 방법으로 ‘하늘이 중공을 소멸하려고 하고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할 수 있다’는 하늘의 뜻을 당신에게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정치와 관계없지만 당신의 목숨과는 관계가 있습니다.’

막 삼퇴를 권하기 시작했을 때 진상을 알리기만 하면 사람들은 당을 반대하고 정치에 참여한다는 등등을 말했다. 나는 실례를 들어 사람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곤 했다. 예를 들어 “중공은 마치 큰 나무와 같고 빗속의 사람들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이때 누군가 ‘빨리 도망가세요! 하느님이 번개로 이 나무를 치려고 해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명석한 사람은 즉시 뛰쳐나옵니다. 당신만 믿지 않고 이 나무를 끌어안고 놓지 않는데 어느 정도로 빠져 있어요?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면 되지, 이곳이 지진이 일어나려는데 빨리 철거하면 되죠. 하늘이 중공을 소멸하려면 당신은 탈퇴하면 되는 것은 명석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여기에 어디 정치와 관계가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의 목숨과 관계됩니다”라고 했다.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기사 머리 앞에 마오(毛) 악마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나는 “왜 이걸 걸어요?”, “위인이잖아요”, “위인이라니? 죽은 사람 일뿐입니다”, “평안을 보장한다고 들었는데요”,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56세입니다”, “그가 정권을 잡은 후 무슨 좋은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시죠. 한 차례 한 차례 운동만 발동하고 운동마다 적지 않는 사람을 죽였고 3반(三反), 5반(五反), 사청(四淸),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백성들은 가난해 죽을 뻔했는데 어디가 좋아요? 그가 살아있을 때도 우리가 가난에 빠졌는데 그가 죽어서 당신을 부자가 되게 하겠어요? 그가 죽자 그의 아내 및 그의 가족은 모조리 감옥에 들어갔고 가정이 산산조각 나고 사람이 죽었어요. 자신의 아내마저 보호하지 못하는데 그가 어찌 당신의 평안을 보장하겠어요?”, “한 말씀이 맞네요”라고 했다. 그리고 마오 악마의 사진을 집어치웠다.

아는 기사가 있었는데 그의 차에도 큰 마오 악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서로 잘 알아 그의 차를 탈 때마다 그에게 진상을 알렸으나 그는 믿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므로 정말로 탈퇴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약 1년 후 내가 또 그의 차를 탔는데 마오 악마의 사진이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에 들었는데 그는 큰 재난을 당했다고 했다. 한차례 교통사고로 이미 가산을 전부 탕진했고 아들이 비록 죽지 않았지만 거의 폐인이 됐으며 아내도 달아나자 그는 마오 악마가 재난을 초래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공안 처장에게 진상을 알리다

이 공안 처장이 부임할 때 나는 이미 해고당해 그는 나를 몰랐다. 나를 모르는 이상 알려주지는 않았다. 나는 바깥의 공중전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여보세요! 처장이에요?”, “예, ○○○입니다. 어느 분이시죠?”, “○○○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요?”, “벌금에 관해 말하려고요. 2000년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왔는데 경찰국에서 저에게 벌금 3000위안을 내렸어요. 이 돈은 당연히 되돌려줘야 해요.”, “왜죠?”, “헌법에 공민은 청원할 권리가 있다는 규정이 있고 파룬궁은 예외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기에 저는 합법적이고 당신들이 벌금하면 위법이므로 되돌려줘야 합니다.”, “베이징에 당신들을 데리러 갔을 때 돈을 썼어요”, “저를 데려가라고 요구하지 않았어요? 누가 당신보고 데려가라고 했으면 그를 찾아가야 하지 않나요?”라고 했다. 그는 무지막지하게 “주지 않겠다, 어쩌려고? 무슨 방법이 있으면 한번 해봐!”라고 했다. 그가 억지를 쓰는 것을 보자 나는 웃으면서 “사실 난 그까짓 돈으로 굶어죽지 않고 당신도 그까짓 돈을 받아도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하물며 이 돈을 개인 지갑에 넣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나 생각해봤어요? 법을 위반하지도 않았는데 남의 돈을 벌금하고 이후에 어떻게 교대하겠어요? 공산당은 운동마다 사람을 많이 죽이고 운동 후 또 매번 적지 않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는데 그 결과는 아주 비참해요. 파룬궁을 박해하는 문서는 모두 서명하지 않는 문서인데 왜죠? 누구도 증거를 남기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말하지 않겠어요. 알아서 처리해줘요. 그까짓 돈으로 굶어죽지 않고 정말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잠깐 침묵하고 “그 돈을 돌려줄게요. 다른 사람은 안 됩니다. 내일 가지러 와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5. 사부님께서 위험한 환경을 벗어나게 구해주시다

2000년 말 우리 지역 B수련생이 노동교양소에 납치됐는데 친정이 외지에 있고 남편은 바람을 피워 아예 그녀를 관여하지 않았고 아이도 어렸다. 그때는 사악이 가장 미쳐 날뛰는 시기였기 때문에 노동교양소에 면회하러 간 어떤 수련생도 수감됐다. 당시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가지 않으려 했는데 L수련생이 먹고 쓸 것을 다 준비했고 차량도 빌렸다면서 나를 차로 끌어올렸다. 면회 등록할 때 나는 B수련생의 언니인데 면회증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자 우리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면회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녀의 친언니도 왔지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 잘 몰랐다. 이때 스피커에서 ××언니 ×에 오라고 해서 나는 재빨리 뛰어가 ××언니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도관은 나를 철문 안으로 끌고 가 “한 번 더 말해봐, 누구라고?”라고 했다. 여전히 ××언니라고 말할 때 ××의 친 언니가 면회증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매우 닮았기에 누가 봐도 자매였다. 나는 놀래 멍했다. 사악한 교도관은 “말해! 이름이 뭐냐? 파룬궁을 연마하는 거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를 당장 잡아갈 기세 같아 할 수 없이 그녀의 동료인데 평소 나를 잘 대해줬고 우리 집 경조사에 다 왔기에 진 신세가 너무 많아 물건을 좀 사들고 신세를 좀 갚으려고 보러 왔다고 했다. ××수련생의 친 언니는 다급히 “당신이 옌 씨죠?!“라고 했다. 나도 맞춰서 “예, 제가 바로 그녀 맞은편에 있던 옌이에요”라고 했다. 그녀의 언니는 사악한 교도관에게 동생에게서 그녀 둘 사이가 좋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 과정 중 나는 끊임없이 ‘잡혀 들어가서는 안 된다. 사부님, 빨리 구해주세요’라고 사부님께 빌었다. 사악한 교도관은 나를 놔줬다. 이후에 집에 가 반성해봤다. 1. 사악한 소굴에 가서 수련생을 면회하는데 마음의 준비를 잘하지 못했다. 2. 정 때문에 사악에게 틈을 타게 했다. 면회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여 수련생이 면회하는데 유리창 안에서 울고 그녀의 남편은 유리창 밖에서 울었으며 면회가 끝난 후 여 수련생이 끌려 들어갈 때 그녀의 남편은 머리를 쥐어 싸고 문밖으로 뛰쳐나가 하늘을 향해 통곡하는 것을 봤다. 나도 정에 따라 움직여 한바탕 울었다. 이때 스피커가 울렸고 놀랍고 위험한 그 장면이 발생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구해주시지 않으셨더라면 그날 나는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2004년 우리 지역 20여명 수련생이 동시에 납치당했는데 협조인이 나보고 석방을 요구하러 가족과 함께 가라고 했다. 이 20여명 수련생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급하게 가족을 따라 현지 구치소로 갔다. 구치소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와 가족이 두 개 문을 지나고 마지막 한 개 문을 지날 때 한사람씩 들어가라고 했고 사람마다 “누구를 면회하러 왔지? 그(그녀)와 무슨 관계지? 파룬궁을 연마하는가?”등을 물어봤다. 당시 나는 놀라서 멍했다. 누굴 면회하러 왔는지 몰라 첫 번째 물음부터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멍하고 있을 때 한 가족이 “형수님, 돌아가세요, 저 혼자 면회하면 돼요. 울며불며 시끄러워요”라고 했다. 사실 그의 형은 결혼도 하지 않았고 나보다 10여살 어리고 나는 전혀 그를 몰랐다. 결과 그 가족은 1시간 후에야 내보냈고 면회하지 못하게 했으며 끊임없이 심문했다. 이 가족은 나온 후 내게 “그들은 다른 것을 물어보지 않고 끊임없이 누님이 누군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파룬궁을 연마하는지 물어봤어요. 누님, 다시는 오지 마세요”라고 했다.

한동안 지나 나는 또 가족 명의로 구치소에 수련생을 면회하러 갔는데 경찰은 또 누구 면회하고 무슨 관계며 파룬궁을 연마하는지 물었다. 수련생 가족은 나보고 돌아가고 혼자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를 바로 놔주지 않았고 나를 두 전자문 사이에 40여분 가뒀다. 도처에 CCTV가 있고 40여분이 매우 길어보였다. 다른 공간에는 아마 한차례 격렬한 정사대전이었을 것이다! 내 머리는 이상하게 또렷했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텅 비었다. 조용히 발정념했고 가지해달라고 사존께 청했다. 40분 후 스피커에서 나가라는 소리가 나서 나는 매우 태연자약하게 걸어 나왔다. 당시 매우 침착했고 머리는 이상하게 또렷했는데 여태껏 있어본 적이 없었다. 사부님의 가지가 없었다면 나는 해내지 못할 것이다.

파룬따파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병들어 죽었거나 자살했을 것으로 지금 이 세상에 살아있을 수 없으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으셨다면 평온하게 오늘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너무 너무 많은 것을 주셨지만 사람의 언어로 구도의 은혜를 표현할 수 없다. 오직 정진, 정진, 또 정진하고 법공부를 잘하고 사람을 많이 구해야만 생명을 다시 준 사존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1/281156.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30/1434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