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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시간에 대한 옅은 견해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1992년 5월 13일 법을 전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미 21년 남짓 된다. 아마 일부 사람 마음이 중한 수련생은 시간에 대한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종결되기를 바라거나 심지어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사부님에 대해, 정법에 대해 의심이 생기고 있다.

내가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을 때 중공의 세뇌교육 내용에 이런 삿된 이치가 있었다. “너희들의 사부가 오늘에는 원만과 멀지 않다, 내일에도 원만과 멀지 않다고 말하는데 왜 원만하지 못하고 있는가?” 유다들도 이런 이론을 꺼낸다. “원만은 마치 소 앞에 놓인 풀과 같다. 소가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가면 풀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나 풀도 앞으로 한걸음 움직여 소가 늘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악의 그릇된 이론은 확실히 일부 수련인을 미혹시켜 수련을 포기하게 했다.

사실 인간의 생명은 신의 경지와 어찌 십만 팔천 리 뿐이겠는가? 당신이 한 걸음에 원만하려 하는가? 당신이 십만 걸음을 걸어도 꼭 성사되는 게 아니다. 만일 수련인이 한걸음씩 걷지 않고 직접 한걸음 혹은 몇 걸음에 원만의 표준에 도달하게 배치하면 만 번 죽어도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 난이 그렇게 크므로 오히려 당신은 철저히 수련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우주 생명이 오늘까지 걸어오면 마땅히 철저히 소훼되어야 하며 전반 우주가 전부 도태되어야 한다. 사부님께서 중생에게 자비하셔서 우리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나 많은 생명은 오히려 감사와 은혜를 모르며 사부님과 법을 원망하고 있으며 심지어 악으로 대하고 있다. 대법이 당신을 떠나도 안 될 게 있겠는가? 반드시 당신을 제도해야 하는가? 직접 훼멸시키고 다시 만드는 게 얼마나 간단한가!

때문에 생명이 다시 생존할 수 있는 기회는 사부님, 대법이 주신 것이며 구도되는 생명은 우선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놓아야 한다. 우리는 사부님 설법에서 일부 제자가 비난 섞인 어조로 사부님께 핍박성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중공에게 박해로 사망하는 수련인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왜 보호하지 않습니까?” 이런 법리에 대해 명백하지 못한 오해로 사부님께 억지를 부리는데 과연 제자다운가?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자비로우시어 모두 충분한 해석을 주셨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 구도에 십년이 더 걸린다면, 당신들은 하겠는가 하지 않겠는가?”[1] 지금은 십년이 지나갔고 사부님께서 재차 설법에서 제자에게 해석하게 했다. 이는 대법제자 중에 아직 많은 사람이 이것을 마음에 두고 있어 매우 큰 파동을 조성했음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구도하기 위해 부득불 전문적으로 해법하셨다. 이는 모두 제자가 사부에 대한 불경과 무례함이다!

십년이 지났다고 또 어떠할 것인가? 사부님께서도 십년이면 정법이 종결된다고 하지 않으셨다! 모든 오해를 모두 사부님께 밀고 있는데 이는 제자로서 할 바인가?

정법은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며 우리 제자는 조사정법이다. 어떻게 정법할 것인지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우리는 절충 없이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 십년이 뭐가 대단한가? 이제 백년이 있다면 또 어떠하단 말인가? 우리는 조사정법이며 해나가면 된다! 1년이면 하려하고, 5년이면 하려하고, 십년이라도 하려하나, 백년이라면 즉시 포기한다면 당신은 대법을 수련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을 인간세상에서 조사정법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시간은 속인에게 있어서 단지 하루에 대한 예견이다. 예를 들면 붉은 눈의 돌사자 이야기에서 돌사자의 눈이 붉어지자 이튿날에 재난이 발생했는데 만일 발생하지 않았다면 속인들은 가짜라고 여길 것이다. 만일 1년 뒤에 발생한다면 속인은 더욱 어떤 연계가 없다고 할 것이다. 악에 대한 보응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사악한 경찰이 나쁜 일을 했으나 이튿날에 보응을 받지 않았다면 그럼 보응이 없을 것이라 여긴다.

난 속에서 매우 쉽게 시간에 대한 집착이 생기게 된다. 이는 자신의 신분을 바로 하지 않은 탓으로, 자신을 속인으로 여기고 속인사회에서 생활하고 속인사회의 향락을 누리러 온 것으로 여긴 것이다.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가련한가. 인간세상이란 더러운 곳은 당신이 근원을 망각하고 자신이 천체의 왕임을 잊었다.

왜 난이 있는가? 그건 자신이 조성한 것이 아닌가? 죄업이 그렇게 많지 않다면 어찌 그렇게 큰 난이 있겠는가? 자신이 잘하지 못했기에 비로소 이렇게 큰 난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난 중에서 박해를 대할 때 반드시 대법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이는 우리가 유일하게 의거할 수 있는 것이다. 대법은 대법의 원칙이 있는 것으로 우리는 정말로 대법의 표준으로 해내야 하며 그렇다면 누구도 박해할 수 없다. 사람의 덕과 업이 인생의 화복을 결정하며 우리는 바로 이러한 복이 있으며 또한 우리가 이렇게 타락하여 이러한 숙명을 타고 난 것이다.

우리가 금생에 대법을 얻어 대법 수련자로 되었는데 이는 우리에 대한 가장 큰 자비이며 또한 가장 큰 복이다!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대법에 따라 수련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대법은 생명이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근본이며 진실하게 대법에 동화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곧 우주에서 철저히 도태되고 소훼되는데 이는 우주의 법칙이다. 우리 수련인은 반드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뚜렷해야 한다.

나는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지 이미 십여 년이 된다. 고정된 곳이 없으며 고정된 일터가 없고 고정된 수입이 없다. 대다수 공장은 출근하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하나 나는 없으므로 나의 의식주는 전부 환경이 나쁜 일터에서 짧게 일하여 해결하는데 이런 공장은 신분증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십여 년 동안 처음에는 수배령을 받고 밥을 빌어먹고 산에서 사방으로 몸을 숨겼다. 점차 일할 수 있게 되고 셋방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십년간 중공이 나의 친척과 친구들을 전면적으로 감시하기에 부득불 친척과 친구와의 일체 연결을 끊고 살아야 했다. 이렇게 나는 표면적으로도 지구의 손님이 됐다. 그럼에도 나는 고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아울러 자료점을 만들었다. 시간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면 나와 같이 이런 환경이나 감금된 환경에서 가장 쉽게 생길 집착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는 우리 수련생들이 모두 시간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희망하며, 대법 수련인의 사명을 잘 이행하고 사부님의 말씀을 따라 다그쳐 사람을 구도해야 한다. 그 시간이 1만년이라도 말이다.

이상은 개인의 체득이며 착오가 있을 수 있으므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북미순회 설법’

문장발표: 2013년 12월 3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2/31/2848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