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소굴에서 서면 형식으로 진상을 알리다
글/ 대륙 대법제자 정페이(正非)
[밍후이왕] (윗문장 이어)
4. 두 번째 연명 항소편지 이후
2년 3개월 박해받는 동안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것이 가장 깊은 체득이었다.
노동교양소에 새로운 소장이 전근되어 왔는데 키가 크고 50여세 정도로 보였다. 노동교양소 수입을 늘이기 위해 그는 한 여성 투자자를 찾아와 50여대 기계를 갖춘 장갑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투자 측에서는 반드시 전부 파룬궁 수련생을 써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날 오후 2시에 소장은 한 직장 지도자를 모시고 공장을 참관시켰다. 나는 두 번째 항소편지를 소장에게 줬다. 그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점심 때 형사범인 지금의 취사반 부반장이 잘생긴 젊은이 주머니에 손을 댔다가 그 자리에서 젊은이에게 잡히자 그는 젊은이가 종이쪽지 하나를 주머니에 넣는 것을 봤고 꼭 파룬궁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그가 상습범이고 대낮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물건을 훔친다고 했는데 당직 교도관은 증거가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파룬궁 수련생을 감금시키고 처벌했어요. 모두들 인정하지 않아서 파업하려 합니다. 내일 아침 단식항의를 하겠다는 연명편지를 한번 보세요”라고 하자 그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라고 말하고 참관인을 쫓아갔다.
오후 4시에 통신원이 소장이 정원의 큰 버드나무 아래에서 나를 기다린다고 했다. 내가 가서 앉자 소장은 직접 요점을 말했다. “그 잘생긴 젊은이는 이미 반으로 돌아갔고, 내 동의도 없이 함부로 감금 처벌하여 월권한교도관을비판했습니다. 제때에 상황을 반영해주어 감사드립니다. 아니면 손실이 있을 뻔 했네요”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장갑 공장은 왜 전부 파룬궁 수련생을 쓸까요? 파룬궁 수련생은 ‘진선인(眞善忍)’을 연마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장쩌민은 사적인 질투 때문에 백성들의 생사를 고려하지 않고 파룬궁 박해를 발동했어요”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는 시계를 보더니 “회의가 있어 가야겠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또 이야기하죠”라고 말하고 급히 갔다.
새 소장은 표면적으로는 좀 정의감 있게 일처리를 하는 것 같지만 사당의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은 그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앞에서는 나를 칭찬하고 저녁 회의 때는 나를 내보낼 것을 논의했다. 이튿날 아침 5시쯤에 제 5대 지도원이 나를 깨워 짐을 싸고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물었더니 때가 되면 알려준다고 했다. 또 새 소장의 승용차로 이동할 것이며 노동교양소 관리과장과 책임자와 부책임자가 직접 나를 보내주는데 여태껏 있어본 적이 없는 일이라며 갈수록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당신의 상서로운 말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전 9시 모 현에서 아침밥을 먹고 관리과장과 새로운 소장이 먼저 차로 돌아갔다. 나는 정치위원에게 “왜 갑자기 나 한 사람만 보내려고 하죠?”라고 물었다. 그는 좀 생각하더니 “우리는 당신을 다른 사람들과 갈라놓으려 해요. 이러면 모두에게 다 좋아요”라고 했다. 한마디로 다 설명이 됐기 때문에 나는 계속 묻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의 힘 있는 정체로 형성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다해 다른 대법제자와 갈라놓고 격리시키려는 것이었다.
1시간 지난 후에 성 사법청 접대실에 도착했다. 소장과 관리과장은 내 파일을 갖고 소환령 수속을 밟으러 갔고 정치위원과 나는 차에서 기다렸다. 40분이 지나자 소장이 먼저 돌아왔는데 그는 울적해하며 말했다. “오기 전에 전화로 주타이(九台)로 이감한다고 말해놓아서 소환령을 받는데 10분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사람은 또 성 직속 노동교양소의 국가 사법부선진소로 이감한다고 하네. 그래서 거기로 보내려면 또 기다리라고 하네. 주타이에서는 전혀 받지 않고 있으며 반년 전부터 ‘파룬궁(박해) 기지(성 직속 노동교양소)’로 보냈기 때문에 지금 성에서 연구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정치위원은 나를 한번 보더니 ‘선진소’는 좋은 곳이고 먹고 자고 노는 것이 모두 일류이며 호텔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치위원은 내가 듣고 기뻐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내가 아무런 표정이 없자 그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또 1시간 넘게 기다리자 관리과장이 돌아왔다. 여전히 성 직속 노동교양소의 사법부선진소로 이감한다고 했다. 소장은 나를 보더니 매우 부자연스럽게 웃으면서 “하루에 하나씩 의외의 일이 생기네요. 어제 영감이 내게 연명 항소편지를 줘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정말 믿어지지 않네요. 오늘 또 의외의 일이 생겼어요”라고 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축하해요, 이번엔 여생을 보낼 곳으로 가는 겁니다. 잘 있으세요! 연세가 이렇게 많은데 쓸데없는 일에 적게 참견하세요!”라고 했고 정치위원은 “소장은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관례에 따라 감사하다고 했고 좋은 사람이 평안하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합장하고 “존경하시는 사부님, 제자는 꼭 좋은 새로운 환경을 이용해 더욱 좋게 ‘3가지 일’을 잘하고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실행하며 사부님께 보답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후에 이 일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봤는데 사악이가장 두려웠던 것은우리가 정체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지린시 환시링 노동교양소에서 대법제자가 강력한 정체를 형성하고 박해를 저지했으며 사악을 떨게 했기 때문에 사악은 즉시 우리를 여러 개 노동교양소로 분류하고 분산시켰다. 하지만 그 결과 대법제자들이 또 L시 노동교양소에서 천지를 뒤집히게 만들어 노동교양소의 금색 간판을 깨뜨리고 백분의 백 ‘전향’을 백분의 백 ‘다시 수련’으로 바꿔 놓자 사악은 극도로 두려워 또 다시 정진하는 대법제자를 내보냈던 것이다.
5. 세 편의 장편 편지로 대법을 선전하고 감시원 4명의 마음을 선하게 만들다
성 직속 F노동교양소에 오니 사실 수련에서 말하면 나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졌다. 대법제자의 정체환경이 사라졌고 대법제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이런 가혹하고 복잡한 환경을 대면하고 속으로 좀 외로웠다. 그러나 또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는데 뭘 두려워하는가, 사존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어디에 가든지 자신의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되며 박해를 폭로하고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라고 바꿔 생각했다. 성 직속 노동교양소는 매우 엄격하게 관리했고 한 사람에 4명의 바오자(包夾-24시간 밀착 감시원)를 배치했는데 오전에 두 명, 오후에 두 명, 야간 전반 한 명, 야간 후반 한 명이었다. 조금의 자유공간도 없었고 식당에 밥 먹으로 갈 때도 양쪽에서 양팔을 끼고 계단을 내려갔고 도망이라도 칠까 걱정했다.
내가 예전에 있었던 두 노동교양소에서는 아직 바오자 제도를 실행하지 않아 비록 매우 사악하고 자유롭지 않지만 조금의 자유공간은 있었다.나는 사고했다.‘바오자는 무엇인가? 그것의 실질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만 유명무실하게 개변시키고 작용하지 않게 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진상을 말하는 것이 만능열쇠”[7]라고 말씀하셨다. 법보는 여전히 진상을 알리고 진상을 쓰는 것이므로 한담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간격을 없애고 바오자가 유명무실하게 하자고 생각했다.
내가 첫 번째로 한 것은 여전히 일상적인 사상보고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말했고 한 번에 하나를 중심으로 두 가지 진상을 알렸으며 3, 5천자로 진상을 똑똑하게 알렸다. 매번 사상 보고를 할 때 4명의 바오자는 번갈아 감시했는데 그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혜택을 받았다.
사상보고 외에 일주일 내에 나는 장편 편지를 써서 대대장에게 줬다. 그에게 왜 병이 생기고 수련인은 왜 병이 없으며 병원치료와 기공치료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말해줬다. 대대장은 늘 배를 가리고 있었고 자주 아파서 허리를 펴지 못했다. 나는 먼저 독서실의 건강신문, 건강잡지, 노인신문 등 질병예방, 건강방면에 관한 민간요법, 음식 등 지식을 3천여 자 쓰고 또 내가 쓴 7천여 자의 진상편지를 추가했다. 당연히 먼저 바오자들이 검사했다. 결과 두 바오자 사이에는 충돌이 생겼는데 한 명은 대대장에게 바치는 것에 동의했고 한 명은 동의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인 한 바오자는 내가 쓴 것을 다 이해하고 민간요법 등 생활지식도 이렇다고 하면서 대대장에게 보여주는 것에 동의했다. 나는 두 바오자에게 업력, 덕은 미신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이치를 말해줬으며 현대과학으로 측정한 전파, 광파, 사람의 사상 등은 분자보다 더 미세적인 물질이며 분자보다 작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어 사람들은 미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마지막에 어린 바오자는 명백해져서 나를 매우 탄복해 뭐든 물어봤고 나를 전혀 방비하지 않게 됐으므로 그와의 간격은 철저히 제거됐다. 한 어린 바오자는 “할아버지가 쓰신 것을 보니 이치가 중학교 때보다 많아요. 일찍 이런 것들을 알았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했다.
대대장은 내가 적은 장편 편지를 보고 그도 혜택을 받았다. 한동안 지나 배를 만지지 않는 것을 보니 그도 이치를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만나면 자발적으로 말했고 여태껏 나를 난처하게 한 적이 없었다.
얼마 안 되서 나는 또 대대장에게 두 번째 전문적인 장편 진상편지를 써줬는데 6천여 자 정도였다. 이때 바오자는 이미 내 편이 됐기 때문에 내가 뭘 쓰든 상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다. 조금만 위반한 부분이 있으면 찢어버려 다시 써야 했다. 대대장도 변했고 수하 교도관에게 “저 동향인을 봐라, 60여세인데 아무런 병도 없고 약을 먹지 않는데 난 50세도 안됐는데 온 몸에 병이야. 퇴직하면 나도 파룬따파를 연마해야겠다”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아들, 딸에게 2만여 자의 장편 편지를 썼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집에서부터 내려온 선행을 하고 덕을 쌓는 조상의 훈계에 관해, 부모가 어떻게 석가모니 불법을 연마했고 내가 입대하고 어떻게 대법을 연마하게 됐다는 생각까지 전부 썼다. 내가 원래 무슨 병이 있었는데 어떻게 병이 없어 온 몸이 가볍게 되고 특별히 어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썼다. 장기적으로 가훈을 남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허위가 없어 바오자도 보기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온 중대의 대부분 형사범도 다 봤다. 어린 바오자는 “저의 부모님은 할아버지처럼 이렇게 우리를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만약 학교 다닐 때 이런 것을 알았다면 절대 여기에 있지 않았을 텐데요”라고 했다. 어떤 어린 바오자는 오랫동안 참고 입을 열기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는데 나를 의부로 모시고 싶은데 이 양아들을 받아주겠는지 물었다. 나는 그를 위로하면서 “실제상 우리는 이미 한 가족이 됐다. 편지를 쓸 수 없는 사람은 내가 대신 써줄게”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은 다 살로 되어 있는지라 어린 바오자도 나를 매우 관심해주었다. 내가 차를 마시기 좋아하는 줄을 알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보온병을 하나 구해줘 나 혼자 사용하게 했고 여름에는 여름용 돗자리와 베개를 구해줬다. 특히 법공부하고 연공하는데 매우 많이 도와줬다. 낮에 대대 사람은 인쇄공장에 가서 일을 했는데 나와 어린 바오자와 몇 명 병이 심한 사람만 남으면 문화체육 활동실을 열고 나를 안에 가둬놓고 안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하게 했으며 두 시간 후에는 제때에 문을 열어줬다. 밤에 내 발밑에서 누워 잤고 나는 그의 머리 옆에서 가부좌하고 정공했다. 밤에 당직 교도관이 방을 검사할 때 문 열리면 소리가 나면 나는 어린 바오자를 깨우고 그가 당번을 하고 내가 자는 척 했다. 여기에서 1년 4개월 연공하고 법공부하고 진상을 알리면서 거의 모두 이렇게 지내왔다.
어린 바오자도 번갈아 바꿨지만 한번에 4명을 전부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두 달에 한 명씩 바꿨는데 옛 사람이 새로운 사람에게 알려주자 내가 진상을 알리지 않아도 일주일이 지나면 모두 진상을 알게 됐다. 현관 나리보다 현장 관리자가 났다. 어린 바오자도 수감되어 있는 어린 죄수지만 공을 좀 들이면 그들은 좋게 변할 수 있고 동시에 내 환경도 개척할 수 있었다.
성 직속 F노동교양소에서 1년 4개월 있는 동안 나는 사존의 “대법제자가 걷는 길은 바로 한 부의 휘황한 역사로서, 이 한 부의 역사는 반드시 자신이 증오(證悟)하여 개창한 것이어야 한다”라는 설법을 진일보 깨달게 됐다.
6. 진상을 알리는 것은 큰 고비와 곤란을 넘는 금열쇠
사부님께서는 ‘무엇이 대법제자인가’에서 “마난의 박해 중에서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아주 관건적이다. 당신이 잘하고 못하고, 당신이 박해를 받고 안 받고, 당신이 바르게 하고 못하고, 박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두 당신 자신이 걷는 길, 당신의 사상이 생각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파룬궁 박해를 주관하는 대대장이 나를 ‘전향’시키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생생하게 사부님의 이 한 단락 설법을 체현했다.
나는 경찰들이 말하는 ‘파룬궁(박해) 기지’에 온지 몇 달 됐고 10여일이면 설날이다. 이때 반장(감방 우두머리)은 내게 파룬궁 박해 주관 대대장이 자신의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고 통지했다. 대대장(현지 사법계에서 마음이 음흉하고 수단이 모질하기로 이름났고 또 총명하고 말재주도 있어 사람들은 그에게 ‘철 입(鐵嘴)’이란 별명을 달아줬다. 대대장 사무실에 들어가자 그는 나를 그의 휴게실로 안내했다. 앉는 순간 나는 ‘어떤 철 같은 입이든, 강(鋼) 같은 입이든 난 진상만 알린다’고 생각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구세력의 간격을 타파하고 마음을 교류하는 금열쇠이기 때문이다. 그는 표면적으로 매우 편안하게 “어떻게 파룬궁을 연마했어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나는 ‘조왕신이 서쪽 하늘로 올라간 식’으로(역주: 조왕신은 매년 1월 24일 하늘에 올라가 인간세상의 일을 옥황상제에게 보고하는 신) 있는 대로 말하는 사람인데 약점을 잡지 않겠죠?’라고 했다. 그는 “난 산둥 사람의 통쾌한 성격을 좋아해요. 대담하게 말해보세요!”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우리 가족이 불교를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우리 집의 대대손손 내려오면서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선행하며 덕을 쌓고 금생에 야망을 품지 말고 내생의 복을 얻으라고 했다고 말해줬다. 또 간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전우가 나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연마하라고 해서 연마했는데 며칠 연마하지도 않았는데 간질환이 다 나아졌고 경추병도 다 나아졌고 반년 후에는 눈도 침침하지 않고 근시도 없어져 안경도 벗었다고 말해줬다. 그가 매우 열심히 듣는 것을 보자 나는 말할수록 신나서 또 자신이 아는 윤회환생 이야기, 아들이 죽은 초등 동창생 몸에 붙은 과정도 말해주고 이런 것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영혼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무신론은 사람을 속이는 헛소리다고 말했다. 중점으로 파룬따파의 신기한 효과 및 내가 연공해 천목으로 본 각종 장관을 말해줬고 사부님의 법신이 매일 나보고 연공하라고 일깨워주고 점화해주신 일들을 말해줬다. 그는 이런 것에 대해 관심이 매우 많았다.
나는 또 4번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하고 두 차례 잡혔는데 사부님의 보호 하에 현지로 보내지 않았고 베이징에서 석방된 일들을 말해줬다. 마지막에 ‘천안문 분신자살’, ‘4.25청원’, ‘베이징시내 유혈사건’, ‘1400례’ 등 진상은 무엇인가, 신문과 TV방송은 어떻게 먹칠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것에 대해 모두 폭로했다. 그는 내게 어떻게 입당했는지 물었다. 그리하여 내가 젊었을 때 특히 뇌봉을 따라 배울 때 공산당에 대한 인식, 왜 백년도 안됐는데 다 무너졌는지 말해줬다. “마르크스가 창립한 공산주의 학설의 시작부터 가설이고 추리해 만든 것이므로 과학적인 검증을 받지 못해 지금 중공 자신도 믿지 않고 있지만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중국 특색 등 추상적인 개념으로 사람을 속이고 있습니다. 우중 중에서 공산주의 이론은 기형아입니다. 모든 신은 그것을 소멸하고 있으니 그의 멸망은 다만 시간문제입니다. 뉴턴, 아인슈타인 등 유명한 과학자도 모두 종교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종교에서 말한 이치야말로 우주의 진리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윤회환생, 선악유보(인과응보)는 모두 진짜입니다. 인도, 파키스탄에서 수많은 환생한 사람을 찾았고 중국에도 적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미신이 아니고 이 이치들은 몇 천 년 인류 도덕을 지켜냈습니다. 일단 이런 것들을 믿지 않게 되면 인류는 무슨 나쁜 짓도 다 감히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인류는 멸망과 멀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줬고 줄곧 이틀반 동안 말했다. 이후에 그는 말했다. “이런 것들을 들으니 매우 관심이 가고 수확도 매우 많아요. 많은 사람은 나와 말하지 않았고 그들도 감히 내게 말하지 못했겠지요. 어떻게 된 일인지 난 당신의 솔직함, 순박함에 감동했어요. 늙은 개구장이처럼 동심이 있고 순결하며 아무런 걱정이 없고 두려움이 하나도 없어요. 저도 모순됩니다. 당신을 ‘전향’하는 일은 내 직책이지만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못하겠고 협박하기도 싫어요. 마지막에 한가지 부탁합니다. 나와 한 말들을 이후에 누구와도 말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자 이것은 그의 진심이라고 생각했고 매우 감동했으며 경찰도 모두 나쁜 사람이 아니고 좋은 사람이 있다고(이것은 당시 인식)생각했다. 이후에 나는 끊임없이 ‘모두 그가 마음이 검고 수단이 모질며 사람을 수많이 때렸고 때려서 죽고 부상하고 기절한 것도 있다는데 그는 왜 나에 대해 악행을 부리지 않았지?’를 줄곧 생각했다. 이후에 사부님의 “비록 구세력이 존재해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 당신의 정념(正念)이 매우 충족하다면 구세력은 방법이 없다”[9]라는 설법을 배운 후에야 깨달았다. 회상해보니 나는 당시 그가 나를 ‘전향’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는 바로 진상을 알리러 온 것인데 어떻게 받아들이게 하겠는가, 어떻게 해야 나의 관점을 받아들이게 하겠는가,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하겠는가만 생각했다. 이것이 아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9]는 법에 부합됐을 것이다. 그리고 진상을 그렇게 많이 알렸기 때문에 정념도 매우 족했고 바로 큰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악해지지 못했다. 누구나 불성도 있고 마성도 있다. 대량적으로 진상을 알려 그의 마성의 일면이 통제됐고 나도 큰 고비를 넘겼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큰 고비, 큰 곤란을 넘는 금열쇠일 뿐만 아니라 중생을 구도하는 법보(法寶)다.
7,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고 두 가지 선례를 개척하다
일주일이 지나면 곧 설날이고 나는 이미 노동교양 기한을 3개월 초과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형기를 추가할지, 처분할지 어쨌든 결정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날 아침 식사 때 밥을 먹으려 하는데 대대장이 온 것을 보고 그를 쫓아가 내 상황을 말해줬더니 매우 겸손하게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대장이 떠나자 뜻밖에 반장(감방 우두머리)이 밥을 먹지 않고 따라와 눈에 분노가 서린 것처럼 한손으로 나쁜 사람을 잡듯 나를 잡고 식탁으로 끌고 와 “정말 두 주먹을 먹이고 싶다! 이것이 네 집이냐? 물어보지도 않고 스스로 행동하다니, 돌아가 회의할 때 잘 검토해!”라고 했다.
전 반에 20여명이 있는데 모두 나보고 늙은 개구쟁이 같다고 했고 규칙을 모른다고 했다. 특히 한 굽은 길을 걸은 노 수련생은 “영감님은 아직 법공부가 부족해요. 무슨 일이든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잊었네요. ‘전향’하지 않는 당신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여기에서 반년 전 ‘전향’했고 또 1년 ‘전향’한 사람도 석방되지 않았어요. 영감, 내가 권하는데 여기에서 그냥 잘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줄곧 속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법을 범했기에 기한을 초과했는데도 나를 수감하느냐! 그들은 두려움이 많고 대법제자의 기개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3일이면 설날이라 아내가 설맞이 음식두 가방을 들고 면회하러 왔다. 아내와 접대실에서 점심밥을 먹고 있는데 당직 교도관은 노동교양해제 통지서를 들고 와 아내에게 빨리 현지 ‘610사무실’에 가서 수속을 하라고 했다. 저녁에 나는 아내가 가져온 설맞이 음식을 미리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고 설 인사를 했다. 수련생들은 모두 나를 위해 기뻐했다. 그 노 수련생은 오랫동안 생각하고 “영감님, 며칠 동안의 일이 나를 깨우쳤어요. 원래 내 생각에 따르면 5서를 쓰지 않고 ‘전향’하지 않으면 누구도 지금까지 나가지 못했고 ‘전향’했더라도 반년이나 1년은 걸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보니 나의 사상은 형세발전에 따라가지 못했네요. 철저히 개변해야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형세를 따라가는 문제가 아니고 난 전혀 그들 말을 듣지 않았어요. 기억하세요,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합니다. 특히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지 못하는 마음과 집착심의 표현을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다면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할 수 없어요. 당연히 일사일념은 반드시 법에 있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노 수련생은 무엇을 깨달은 듯 머리를 끄덕였다.
아내는 이튿날 오전 1시쯤에 왔고 나이 많은 교도관이 데리고 각 사무실에 가서 도장을 찍었다. 처음에 매우 순조로웠는데 마지막 출입증을 발급하는데서 막혔다. 현지 ‘610’이 직접 사람을 데리러 오지 않으면 누구도 갈 수 없다고 했다. 계속 석방하지 않으면 4시 50분 버스를 탈 수 없었다. 아내는 조급해서 온 얼굴에 땀이 났고 그러자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제 증명서가 당신들 마음을 놓게 할 수 없나요? 아니면 날 여기에 가두는 것이 어때요?”라고 물었다. 출입증 발급인은 눈이 밝아지더니 이것도 고려해볼 수 있는데 먼저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전화를 내려놓고 기뻐서 “아주머니는 작년에 노동모범이었네요! 제가 결정하고 가게 할게요”라고 말했다.
노 교도관은 우리를 보내면서 “영감님, 정말 운이 좋네요. 내 손을 거쳐 보낸 사람 중에 영감님이 가장 특별해요. 우리 노동교양소에 파룬궁(박해) 기지를 세운 이래 두 가지 선례를 개척했어요”라고 말했다. 아내는 무슨 선례인지 물었다. “하나는 시말서를 쓰지 않고 ‘전향’하지 않는 사람은 나가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610’의 사람이 직접 와서 사람을 데려가지 않으면 사람을 석방하지 않는다. 이것은 누구나 다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돌아가면 다시는 잡혀 들어와 이런 고생을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2년 3개월 합계 818일이었다. 걸어오는 길 내내 사존의 보호가 없다면 내가 해낼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사부님께서는 또 나를 위해 얼마나 감당하셨을까! 사부님의 은혜는 정말로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두텁다. 나는 조사정법하는 대법제자고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있으며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고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10]를 명심하기만 하면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 개 구치소, 4개 노동교양소 소굴에서 2년 넘는 체험은 우리가 진정으로 신사신법하고 엄격하게 사존과 대법의 요구대로만 한다면 넘어갈 수 없는 관과 난이 없고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박해를 폭로하고 진상을 알리며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고,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을 명심해야 하며 우리의 길을 바르게 걷고 우리가 걸어온 길을 소중히 아껴야 한다는 것을 더욱 뚜렷하게 깨달았다.
다시 한 번 무릎 꿇고 사존께 절을 드린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족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도항(導航)-북미 대호수지구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0-맨해튼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축사’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이성(理性)’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2003년 애틀랜타 법회 설법’
[8]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길(路)’
[9]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2-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10]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2-사도은(師徒恩)’
(전문 끝)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2/282297.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23/1433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