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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생명의 심층에서 나오는 감사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 바보 같던 중에 법을 얻다

1995년 남편이 남과 다투다가 과실로 사람을 죽여 감옥에 수감됐다. 나는 태어난 지 18개월 된 딸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돌아온 가련한 신세가 됐다. 딸을 키우며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1996년 한 호텔에서 일했는데 왕잉(王迎)이란 사람을 알게 됐다. 그녀는 내가 재회(齋會-천도재 형식의 복을 빈다)에 가는 것을 보고(당시 외할머니와 두 이모가 재회에 다녔다), “마음이 꽤 정성스러운 것 같은데 파룬궁(法輪功)을 배우면 얼마나 좋아요, 남편이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사부님의 학습반도 참가했었어요!”라고 했다. 나는 “파룬궁이 뭐죠?”라고 묻자, 그녀는 “남편의 말로는 인연이 크면 배울 수 있다고 하는데 난 책만 보면 졸려요”라고 했다. 나는 “한번 읽어보게 그 책을 좀 가져다주세요”라고 했다. 이튿날 그녀가 책을 가져왔다. 내는 첫 페이지를 펼치고 사부님의 법상을 보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 자신은 왜 우는지 모르겠으나 그저 울고 싶었다.

나는 책을 보물로 여기며 한번 다 보고 왕잉에게 그 책을 남편에게 부탁해서 한 권 구입해 달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이 직접 나에게 책을 가져다주었을 때 호텔경비실에서 내게 정공(靜功)의 모습을 한번 보여줬다. 나는 이후에 호텔을 그만두고 ‘전법륜(轉法輪)’을 갖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방에서 ‘전법륜’을 보다가 눈이 깜박거리며 눈이 부셨는데 ‘전법륜’ 책표지가 분명 파란색이었는데 황금색으로 변하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을 봤다. 그렇게 1분간 지속됐다가 다시 파란색으로 변해서 나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당시 그것이 천목으로 본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잇따라 외할머니와 둘째·막내 이모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도 이 책을 보고 법을 얻었다. 그들은 돌려가면서 책을 봤지만 나는 돈을 벌어 딸을 키워야 했기에 또 출근했다.

1997년 남편은 9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엄마는 “기다려라, 그가 돌아오면 여전히 한 가족이야”라고 했다. 그때 혼자서 아이를 키웠지만 너무 긴 세월이라 친정에서 놀고먹을 수는 없었으며 돈을 벌어야 모녀가 살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이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늘 꿈에서 점화를 주셨다. 한번은 매우 생생한 꿈을 꿨다. 외할머니 집 동남쪽에 있는 큰 짠물가가 큰 늪으로 변해 연꽃이 활짝 피었으며 연꽃 위에 영해(嬰孩)가 있었는데 바람이 불면 히히대며 자꾸 웃었다. 이때 “이 한 송이는 네 것이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내 것이라고 하여 꺾어 왔는데 연꽃이 즉시 녹았다. 이런 꿈은 매우 많았다. 어떤 때는 하늘에서 날고, 어떤 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서 사람들이 살려고 도망가는 것을 봤지만 그 꿈을 꾸고 나서 깨달을 줄 몰랐다.

1998년 말 어느 날 밤에 또 꿈을 꿨는데, 저녁 무렵에 나는 막내 이모와 둘째 이모 그리고 그 외 일부 수련인과 함께 앞을 향해 어딘가를 가다가 길을 찾지 못했는데, 그 때 사부님께서 손에 채찍을 들고 나타나셨다. 사부님께서 채찍을 한 번 휘두르시자 앞의 산이 즉시 큰 대로로 변했다. 우리는 사부님을 따라 어는 한 곳에 도착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는 채찍을 크고 깊은 산골짜기 아래로 던져 늘어뜨리시어 좀 지나 한 사람을 낚아 올리셨으며, 또 채찍을 산골짜기로 던져 늘어뜨리자 또 한 사람을 낚아 올리셨다. ‘채찍으로 어떻게 사람을 낚아 올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때 한 사람이 “사부님, 빨리요, 시간이 없어요”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좀 더 기다려보겠다”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끊임없이 채찍으로 땅 아래 속에서 사람을 낚아 올리고 계셨다. 좀 지나 사부님께서는 “시간이 됐다. 빨리 가자, 너희들 꼭 ‘링하이(凌海), 신좡즈(新壯子 혹은 心裝子)’를 기억하라”고 하시며 손동작(아마 수인일 것이다)을 하신 후 두 손을 앞으로 밀자 한 가닥 빛이 우리를 밀어냈으며, 곧 천문을 지나 하늘에서 떨어졌다. 나는 선녀가 하늘에서 날고 꽃바구니를 들고 꽃을 뿌리는 것을 봤는데 투명하고 광채가 눈부셨다.

꿈을 깨고 나서 사부님께서 수련하라고 점화해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긴 했으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두 개의 지명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 꿈을 막내 이모에게 말해 줬더니 “얼마나 큰 인연이냐, 빨리 수련하지 않고 뭘 하니?!”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막내, 둘째 이모와 함께 살면서 먼저 동공(動功), 정공(靜功)을 배웠다. 어릴 적부터 가부좌를 할 줄 알아 처음에 가부좌할 때는 20분을 하다가, 30분으로 늘리자 다리가 아파서 힘들었고, 포륜(抱輪)할 때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1분 1초를 참으면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견지했다.

우리가 한참 ‘홍음’을 외울 때 99년 ‘7.20’이 닥쳤다. 나는 수련을 내려놓고 또 일하러 갔다. 2001년 아이 할아버지와 두 고모는 나와 상의도 없이 우리의 집(집문서는 아이 할아버지의 명의로 됨)을 팔아 처분한 후 내 짐을 가져가라고 나에게 통지했다. 나와 아이는 이렇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쫓겨났다. 엄마는 “그 집안 식구들은 (감옥에 있는)아들이 나오는 것을 바라지도 않느냐, 이 몇 년간 너와 아이를 돌보지 않았어도 따지지 않았는데 이젠 살 곳마저 없앴다고? 그래, 기다리지 말자”고 했다. 이렇게 나와 아이 아버지는 이혼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지 사람은 살아야 했다. 친정아버지는 자주 “사람이 쓰러지지 않는 한 일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출근을 해야 하고 살 곳을 마련해야 했기에 친구에게 부탁해서 월세 집을 구하려 했다. 그날 친구를 따라 집을 보러 다녔는데 친구가 하는 말이 그녀의 친구가 점쟁이니 나보고 점을 한 번 쳐보라고 했다. 나는 점을 보지 않겠다고 했으나 친구는 아는 사이라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뜻밖에 그녀의 친구는 “파룬궁을 믿어 이런 것을 믿지 않아요”라고 했다. 나는 놀라며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요?”하고 물었더니 “당신 머리 위에 파룬이 돌고 있어요. 작년 겨울 교통사고 때 큰 파룬이 당신을 멀리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동시에 생명 심층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나에게 충격을 주어 할 말이 없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그녀 입을 통해 나에게 점화를 해주시는 것이며,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사부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신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 이 불운한 제자가 무슨 덕성과 능력이 있어서 이렇게 큰 사부님의 은혜를 받았습니까? 제자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법을 얻은 지 6년이 됐으나 수련하지 않았는데도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수련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수련환경이 있습니까? 다만 침대만한 방만 있어도 됩니다.’ 나는 아마 수련하고 싶은 일념이 있었기 때문에 2003년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것은 또한 내가 정식으로 수련을 시작하기에 이른 것이기도 하다.

2. 새로운 가정에서 수련하다

새 남편은 나보다 여섯 살 많은데 18세 된 아들(학생이 아님)이 있었고, 당시 내 딸은 11살이었다. 내가 이 집에 들어온 후 첫 번째 일은 둘째 동생과 돈을 모아 무덤을 세우는 것이었다(이 집안은 헤이룽장에서 10여 년간 살았으므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의 무덤이 각기 다른 곳에 있었음), 시댁의 형제자매, 시어머니, 친척들은 모두 새로 들어온 계모인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있었다.

아들은 현지의 경비(保安)였는데 2004년 정월 초파일 3명의 동창생들과 함께 공장 마당에서 다른 한 경비를 때렸다. 구타를 당한 경비는 병원에 입원하고 경찰에 신고해 경찰서에서 아들을 체포하려 했다. 남편은 왜 이곳에서 싸움질만 하느냐고 나무라자 아들은 “외갓집(친 엄마를 그리는 정으로 계모에 낙담할까 봐 내 친정엄마네 집으로 보냈음)에 가기 싫은데 왜, 그곳에 데려다뒀어요. 속이 답답한데 어떻게 싸움을 안 하겠어요?”라고 했다. 홧김에 남편은 아들의 뺨을 때리고 화가 풀리지 않은 채 돌아왔다. 나는 어찌된 일이냐고 자초지종을 전부 물어보지 못했다. 누가 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보니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씩씩거리며 들어오자마자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님, 어떻게 된 일이죠. 무슨 일이 있어요?”라고 묻자 시어머니는 “가만있어, 자네 일이 아냐!”라고 하여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한바탕 욕설을 퍼부어도 나와 남편이 아무런 대꾸도 않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문을 열고 나가려 해서 내가 바래다 드리려 했으나 시어머니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문밖에서 또 욕을 했다. 아랫집, 윗집, 옆집사람들 모두가 나와 보게 되어 시어머니의 역정 난 욕설을 들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려는 눈치가 보이자 남편에게 “삼륜차로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요!”라고 했더니, 화가가 난 남편은 “안 가. 올 수 있으면 갈 수도 있어”라고 했다. 당시는 법공부 시간이 짧아 사부님께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1]라고 하신 말씀만 기억하고 있어서 수련인은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되고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것은 눈물을 삼키는 참음으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참는 것으로 수련인의 참음이 아니었다.

이후에 남편과 말다툼할 때 나는 이 일을 꺼내며 “아이를 때리느니 차라리 나를 때려요. 어머니가 ‘계모가 있으니 계부가 있다’고 한 말씀을 듣지 못했어요? 그 말은 제가 아이를 때리라고 당신에게 시켰다는 말씀이에요!”라고 불만스럽게 말했다. 속으로는 시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심성은 이정도 뿐이었다.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어느 날 아들이 오더니 나에게 집문서를 자신의 이름으로 변경을 하겠다고 했다. 후일 자기에게 상속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니 집문서를 달라고 했다. 누가 그를 시켰든 시키지 않았든 가정의 마난은 끊이지 않았는데 그때 생활은 매우 어려웠다. 먹는 간장 가격이 1.30위안 정도였는데, 딸은 하루 1위안만 갖고 다녔으며, 쌀은 친정 엄마나 남동생과 여동생(그들은 농민임)에게서 가져다 먹고 살았으며 남편이 이혼할 때 전 아내에게 3만 위안의 위자료를 주었는데 그 돈은 빚을 내서 준 것이라 그 빚은 고스란히 우리의 빚이 됐다. 그때 법공부도 적게 했고 연마할 줄도 잘 몰랐기에, 어떤 때는 심성을 지키지 못해 남편과 싸우기도 하면서 속으로 매우 괴로워했다. 첫 남편은 항상 술을 마시면 사람을 때리는 바람에 그가 술을 먹으면 날이 어두워지고 모기가 극성스럽게 물었어도 아이를 끌어안고 밖에 서 있으면서 매 맞을 것이 두려워 감히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이 남편은 나를 때리지는 않지만 술만 먹으면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졌다. 그럴 때면 욱하는 마음으로 당장 나가버릴 생각도 했지만 자신이 벌어 모은 돈을 몽땅 빚을 갚으라고 남편에게 주었으니 수중에는 한 푼도 없어서 그러지도 못했다.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이것이 과연 내가 노력해서 얻으려는 가정인가?

설상가상으로 2005년 6월에 남편은 류머티즘에 걸렸다. 12일 동안 입원했는데 화장실도 가지 못해 오줌은 내가 받아냈고 대변을 볼 때는 내가 업고 화장실에 가야 했는데, 아픈 발을 땅바닥을 딛거나 대지도 못해 내가 옆에서 웅크리고 앉아 그의 아픈 발을 내 어깨에 걸치게 해서야 대변을 볼 수 있었다. 매번 병이 발작하기만 하면 이런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2개월에 한 번씩 발작을 하더니 시일이 지나자 더해지면서 한 달마다 한 차례씩 발작했으며, 나중에는 아예 출근도 하지 못했다. 의사는 “이런 병은 완치가 안 되며 갈수록 더욱 심각해집니다”라고 했다. 그때는 개인수련만 했을 뿐이어서 구세력을 부정할 줄 몰랐으므로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했다. 수련인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고 또 법공부하는 것에 영향 받지 않으면서도 이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학생에게 과외수업(고향에서 교사를 한 적이 있음)을 시키는 공부방을 개설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개척해주신 항목이기 때문에 학생은 한 명, 두 명, 10여 명까지 증가됐다. 어느 날 남편의 병이 또 발작해서 그는 걸을 수 없게 됐다. 나는 학생들에게 오후 7시까지 수업을 끝내줬으나 아직 5, 6명 학생은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남편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의사를 대려와 방문을 여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안에 온통 물이 가득차서 슬리퍼도 둥둥 떠 있었다. 내가 집을 나간 후 남아 있던 학생들이 장난을 치고 놀다가 의자를 밀치는 바람에 스팀밸브가 끊어졌고 배관의 물이 샘물처럼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속수무책이었다. 물이 새는 걸 알게 된 이웃이 올라와 이 상황을 보고 스팀밸브의 본선 밸브를 찾아 닫아줬다. 나는 의사와 학생들을 보내고 이웃집에 있는 본선 밸브가 정확히 잠겼는지 확인한 후 딸과 함께 방안의 물을 퍼내고 정리해 그런대로 수습했다. 그러다보니 저녁 8시가 지났는데도 저녁식사 준비를 하지 못했다. 이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맘속으로 “원만은 불과(佛果)를 얻나니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 몸 고생은 고생이 아니나니 마음 수련이 가장 어렵도다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 세상 고생 겪을 대로 겪나니 세간 벗어나면 부처로다”[2]를 외웠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새벽 1시까지 혈관주사를 놓았는데 나는 몸과 마음이 피곤해 잠들어버렸다. 갑자기 누군가가 나에게 주사를 뽑으라고 했다. 깨어나 보니 이미 약물이 모두 주입되어 주사바늘 아래까지 내려와 있어서 아주 위험한 상태였다. 또 사부님께서 (잠든)제자를 깨워주시는 은덕의 보호를 해주셔서 남편의 목숨을 구해주셨던 것이다. 이후에 날이 갈수록 점차 과외공부방 학생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어 집을 팔고 2만 위안을 보태 더 넓고 큰 집을 매입했다.

2006년 말 아들이 여자를 사귀어 2008년 3월에 아들에게 새 집을 사줬으며, 그해 9월 결혼시켰는데 2009년 12월에 손자가 태어났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하루하루가 좋아졌고 가족과 친척들도 “대법을 배우는 사람을 봐라, 정말 좋다!”라고 하면서 나를 존중했다.

남편은 성격도 많이 고쳐져 좋아졌으며 내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지지했다. 어떤 때는 나를 도와 대법을 실증하는 일도 했는데 남편의 병도 한 달에 한 번씩 발작하던 데로부터 반년에 한 번씩 발작했고, 이후에는 1년에 한 번씩 발작했으나 5, 6일이면 지나갔다. 지금은 2년에 한 번씩 발작하는데 이틀이면 지나가서 출근하는데도 영향 받지 않고 있다. 다른 류머티즘 환자가 어디에서 치료했느냐고 묻기도 한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진상을 알리고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으라고 알려줬다. 이전에는 친척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면 그들은 웃기만 하면서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권하기만 하면 탈퇴한다.

하지만 가정의 마난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때는 심성이 높지 않아 (마난이)나를 도와서 연마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기억나는 또 하나가 있다. 넷째 동생이 결혼하게 되어 나는 남편과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시댁사람과 상의하려 했다. 그때 시어머니는 “누구랑 상의하려고? 자네가 맏형이라 자네가 얼마를 내면 그들이 따라서 내겠지”라고 했다. 그런데 결혼식 날 축의금 문제로 말썽이 일었다. 둘째 동서가 내게 화를 내면서 “농락당했다”는 등 매우 듣기 싫은 말을 했다. 나는 식사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듣고 난 남편은 화가 나서 시어머니에게 전화로 “우리가 얼마를 내면 그들이 따라서 얼마를 낸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둘째 제수는 우리와 같은 액수도 내지 않으면서 왜 말썽만 피워요”라고 하여 결국 시어머니와 다퉜다. 이후로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설 명절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어머니에게 화내지 마세요. 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시니 어떻든 간에 당신 잘못이에요. 어머니에게 돈 좀 갖다드려요”라고 했다. 남편은 화를 내며 “난, 안 가요, 당신이나 가고 싶으면 가요”라고 했다. 나는 생각하기를 ‘가면 틀림없이 욕을 먹을 것인데 당신이 화내게 만들어 놓고 (대신)나보고 욕을 먹으라는 것인가. 그렇다고 안 간다면 수련자인 내가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인데…’라고 주저했다. 사실 나 자신도 속으로는 화나는 곳이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으나 역시 남편은 가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갈비와 과일을 들고 벌벌 떨면서 갔다. 문을 열어준 시어머니는 내가 들어서자마자 화를 내며 욕을 했다. 나는 계속 잘못했다고 빌었다. 계속 그곳에 있으면 시어머니의 잔소리와 욕설이 그치지 않고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아 급히 “어머니, 일이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이 물건들을 가져가라, 이런 것은 내게도 많다”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 그러지 말고 진정하세요”하고 나와서 문을 닫고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속으로 반성하며 안을 향해 찾았다. ‘내가 만약 그 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결혼식장에서) 발생했던 일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모자가 다퉜겠는가? 아, 억울함을 당했다고 참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했으니 이는 다른 사람이 나를 지적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닌가. 이는 명예심에서 온 것이 아닌가. 내가 한 모든 일을 다른 사람이 칭찬(자아를 실증)해주기를 바란 것이 아닌가?’ 사령의 요소가 아직도 이간질을 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오늘 시어머니의 표현을 말하려 했는데 도로 삼켰다. 이 몇 년간 나와 시어머니 사이에 늘 간격이 있었으나 시어머니의 잘못만을 찾았고 자신을 연마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3]라고 말씀하셨다. 진심이 아니면 못해내는 것이다.

이튿날 과일을 들고 다시 또 시어머니를 뵈러 갔다. ‘이번에는 어디가 부족하면 어디를 연마하며 도망가지 않을 것이고, 발생하는 매 모순을 소중히 아끼겠다’라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내가 다시 온 것을 본 시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어머니, 화내시지 마세요. 이전에는 제가 잘하지 못했어요. 화를 푸신다면 뭐든지 어머님 말씀대로 하겠어요”라고 했다. 과연 시어머니는 화를 내시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나의 관념은 늘 시어머니는 선하지 않으며 노래하듯이 사람을 욕하는데 이런 사람은 구제될 자격이 없다는 생각까지 했다. 오늘 내가 관념을 바꾸자 시어머니는 그렇게 상냥하게 보일 수 없었다. 정말 우리가 변하면 그녀도 변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한 조각 구름처럼 사라졌고 가족들은 모두 화목하게 됐다. 당시 이 집에서 자신만 어른이고 가족을 모두 아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어찌 아이와 따지겠는가, 또한 우리는 그들의 하느님이고 왕이고, 그들은 우리가 구도해야 할 중생이라고 생각했다.

3.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줄곧 잘하지 못했고 다만 진상자료를 만들고 배포하는 것에만 제한되어 있었으며 션윈 CD를 배포하는 것과 삼퇴를 권하는 것도 사람을 골라가면서 했다.

2010년 9월, 외지 수련생들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방법을 우리와 교류했다. 두 사람이 한 팀으로, 한 번에 3, 4개 팀이 나가고 집에 있는 수련생은 진상을 알리러 간 수련생을 위해 집중적으로 발정념을 했다.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이 돌아오지 않으면 발정념하는 수련생은 멈추지 않고 계속 발정념을 했는데 매번 2시간을 넘기지 않고 돌아왔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서 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A 수련생이 3명을 데리고 한 개 촌에 갔는데 1시간 정도 지나서 돌아왔으나 효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집집마다 다니며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던 것이다. 또 며칠 지난 후 나와 A수련생은 4명을 데리고 3개 팀으로 나누어 이웃 마을로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데, 효과는 처음보다 낫고, 각 팀별로 12, 13명을 삼퇴시켰다. 돌아와 서로 교류했는데, “여러분은 드디어 걸어 나갔다”고 매우 기뻐했고 큰 격려를 받았다.

12월에 우리는 새해 달력과 소책자를 만들었다. 어떤 수련생은 아예 전단지를 들고 중생에게 진상을 알릴 때 배포했다. 천천히 이웃 마을에 거의 다 알리게 되어 택시를 타고 먼 마을까지 가서 진상을 알렸다. 어느 날 한 마을에서 진상을 알릴 때였다. 내가 한 정원에 들어섰는데 멋진 옷차림의 40대 남자가 집안에서 나오며 “뭘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물었다. “특별 방문을 하러 왔고 좋은 소식을 알려주려고 왔어요”라고 하자, “무슨 좋은 소식이에요?”라고 물었다.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한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라고 묻자, 그는 큰 소리로 “파룬궁, 너무 창궐하고 있어요. 내가 누군지 알아요? 내가 바로 이 촌의 당위서기에요. 여기까지 진상을 알리러 왔어요? 내가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겠네”하면서 바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즉시 그의 손을 잡고 “여보세요, 뭘 하려는 것이죠? 당신이 누구이든지 간에 진상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구도돼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은 큰 복이 있는 것 같은데 목숨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동생도 마을 관리인데 둘이 아는 사이일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특별히 당신을 위해 온 것이고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 상응한 보응을 받게 되요. 대법을 배우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러 왔어요”라고 하면서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웃으며 태도가 누그러져서 손을 놔줬다. 그는 “공산당과 맞서는 게 아닌가요?”라고 했다. 나는 “바보가 되지 말아요, 지금 전 국민이 삼퇴를 하고 있어요. 문화대혁명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양이 됐어요. 정말로 당신을 위한 것이에요. 당신 집에 와서 물 한 모금 달라고 하지도 않았어요. 진상만 알리러 왔어요”라고 했다. 그는 “누님, 됐어요, 알았어요. 가세요”라고 했다. 비록 그는 탈퇴는 하지 않았지만 내가 완전히 그를 위할 때 중생은 그걸 느낄 수 있었는데 사악도 자멸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갑자기 왔던 것이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또 한 번은 나와 A 수련생과 B 수련생이 함께 삼륜차를 타고 물건을 보내면서 션윈CD를 배포했다. 그때 우리는 정말로 즐거웠다. 사부님의 “먼지 날리는 길에 노랫소리 끝없고 조사정법(助師正法) 차를 타고 먼 길 달리네/ 정념은 중생을 구할 수 있나니 우렁찬 노랫소리 구름 속에 울려 퍼지네./ 먼지 날리는 길에 노랫소리 끝없고 큰 호수 지나고 높은 고개 넘어 동서남북 감로를 뿌리며 진상을 널리 널리 전하네./ 먼지 날리는 길에 노랫소리 끝없고 경쾌한 노래 우아한 춤과 악기 소리 큰 막이 열리면 천당계(天堂界) 펼쳐지고 신이 나를 도와 춤추고 노래하네”[4]라는 시가를 외웠다. 자동차정비사, 청소부,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이든지 모두에게 배포했다.

우리가 길가 행인에게도 다 배포했을 때 법원의 흰색 자동차가 도로가에 정차해 있는 걸 봤다. 차 안의 사람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A 수련생은 “저 차에 배포할까 하지 말까요?”라고 했다. 머뭇거리다가 사부님의 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당신이 만난 사람이라면 모두 구해야 하며 어떤 신분이든지 어떤 계층이든지, 그가 대통령이든지 아니면 거지이든지 모두 구해야 한다”[5] 나는 “배포합시다. 둘이서 발정념을 하고 제가 갈게요”라고 했다. 나는 ‘법원’이라고 글자가 새겨져 있는 하얀 자동차 앞으로 갔다. 통화하던 사람은 통화를 멈추고 큰 책자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나는 “여보세요, 션윈 CD를 한번 보세요. 이것은 중국인의 신년 공연이고 중화전통문화고 완전히 선하고 아름답고 세계 최고의 공연으로 대단히 좋아요!”라고 하자, 그는 받고 “파룬궁이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좀 주저하다가 “보지 않으면 유감스러울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또 “파룬궁이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를 마주보고 “파룬궁이 좋지 않아요?”라고 하자 그는 “좋지요. 받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안녕히 계세요!”하고 돌아서서 갔다. ‘그가 진상을 명백하게 아는 것 같은데 내가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왜 더 진일보로 그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아이고, 또 잘 해내지 못했구나!’라고 후회했다.

이렇게 우리는 1년 2개월을 거치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13개 마을과 모든 소매상에게 진상을 알렸다. 수련생들은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이 많았다. 한 수련생과 함께 한 마을의 첫 번째 집에 들어갔는데, 여주인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말해도 탈퇴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무엇을 믿든지 간에 공산당의 무신론에서 탈퇴해야 하지 않아요, 아니면 어느 신도 당신을 관계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여전히 탈퇴하지 않겠다고 했고, 우리 둘을 막무가내로 쫓아낼 때 수련생이 말하고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람은 즉시 “탈퇴하겠다”라고 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이 완전히 그를 위하는 것으로 해냈다는 것을 알았다.

또 80여 세 노인 한 분이 있었는데 우리가 “누구, 없으세요?”하고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노인이 혼자 방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가 그가 어디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기억하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뜻밖에 노인은 국민당 출신으로 공산당에 가입했고 매우 높은 관직에서 근무를 하다가 이후에 그를 반역자로 지목해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 높은 관직에 있었다면 좋은 양옥집에 살고 고액의 퇴직금도 받아야 하는데, 그는 현재 매달 1,300위안(22만 원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에게 삼퇴를 해줬다. 그가 묵송하다가 우리가 그의 집에서 나와 이웃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쫓아와 “어찌 집집마다 다니느냐, 조심해라!”라고 일러주어 우리를 매우 감동시켰다. 노인은 공산당에게 괴롭힘을 당한바 있어 두려웠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은 매우 많고도 많았다. 말조차 듣지 않고 무조건 우리를 쫓아내는 사람, 욕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우리는 그것에 상관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자비는 신의 영원한 상태”[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매번 돌아와 수련생과 교류할 때 수련생의 칭찬하는 말에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의 마음이 나왔다. 외지 수련생은 우리 지역이 오히려 그들을 초과한 상황을 보고 나와 A수련생을 청해 교류하자고 했다. 바로 그때 과시심, 환희심, 질투심, 쟁투심, 자아실증, 스스로 잘난 체 하는 마음, 내세우기를 좋아하는 마음 등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안을 향해 찾는다는 것은 표면적이고 말로만 그랬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안을 향해 찾으라고 알려주면서 스스로는 찾지 않았고 찾는다고 해도 찾고 찾다가 이 결점은 그녀의 것이고 그 잘못은 그의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밀어놓고 거기서 찾았다. 이것은 사령이 아닌가? 자기만 좋고 위대하고, 광명하며, 정확하다는 것이다. 이후에 정체로 협력하며 다른 지역의 한 마을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6명 수련생이 납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두 사람은 보증서를 쓰고 돈을 써서 나왔고 다른 5명은 7일 후 조건 없이 석방된 바 있다.

수련생을 구출하는 과정은 매 수련생에 대한 한 차례 점검이고 단련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크게 반성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정법은 최후에 이르렀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이 가득했다. 어떻게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는가? 어디가 부족한가? 착실하게 자신을 연마하는 것이 부족하다.

4. 수련의 승화

2012년 말,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매일 ‘전법륜(轉法輪)’ 1장을 읽었고, 사부님의 모든 대법 저작(매일 처음부터 순서대로)을 배웠으며, 매일 ‘홍음’의 시 2개를 외웠다. 정각에 발정념을 했고 장시간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했다. 그리고 집안일을 할 때 ‘9평’과 ‘해체당문화(解體黨文化)’를 들었고 매일 이렇게 지냈다.

이렇게 한 달이 되자 사부님의 모든 대법저작을 한 번씩 모두 읽었다. 학생들이 개학해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매일 시간을 다그쳐 계획대로 진행했다. 금년 여름 방학에 나는 학생들에게 휴가를 주고 이 기간을 이용해 션윈 CD, 진상자료를 배포했고, 녹음진상전화를 했으며 대량으로 법공부하고 발정념했으려 ‘9평’책을 3번 읽었다. ‘홍음3’의 시를 다 외우고 가사 몇 개를 외웠다. 법공부를 통해 자신을 착실하게 연마했고 ‘9평’을 보고 사령을 제거했으며, 어느 것이 관념이고 언행이며, 사유에 어느 것이 사령의 요소고 어느 말이 당문화라는 것을 똑똑하게 분별했다. 관념, 사령의 사유, 사령의 요소, 집착을 가지면 법의 내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법을 그것들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7]이라는 것은 그가 어려움이 있어 당신이 열정적으로 그를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수련생의 결점, 부족함을 가져와 자신을 연마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수련생은 거울이고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이 잘 연마하고 또 선의로 기회를 찾아 수련생과 교류해 그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고, 받아들일 수 없더라도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되며 그가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 내가 은폐된 사람의 마음, 집착, 사령의 요소를 아직 파내지 못했는가? 순정하지 못하고 자비하지 못하고 선한 마음이 부족한가를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 수련은 바로 자신을 연마하는 것이고 자신이 깨달은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천천히 나도 모르게 과시하고 뽐내고 자아를 실증하고 말할 때 군림하고자 하며, 늘 자신이 옳고 뭐든 다 잘 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사령의 ‘위대, 광명, 정확’이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사령의 요소를 제거하고 ‘너는 언제나 옳고 잘못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이번에 나는 잘못을 승인하고 또 사람이 많을수록 더욱 잘못을 승인하고 명예이든 체면이든 빨리 없어져라. 난 갖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깨달으면 해내야 한다. 한번은 법공부 팀의 수련생들 앞에서, 나는 A수련생을 향해 “A, 내가 잘못했어요, 말할 때 과시하고 뽐내고 군림하고자 하고 스스로 잘난 체하여 당신의 질투심을 유발시켰어요. 사과해요. 제가 좋지 않았어요, 잘못했어요”라고 했다. 뜻밖에 내가 잘못을 승인하자 그녀는 다시는 질투하지 않았다. 내가 자아를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에 수련생이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아를 내려놓겠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내려놓는 줄을 몰랐는데 이렇게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면 바다처럼 모든 하천을 용납할 수 있고, 자신을 낮춰야만 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뭘 과시할 것이 있는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인데.

사부님이시여! 제자는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게 됐습니다. 바로 무엇이든지 다 자신을 찾고 밖으로 봐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모든 좋지 않는 표현은 바로 자신의 좋지 않는 점이니, 그걸 가져와 자신을 연마해야 하고, 수련생의 결점을 보고도 말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신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을 말 못하게 하는 생명 즉, 사령이기 때문에 즉시 해체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채소를 살 때 고르고, 작은 이익을 챙기는 것이 보이면 자신의 생명체계에 고르고 작은 이익을 챙기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고, 이런 구 우주에서 형성된 위사위아(爲私爲我)의 생명의 요소는 무조건 ‘진선인(眞善忍)’에 동화시켜야 만 사존께서 요구하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8의] 신 우주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5. 생명의 심층에서 나오는 감사

사부님이시여, 사부님께서 줄곧 보호해주셨기 때문에 제자가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고 사부님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기억에 의하면 7, 8세 때 외할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예전에 한 도사가 있었는데 두 제자를 뒀다. 어느 날 도사가 두 사람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여 물과 건량을 챙겨들고 길을 떠났다. 걷고 또 걸어 물과 건량이 다 없어졌다. 두 제자는 배고프고 목이 말라 걷지 못하자 도사는 웅크리고 똥 덩어리 두 개를 싸고 두 제자에게 나눠줬는데 한 제자는 집어던졌고 다른 한 제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먹었다. 결과 똥 덩어리를 던진 제자는 길에서 굶어죽었고 똥 덩어리를 먹은 제자는 머리가 청성하고 눈이 맑아졌는데, 도사는 그를 데리고 원만하여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당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외할머니, 만약 사부님께서 저를 구도하러 오시고 똥 덩어리 두 개를 준다면 저도 먹겠어요”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지금 사부님께서 정말로 구도하러 오셨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 속에 빠져있었다. 이 바보 같은 제자를 끊임없이 점화해주시고 구도해주시는 사부님의 어려움을 체득할 수 있다.

사부님이시여, 제자는 사부님께서 노고가 많으시게 해드렸습니다. 오래전에 법을 얻었지만 잘 연마하지 않았고 많은 업(業)을 만들었습니다. 제자는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제자가 무엇으로 사존께 보답할까요? 생명이요? 그러나 생명마저 사부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남은 시간에 제자는 더욱 정진하여 사부님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겠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마음고생’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청성(淸醒)’
[4]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3-순회가(巡回歌)’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무엇이 대법제자인가’
[6]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왜 거절하는가’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1/281642.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24/1433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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