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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음을 버리고 신(神)으로 나아가다

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99년 6월, 나는 운 좋게 대법수련에 들어섰고 당시 56세였다. 나는 자신이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되리라 도저히 생각지 못하였다! 나는 이 우주가 갱신하고 천체가 다시 조합되고 만사만물이 자신의 위치를 배치하는, 이렇듯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거대한 변화를 만나리라는 것을 도저히 생각지 못하였다! 자신이 정법 중 주인공의 한 입자-조사정법의 법도(法徒)가 된다는 것은 더욱이 상상도 못하였다!

박해가 시작된 지 14년 동안 나는 비틀거리면서 이 평범하지 않은 세월을 걸어지나 왔지만 물러서거나 후회를 한 적이 없었다. 제자는 온 몸의 업력, 온 머릿속의 사람마음과 각종 집착에서부터 벗어나, 사악의 박해와 마난 중에서, 사부님 법리의 인도와 ‘방할’ 중에서 마침내 진정으로 법을 인식하게 되었다. 법리를 알게 되었고 견정불이하게 반본귀진(返本归真)하는 회귀의 길을 걸었다!

사람마음의 쟁투는 수련이 아니다.

‘풍운이 돌변하여 하늘을 무너뜨릴 듯 산을 밀어내고 바다를 뒤엎을 듯 거친 파도가 이네’[1]는 중화대지를 휩쓸었고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파룬궁수련생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을 때, 나는 이것은 ‘당 중앙’에서 한 것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7·20’천지를 뒤엎을 듯이 요언을 날조하여 선전하고 살기등등하게 사람을 붙잡고 집을 수색하여도 나는 시종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내가 불복하고 여전히 밖에서 연공을 하자 어떤 사람이 나를 찾아와 “당신이 더 연공하면 당적에서 제명하고 공직에서 제명하고 감옥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고의적으로 잘못을 전가하고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중앙에 나쁜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자신의 본성과 양심에 따라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한 정황과 직접 겪은 체득을 말하려고 결심하였다. 한 달 후 나는 거짓말을 반박하는 편지를 써 나의 친구, 잘 아는 사람에게 보냈고 또 나의 주변 사람과 면전에서 말하였다. 그러나 내가 부친 편지가 공안에 의해 차단되어 억류되고 편지를 받은 상대방이 공안에게 협박·심문당하고 감시당할 줄 몰랐다. 이듬해 여름 한 수련생은 성 소재지에서 진상자료 몇 부를 가져왔다. 나는 마치 보배를 얻은 것처럼 기뻐서 그 자료를 즉시 복사하고 배포하였다. 며칠 후 나는 불법으로 집을 수색당하고 벌금을 내야했다.

2002~2003년 진상자료를 전달하고 배포하여 나는 또 불법으로 집을 수색당해 벌금을 물었고 ,불법으로 3개월 간 감금된 후 6개월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그때 나는 줄곧 당내에 존재하는 나쁜 사람 때문에 우리 이 좋은 사람을 괴롭히는 줄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경찰, 지역사회 인원과 첨예하게 대립하며 논쟁하였다. 나는 그들이 좋고 나쁘고, 시비를 구분하지 않고 좋은 사람을 모함한다고 질책하였다. 구치소에서 그들은 기율검사위원회를 소집하여 나의 당적을 제명하는 통지서를 낭독했다. 나는 아주 엄하게 “내가 그 전에 탈당신청서를 여러 차례 써도 당신들은 받지 않았는데 지금은 검은 자료를 써 나를 비방 중상모략하고 당적에서 제명하려 하는데 이건 무슨 의도인가? 나는 당신들에게 협조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나에게 노동교양하게 처분해도 나는 서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자녀를 속여 사인하게 했다. 나는 매일 시 노동교양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냈고 불법으로 판결한 것에 불복하였다. 후에 그들은 매일 파출소에 나의 행동을 보고하라고 요구하였다. 나는 인신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을 결연히 따르지 않았다. 나는 자유롭게 끊임없이 외지로 가고 친구를 방문하였다. 그들은 나의 가족과 친척을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어디로 가면 현지 파출소에게 소란을 피우게 하였다. 나의 자녀들은 압력이 너무 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부모님, 남편과 함께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몇 년 동안, 원래 거주하던 곳에서는 사부님의 경문과 진상자료를 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불법으로 체포·감금되거나 사악을 피하여 돌아다녀야 했기에 법공부를 많이 하여 법리를 잘 인식하였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다른 한 면에서는 법에 대해 견정하였다. 사람의 이 일면은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몰라서 모두 사람마음, 사람의 염두로 사람과 쟁투하였다. 나의 당시의 사상과 행위는 완전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과학 관념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람 되는 도리에 부합한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치에 대한 불만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부패한 인류의 도덕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과 사부님이 바르다고 여기는 등등이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2]와 같았다. 당시 나는 확실히 무엇이 ‘법에서 법을 인식’[3]하는 것인지 몰랐고 무엇 때문에 수련 중에서 사람마음을 요구하지 말아야 하는지 몰랐고 어떻게 하는 것이 수련인지 몰랐다. 나는 자라면서 사당 문화에 푹 잠긴 ‘홍인(红人)’이었고 그들 중에서는 출중하고 우수한 사람이었다. 결국 수련을 제대로 접하지 못하였고 머릿속에 수련이란 개념이 없었다. 수행(修行)은 봉건미신이라 인식하였다. 바로 사람의 이런 마음이 나를 여기에 남게 하였다.

나는 이것이 무엇 때문인지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남겨주어 도(道)를 깨닫게 하였지만 나는 도리어 깨닫지 못하였다. 이것은 뿌리가 깊은 사당문화의 의식이 내가 신을 인식하는 것을 제약한 것이다. 나는 내가 부처를 수련하고 도를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고 단지 인간세상의 정토를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은 당연히 사부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었다. 나는 ‘도법(道法)’ 경문을 배울 때 반복적으로 여러 번 보아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나의 강렬한 사람마음, 사람의 염두와 집착이 내가 법을 인식하는 것을 저애한 것이다.

2004년 여름, 나는 세뇌반에서 사악에게 속아서 크게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당시 감시인원 두 명을 붙여 밤낮으로 나를 지키게 하였다. 동시에 610주임, 부주임, 시의 유관영도와 일부 ‘공심(攻心)’ 전문요원이 소위 ‘제일 열정적이고 제일 화목하고 제일 관심’있는 태도로 나와 담화하고 교류하였다. 그들은 “당신은 이전에 책임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당신은 제일 이치에 맞게 남을 설복하였어요. 지금 당신에게 중앙에서 파룬궁을 처리하는 극비문건 총집을 줄 테니 (1센티미터 넘게 두꺼웠다) 보세요. 현 단급 이상 책임자가 보는 문건이에요.”라고 말하였다. 문건에서는 파룬궁은 반 중국 세력과 결탁하였다고 비방하였고 당에 적대적인 성향이라고 규정하였다. 나는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었고 고유한 사유관념이 나의 복잡한 투쟁심을 깊이 느끼게 하였다. 17일 동안 나는 거짓에 속아 ‘3수(三书)’를 쓰고 스스로 오점을 남겼다.

집으로 돌아온 며칠 후, 한 수련생은 나에게 사부님의 2000년 12월 ‘북미 대 호수지구법회’를 주었다. 법공부를 한 후 세뇌반에서 거짓을 꾸민 문건으로 나를 속였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나는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대법 책을 펼치고 사부님께 꿇어앉아 참회하고 사죄하였고 대법을 견정히 수련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사람을 벗어나 신으로 나아가다

나는 넘어지고 곤두박질쳤지만 여전히 사람 중의 수련의 길을 잘 걷지 못했다. 2004년 9월 19일 사부님의 ‘정법 중에서 정념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갖지 말라.’란 경문을 본 후에야 비로소 청성해지기 시작하였다. 사부님께서 제일 진실한 말로 명백하게 말씀하신 후에야 나는 비로소 명백해졌다. 그 후부터 나는 법공부를 많이 하기 시작하였고 머릿속의 ‘당 문화’를 깨끗이 씻었다. 진정으로 법을 인식하고 법리가 명백해졌고 자신의 모든 몸과 마음을 법 중에 용해하리라 결심하였다. 나는 반복적으로 ‘9평 공산당’, ‘해체 당 문화’를 보고 들었다. 한편으로 다그쳐 법공부를 하고 동시에 사부님의 모든 설법, 경문을 통독한 후 또 ‘도항(导航)’ 중의 설법 및 ‘정진요지’를 반복적으로 배웠다. ‘홍음’을 외우고 ‘전법륜(转法轮)’을 베껴 쓰고 또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을 다그쳐 하였다. 매일 시간은 부족하였다. 나는 낮잠을 자지 않고 한가로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한담하거나 TV, 영화를 보지 않고 매일 4시간 좀 넘게 잤다. 매일 새벽 3시 50분에 전 세계 수련생과 동시에 연공을 하였다. 동시 발정념을 충실히 하였고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 밖에도 많은 정력을 기울여 자신의 공간장에서 사악한 정보를 내뿜는 모든 물건을 처리하였다. 나는 책장의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 등소평의 저작, 모든 사당 문화 책, 간행물, 소설, 아울러 여러 차례 현, 시, 성, 전국의 간부 학교, 당교에서 공부한 교과서 및 180여 권의 학습 필기, 또 선진 노동모범상장 몇 십 권, 휘장, 증서를 전부 없애고 깃발, 표기, 용품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없앴다. 이것은 나와 ‘서기 남편’이 사당을 위하여 한평생 최선을 다하고 몇 십 차례 이사해도 손상되지 않도록 소중하게 여긴 것들이다. 남편은 비록 수련을 하지 않지만 ‘9평’ 및 진상자료를 늘 보았다. 그는 ‘8천만 원혼(冤魂)’, ‘생체장기적출, 산 사람을 살인’한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을 알고 있었다. 특히 사부님께서는 그를 여러 차례 큰 난에서 죽지 않게 구원하였기에 그는 내가 이렇게 하여도 할 말이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진정으로 법공부를 잘하고 법을 인식하고 법에 용해되는 것을 보시자, 나를 제자로 삼아 나를 보호하시고 수련을 하는 것을 지켜보셨다.

2009년 이전 몇 년 동안, 사부님께서는 세 차례나 꿈에 오셔서 나를 점화해 주셨다. 그것은 선연하면서도 엄숙한 장면이었다! 특히 제일 기억나는 것은 마지막 꿈이다. 나는 법회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발언하였고 마음속으로 발언고를 쓴 것이 괜찮았다고 생각하였다. 회의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잠을 실컷 자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때 사부님께서 오셨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은 또 해야 할 숙제가 있다!’고 하셨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자만, 과시하지 말고 아직도 마땅히 해야 할 많은 일을 하지 못했다고 점화하시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나에게 고생을 극복하고 노고를 견디며 착실히 수련하도록 격려해 주신 것이다. 내가 낯선 지역으로 왔기에 수련생을 한 명도 알지 못했다. 나는 자료를 스스로 편집하고 손으로 선을 권하는 진상 편지를 써서 공안, 검찰청, 법원, 사법국, 정법위원회, ‘610’, 국가보안대대 등 분야 및 지도자에게 보냈다. 나는 일찍 랴오닝 왕융항(王永航)변호사가 최고 사법기관에 쓴 공개편지 ‘이전에 저지른 큰 잘못, 오늘날 남에게 끼친 화를 마땅히 숙청해야 한다.’를 구했다. 나는 이를 나누어 요점을 발췌한 후 현지 정황에 근거하여 편지를 써서 현지 정법부문 및 당위원회, 정부기관에 부쳤다. 평소에 나는 일부 부동한 내용, 부동한 풍격의 진상편지를 집필하고 깔끔하게 필사한 후, 여러 장을 복사하여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보냈다. 2007년 나는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인쇄하는 것을 배운 후 자료가 있으면 나는 대량으로, 광범위하게 진상편지를 우편으로 보냈다. 2009년 6월, 환희심·과시심이 생기고,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 사악에게 불법으로 집을 수색당하고 모든 설비를 갈취 당했다. 나는 사부님의 보호 하에 정념으로 위험에서 벗어나 1년을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 다녔다. 외지에서 떠돌아다니는데 도처에는 감시가 매우 심하였고 나를 받아들이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은 60세 넘은 노년의 여성이 감당하기에 심리적으로 너무 힘든 것이었다. 나는 냉정해졌고 사부님께서 곁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이것을 고생스럽게 행각한다고 생각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한 현성에 도착하였고 가는 곳마다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을 만났다. 이렇게 나는 제자리를 찾았다.

그 곳의 수련생은 매우 정진하였고 나를 데리고 착실히 수련하였다. 매일 3시간 남짓 자고 여가시간에는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배치하였다. 매일 죽을 가득 끓여놓고 두 끼 식사를 하였다. 오전에 밖에서 진상을 알리고 오후에 법공부를 하고 저녁에 토론하고 교류하였다. 그런 다음 밖으로 나가 스티커를 붙이고 표어를 걸었고 간혹 진상표어 풍선을 띄웠다. 행동거지, 언행이 조금만 수련인과 같지 않으면 서로 지적하여 즉시 시정하였다. 정말 착실히 수련하는 곳이었다. 이것은 내가 제고하는데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1년 동안 나는 5, 6개 지방을 다녔고 9명을 대법수련에 들어오게 도왔다. 나의 진상을 들은 10여 명의 사람은 교통사고, 큰 병, 재난 중에서 복을 받고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되었다. 나 자신도 두 차례나 위중한 병의 가상을 걸어지나왔다. 큰 관 앞에서 마음을 굳게 먹고 사부님께서 배치한 대로 따르겠다고 생각했다. 2007년 나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고, 2011년에는 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또 두 번이나 길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 다쳤지만 이런 큰 관, 큰 난 앞에서 즉시 자신은 수련인이므로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구세력이 나의 수련에 빈틈을 탄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였다. 안으로 찾고 사부님께 가지해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사악이 여러 차례 나를 납치하려 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08영 3월, 나는 컴퓨터 인쇄를 배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전화와 광대역을 뜯고 있었다. 이때, 한 경찰이 문을 두드리며 나를 찾았다. 내가 문을 열지 않자 그는 가버렸다. 이때 갑자기 그를 구원해야겠다는 염두가 나왔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내려가 버렸다. 나는 그를 불러 아주 바른 염두로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의 정념이 그의 배후의 사령을 건드렸는지 그는 안절부절 못했고 불안하여 말을 더듬거리고 하는 말은 조리가 없었다. 10분 정도 지난 후 나의 부친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는 기회를 틈 타 도망쳤다. 내가 처음에 그에게 성명과 전화번호를 남기라 하였기에 그날 저녁, 나는 비교적 전면적인 진상편지를 써 실명으로 그에게 부쳤다. 이후 그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2009년 6월, 딸이 혼자 나의 집에 있을 때 공안 국가보안대대의 10여 명이 불법으로 나의 집을 수색하고 나의 모든 진상설비, 자료 등 물품을 강탈해 갔다. 나는 밖에 있어서 몰랐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 대문에서 나를 붙잡으려 지키던 사람이 나를 보지 못하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야 알았다. 이번에 밀려오는 세력은 흉악하여 나는 반드시 위험을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새벽 5시 나는 문밖을 나서며 강대한 발정념을 하였다. 나는 사부님께 가지해 달라고 청하고 사부님께 비를 내려 내가 우산을 쓰게 해달라고 빌었다. 과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우산을 쓰고 대문에서 백 와트 헤드라이트를 비추는 세 명의 악경 주변을 지나 정념으로 위험을 벗어났다. 어두운 밤에 문밖을 나서자 택시 한 대가 앞으로 왔다. 나는 빈손으로 타향으로 멀리 갔다.

2010년 11월 인구조사를 하였다. 사악은 세 차례 우리 집에 와 나를 찾았다. 제일 처음에 내가 일 보러 밖에 나갔기 때문에 찾지 못하였고 두 번째는 외지에 일처리 하러 가 제때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찾지 못하였다. 세 번째, 그들은 저녁 8시 반에 문을 두드렸다. 내가 무심코 문을 열려고 할 때 갑자기 ‘문구멍’으로 사람을 확인해 보자는 생각이 났다. 보니 신분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성거렸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즉시 입장하여 발정념 하였다. 그들은 한 동안 문을 두드리다가 갈 수 밖에 없었다.

2011년 사악은 또 도시에서 대법제자를 납치하였다. 두 수련생은 진상자료을 전달하려고 전화를 걸어 나를 불러냈다. 그들은 사악이 그들을 납치하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두 가방의 자료를 주었다. 길에는 도처에 감시 카메라와 사복 경찰이 있는데 나에게 받으라는 것이 위험하지 않는가? 그러나 수련생의 안전을 위하여 나는 생각할 틈이 없었고 냉정하게 발정념을 하고 가방 두 개를 들고 좀 걷다가 택시를 타고 지하 상점으로 갔다. 다시 꼬불꼬불한 농산물 시장을 갔고 아파트에 가 다른 수련생에게 가방 하나를 주고 나는 나머지 가방 하나를 들고 앞문으로 나갔다. 후에 내가 대문을 나서자 국가 보안대대의 4, 5명 경찰이 앞뒤 문을 막고 기다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허탕을 치고 말았다.

2012년 7월 6일, 나는 한 자료점에 자료를 가지러 갔다. 그곳에서 한창 불법으로 사람을 붙잡고 집을 수색한다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나는 아래층에서 전화를 했다. 이전에는 갈 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받는 사람이 없자 좀 기다렸다가 또 하였지만 통하지 않아 나는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두 수련생은 그곳에 가 함께 납치되었다.

나는 오직 수시로 정념정행하면 사부님과 호법신은 반드시 대법제자를 보호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저작:‘정진요지2’〈심자명(心自明) 〉

[2]리훙쯔(李洪志)사부님저작:‘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3]리훙쯔(李洪志)사부님저작:‘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문장발표 : 2014년 1월 2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새롭게 수련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7/2858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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