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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자료를 논밭까지 배포하고 진상을 농촌 사람 마음속까지 알리다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도시에 살고 있어 이전에는 대부분 도시에서 자료를 배포했다. 십여 년 동안 도시 사람들은 여러 번 진상자료를 받아본 적이 있고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면 5, 6년 전에 이미 삼퇴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지 수련생들은 경제와 거주 조건의 제한으로 농촌까지 널리 진상자료를 배포할 수 없었고 게다가 농촌 사람들은 비교적 분산됐는데 심지어 어떤 마을에는 대법제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자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중점을 농촌으로 이전했다.

1. 진상자료를 논밭까지 배포하다

장기간 도시에서 일했기 때문에 농촌에 대해 잘 모르고 농민과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몰라 농촌에 가서 진상을 알린 밍후이왕 교류문장을 많이 보고 많이 배우며 첫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① 진상을 논밭 비닐하우스까지 배포하다

어느 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농촌으로 내려가는데 큰 강가 양쪽에 비닐하우스가 줄줄이 배열된 것을 봤다. 비닐하우스 안은 보통 채소였는데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 어떤 것은 자물쇠가 채워있었고 어떤 자물쇠는 채우지 않은 채 매일 농부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했다. 이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휴식할 때 그들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든 진상자료를 읽을 수 있다면 모두 소중히 여길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진상 소책자를 투명 지퍼 백에 넣고 또 편지봉투에 넣어 드나드는 잘 보이는 곳에 놔뒀다. 자물쇠를 채우지 않은 비닐하우스에는 직접 배포했으며 간격을 두고 배포했다.

이튿날 나는 일부러 진상자료를 배포한 비닐하우스로 가봤는데 전부 가져갔고 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배포하지 않은 곳은 다음에 다른 내용으로 바꿔 배포했다.

최근 1년간 강가 양쪽의 약 천 개 비닐하우스에 기본적으로 한 번씩 배포했다. 길가 비닐하우스들은 길가 양쪽에 녹화지역을 만들기 때문에 진상자료를 배포한 지 얼마 안 돼서 전부 철거됐다. 마치 그들은 거기서 이 진상자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② 진상자료를 과수원을 지키는 작은 집까지 배포하다

농촌에서 돌아다니다가 사과 과수원, 배 과수원, 포도밭, 채소밭 옆에 밭을 지키는 작은 집(간이 벽돌집)을 봤는데 이는 도난 방지용이다. 채소 수확 계절이면 도둑이 특히 많아 보통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점심밥을 먹으러 가거나 점심 휴식할 때 나는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노동 뒤에 농민 형제들이 진상을 누릴 수 있고 세상일을 알 수 있게 말이다.

논밭을 지나가다가 멈춰있는 자전거, 전동차, 오토바이, 삼륜차 등을 보면 진상자료를 직접 그들의 차 바구니 혹은 좌석 위에 놓았다.

한 바퀴 배포하고 나서 논밭에 앉아 휴식하면서 진상자료를 보고 있는 농민들을 보면 마음속으로부터 이 사람들이 구도 될 희망이 있다고 생각돼 기뻤다.

③ 수확 계절에 진상자료를 농민 눈앞까지 배포하다

보리 수확과 추수철이면 농촌 길가는 농민들이 곡식을 말리는 주요장소가 된다. 특히 보리 수확 철, 밀을 햇볕에 보통 보름 정도 말리는 데 장소가 집중되어 있었다. 편지봉투 색깔이 보리와 옥수수랑 비슷하여서 진상자료를 노란 편지봉투에 넣고 포장 후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농촌에 와서 한 사람은 앞에서 망을 보고 한 사람은 뒤에서 진상자료를 보리를 말리는 곳에 놔뒀다.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타면서 했다.

보리를 말리는 절정기에는 낮에 사람이 많아 저녁이 더 안전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저녁에 농민은 보리를 덮어놓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손전등을 들고 길가에서 천천히 타면서 보리 더미와 보리 이랑을 보기만 하면 배포했고 간격을 두고 배포했다. 연속 며칠 동안 했는데 진상자료 버린 것을 보지 못했다.

옥수수 수확 전에 진상자료를 밀봉해 놓고 옥수수 이삭과 옥수숫대 사이에 끼워놓고 옥수수를 따는 농민을 구도하기도 했다.

2. 진상을 농민 마음속까지 알리다

논밭, 두렁, 길가, 촌에서 많은 농민을 접촉하자 많은 농촌 생활의 상황, 농민의 수입 상황과 일부 농민의 현실 문제를 알게 됐다. 소박함은 농민의 진실한 모습이므로 나는 될수록 농민, 농촌과 관련되는 정보를 수집해 진상을 알릴 때 사용하려 했다. 소책자도 농촌 생활에 가까운 내용을 골랐고 동시에 농촌에 내려갈 때 너무 비싼 옷을 입지 않고 외모를 소박하게 했으며 그들과의 거리를 가깝게 해 그들의 경계심을 없앴다. 어떤 때는 담배 한 갑도 들고 다녔다. 물론 나는 피우지 않지만 만난 후 한 대 건네주고 한담하다가 진상을 알리는 기회를 찾아 자연스럽게 대법 진상과 삼퇴로 인도했고 어떤 때는 제3자 입장에서 말했으며 어떤 때는 직접 대법제자의 신분을 밝히고 진상을 알렸다. 융통성 있게 운용했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① 농민 생활에 가까이하고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권하다

농민들의 생활은 어렵다. 비록 먹을 양식이 있지만 쓸 돈이 없고 특히 질병을 고치고 자녀가 학교 다니는 문제에서 매우 여의치 못했다. 어떤 가정은 생활용품을 살 돈이 없어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이런 것들을 말하면 나는 보통 인내심 있게 그들의 하소연을 다 들은 후 그들에게 한 가지 비교를 해줬다. “농민이 한 무 밭, 1년에 봄과 가을 두 차례 수확(보리, 옥수수)의 수입이 1천 위안(약 17만 원)쯤입니다. 공무원, 회사 직원의 한 달 수입은 5천 위안(약 88만 원) 정도인데 여기에 각종 보너스와 보조금 등을 계산하지 않았죠. 이렇게 비교하면 농민의 수입은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 알 수 있으며 또 지금 중공의 부패, 탐관오리가 널리 퍼졌고 돈을 많이 쌓고 빈부격차가 큰데 이것의 화근이 바로 중국공산당입니다. 공무원, 회사, 공검법, 공상세무, 은행직원 월급은 해마다 오르는데 농수산물 가격은 줄곧 아래로 억누르고 도시 사람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생활용품을 사게 하는 것을 보장하는데 그들의 소위 생활안정을 보장하는 것이고 백성들만 해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대부분 이 사회현실에 대해 진일보 알 수 있고 중공이 온갖 나쁜 일을 다 해 천멸중공은 피할 수 없는 추세고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한다는 것에 인도하면 그들은 대부분은 삼퇴를 선택한다.

개별적으로 지금 농사를 지어도 세금을 내지 않고 보조금도 있으며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화제를 빌어 나는 우선 장쩌민 시대에는 농민에 대해 각박하고 농민을 협박해 각종 세금을 바치라고 했다고 말하면 그들은 대부분 “장쩌민 시대에는 한 가지도 좋은 일을 하지 않았죠”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장쩌민은 국제, 국내에서 악명이 높고 파룬궁을 박해해 여러 국가에서 기소 당했습니다.”라고 알려줬다. 이어서 지금 농민은 비록 농사를 지어도 세금을 내지 않지만 화학비료, 종자, 농약 가격이 대폭 올랐고 원래 화학비료 한 포대에 30위안인데 지금은200여 위안이 됐다고 했다. 겉보기엔 세금을 내지 않지만, 다른 방법으로 통해 돈을 거둬가는 것이고 그깟 농사 보조금도 이 생산비가 대폭 올라가는데 포함되어 있어서 결국 농민 스스로 돈을 내는 것이라고 알려줬다.(이 외에 서방 국가에서는 줄곧 농민에게 보조금을 준다는 것도 말할 수 있다.)

② 농민 자신의 이익을 예를 들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다

우리 시의 큰 강과 대로 양쪽에는 지금 대규모 녹화미화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으며 큰 강가와 대로 양쪽에서 농민의 많은 땅을 차지했는데 이런 토지는 대부분 자급용 식량을 생산하는 농지였는데 보상은 매우 적었다. 중공 각급에서 그것을 정치 임무로 생각하고 현에서 진에게 압력을 가하고 진에서 촌에게 압력을 가하고 촌에서 집집이 압력을 가했다. 어떤 촌은 강제로 토지를 차지하는 방법을 썼는데 우선 은행에 가서 계좌 하나를 만들고 한 무에 1천 위안씩 한꺼번에 보상액을 통장에 넣어주고는 촌 간부가 은행카드를 갖고 가서 집집이 가서 “보상금이 카드에 있으며 내일 촌에서 사람을 파견해 당신 밭 농작물을 제거하겠소.”라고 알리는 것이다. 농민은 분노해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 복종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깡패를 고용해 때리고 부수고 빼앗고 파괴하며 만약 청원하러 가면 경찰에게 붙잡혀 감금된다. 이런 폭행 행위에 대해 기회를 잃지 않고 농민에게 중공의 암흑을 말해주고 가장 큰 폭력조직이라고 알려준다. 농민들이 중공의 폭정을 알게 하고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알아보게 한다. 대부분 농민은 자신 주변에서 발생한 일들을 보면 매우 쉽게 삼퇴를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삼퇴 후 꼭 대법 기본 진상을 말해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중공과 관련해 말해야 하고 파룬궁이 박해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농민은 매우 쉽게 대법 진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토지를 강제적으로 빼앗긴 한 농민을 본 적이 있었다. 진상을 명백하게 안 후 소책자와 CD를 보겠다고 했는데 당시 전부 배포하고 없어서 “여기에서 기다리세요. 집에 돌아가 가져올게요”라고 하고 자전거를 타고 약 20여 리 길을 왕복하고 그에게 션윈 CD와 소책자, 인터넷 돌파 소프트웨어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줄곧 논두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물건을 받은 후 연속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우리는 인연이 있네요. 만약 오늘 이것을 갖다 주지 않는다면 언제 또 만날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③ 농촌 상황을 이해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다

농민들은 대다수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과 발생한 일들에 매우 관심이 있으나 무슨 국가의 큰일들은 관심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에게 “지금 농촌은 매우 복잡합니다. 촌 간부는 선거 표를 얻으려고 뇌물을 보내고 탐오부패하며 시내에서 집을 사고 고급 차를 몰고 다니며 건달이 촌 간부가 되는 현상도 있습니다. 한촌의 사당서기가 있었는데 그는 건달 촌 간부였고 매우 부패했습니다. 그가 심장병이 발작해 죽자 여러 곳에 부동산이 있는 것 외에 또 60여만 위안(약 1억 원)의 현금이 발견됐다. 사실을 안 후 농민들은 모두 욕했습니다.”라고 알려줬고 또 대륙 신문, TV에서 스스로 폭로하는 탐관부패 사건을 열거하고 중공이 아래로부터 위에까지 탐오 부패한다는 것을 말해줘 중공이 이미 죽을 때가 됐다고 말해줬다. 어떤 사람은 “중공은 강대한 군대가 있는데 잠시는 무너지지 않겠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면 나는 그들에게 소련이 하루 사이에 해체됐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또 그들에게 청나라 때 팔기군이 있었고 역시 매우 강대했지만 이후 탐관오리가 성행해 몇 년 만에 무너졌다고 알려줬다. 또 그들에게 성경 계시록 예언도 말해줬다. 그들에게 천멸중공(天滅中共)은 이미 결정된 사실이고 또한 곧 눈앞에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어떤 사람은 벌써 그것이 무너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④ 농민의 지식을 가까이하고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다

지금 보통 50세 넘는 농민이 논밭에서 일하고 중 청년층은 보통 외지에서 일했다. 이 부분 농민들은 지식이 높지 않고 보통 초중 학력이었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소박한 언어로 깊지 않은 이치로 알려야 한다. 보통 옛사람들이 천지를 경외하고 신을 경외하며 조상을 모시는 것으로부터 말하고 진일보 문화대혁명이 모든 잡귀신, 조상의 무덤을 파고 족보를 태우며 가보를 태우고 중화민족 몇천 년간 전통문화를 다 부숴 중국인이 무신론 수렁에 빠지게 했으며 오늘날에 이르러 무신론은 중국 한 세대 또 한 세대를 해쳤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며 심지어 부자가 서로 반목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원수가 되어 마지막에 법정까지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좋지 않은 현상은 모두 무신론이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라고 알려줬다.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깊은 체득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이런 피해를 많이 받았고 그들은 주변 혹은 자신 집안일들을 말했으며 또 자신이 부딪힌 어려움을 말하기도 했다.

나는 보통 일깨워주는 동시에 대법 진상을 말하고 파룬궁은 마음을 연마하고 선(善)을 향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는 공법으로 중공이 TV, 신문에서 보도한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파룬궁이 이렇게 좋은데 왜 TV, 신문에서 좋다고 말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문화대혁명 때 류사오치(劉少奇)를 넘어뜨리려고 우선 류사오치를 반역자, 간첩, 노동자 계층의 배반자라고 하고 전국에서 비판하고 박해를 받아 죽을 때까지 카이펑(開平) 감옥에 있었다. 류사오치에게 누명을 벗겨줄 때는 반역자, 간첩, 노동자 계층의 배반자가 아니고 억울함을 당했다고 했다. 오늘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도 같은 수단을 쓴 것이다. 먼저 파룬궁은 자살하고 분신자살하며 살인하고 독약을 뿌리며 병이 있어도 약을 먹지 않는다 등 거짓말을 만들어내 파룬궁에 먹칠하고 전국 사람들이 판단력을 잃게 하고 악독한 수단을 써서 파룬궁을 박해했다. 중공의 지금 파룬궁 박해는 당시 문화대혁명과 똑같은 것이며 중공의 여러 차례 정치 운동은 모두 사람을 괴롭히는 운동으로 모두 이렇게 한 짓이라고 알려줬다. 이 부분 농민들은 대부분 문화대혁명의 일부 상황을 알고 어떤 것은 직접 겪었던 것도 있으므로 그들은 매우 동정했고 그들 머릿속의 사악한 독소를 제거하자 삼퇴를 권하는 것은 순조롭게 됐다.

물론 1년 동안 삼퇴를 권하는 과정 중 진상을 듣지 않고 탈퇴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탈퇴하지 않아도 나는 조급하지 않았고 웃으면서 이후에 기회가 있으면 또 말해주겠다고 했다. 절대 사람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이 과정 중 사부님께서 옆에 계셨고 시시각각 보호해주시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억하건대 내가 자전거를 타고 교외에 갔는데 한 집의 문밖에 차량이 멈춰있는 것을 보고 진상자료를 차 안에 넣으려 했다. 당시 길에 사람과 차도 매우 적어서 가까이 가서 막 넣으려고 하는데 앞에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이 보이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그냥 지나갔다가 돌아와 다시 또 넣으려 했다. 금방 차 앞에 왔는데 갑자기 20미터 먼 곳에서 전동차를 탄 한 사람이 나를 불렀다. 내가 보니 몇 년간 보지 못한 친척이었다. 우리는 서서 말을 좀 나누다가 헤어졌는데 이때 차와 사람이 많아져 포기했다. 당시 속으로 매우 낙심했다. 그러나 어떤 일도 우연이 아니다고 생각했다. 왜 넣지 못했는가? 며칠 간 생각했지만 명백하지 못했다. 며칠 후 자전거를 타고 또 그곳에서 멈추고 봤는데 문 앞에 CCTV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마침 차가 멈춰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알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존께 합장을 드립니다!

문장발표: 2013년 12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2/29/2831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