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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정에 빠져있는 청년 수련생들과 교류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수련의 길에 들어선 지 이미 17년이 되었는데, 대법 속에서 수련하던 과거의 많은 어린 제자들이 나처럼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되었다. 배우자를 찾고, 결혼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마주치게 되었고, 또 많게는 결혼하여 정(情) 속에서 걸어 나오지 못하거나 가족관계를 잘 평형 시키지 못해 자신에게 일정한 교란을 조성했다. 나 역시 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경험이 있는데, 정에 한 번 빠지자 순식간에 몇 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수련의 의지를 정속에서 소모시켰으므로 교란이 줄곧 끊이지 않았다. 이것은 사실 바로 구세력이 나를 훼멸시키려고 안배한 길이었다.

정 속에서 인생의 갖가지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사람마음이 있어, 정에 이끌려 스스로 고독과 실의에 빠졌다. 그때 나는 교란을 받아 법 공부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은 책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어서 법 공부를 해도 법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법 공부하는 것은 법에 대한 불경이기도 하다. 자신이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하자 더욱더 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후에 사귀던 사람과 헤어졌는데, 그가 나의 수련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나에게, 그와 대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아마 나 같은 경우도 많지 않을 텐데, 대개의 경우 결혼 전에 수련을 지지한다고 약속한다든가, 혹은 결혼 후에 함께 수련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떤 여 수련생은, 결혼은 하되 명의상으로만 부부로 남는 길을 택했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도 있는데, 결혼 후의 현실은 자신의 생각하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당신은 상대방에게 정이 없지만 그는 당신에게 욕망이 있고, 거기다가 합법적인 부부여서 자신이 시시각각 정념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아주 심하게 교란을 받게 된다. 사람의 약속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자신도 책임지지 못하는데 어떻게 당신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사존께서는 “무엇이 수련인인가? 과거에 사람들은 삭발하고 절에 가 있으면 신이 되는 줄로 알았다. 그런 일인가? 절대 아니다. 그는 다만 겉모양에서 자신이 속인, 다른 사람과 같지 않게 되었으며, 속인들도 그들과 같지 않다고 여긴다. 그런 다음 다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수련했는데, 사회 중에서, 오염 중에서, 칠정육욕 중에서 그 마음은 같은 것이다. 어찌 이런 것에 그치겠는가? 이 현대사회는 칠정육욕만이 아니다. 칠십 정(情), 육십 욕(慾)보다 더 많다. 그렇지 않은가? 가지각색의 욕망이다.”[1]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어떻게 이 난세 속의 각종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또 어떤 남자 수련생은, 감옥에서 여러 해 동안 박해 받고 나온 후 속인이 업신여길까봐 얼른 수련생을 찾아 결혼하려고 했다. 더구나 욕망에 대한 집착도 있어 결혼 전부터 성관계를 가졌으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혼하자니 조건이 되지 않고, 안 하자니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그리하여 결혼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방면으로 어려움이 겹치게 되었다.

결혼 생활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는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두 가족의 문제와 연관된다. 정을 내려놓지 못해서 결혼했지만 혼인은 결코 정으로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현재의 사람들은 정(情)을 매우 중하게 본다. 그러나 정이란 가장 믿을 수 없다. 당신이 나를 좋게 대하면 나는 기뻐하고, 당신이 나를 좋지 않게 대하면 정이 없어지는데, 이것을 믿을 수 있는가? 정으로 사람의 혼인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란 도의(道義)를 지키는 것 외에 부부 사이에는 또 하나의 은혜가 있다.”[2]고 말씀하셨다. 이른바 열정이 사라진 후에는 곧 먹을 것, 땔 것 등의 일상적인 생활문제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우리 역시 사람이 수련하는 것이기에 자신이 법에서 수련하지 않으면, 가정의 여러 면에서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고부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했는데, 모두 수련자이어서 상대방을 수련자로만 생각하고 그에 상응하는 요구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아 간격이 갈수록 커져갔다. 고부간에 다툼이 살벌하여 아주 나쁜 영향을 끼쳤고, 속인도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그들이 진상을 알릴 때, 속인들이 겉으로는 말을 안 하지만 속으로는 수련자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고, 구세력이 이 틈을 타 아주 큰 손실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정을 내려놓지 못할 때, 정에게 통제 당한 것이 자신이 맞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마음 아프고, 속상하고, 괴롭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런 정 속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그런 느낌들에 대해 사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세간에서, 그는 단지 생명의 과정을 향수(享受)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과거에 사람은 아주 가련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람은 이 세간에서 그는 단지 생활과정 중에 사람에게 가져다 준 감수를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이 표현은 비교적 정확하다. 무슨 뜻인가?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주재하고 있고, 내가 무엇을 하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즐기는 중에서 후천적으로 양성된 습관과 집착으로서, 느낌을 추구할 뿐이다. 진정하게 작용을 일으켜 무엇을 하고자 하는 배후의 요소는, 사람의 습관, 집착, 관념, 욕망 이러한 것을 이용해서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진정한 인체는 바로 이러하며, 단지 생활과정 중에서 가져온 느낌을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에게 단 것을 주면 당신은 단 것을 알고, 당신에게 쓴 것을 주면 당신은 쓴 것을 알고, 당신에게 매운 것을 주면 당신은 매운 것을 알고, 당신에게 고통을 주면 당신은 괴로움을 알고, 당신에게 행복을 주면 당신은 기쁨을 안다.”[3]

자신이 이런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사실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내려놓기 싫어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내려놓고 싶다면 마음을 조용히 한 다음, 법을 학습하고, 자신의 정념을 강화한다면 사존의 가지 하에 우리는 내려놓을 수 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4] 우리는 주동적으로 수련해야 하는데 “이 마음을 닦지 않으면 누구도 올라가지 못한다.”[4] 만약 입으로만 늘 내려놓았다 하고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를 속이는 것인가?

정법은 이미 최후의 최후로 왔기에 우리에게 이런 정, 저런 욕망을 내려놓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마음에 핑계를 대지 말고,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에 이유를 달지 말라. 어떤 수련생은 “당신은 몰라요, 지금 매 사람의 상태는 같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매 사람의 상태는 줄곧 다 같지 않다. 하지만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수련을 잘 한 수련생을 본받으라 하시지 않았는가? 사존께서는 또 법회 중에서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내가 이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바로 큰 물결이 모래를 이는 것으로 남은 것이 바로 금(金)인바, 금은 바로 금이다.”[5] 얼마 전에 이 단락의 법을 보고, 나는 갑자기 금은 바로 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금의 표준에 도달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조사정법하고, 서약을 실행하러 온 것이지, 정속의 여러 가지 감수를 느끼러 온 것이 아니다. 정욕은 우리가 수련과정 중에서 제거해야 할 것으로서 이런 것을 자신이라 생각하지 말라. 많은 수련생은 아직도 정욕의 집착을 제거하지 못했고, 자신 역시 이 문제를 정시하려 하지 않으며, 늘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핑계를 찾아준다. 자신의 문제도 감히 정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닦아버릴 수 있겠는가? 오직 자신이 깨닫고 진정으로 중시해야만 결심을 내려 닦아버릴 수 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사존께서 최후에 자신이 수련해 버리지 못한 물건을 폭파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만약 모두 사부님께서 폭파해 버리신다면 수련한 것이 우리인가? 아마 어떤 수련생은 내가 든 이런 결혼의 예는 너무 부정적이고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주위에서 발생한 진실한 정황이다. 대법 속에서 수련하면서 관계를 잘 평형 시킨다면 모두 지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성된 손실은 만회하기가 아주 어렵다.

사람들은, “금강석이 없으면 도자기 작업을 맡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만약 자신이 결혼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 수련생과 교류했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남자가 만약 욕망에 대한 집착이 없다면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고, 여자가 만약 의지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결혼을 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다고 했다. 물론 많은 수련생은 자신의 수련상태가 좋은데, 가족의 압력에 못 이겨 결혼한 경우도 있고, 또 많은 부부수련생이 공동으로 정진하고 또한 아주 잘 하고 있다. 사람마다 정황이 다른데, 결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꼭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결혼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수련에 교란을 조성하지 말고, 정욕에 이끌려 자신이 정진하지 못하게 하지 말며, 사람 속의 감수를 추구함으로써 이 만고의 기연을 잃지 말기 바란다.

이상은 나 개인의 깨달음으로서 층차가 제한되었기에 부당한 곳은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각 지역 설법11 –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2]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각 지역 설법6 – 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3]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각 지역 설법11 –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4]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5]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05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문장발표 : 2013년 12월 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2/6/2836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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