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파룬따파를 수련한 지 이미 18년이 됐다. 법공부를 끊임없이 하고 심성을 닦아, 지금 수련의 경지에 대한 이해는 막 입문할 때와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인식하면 수련의 경지는 생명의 심성 높이, 오성 높이, 층차의 높이, 과위 높이를 체현할 뿐만 아니라 생명이 지닌 공력의 크기, 우주의 크기, 용량의 크기, 지혜의 크기, 위덕의 크기를 체현한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한 가지 현상을 발견했다. 다들 같은 일을 해도 수련생마다 결과가 다르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각 경지의 생명이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결과를 얻는 것을 보았다. 예를 들면, 모두들 대법을 수호할 목적으로 천안문에 갔는데 어떤 수련생은 악독한 경찰에게 불법적으로 붙잡히거나 어떤 수련생은 심하게 구타당했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은 오히려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또 신분증을 지니고 여관에 투숙하거나 비행기를 타도 어떤 수련생은 현장에서 붙잡히고, 어떤 수련생은 신분증을 거듭 검사 당하는가 하면 어떤 수련생은 무사한 경우가 있다.
나는 같지 않는 시간, 단계, 상태에서 같은 일을 해도 결과는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몇 년 전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나는 두려운 마음이 심해 중공 사당인원에 불법적으로 붙잡혔고 강제 불법 노동교양을 받았다. 또 몇 년 전에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아직 두려움이 남아 있어 가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면 놀라곤 했다. 작년에 나는 정정당당하게 공공장소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이 때는 정념이 강해 일을 마치니 무슨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는데, 우리 적지 않는 수련생들은 흔히 표면적으로 문제를 보고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법제자가 집에 진상자료를 만드는 것을 알고 중공 사당인원이 찾아와 불법적으로 그를 붙잡아 갔다. 우리 수련생들은 붙잡혀 간 수련생이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 붙잡혔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으로는 그가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것은 단지 표면적인 원인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이 일을 할 때 그의 인식, 심태, 행위가 속인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심성, 경지가 신, 부처의 경지, 혹은 그 층차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신의 생각으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으로 일을 하니 결과는 짐작할 수 있다.
내 느낌에 수련을 잘한 대법제자는 그의 높은 경지의 행위가 그의 일상생활, 직장생활, 학습, 법공부, 사람을 구하고, 발정념을 하고 ,마음을 닦고, 연공하고, 관을 넘기고, 그리고 일사일념, 언행 등 구체적인 일에서 체현된다. 예를 들면 그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를 할 수 있고 늘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대법이 준 지혜와 불법신통으로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속인이 어떤 일을 하면 일반적으로 먼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근심·걱정하며 자주 사람의 인식, 관념, 속인의 이치로 일을 하게 된다.
내 인식에 우리의 경지가 제고되면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 저항력, 고험은 갈수록 적어진다. 반면에 우리의 경지가 낮으면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 저항력, 고험은 속인의 경지와 같아진다.
사부님은 ‘전법륜’ 제2강에서 말씀하셨다. “현재 과학은 시간에는 장(場)이 존재하고 시간장의 범위 내에 있지 않으면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인식한다. 다른 공간, 그것의 시공개념은 우리 이쪽과 모두 같지 않은데 그것이 어떻게 다른 공간의 물질을 제약할 수 있겠는가? 전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내가 인식했는데 경지의 차이는 우리 수련인과 수련인 사이의 차이를 체현했고, 마찬가지로 속인과 속인 사이에서, 속인과 수련인 사이에, 수련인과 각자(覺者)의 사이에, 각자와 각자의 사이에 체현된다. 사부님께서 ‘정진요지-경지’에서 말씀한 것처럼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기 위해서 하루 빨리 경지를 제고해야 한다. 오로지 우리의 경지가 마땅히 도달해야 할 최고 표준에 이르러야 우리는 비로소 정법시기 대법제자다울 수 있고 자신의 태어난 아름다운 지역 혹은 천국세계로 되돌아 갈 수 있으며 비로소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나 개인의 견해이다.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들이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4년 2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2/2/2870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