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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싼자에서 비밀리에 나를 남자감옥에 처넣은 악행의 전말

글/ 인리핑(尹麗萍)

[밍후이왕] 2001년 4월 19일 나는 마싼자에서 7개월간 마귀와 부딪힌 그 나날의 과정을 일생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악경(사악한 경찰)은 평소 혹형에도 ‘전화’하지 않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을 차례로 데리고 나갔다. 우리 9명은 한 사람씩 9개 방에 배치해 놓았는데 나는 첫 번째 방에 배정됐다. 4명의 남자가 이미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본 방은 큰 방이었는데 그 방에는 적어도 30여 명이나 되었으며 연령이 차이가 나는 남자들이 집단으로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싼자 귀신 머리위의 여자’를 보고 나는 더는 평온할 수가 없었다. 지나간 기억이 다시 나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죄악의 마싼자를 생각할 때마다 매번 마음속에서 피가 흘렀다.

1.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이 노동교양을 받다

나는 인리핑이라고 하며 금년 45세다. 1998년 말에 ‘전법륜(轉法輪)’ 책을 보았다. 처음에는 이 책이 수련을 지도하는 책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이 책이 좋고 좋은 사람으로 되라고 지도하는 좋은 책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책의 지도에 따라 생활 중에서 사회에서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 1999년 나의 운명은 상상할 수 없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1999년 7월 어느 날 우리 집에 많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지방의 가도(동사무소와 비슷함)와 파출소의 사람들이었다.[지금 빙산(兵山)시로 됐는데 원래 톄파(鐵法)시였으며 톄링(鐵嶺) 관할지역이다] 그들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지를 조사하고 집을 수색하여 책을 찾았다. 나와 남동생 인셴우(尹憲武)는 그들에게 이치를 따지며, 나라 안에서 정당하게 정규적으로 출판된 책을 우리가 서점에서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 것인데 어찌 개인이 구입한 물품을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가 하고 말했다. 그들은, 대법 책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상부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우리 남매는 단호하게 맞서며 그들의 위협적인 행위를 저지시켰다. 결국 그들은 우리 남매를 요시찰 인물로 지목했다.

7월 20일부터 그들은 매일 사람을 파견하여 우리 집을 감시했고 소란을 피웠으며, 경찰차와 오토바이가 끊이지 않고 드나들었다. 나의 아이는 그들이 오기만 하면 몹시 두려워하며 어디로 숨을지 몰라 했다. 이처럼 우리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나는 빙산관할의 샤오밍전(小明鎮)의 서기에게(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고 중년남자), 당신들은 왜 우리의 정상적인 생활을 교란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가 할 일이 없어서 당신의 집에 와 있는 줄 아는가! 위에서 출동하라고 해서 온 것이다. 당신이 능력이 있으면 장쩌민을 찾아가요. 그러면 우리도 해탈될 것이니까!”

견디다 못한 나는 7세 된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남동생과 함께 북경에 갔다. 그러나 북경 룽펑(龍鳳) 호텔에는 이미 지방경찰들이 파견되어 와 있었다. 1999년 9월 경찰에 납치되어 지방의 구치소(현 빙산간수소)에 감금됐다가 한 달 후 석방됐다. 집에 돌아가서 알게 된 일은, 경찰이 엄마를 속여 9,500위안(170여 만원상당)을 갈취했으며 그 대가로 우리 남매가 석방 된 것이다. 남동생은 석방된 후 얼굴색이 창백하고 180이나 되는 키에 몸이 야위어 체중은 55kg밖에 나가지 않았다. 우리는 구치소에서 한 달간 감시당하며 꽃을 만드는 수공업 노역에 투입됐으며 강제로 무슨 주사를 맞았다. 경찰의 말로는 예방접종이라고 했다. 나는 생명을 위해 이런 명확하지 않은 주사는 맞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우리 남매가 석방되어 집에 돌아 온 후 그들의 감시는 더욱 심했다. 파출소와 가도사람 두 명이 매일 우리 집에 상주하다시피 했으며, 그들의 교란으로 매우 시끄러웠다. 아이는 밤에 자다가 무서워 악몽을 꾸다가 일어나 크게 울었다. 아무리 달래도 안 되었으며 더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역시 상부의 명령으로 파견돼 온 것이라고 했다. “당신 집에 우리가 오는 것을 싫어해도 어쩔 수가 없다. 당신이 불복한다면 장쩌민을 찾아 가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또 그들의 말대로 북경으로 청원하러 갔다. (그때 나는 이 나라에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이번 청원은 의외로 중공사당(中共邪黨)이 진선인(眞善忍)의 믿음을 집단적으로 박해하는 것을 목격한 살아 있는 증인으로 됐다.

1999년 10월부터 2000년 1월 7일 기간에 나는 연이어 두 번 청원하러갔다가 두 번 다 빙산 구치소로 납치되어 감금됐다. 2000년 7월 오전 10시 그날은 큰 눈이 오면서 눈발이 흩날려 날씨는 매우 추웠다. 나와 다른 2명의 파룬궁수련생이 흰색승합차에 납치됐다. 차에는 2명의 경찰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손에 기록부를 지니고 있었고 옆에 두 개의 전기곤봉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말이 없었다. 차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갈 때 나는 비로소 그들이 우리를 집에 데려다 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2. 톄링 노동교양소에서 전기고문, 노역, 때려서 죽으면 자살로 간주했다

우리를 실은 승합차는 한 시간 달린 후 톄링 교양소에 도착하여 그제야 우리는 이 노동교양소로 이송 된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여자 경찰이 강제로 옷을 벗기고 몸수색을 할 때, 우리가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자 경찰은 “당신들은 노동교양처분 된 자다. 일체 이곳의 규정에 복종해야 한다. 우리는 이곳의 일체방법으로 당신들이 복종하게 할 것이다.”(나는 파룬궁을 배운 시간이 짧아 1년 정도 됐고, 나와 동행한 파룬궁수련생은 각각 2, 3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음)

톄링 노동교양소는 남자 수용소다. 그해 불법으로 많은 남자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했다. 그런 후 그곳을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여자감방도 신축했다. 우리는 3층에 감금됐으며, 1, 2층은 남자죄수가 수감돼 있었다. 내가 그곳에 수감됐을 때는 이미 그곳에는 테이링, 카이위안(開原), 창투(昌圖), 댜오빙산(調兵山, 원래 테파(鐵法)시) 등에서 불법적으로 납치된 25명의 파룬궁수련생이 수감돼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그날 여자 경찰은 내게 말했다. 만약 누가 여기에서 연공하면 장연(張豔)처럼 독실에 가두어 놓는다고 말했다. 그때 장연은 이미 1박 1일 감금되어 있었다. 수련생에 말에 의하면 왕지빈(王志斌) 악경이 전기봉으로 그녀의 민감한 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했다고 한다. 그녀의 언니도 함께 박해 당했다. 악경은 언니의 어깨를 펴게 한 후 그 위에 걸상을 올려놓고 전기봉으로 등에 충격을 가했다. 수련생은 나에게 말하기를, 가장 잔혹하게 전기충격 고문을 당한 사람은 김정옥(金貞玉 조선족 파룬궁수련생) 이라고 했다. 그녀의 엄마 김숙자(金淑子)에게 딸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보게 하였으며, 딸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게 했다는 것이다. 악경은 같은 방법으로 파룬궁 수련생 류비(劉菲)에게도 강제로 그의 여동생 류쥔(劉軍)이 고문을 당하며 비명소리를 지르는 것을 듣게 했다. 카이위안 파룬궁수련생 장수샤(張淑霞)는 악경 류지빈의 전기충격 고문을 받아 땅바닥에서 비명을 지르며 굴렀다. 후에 장수샤는 자신이 고문당한 전 과정을 나에게 소상하게 알려 주었다. 더 많은 잔혹한 박해 상황은 밍후이왕 2006년 6월 28일 “전기혹형, 노역, 폭력세뇌—-랴오닝성(遼寧省) 테링시(鐵嶺市) 교양원이 여자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파룬궁수련생 25명은, 정부당국이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수련자에게 이토록 악랄한 수단으로 고문박해를 가할지를 전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단식투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 마침 그들 파룬궁수련생들이 집단으로 권리의 쟁취를 위하여 단식투쟁을 감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래층 감방에 있는 남자 파룬궁수련생 위잔장(於占江)은 여자 수련생들 단식을 성원하다가 악경에 맞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는데 혹심한 구타로 귀가 찢어져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결국 여러 바늘의 봉합수술을 받았다. 당시 악경이 구타하는 소리가 온 건물에 다 들렸으며 건물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며칠 후 그의 모습을 볼 때 머리와 귀를 온통 붕대로 감고 있었으며 눈은 퉁퉁 부어 보이지 않고 한 가닥 일자로 변해 있었다.

나는 어느 날 악경 왕지빈의 사무실에 불려갔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두 자루 전기봉이 옆에 놓여 있었다. 그는 나에게, 여기에 와서도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하려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잘못을 승인하고 ‘회개서’를 쓰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무슨 죄를 범해 교양원에 감금됐냐고 물었다. 그는, 당신의 교양서기록에 ‘공공질서를 교란하는 죄’를 범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청원이 공공질서를 교란하는 것인가? 이 청원은 중국의 법률규정으로 되어 있다 하고 말했다. 그는, 공안국이 너에게 죄를 판결한 것이지 우리 교양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 파룬궁수련생에게 위에서 비밀문서가 시달됐다고 했다. 그는 책상에서 문건을 가져다 나에게 보여 주었다. 바로 ‘때려서 죽어도 된다.’는 정책적 내용이었다. 나는 그에게, 누가 이 명령을 집행하면 누가 천고의 죄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말을 듣고 혹형을 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강제로 엄동설한에 밖에서 땅을 파는 노역을 당했다. 동북의 겨울은 매우 춥다. 그해 겨울의 날씨는 영하 23도 내외였다. 남자 파룬궁수련생들은 이렇게 추운 겨울에 강제로 노역을 했다.

테링시 교양원은 매일 6시 전에 기상하고 설익은 옥수수떡을 먹었는데 치아에 엉겨 붙었으며, 큰 벌레가 떠돌고 있는 깨끗이 씻지 않는 배추무국이다. 남자 수감자들은 추운 겨울에 밖에 나가 노역에 투입되지만 방한신발이 없다. 어느 날 아침에 우리가 줄을 서서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일을 하러가는 대오 중에 17, 8세 정도 되는 남자애가 있었다. 그 추운 날씨에 그는 여름 샌들을 신고 있었고 두 발은 이미 얼어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나는 이 한 장면을 목격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우리나라의 노동교양소가 이런 정도밖에 안 되는가? 이토록 인성이 없단 말인가? 남자애의 엄마가 본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나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나 자신의 안위도 생각하지 않고 뛰어가서 그들 대오 중에서 그 남자애를 끌어 내어 나의 겨울신발을 신겨주고 나는 대신 차갑고 딱딱한 그 여름 샌들을 바꿔 신었다. 나의 두 발은 채 2분도 되지 않아 얼어들어 발이 시려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애는 감동되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상은 내가 테링 노동교양소에서 본 빙산의 일각의 정경이다. 2000년 1월 30일 테링교양원에 갑자기 낯선 경찰과 몇 대의 버스가 왔다. 우리 20여 명 파룬궁수련생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른 채 경찰에게 강제로 끌려 나가 두 사람씩 한 수갑에 채워져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두 명의 여 경찰과 남자 경찰이 있었고, 4개의 전기 봉이 있었다.

3. 파룬궁수련생을 노역 꾼으로 삼은 랴오양(遼陽) 노동교양소

랴오양 노동교양소는, 1999년 11월 파룬궁을 위해 여자 대대를 만들었으며, 교양소에서 파룬궁을 박해하는 주관(主管)을 맡은 자들은 정치위원장 추화톈(鄒化田), 대대장 순아이친(孫愛勤), 부대장 성이 인(尹)이고 또 다른 4명의 소대장 구위(穀玉), 장웨이(張威), 훼옌(霍豔)등이 있고 또 성이 주라는 대장이라는 자도 있었다.

우리가 막 그곳에 도착했을 때 몸수색을 당했으며, 몸수색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건물에서 경찰이 파룬궁수련생 후잉(胡英)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후잉의 소지품에서 대법 책이 발견된 것이다. 내가 후잉을 만났을 때 이미 매를 맞은 그의 얼굴은 검붉게 부었다. 모든 소지품을 전부 수색함은 물론 온 몸과 옷깃과 속옷까지 모두 수색했는데 솜과 왕겨베게마저 다 쏟아 내어 검사를 했다. 후잉의 박해 받은 더욱 많은 상황은 밍후이왕 2008년 10월 31일 “빙산시에 간 후 후잉이 서술한 8년간의 과정”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나는 2대대에 수감됐다. 이어서 밤낮없이 노역이고 우리를 돈을 버는 도구로 삼았다. 그곳의 수공업품은 해외로 수출됐는데 매일 20여 시간의 혹사를 당해야했다. 배당받은 일정량을 다 완성 못하면 잠을 자지 못하게 했으며, 우리에게 ‘전향’을 압박하기 위해 휴가철에는 12시 이후에나 잠을 자게 했다. ‘전향’하지 않으면 새벽 1, 2시까지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새벽 5시 30분에 기상을 시키기 때문에 씻고 화장실에 가는 시간은 단 1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단 1분이 초과해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 순간 대소변을 보다가도 시간이 되면 중도에 나와야 한다. 노년 파룬궁수련생의 경우 몸이 불편한 상태여도 배려하거나 보살펴주지 않으며 똑 같이 밤중까지 일해야 한다. 내가 끝내 ‘전향’을 하지 않자,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하고, 낮에는 힘든 노역을 시키고 저녁에는 꽃 만드는 수공업을 시키며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내가 졸기라도 하면 악경은 가차 없이 나를 때렸고, ‘전향’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서 하는 노역은 구덩이 파기, 나무심기, 평지(平地)고르기, 시멘트를 개이거나, 압연 강철공장에 가서 철의 압축, 철근 쌓기, 석면을 만들기 철로부설하기 등등의 중노동이다. 나와 가오진링(高金玲. 이미 박해로 사망), 장연(張豔), 커우샤오선(寇小坤) 등 우리 4명이 강철공장에 배치됐다(후에 여타 파룬궁수련생은 바뀌었지만 나는 계속 그 일이 끝날 때까지 했다). 우리는 매일 4사람이 8, 9톤의 강철을 압축해야 했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철근을 옮겨 싣는 작업을 했다. 이곳에서 구입한 철근들은 쓰고 남은 토막들인데 이것들이 정원에 작은 산처럼 쌓여 있다. 우리는 몇 미터나 되는 높은 강철토막 무더기에서 길이 1~3미터 너비 한 치 정도 되는 것을 선별해서 화물차에 싣는 작업이었다. 철근의 가장자리는 날카로운 톱날 같아서 작업하기가 위험하고 힘들었는데 우리 4명이 대형 트럭에 모두 실어야 하고(4, 5톤대형 트럭) 오후에 또 한 트럭을 실어야 한다. 날씨가 더워(37, 8도) 우리 몸은 땀투성이다. 스스로 작업을 위한 면장갑을 사야했고 하루만 쓰면 장갑은 다시 쓸 수 없을 정도로 되어 꿰매야했다. 내 손과 어깨는 예리한 철근 끝에 찔려 온통 핏자국이다. 날씨가 더워 철근이 손에 닿으면 뜨거워서 수포가 생긴다. 얼굴은 강렬한 태양 볕에 쬐여 흑인처럼 됐고 단지 이빨만 희다. 경찰은 나를 보고 “당신을 보면 외국에서 온 것 같아요” 그 뜻은 흑인을 본 것 같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강철을 트럭에 싣는데 갑자기 가오진링의 신에 온통 피가 흘렀다. 그런데 바지 역시 모두 피투성이였다. 우리는 경찰에 알렸다. 그러나 주 대장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녀가 생리대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땀을 닦는 수건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러나 수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피를 흘리는 바람에 신발은 피가 고일정도였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져서 우리는 걱정으로 조바심이 났다. 철근을 내려놓고 그녀를 돌봐주었다. 이렇게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주 대장은 우리에게 일을 하라고 재촉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주 대장에게 빨리 와서 보라고 했다. 가오진링이 큰 출혈을 하고 있어서 생명이 위급하다고 했다. 그때서야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서 우리를 교양원에 데려갔다. 가오진링이 교양소의 위생소에 갔을 때는 이미 위험한 상태였다. 입술과 얼굴이 모두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위생소에서 지혈주사를 놓았다고 했다. 그러나 교양원의 대대장 순아이친은 그녀에게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했다. 그녀를 감방 시멘트바닥에서 반나절이나 누워있게 했다. 그는 말하기를, 이곳은 군대식 관리를 하기 때문에 침대를 더럽히면 안 된다고 했다. 이튿날 가오진링을 작업실에 데려다 놓고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곳에 앉아 있기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후 장연이 3미터 높이의 철근더미에서 쓰러진 적이 있다. 그 후부터 우리에게 간혹 더운 물과 녹두죽을 먹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쓰러지면 돈을 벌수 없을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후에 알았는데 대대장 순아이친은 밖에서 관계자들과 공모하여 외부의 일을 책임졌는데, 우리가 매일 일하면 하루에 그들은 100위안에서 150위안을 얻는다. 우리가 하는 이 일은 남자 수감자들의 일보다도 힘들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도 저녁에 오면 밤중까지 꽃을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밤을 새워야 하며 그 과정에서 휴식이란 없다. 나의 머리카락은 후에 3일 동안에 절반이 하얗게 변했고, 눈은 종일 핏발이 섰다. 열손가락은 찔려 피투성이가 되고 손바닥은 닳아 지문마저 보이지 않았다. 어깨는 낮에 철근에 긁혀 흘린 핏자국이 한 갈래 한 갈래 남아 있다. 밤중에 몸이 아파 침대에 오를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강제노역으로 석면을 만들었다. 그런 작업은 방독면을 써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 석면이 몸을 찔러 들어와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 독한 냄새로 끊임없이 토하고 어지러웠다. 후에는 과도한 피로의 누적으로 자주 피를 토했다. 한 번은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화장실 벽에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경찰은 그래도 나에게 약간의 휴식조차 주지 않았다.

인부 관리대장은 나와 같은 성 씨라 그녀가 당직할 때면 매번 다른 경찰관들이 없을 때 나를 그녀의 사무실로 불러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들으려고 했다. 내가 피를 토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몰래 두유를 주었다. 내가 받지 않자, 그녀는 나에게 알려 주었다. 위에서 하명한 지령인데, 너희 파룬궁수련생은 죽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빨리 마시라고 하면서 먼저 명을 보존하라고 했다. 후에 인 대장은 파룬궁수련생을 때린 적이 있지만 파룬궁 진상을 알고 그녀는 암암리에 파룬궁수련생을 보호해 주었고, 파룬궁수련생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 후에 그녀는 좌천되고 전출됐다.

나는 원래 75kg의 체중이었는데 몇 개월 사이에 60kg도 되지 않았고 매월 있었던 생리도 오지 않았다. 우리는 랴오양 교양소에서 무엇이 휴식인지 몰랐으며, 대화조차 못했다. 왜냐하면,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노예를 보았는데 노예도 휴식하고 잠을 자는데, 우리 파룬궁수련생은 여기에서는 그런 무엇도 하지 못하고, 가족이나 아이조차 만날 수가 없다.

노년 파룬궁수련생도 신체상의 불편한 상황이 나타나도 보살펴 주지 않았다. 당시 65세 되는 파룬궁수련생 리위친(李玉琴)은 장기간 찬 걸상에 앉아 다리가 부어 한 가닥 천으로 걸상에 깔았는데 소대장 장웨이가 발견하고 그 천을 빼앗고 손바닥을 뒤집어 뺨을 때리고 욕을 했다. 이것은 내가 친히 본 한 장면이다. 이런 과중한 노동에 혹사된 신체는 감당하기 어렵다. 어느 날 왕수팡(王淑芳)은 3시간의 수면시간으로 가부좌를 해 좀 조절하려 했다. 앉지도 못했는데 대대장 순아아친이 화장실에 가다가 보고 사무실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와 왕수방을 침대에서 끌어내려 신을 벗어들어 마구 때렸다.

커우샤오선(寇小坤)은 랴오양 파룬궁수련생이다. 그녀는 나의 앞에 앉아 일을 한다. 어느 날 경찰 훠연(霍豔)이 와서 그를 끌고 나갔다가 반시간 만에 데려왔는데 얼굴, 입, 코, 목에 모두 물집이 생겼고 멍이 들었으며 옷은 젖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우리에게 일절 말을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귀머거리처럼 있어야 했으며, 그녀가 반시간 끌려가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묻지 못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날 경찰이 그의 침대를 수색할 때 ‘선을 알기 쉽게 해석’이라는 경문을 발견했다. 경찰 훠연은 그녀를 대대장 사무실로 데려가 대대장 순아이친과 4명의 소대장들이 전기봉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가, 대대장 손아이친이 ‘선을 알기 쉽게 해석’ 의 경문을 잡고 마구 때리기 시작하자마자 소대장들도 함께 집단적인 구타를 가했으며, 4명의 소대장이 그녀의 머리를 책상에 누르고 대대장 순아이친이 ‘선을 알기 쉽게 해설’ 경문을 찢어 컵에 담갔다가 소대장 한명에게 그녀의 입에 쑤셔 넣게 했다. 순아이친 대대장은 다시 전기봉으로 그녀의 입에 충격을 주며 미친 듯이 경문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커어샤오선은 ‘선을 알기 쉽게 해설’을 좀 보라고 했지만 순아이친은 근본적으로 듣지 않고, 다만 경문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묻기만 하다가, 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전기봉을 입속에 밀어 넣어 충격을 주었다. 이때 4명의 소대장들도 함께 강압했다. 그녀는 나에게 말하기를, 당시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고 했다.

中共酷刑示意图:多根电棒电击
중공혹형 설명도 : 여러 전기봉으로 충격
한 번은 샤오탄치(小譚琪)가 경문을 외울 때 경찰 장웨이(張威)에 발각되어 사무실에 불러놓고 마구 구타했다. 샤오탄치에게 혹독한 구타를 가한 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장웨이는 계속해서 일하는 바늘을 꺼내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는 이제 18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어린 처녀다. 경찰은 어린 소녀의 가슴을 바늘로 찔렀으니 상상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소녀는 화장실에 갈 때 옷을 올려 우리에게 바늘에 찔린 가슴을 보여 주었다. 가슴에는 붉은 색의 바늘구멍과 피 흘린 자국이 많이 나 있었다.

랴오양 파룬궁수련생 뤼옌닝(呂豔英)은 테링 파룬궁수련생이 이곳에 오기 전에 교양원에서 전기봉으로 이미 입에 충격을 가했다. 우리가 그녀를 볼 때 그녀의 얼굴은 전기충격을 받은 흔적이 있고 입술에서 아직 누런 황색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몇 개월간 랴오양 교양원은 ‘전향률’이 없어 마싼자에 가서 배워왔다. 경찰은 마싼자에서 돌아온 후 우리에게 바꿔가며 대법과 대법사부님을 모욕하는 백서와 비디오를 보게 했다. 내가 읽지 않자, 악경 훠연(霍豔)은 나를 대장 사무실에 데려가 혹독하게 구타했다. 훼잉, 장연, 그리고 아직 18세가 되지 않은 샤오탄치는 읽지 않아 내가 오기 전에 이미 독방에 가두었다. 독방은 임시로 우리를 가두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3사람밖에 들어갔을 수 없다. 거기에 4사람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사악한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독방에서는 두 손으로 무릎을 붙잡고 매일 앉아있게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당시는 여름이라 그들의 엉덩이는 앉아서 물러 터져 흘러내린 피로 속옷마저 엉덩이에 붙었다. 화장실에 한 번 가면 한 번 피딱지를 떼어야 했다. 배불리 먹지 못하게 하며 겨우 작은 한 덩이 옥수수떡과 옥수수 죽을 준다. 독방에는 매일 대법을 비방하는 녹음을 그들이 듣게 했는데, 그들이 받은 이 일체의 박해는 우리는 당시에 볼 수 있었다. 독방은 우리가 사는 감방 건물에 있는데 한 칸의 방을 만들었다. 독방은 합판으로 격리됐으며 3사람을 가둘 수 있다. 매우 비좁은 독방에 족쇄와 족발이 있다. 우리가 화장실에 갈 때는 언제나 그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을 이렇게 가두고 ‘전향’과 3서를 쓰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게 한다. 후에 장연은 허기가 져 앉아있지 못해서 경찰이 그녀를 대자 형으로 매달아 놓았다.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처럼. 그녀는 이미 머리도 가누지 못했다. 나는 이 참상을 목격하고 흐르는 눈물을 금지 못했으며 맘속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中共酷刑示意图:吊铐
중공혹형 설명도 : 팔을 뒤로 묶어 매달은 혹형

다음은 테링의 한 파룬궁수련생이 랴오양 노동교양소에 목격하고 직접 박해당한 내용이다.

‘내가 테링교양원, 랴오양노동교양소, 심양감옥에서 받은 잔혹한 박해.’

2000년 9월 나는 왕둥(王東), 왕진핑(王金萍), 뤠연잉(呂豔英) 등과 함께 랴오양교양원에서 완고한 수련생으로 지목받아 비밀리에 마싼자 노동교양소로 이송돼 혹심한 박해를 당했다.

4. 죄악의 마싼자

마싼자 교양원은 1999년 마약범죄자들을 전문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설립한 일종의 계독소(戒毒所)였다. 1년 전 지었으나 계속 사용하지 않다가, 1999년 청원하러 갔다 납치되어 불법노동교양처분을 받은 랴오양 파룬궁수련생이 많자, 그들을 이 교양원에 수감했으며, 이로부터 이곳이 파룬궁수련생을 전문적으로 박해하며 전향시키는 기지로 된 것인데 ‘수용소(集中營)라고도 한다. 이곳의 경찰 역시 파룬궁을 전문적으로 박해하려는 목적으로 편성된 집단이다. 대부분 여자 감옥에서 전문적으로 형사범을 관리하던 여자 교도관 중에서 선발했는데 소장 쑤징(蘇境)은 원래 여자 감옥의 소장이었다.

마싼자 여자감옥 옆에 바로 남자감옥이 있다. 남자감옥 6대대는 바로 마싼자 정문 왼쪽 배후에 위치하고 있다. 여자 수감자가 있는 곳과는 겨우 20여 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아주 근거리에 일자로 지어진 단층건물이다. 남자감옥 6대대는 여자감옥 사람들이 매일 식당을 오고갈 때는 반드시 그곳을 거쳐 가야하는 위치에 있다. 남자감옥 수감자들이 체조를 하거나 노역을 위해 밖으로 나가며 구령을 붙이고 행진가를 부를 때도, 여자 감옥에서 다 보고 들을 수 있다. 때로는 남자 죄수가 여자죄수를 도와 무거운 밥통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해 여자감옥 소장 쑤징(蘇境)은 남자감옥 대대장과 익숙하여 자주 그들은 운동장에서 만나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해 남자 감옥 각 대대에 불법으로 많은 남자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했다.

2009년 9월 나와 왕둥, 왕진핑, 뤠연잉 4명은 라오양 교양원에 의해 완고한 수련생이란 지목을 받은 우리는 비밀리에 이곳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함께 온 랴오양의 왕둥과 왕진핑은 어디로 데려갔는지 모르나, 나와 뤠연잉은 2층으로 끌려갔다. 2층의 대대장의 이름은 왕나이민(王乃民)으로 40세다(이 사람은 후에 파룬궁박해 공로로 정위로 진급함). 4대대장은 짱슈룽(張秀榮.69년 출생. 후에 파룬궁박해 공로로 대대장으로 진급)이었다.

짱슈룽 대대장은 나를 큰 철문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들어가 쓰팡(四防)에게 나의 짐과 몸을 수색하게 한 다음, 다시 사무실에 데려가 간단히 개인적인 신상정황을 알아본 후, 두 명의 바오자(包夾. 죄수로 교도관협조자)에게 지시하여 대대의 감방으로 데려가게 했다. 감방에는 이미 30여 명이 있었으며 2인 1침대를 배정했다. 짱슈룽 대대장은 나에게, 마싼자에서 온 파룬궁수련생들은 반드시 ‘전향’해야 한다. 이곳 노동교양소는 독재기관이라 ‘전향률’이 100분의 100이라고 했다.

나는 그 후 며칠간을 매일 아침 5시만 되면 바오자에 의해 화장실 후문으로 끌려가 강제로 배신자의 유세를 2시간 넘게 들어야 했다. 그들은 교대로 쉴 새 없이 말했다. 그들은 왜, 입에 거품이 나도록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세뇌당한 후 자신들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한다. 여기에서 그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왜, 그들은 다 똑 같은 말을 하는가? 다 진선인(眞善忍)과 상반되는 사람으로 변했다. 한 달 후 나는 그 답을 알았다.

보름 정도 세뇌를 당했으나 나는 ‘전향’하지 않았다. 그러자 짱슈룽 대대장은 그동안 위선적이었던 가면을 벗어버리고 흉악한 면목을 드러냈다. 그녀는 나를 사무실에 불러놓고 쓰팡에게 각목을 가져오게 했다. 쓰팡은 익숙하게 그 각목을 나의 넓적다리위에 올려놓았다. 짱슈룽은 두 말 없이 주먹을 휘둘러 나의 머리를 쳤다. 명치끝을 걷어차고, 각목을 위에 놓고 절반 정도 쭈그리고 앉게 하고 나에게 말하라고 했다. 만약 각목이 떨어지면 전기봉으로 나에게 충격을 가했다. 나는 이처럼 갑자기 닥쳐오는 변고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가차 없이 때리며 말한다. “당신만 시간이 기네. 우리 대대는 백분의 백의 ‘전향률’이다. 당신만 3서를 쓰지 않았어. 우리 대대에 너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잖아. 오늘은 당신이 쓰고 싶지 않아도 써야 한다. 가짜로 쓴다 해도 써야 한다.” 나는, “무엇이 3서인지 모릅니다. 당신은 경찰로서 마음대로 사람을 때리는 것은 법집행자가 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그녀는 “누가 당신을 때리는 것을 보았니? 당신은 증인을 찾아와.”라고 말했다. 그래도 내가 말을 듣지 않자, 그녀는 허둥거리며 나를 철문 밖의 빈방으로 끌고 데려갔다. 그곳에 사람은 없었는데 전문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혹형을 가하는 장소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책상 위의 전기봉을 들고 나에게 다가와 충격을 가하며 말했다.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벌주를 마시겠다?(別敬酒不吃吃罰酒)”

酷刑演示:电棍电击
혹형전시: 전기봉 충격
전기봉은 찍찍거리며 눈부신 파란빛을 내며 나의 얼굴, 목, 손, 발에 충격을 가했다. 나는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얼굴은 경련을 일으키고 이미 서 있을 수가 없어서 허약한 자세로 넘어졌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눈길을 들어 그 생명을 바라보며 사부님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당신은 원만(圓滿)을 이룰 수 없다.”[1] 그것은 도대체 어떤 감각인가? 나는 원만을 생각을 틈도 없이 나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그녀는 대법제자들을 박해하는데 그녀는 장래에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고통스러운 감각이 사라지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에너지가 전신을 맴돌았다. 창밖에 갑자기 사나운 바람이 일더니 천둥소리가 크게 나고 하늘도 검푸르게 변하면서 귀를 진동하는 천둥소리가 창밖에서 쩡쩡 소리를 냈다. 두려움과 고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정중하게 그녀에게, 나의 생명의 마지막 일념까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전기봉을 버리고 나갔다.

쓰방은 나를 감방으로 끌고 갔다. 내가 깨어난 후 나의 손, 등, 얼굴과 목에 화상을 입어 피부가 타버린 흔적과 수포를 보았다. 몸은 비쩍 말랐고 신체는 극히 허약했다. 나는 조용히 거기에 누워 사부님의 가르침과 용량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와 무한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충만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내가 엄청나게 큰 고통을 감당하고 있을 때 나에게 어떻게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내 옆에 있는 아주머니는 나의 훼손된 몸을 보고 눈물을 머금으며 나에게 권했다.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으면 버텨라. 여기에 몇몇 사람이나 버틸 수 있겠어. 정말로 버틸 수 없으면 쓰라.” 나는 나이가 든 그 파룬궁수련생을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마싼자에서 전향하고 말았는가.’ 나는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마싼자의 경찰은 ‘전향’한 사람에게도 진정으로 ‘전향’된 것인지에 대해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핍박을 가해서 그들로 하여금 사부님을 모욕하고 대법을 모욕하는 글을 쓰게 하고, 그들을 협박해서 크고 작은 회의에서는 대법에 대한 좋지 않는 말을 하게 했다. 그리고 또 핍박을 가해 지방의 공안국, 파출소 그리고 가족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은 틀렸으며 후회한다는 등등의 편지를 쓰게 했다.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여 대법에서 이익을 보아 온몸의 병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진 수련생이 본심에 어긋난 그런 것을 쓸 때 맘속으로 아주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았다. 시비선악이 전도되고 거짓말로 기만하는데, 나는 어찌 그런 사람으로 될 수 있는가?

비록 불법적으로 이곳에 감금돼 있지만, 사람으로서 본심에 어긋나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내가 이곳에서 박해를 감당하지 못하여 본심에 어긋나는 ‘전향서’를 쓴다면 그래서 그걸 마싼자가 고향과 지방 공안국에 발송한다면 그것은 폭탄처럼 폭발하여 고향과 가족에게로 향할 것이다. 그들은 나의 거짓말로 진선인(眞善忍) 이념의 대립 면에 서게 되고, 나의 죄는 더욱 크게 되어 이 일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죄는 더욱 클 것이다. 전 세계 사람에게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요해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생명으로 세뇌에서 견지하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겠다.

내가 ‘전향’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자 장슈룽 대장은 매일 나에게 잠을 못 자게 했다. 한 무리 바오자가 나를 공격하고 마지막에는 나를 대대장 왕나이닌에게 바쳤다. 왕나이닌은 사람을 때리고 전기 충격을 가할 때 두 번째 사람에게 보이게 하지 않는다. 방에 들어서자 그녀는 강제로 나에게 쪼그려 앉게 하고 2개의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했다. 나에게 왜, 삼서를 쓰지 않느냐고 묻고, 이곳 노동교양소는 관제기관이라고 말했다. 나는 “파룬따파를 배우는 것은 자유이며 후회도 하지 않는데 왜, 회개서를 쓰야 하는가? ‘전법륜(轉法輪)’은 나에게 나쁜 일을 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당신은 왜, 나에게 그를 비판하는 글을 쓰라고 하며, 그의 무엇을 비판하라는 것입니까? 당신은 가족이 당신에게 모욕죄로 고발할까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는 두려워합니다.”, “나는 억울하게 ‘공공질서를 교란한다’는 죄명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신 교양원은 왜, 나에게 파룬궁을 담론합니까?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보장하라고 합니까? 나는 왜, 다른 사란에게 보장해야 합니까? 우리 여기는 인권이 있습니까?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것은 법집행자가 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역시 상해죄입니다.” 그는 “당신은 어디에 가서 고소하고 싶으면 소고하라. 당신은 아직도 인권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녀에게 10분간 전기충격을 당하고 다시 감방으로 끌려 돌아왔다. 나의 몸은 매일 그들의 고문 박해로 아주 허약하게 됐다. 그녀도 내가 그녀의 전기충격에 죽을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마싼자는 ‘전향’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은 한 명도 놓아주지 않는다. 장슈룽은 급한 마음에 마지막에 한 무리 졸개들을 모아놓고 모종의 회의를 했다. 그들은 바오자를 4인 1조로 팀을 만들어 한 팀이 2시간마다 교대하도록 했다. 장슈룽은 명령하기를, “전향하지 않는 사람은 돌아가 잘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것들은 각목을 가진 자, 대형 드라이버를 가진 자, 예리한 침을 가진 자 등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친위안칭(秦元清), 웨이훙웨이(魏宏偉) 두 사람은 사오한 사람이다. 그들은 올라오자마자 나를 한바탕 구타하고, 다른 방의 졸개 5, 6명이 합세하여 그들을 도와 구타했다. 온 복도에서 모두 두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입으로 끊임없이 대법을 욕하고 사부님을 욕하며 더러운 말을 했다. 그리고 나를 핍박하며 ’전향서‘를 쓰라고 했다.

밤이 깊어지자 그들은 나를 때리느라 힘이 들면 잠시 멈추고 나의 팔을 곧게 펴게 하고 절반 쪼그리고 서 있게 하고는, 옆에 한 사람은 종이와 볼펜을 들고 ‘삼서’를 쓰라고 핍박했다. 웨이훙웨이는 오른쪽 손톱으로 나의 손등을 꼬집어 들어 올리고 그는 왼손으로 예리한 바늘을 내 손 밑에 대고 꼬집은 손을 놓는다. 그럼 내손은 여지없이 바늘에 찔린다. 나의 손등은 그녀에게 꼬집혀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고 손목은 바늘에 찔려 피투성이가 됐다. 내가 손을 치우면 그들은 각목으로 때리고 드라이버로 찔렀다. 웨이후우에이는 팔을 한바탕 휘둘러 나의 얼굴을 힘껏 때렸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그녀는 밤중이 되면 끊임없이 이상한 말을 했는데, “당신은 알고 있는가? 나는 이미 당신을 1,500년을 기다렸다.” 그녀의 그런 말은 나를 심한 고통에서 안정되게 했다. 나는 부어오른 눈을 힘겹게 뜨고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들이 아무리 찌르고 때려도 더는 바늘, 주먹, 각목, 드라이버에 의한 고통을 느낄 수 없었다. 마싼자에서 세뇌되어 자행하는 가련하고 두려운 그들의 연출을 보고 나의 마음은 피가 흘렀다. 그들을 위한 눈물이 멈출 수 없이 흘렀다. 나는 정말로 아주 슬펐다.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불렀다. “사부님, 나는 그들에게 원한도 미움도 없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심하게 맞으며 ‘전향’을 강요받을 때, 쑤징, 왕나이민, 장슈룽은 화장실로 가서 심사했다. 장쑤와 왕나이민은 크고 작은 회의에서 말하기를 “나라에서 파룬궁에 대한 전쟁은 끝이 없는 전쟁이며 투자한 경비는 한 나라의 전쟁과 같다”고 했다.

그때 전국 각 지역의 교양원 관리자들이 마싼자교양소를 견학 또는 시찰을 했는데, 그날 마싼자의 ‘전향’기술과 경험을 배우려고 성(省)급 지도자도 왔다. 장슈룽은 바오자를 시켜 나를 숨기라고 했다.

시찰이 끝난 후 장슈룽은 몇몇 쓰팡과 대소실장(室長)에게 나를 사무실로 끌고 오라고 했다. 나를 핍박하며 전향서를 쓰라고 했다. 내가 쓰지 않자, 그들은 다른 악독한 경찰대장과 나를 모욕하고 픽박하며 전향하고 삼서를 쓰라고 했다. 그래도 내가 쓰지 않자, 장슈룽은 화가 나서 가위를 가져와 나의 머리통을 바닥에 누르고 머리카락을 마구 잘랐다. 잘 잘라지지 않자 다른 쓰팡에 가위를 주며 자르게 했다. 그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머리를 잘랐는데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마구잡이 모습으로 잘라놓았다. 장슈룽은 미친 듯이 웃으며 이것이야 말로 정신병자가 아닌가? 후에 한 무리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말하기를 “파룬궁을 수련해서 그녀는 얼굴은 이렇게 나쁘고 정신병자가 되려고 한다.” 고 했다. 그때 마싼자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많았다. 내가 ‘전향’되지 않자 그들은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아 사람을 놀리게 했다. 말하기를, 내가 수련을 하여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그해 강제 ‘전향’한 사람은 오전에 세뇌학습을 하고, 오후에는 노역에 투입됐다. 그러나 나는 거의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고 매일 끌려가 고문 박해를 당했다. 매일 정신은 흐리멍덩한 상태이고 몸은 극히 쇠약해져 사람의 모양이 아니었다. 나는 어린 아들이 생각났다. 만약 내가 그들에게 고문박해로 죽으면 가련한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될까?

친정엄마의 전화가 왔다. 어느 날 장슈룽은 나를 사무실로 불러 전화를 받게 했다. 이것은 내가 불법감금 된 지 1년 만에 가족과의 통화였다. 엄마는 전화에서 정신이 붕괴되는 소리로, 빨리 ‘후회서’를 쓰고 집에 돌아오라고 했다. 아빠는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데 외지의 친척도 모두 왔다면서 나에게 빨리 와서 아빠의 마지막 운명을 보라고 했다. 엄마는 대성통곡하며 어렵게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원장이 허가하지 않고 있으며 나의 행방도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생활은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전화 저쪽에서 엄마는 계속 흐느껴 울고 있었다. 장슈룽은 이때의 기회를 보고 책상 위의 펜과 종이를 가져와 빨리 회개서를 쓰라고 했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회개서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장슈룽은 전 대대를 집합시켜 회의를 열고 파룬궁은 육친의 정도 없으며, 집도 상관하지 않고, 엄마가 그렇게 울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박해로 가정에 변고가 일어났는데, 나는 그녀의 말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공개적으로 큰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누가 사교인가? 누가 우리를 여기에 감금시켰는가? 누가 우리에게 집에 가지 못하게 하는가? 부친의 생사도 모르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나를 여기에 감금시켜 우리의 육친의 정을 끊으려고 하는가, 왜, 매일 정신적으로 우리를 통제하려 하는가. 파룬궁은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배우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고, 누가 강제로 배우라고 하지 않았다” 장슈룽은 화가 나서 얼굴색이 청색으로 변했다. 쓰팡을 불러 나를 대대장 사무실에 끌어가라고 했다. 왕나이민과 추핑 앞에서 나의 배를 몇 번 힘껏 발길로 차고 나의 얼굴과 머리를 때렸다. 당시 나는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잘 보이지 않았으며 속이 울렁거리면서 윗배에 극렬한 통증이 와서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대대장 완나민은 와서 보고 내가 꾀병을 부린다고 하다가, 나의 얼굴색이 변하자 장슈룽에게 비로소 그만 멈추라고 했다. 나는 제왕절개로 애를 출산했기 때문에 그 상처가 장슈룽의 발길질에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생리가 오지 않는 내가 그녀에게 맞아 피가 흘러 나왔다.

2000년 10월 이후 금방 들어 온 자오쑤환(趙素環)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더욱 잔혹하게 박해 받았다. 3대대의 추구이룽(鄒桂榮), 쑤쥐전(蘇菊珍) 등은 몸에 상처가 없는 곳이 없다. 그때 밤중이면 자주 쑤쥐전이 전기충격을 받는 비참하고 처절한 소리가 들렸다. 추구이룽은 자주 데려가 돌아다니며 모욕했다. 조수환이 마싼자가 그녀를 박해한 사실을 기록한 것은 ‘마싼자 그림 배후의 웃음-대법제자가 선혈로 쓴 사실의 진상’을 보면 된다.

2001년 3월 16일 무슨 일로 마싼자는 많은 운동기구를 구입해 벽에 걸어 놓았고, 전 교도소가 대청소를 하고, 수공업 일은 하던 물건들을 전부 지하 창고에 가져다 넣고, 모든 박해활동을 중지시켰다. 아침 8시 장슈룽은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여러 팀으로 나누어 영화를 보여 주겠다고 했다. 영화의 제목은 ‘선택’이고, 우리 방의 32명 중 16명을 불러냈다. 그리고 큰 버스에 태웠다. 이번 행동은 전 교양원이 모두 통일적이었다. 다른 대대도 마찬가지로 버스에 오른 사람은 ‘전향’ 되지 않는 파룬궁수련생과 바오자와 그들의 직원들이었다. 마싼자에서만 전문 소관부서(少管所)에 3대의 버스가 왔다. 우리는 이렇게 마싼자 전문 소관부서의 식당에 감금됐는데, 영화관이 아니었다. 밤이 돼서야 마싼자에 돌아왔다. 후에 알았는데 이번에 마싼자에 외국기자가 왔었다는 것을 알았다.

2000년 10월 어느 날 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CCTV ‘초점탐방‘에서 기자가 마싼자 여자2대대를 인터뷰할 때 나를 취재했다. 당시 왜, 나를 화장실 뒷문에서 갑자기 방으로 불러 들였는지 모른다. 후에 알았는데 CCTV ‘초점탐방기자’ 리위창(李玉強-바로 천안문거짓분신자살사건에서 류쓰잉(劉思影)을 취재한 그 기자임)이,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을 취재하겠다고 했다. 그녀 뒤에 젊은 청년이 비디오 촬영기를 메고 나를 향하여 찍었다. 리위창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손에 마이크를 잡고 내 앞에 와서 물었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전향하지 않는 파룬궁 수련생입니까?” 나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또 물었다. “당신은 신불의 존재를 믿습니까?” 나는 그녀에게 반문하며 물었다. “당신은 공기의 존재를 믿습니까? 당신이 전화가 전선이 없어도 통화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는 촬영기를 지니고 신속히 몸을 돌려 떠나갔다.

아래는 추구이룽(鄒桂榮)이 기록한 그녀가 본 리위창의 한 장면이다, 밍후이왕의 ‘내가 마싼자교양원에서 경험’에서 발췌했다.

“10월 중순에 CCTV ‘초점탐방’기자가 마싼자 여자 2대대를 취재할 때 우리는 3층의 3대대와 1대대의 대법수련생은 재를 부으러 가게 했다. 우리가 온 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돌아올 때 CCTV 기자가 우리 방에서 그런 배신자를 취재하고 있었다. 우리 2대대의 확고한 8명의 대법수련생은 샤워실과 화장실에 감금하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설령 온 몸의 재를 씻어버리고 옷을 깨끗이 빠는 일이 끝났어도 우리를 나오지 못하게 배신자에게 우리를 지켜보게 하면서 말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은 추핑(邱萍)의 명령이었다. 이번 취재는 바로 CCTV ‘초점탐방’이, 추핑 교도관이 어떻게 수련생을 관심 있게 보살피고 수련생에게 옷을 입혀주는지를 연극한 것이다. 취핑은, 왜 나의 남편이 나에게 옷을 가져다 줄 때 단번에 거절하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추핑과 마싼자교양원 여자 교도원이 연극하여 사람을 속이는 속임수는 잠시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오래는 못 속인다. 어제 추핑은 거짓으로 전국 백성에게 마싼자 교양원은 수련생을 때린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가 바로 직접 배신자를 추궁해 직접 수련생을 때리게 한 잔혹한 교도원이다. 그녀는 아직 계속 세인을 기만하고 있고 사악이 극에 달했다.”

리위창는 마싼자 2001년 1월 17일 여자 감옥 ‘파룬궁정책에 대한 약속대회’에 참가했다. 외부의 이른바 ‘전향성과’를 위해 ‘마싼자’에서 5번 ‘정책약속대회’를 진행했다. 당시 랴오닝성 성위서기 먼스전(聞世震) 등 성급 기관원과 여러 매체가 그 회의에 참석했다. 그 때 회의에서 마싼자 ‘노동교양소’를 ‘랴오닝성 마싼자사상교육학교’로 명칭을 바꿨는데, 패쪽에 먼스전의 이름이 있다. 먼스전은 그 대회의 발언에서, 마싼자교도원의 전향 ‘성적’을 인정했다. 대회에 랴오닝과 각 성의 방속국이 참가했다. ‘천안문거짓분신자살사건’을 찍은 CCTV 기자 리위창이 그중에 있다. 당초 많은 비디오 렌즈가 그 대회를 향해 녹화했으며, 몇백 명이 참가했다. 그때 3대대 왕춘잉(王春英)은 전향한 수련생을 대표해 발언했다. 그녀는 사악한 마싼자에서 ‘전향’해 그들의 졸개와 공범자로 됐다(들리는 말에 집에 돌아가 그녀는 또 청성해졌다고 한다). 그녀가 마싼자에서 “좋은 교육이며, 교도원이 엄마처럼 대해주며, 여기는 박해가 없다.”고 말할 때 파룬생수련생 추구이룽은 갑자기 일어나 그녀를 질책했다. “당신은 거짓말을 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추구이룽은 한 무리 경찰과 졸개들에게 에워싸여 땅에 짓눌렸다. 그때 대회에 앉아 있던 먼스전과 마싼자원장 10여 명의 지도급 인사들도 함께 일어났다. 추구이룽이 끌려갔다, “내가 마싼자교양원에서 경험”이 문장에서 그녀가 끌려간 후의 경위를 기록했다.

당시 비디오가 모두 본부석을 향해 녹화했다. 갑작스러운 돌출사건에 본부석 사람들은 의외로 난처한 입장이 되어 일어났던 것이다. 카메라기사(錄像師)와 기자들이 잠시 정신을 차리고 10여 개 매체 기자들이 일제히 촬영방향을 바꾸어 급히 달려가서 추구이룽이 제압되며 머리채가 잡힌 채 남녀경찰관들에게 압송돼 가는 장면을 녹화했다. 그때 엄중한 박해를 당하는 우리 파룬궁 수련생은 신변에 바오자가 붙잡고 있었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고 마싼자 악경들은 모두 질겁해서 놀라고, 노기등등하여 매우 격앙됐다. 갑자기 발생한 돌발사건으로 난처한 국면에 처하게 되어 안면이 별로 없는 한 상급자가 본부석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했다. 단상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방금 파룬궁수련생은 ‘완고한 분자’이니 그에게 영향을 받지 말아요.” 그리고 대회는 중도에서 간략하게 종결됐다.

그해 몇몇 방송국의 비디오가 이 장면을 녹화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어떤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마음속에 정의를 품은 카메라기자가, 우주의 진리를 견지하다가 중공에게 학살당한 추구이룽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도록, 그해 그 대회에서 촬영한 녹화내용을 보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5. 마싼자는 비밀리에 나를 검은 남자감옥에 압송해 갔다

2001년 4월 19일 나는 마싼자에서 7개월간 마귀와 접촉하는 어려운 세월을 마쳤으나, 그날을 나는 일생 동안 잊지 않을 것이다.

그날 오전 장슈룽은 내 이름을 호명하며 소지품을 챙기라고 했다. 방안의 수용된 전체 30여 명 중에서 유독 나만 짐을 싸서 나오라고 하는지를 몰랐다. 의문의 마음이 일고 있는데 앞의 감방 자오쑤환도 불러냈다. 우리 둘이 짐을 싼 후 정원으로 데려갔다. 정원에는 대형버스가 세워져있고 많은 남자 경찰관들이 있었다. 이때 각 대대의 대장이 나왔다. 악경은, 그들이 온갖 혹형으로 박해를 가하며 ‘전향’을 시키려했으나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은 미전향 파룬궁수련생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렇게 끌려나온 수련생은 모두 10명이었다. 추구이룽은 마지막에 데리고 나왔다. 그때 그녀를 단독으로 감금했었기 때문이다. 어느 대장이 말했다. “이번에 당신들에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 너희들이 잘 수련해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추구이룽이 물었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갑니까?”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떠나기 전 나는, 우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박해한 두 사람의 대장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대장 왕나이민 앞에 다가가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당신은 파룬궁의 이 일에서 당신의 일과 관계를 바로 잡아 주세요. 파룬궁수련생을 선하게 대해 주세요.” 그녀의 눈에는 악의가 없고 어쩔 수 없이 쓴 웃음을 지었다. 나는 또 장슈룽을 보자 그녀가 나를 고문 박해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적다. 만약 이런 박해가 없었다면 우리의 연령대로 당연히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가련한 느낌이 떠올라 여윈 두 팔을 벌리고 그녀를 포옹했다. 나는 작은 소리로 그녀에게 “당신은 반드시 총명해져야 합니다. 이 일은 마지막에 청산될 것입니다. 당신은 참여하지 마십시오!” 그녀도 당황스럽게 급히 내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병이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당신은 병이 있습니다. 당신은 병이 있습니다.” 당시 나는 급히 부탁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완전히 그 말은 한 치의 악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후에 알게 됐는데 그녀는 내가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았고 어떤 일에 직면하게 될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우리 10사람 (추구이룽, 자오쑤환, 런둥메이(任冬梅), 저우옌보(周豔波), 왕리(王麗), 왕민(王敏), 왕커이(王克一), 성이 취인 아주머니 등) 남자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지고 대형버스에 승차했다. 버스 안에는 몇 개의 큰 전기봉이 놓여있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남자가 수용되어 있는 남자대대로 몰고 갔다. 남자 파룬궁수련생도 몇 명이 이 버스에 압송돼 왔다. 그중 남자 파룬궁수련생 이름은 펑겅(彭庚. 이미 중공사당에 박해해 사망)이고 또 한 사람은 이름을 모른다.

버스가 멈추자 남자 죄수 교양원에 도착했다. 그때 나는 그곳이 뭘 하는 곳인지를 몰랐다. 후에 밍후이왕을 통해서 알았는데 장시(張士) 교양원이다. 거기에는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검은 소굴의 감옥이 있다. 대외로는 장시교양원이다.

정원에 도착한 후 우리를 한 줄로 서게 했고, 우리 앞에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역시 우리를 대면해서 한 줄로 섰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다리가 굵은 두 남자 경찰중의 한 사람이 손에 명단을 들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상부에서 우리 ‘전향’하지 않는 수련생에게 내린 규정을 발표했다.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은 때려 죽여도 마땅하고, 때려서 죽으면 자살로 취급한다.”고 했다. 그리고 더 많은 죽이는 말을 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것은 장쩌민의 명령이라고 했다. 다른 남자 경찰은 전기봉을 들고 두 남자 죄수를 불러 우리를 녹화하게 했다.

펑겅과 다른 남자 파룬궁수련생은 어디론가 데려가고 우리 10여 명의 여자수련생들만 남자 교도소의 작은 백색 건물로 데려갔다. 우리 모두에게 혈압을 체크한 후, 그 중 성이 취 씨인 파룬궁수련생을 데려갔다. 그곳에 우리 9명이 남았다. 백색건물 입구에 경비실이 있고 경비실의 옆에 철문이 있었다. 철문 안에는 한 층 한 층 두꺼운 방음 철문이 있었다.

우리 9명은 모두 각자 9개 방에 분산됐다. 나는 1번방에 배치됐다. 방에는 한 개의 이인용 침대가 있었고, 목재로 된 옷걸이가 있었다. 그런데 4명의 남자가 이미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화장실에 갈 때 다른 큰 방에 30여 명이나 되는 나이가 각기 다른 남자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곳이 무슨 곳인지 몰라 두려웠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왜 여기에 이렇게 많은 남자들이 방바닥에서 자고 있는가. 밤이 되어서야 나는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밤 10시쯤 나는 줄곧 내 방에 있는 중년남자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왜 나의 방에서 떠나지 않습니까? 나는 자려고 합니다. 그중 한 남자가 말했다. “잠잔다고? 당신이 잠을 자려 한다고? 하하. 여기서는 ‘전향’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자게 합니다. 한 여자가 여기에서 18일간 ‘수련’했는데 잠을 못 잤습니다. 마지막에 정신이상자가 됐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다른 사람과 교대하고 자러 갔다. 또 4, 5명이 들어왔다. 얼마 후 한 무리가 들어왔다. 그들은 복도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문을 두드렸다. 끊임없이 듣기 거북한 말을 했다. 내 방에 문을 차고 들어왔다. 손에 비디오를 들고 찍었다. 갑자기 복도에서 추구이룽의 처량한 외침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끊임없이 나의 이름을 불렀다. “리핑, 리핑, 마싼자에서 우리를 승냥이 굴에서 호랑이굴로 넣었습니다. 이 정부는 다 사람을 희롱합니다.”

그녀의 처량한 소리를 듣고 나는 필사적으로 뛰쳐나갔다. 추구이룽도 필사적으로 복도로 뛰쳐나왔다. 나는 추이구이룽을 단단히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우리를 지켜보던 남자 죄수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때렸으며, 나는 필사적으로 여윈 추구이룽을 보호했다. 나의 오른쪽 눈꼴이 맞아서 퉁퉁 부었다. 입은 옷은 전부 찢어지고 바지는 발에 결려 있고 모든 옷은 아래에 있었으며 거의 알몸이 되었다. 나와 추구이룽은 방으로 압송되어 갔다. 그들 4, 5명 남자는 우리를 침대에 던지고 어깨를 누르는 사람, 다리를 누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중 30여 세 되는 남자가 나의 몸에 걸터앉아 때렸다. 나는 매질을 견디다 못해 정신을 잃고 끝내 침대에 쓰러졌다.

내가 혼미상태에서 깨어났을때 내 옆에 세 남자가 누어있었다. 오른쪽에 한 사람, 왼쪽에 두 사람이었다. 오른쪽 나와 가까이 있는 남자는 끊임없이 나의 몸을 만지고 있었는데 그의 나이는 아직 20세도 되지 않는듯 하였다. 그 뒤의 남자의 손도 한가하지 않았고 왼쪽에 있는 남자의 손도 가만있지 않고 나의 얼굴을 만졌다. 그리고 다리로 나의 아래부위를 밀었다. 내 머리 위의 방바닥에도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도 역시 나의 머리와 얼굴을 만지며 이상한 말을 했다. 나의 양다리 사이에 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은 녹화를 하고 있었으며, 한 사람은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에서는 더러운 말이 쏟아져 나왔다. 발밑에는 몇 사람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의 발을 마구 치근댔다. 끊임없이 더러운 말을 하고 미친 듯이 웃고 거듭해서 말했다. “당신 죽은 척 하지 마세요. 죽어도 ‘전향’해야 해요.”

나는 눈앞의 이 장면을 믿을 수가 없어서 한 목의 피가 목구멍에서 올라왔다. 나의 사유는 또 한 번 정지됐다. 침대위, 침대아래, 침대좌측, 침대우측 일체 일체의 소란은 마치 나를 멀리 떠나 있는듯하고 아득했다. 나의 사유는 학교에 멈췄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선생님은 우리에게, 나라를 사랑하고 당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사회주의가 좋다고 했으며 돈을 한 푼이라도 줍게 되면 경찰 아저씨에게 바치라고 했다. 이 모든 사유는 순간에 나의 머릿속에 나타났고 또 순식간에 붕괴됐다. 머릿속에 사당의 당기(黨旗)가 어두운 공간에서 떠돌고 한 무리 유령이 낫과 도끼아래에서 미친 듯이 웃고 공중에서 매달려 흔들린다. 이 장면은 절대 형용한 것이 아니라 그때 머릿속에서 진실하게 본 것이다. 그렇게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정확한’ 당은 본래 이렇게 깡패 짓을 하는구나.

내 귀에는 떠들고 시끄러움 중에서 추구이룽의 처량한 소리가 들렸다. “리핑, 리핑!” 나는 마치 꿈속에 있는 듯 했다. 아니다, 꿈이 아니다. 나는 꿈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이 처량하게 부르는 소리는 나의 사유를 다시 두려운 이 인간지옥으로 돌아오게 했다. 나는 어떤 시끄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떤 물체도 보이지 않고, 필사적으로 일어나 익숙한 그 소리를 찾았다. 그때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마귀가 옷걸이를 던져 순식간에 나의 머리에서 한줄기 피가 얼굴로 흘러내렸다. 나는 그래도 힘껏 일어났다. 나의 의식에 더는 생명의 개념이 없었다. 어떤 생명도 나를 가로막지 못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때 누가 내 몸을 혹독하게 마구 때렸다. 나는 거듭 추구이룽의 이름을 불렀다. 추이구이룽은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와 나를 안고 사악한 철문을 향해 뛰어갔다.

우리 둘은 필사적으로 철문을 두드렸다. 끝내 철문이 열렸다. 우리 둘은 이미 온몸에 상처투성이다. 경찰을 만나게 되자 우리는 이미 생사를 뒤 끝에 놓고 그에게 질문했다. “여기가 중국 노동교도소인가? 정부는 왜 이렇게 우리를 능욕하는가? 당신은 엄마, 아내, 자매, 여러 친척이 있는가? 여기의 일체 깡패행위는 국가의 행위를 대표하는가? 오늘 이런 행위를 자행한 이런 남자들이 우리의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오늘을 기억합니다. 오늘은 2001년 4월 19일입니다. 당신이 오늘 밤에 여기서 당직입니다. 우리는 살아서 나가 당신을 반드시 신고하겠습니다. 우리가 만약 여기서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절대 당신을 놓아주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인내심은 절대 방임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말을 듣고, 우리를 지키는 남자죄수를 불러 그가 당직을 설 때 그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이르고 그녀 둘이 오늘 밤에 함께 자게 하라고 지시했다. 우리 둘을 내가 기거하는 방으로 데려 갔다. 이번에는 일체가 조용해졌다. 방에 단지 4명의 남자가 우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 둘은 눈물을 머금고 밤새 눈을 붙이지 못했다. 복도에 때때로 다른 방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4월 20일 경찰이 당직을 교대할 때 추이구이룽은 자기 방으로 옮겨갔다. 나는 책임자 남자 죄수가 어젯밤의 기록을 보며 보고하는 것을 보았다. 얼마 후 어젯밤의 그 ‘마귀’들이 비디오를 들고 나의 방에 왔다. 이번에는 여자 한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많은 대법 책을 가지고 와서 그들이 한 단락 읽고 그들이 사오한 생각대로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런 후 어제 나의 몸을 타고 앉아 나를 때렸던 남자가 내가 그들을 따라 배우지 않자, 단번에 침대에서 땅으로 나를 끌어내려 때렸다. 그리고 “왜, 배우지 않는가? 당신은 왜, 배우고 연공하려고 하지 않는가?”하고 물었다. 나는 죄를 범하지 않았고, 여기는 내가 법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며, 내가 왜 여기서 배워야 하느냐고 물었다. 왜, 사람을 가두어 넣고 배우라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한 말을 일일이 노트에 기록했다. 그리고 나에게 맞느냐고 물었다. 식사 시간이 됐다. 이곳의 밥과 반찬을 보고 더는 먹을 수가 없었다. 나의 몸은 허약해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저녁에 어제의 그 장면이 또 연출됐다. 오늘 밤에는 당직이 또 바뀌었다. 추이구이룽은 다시 나의 방을 두드렸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한 모금 피를 토했다. 그 한순간 일체 소리는 정지됐다. 추구이룽은 울며불며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은 대장에게 보고했다. 추구이룽에게 나를 돌보게 했다. 그러나 이때 그들은 추구이룽을 박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추구이룽에게 그들이 단장취의한 법을 배우라고 했다. 추구이룽은 오랫동안 사부님의 법을 보지 못 했다. 사부님의 책을 보고 막 읽으려고 할 때 나는 무력하게 그녀에게 알렸다. “우리는 여기에서 법을 배우면 안 된다. 이것은 치욕이다…….” 그녀는 나의 말을 듣고 손에 든 책을 내려놓았다. 나는 가련한 추구이룽을 위로하며 말했다. “우리는 집에 돌아가 꼭 법 공부를 잘 하자.”

마귀들은 밤새 우리를 못살게 했다. 잠시 후 나의 침대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녀의 머리와 몸이 뜨겁다. 사상자가 생기게 하면 안 된다. 그들 매 마의 사람들은 모두 머리와 몸을 만지고 조용해졌다. 그날 밤을 우리는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른다.

세 번째 날 나와 추이구이룽는 런둥메이가 생각났다. 그녀는 아직 미혼인 아가씨이다. 가장 안쪽 방에 감금됐다. 우리 둘은 이미 생사의 개념이 없고 복도에 뛰어나와 사악을 큰소리로 폭로하고 런둥메이의 이름을 불렀다. 3일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은 내가, 경찰을 찾아가 런둥메이는 아직 미혼이라고 알렸다. 만약 당신들이 아직 인성이 있다면 그녀를 해치지 말라고 했다. 당신들도 딸이 있잖은가.

4일 째 한 무리 경찰이 왔다. 나와 추구이룽은 각각 두 명의 남자 경찰이 부축해서 갔다. 가기 전에 우리는 거듭 런둥메이의 이름을 불렀다. 후에 런둥메이도 마지막에 부축해서 나왔다. 6명의 파룬궁수련생도 거기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모른다. 후에 그들은 구사일생으로 비밀리에 선신(沈新) 교양원으로 이송 감금됐다.

우리 9명의 파룬궁수련생은 생명으로 비로소 영혼의 순정을 지켰다. 몇 년간 나는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겪은 내용을 상세하게 밝힌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정신은 이미 붕괴에 달했고 감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극히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움에 빠지게 된다.
주 : 후에 알게 됐는데, 우리가 그곳에 가기 전에 이미 33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전향됐다. 박해로 정말 정신병자가 된 사람도 있고, 전향 후 그곳의 남자 죄수와 사귀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악당들이 마구 날뛰고 극히 사악한 곳이다. 여러 해 동안 거기에서 남녀 파룬궁 수련생에게 잔혹한 박해를 멈춘 적이 없다.

6. 나를 때려서 상처를 입힌 선신 교양원

이 교양원은 정원이 넓고 층층이 철문으로 전문적으로 남자 죄수를 감금하는 곳이다. 그들은 랴오양, 마싼자의 남자 죄수와 마찬가지로 주로 노역을 위주로 하는데, 매일 노역하고 노래를 부르고, 걷고 하는 군대식 관리를 한다. 남자 파룬궁수련생은 그들 중에 있다. 만약 전향하지 않고 견정한 태도를 보이면 단독 감금한다. 그해 여자 파룬궁수련생은 단독으로 한 곳에 감금됐다. 경찰도 임시로 선발하여 파견돼 왔다. 그해 원장은 류징이고, 파룬궁 수련생 박해를 책임진 대장은 궈융(郭勇), 쑹샤오스(宋小石), 덩양(鄧陽, 여)등 그리고 8명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자 대장이 있었다. 그들은 24시간 교대로 파룬궁수련생의 박해를 관리했다.

나와 추이구이룽은 교도원대대에 이끌려갔다. 파룬궁수련생 박해를 관리하는 대장 궈융(당시 40세)은 우리를 대장실로 데려갔다. 나와 추구이룽은 그에게 우리가 여러 교양원에서 박해 받았던 내용을 진술하고 펜과 종이를 달래서, 선신교양원이 우리를 박해하지 않을 것을 희망한다는 내용을 적어 냈다. 우리는 이곳에서 그동안 여러 교양원이 우리를 인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박해행위를 고소하겠다고 했다. 그때 그 ‘검은 감옥’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궈융 대장에게 그곳에서의 사악했던 만행을 말하면서, 이 정부가 사람을 능욕하여 남자와 여자를 함께 감금했던 사실을 말했다. 만약 내가 친히 경험하지 않았다면 나도 전혀 믿을 수 없는 일인데, 전해 듣는 말로는 믿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는 완전히 나의 사상 의식의 최대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궈융에게 당신은 마싼자가 왜 그렇게 사악한가 하고 물었다. 왜, 우리에게 이런 모욕을 주는가? 그들이 이른바 정부를 대표하는가? 그들도 여자인데 왜, 자신의 동료를 해치는가? 동물도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4박 4일간 시달려 잠을 자지 못했다. 궈융는 말했다. “우리 여기서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여기는 지금까지 파룬궁을 박해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여기는 법률을 말합니다. 당신들은 짐을 들고 ××(중년 여자대장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음) 대장에게 가서 당신들은 방에 들어가 잠을 푹 잔 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나와 추구이룽, 런둥메이는 정말로 잠을 잘 잤다. 거의 1년 반 동안 이렇게 잔 적이 없다. 우리가 깨여난 후 비로소 우리가 잔 간방을 둘러봤다. 방안 주변에 모두 상하침대인데 단지 우리 3명만 있었다. 우리 주변에 바오자도 없었다. 정말로 생일케이크를 먹은 것처럼 기뻐했다. 진정 여기가 교도소라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

이튿날 궈융은 나와 추구이룽, 런둥메이를 대장실에 불러놓고 말했다. “당신들의 일을 상사에 보고했다. 당신들은 항소자료를 써도 된다. 여기에 종이와 펜이 있으니 가져다 써요.” 나와 추구이룽은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가 준 종이와 펜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 우리 셋은 거기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박해당한 사실의 고소장을 썼다. 며칠 후 궈융은 여자대장을 통해 우리가 쓴 것을 상사에게 올려 보내게 했다. 종이가 적어 우리가 보낸 것은 원본인데, 올려 보낸 후 소식이 없다. 대장은 추구이룽이가 만기가 됐다며 그녀의 가족과 연결하여 ‘전향’할 것을 권하며, ‘전향’하지 않으면 석방하지 않는다고 했다. 추구이룽은 나에게 쓴 자료를 비밀리에 가족에게 전달하여 폭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철창입구에서 궈융 대장에게 그 자료를 요구했다. 몇 번이나 요구했지만 대답이 없다. 얼마 후 철문에서 두 명의 여자 대장이 오더니 추구이룽을 욕하며 노기등등하여 철문열쇠로 문을 열고 끌고나가 그들 둘이 추구이룽을 잡고 복도에서 집단 구타를 했다. 추구이룽은 몇 번이나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두 대장이 더욱 심하게 때리는 것을 보고 추구이룽이 상처를 입을까봐 복도로 뛰쳐나가 추구이룽을 나의 품에 안고 교도원이 그녀를 더는 때리지 못하게 했다. 그 두 대장은 나를 잡고 함께 때렸다.
내가 추구이룽을 안고 놓지 않자 줄곧 철문 밖에서 보던 궈융이 단번에 달려와 왼손으로 나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한 다리로 나의 허리를 지탱하고 오른손으로 머리, 목, 등을 마구 때렸다. 나의 등뼈는 그가 때려 격렬하게 아팠고, 두 여자 교도관은 함께 계속 추구이룽을 잡고 때렸다. 우리 둘은 이렇게 그들에게 맞으며 떨어졌다. 그 후 며칠간 머리를 들 수 없고 머리카락은 잡아 당겨 바닥에 널려 있었다.

7. 룽산(龍山) 교양원

2001년 5월 1일 나는 단독으로 룽산 교양원에 감금됐다. 거기에 도착하니 마침 휴가철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당직 대장은 나를 파룬궁 수련생을 감금하는 대대로 배치해 감금했다.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룽산교양원은 사람마다 사상보고를 하나씩 써야 했다. 나는 자신이 박해당한 간단한 경력을 쓰고, 교양원이 파룬궁 문제에 대해서 선악이 뒤바꾸고, 매일 무료하게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게 한다는 등등을 썼다. 나의 사상보고가 제출된 지 반시간도 되지 않아 당직 대장에게 불러갔다. 나에게 짐을 싸게 하고 나를 앞의 철문이 있는 곳으로 이송하겠다고 했다. 거기는 여자 죄수가 감금되어 있다. 저녁에 당직 대장이 나를 찾아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은 여기의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전향에 불리한 말을 퍼뜨리면 안 됩니다. 우리 룽산 교양원의 200여 명은 거의 100%의 전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전향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됩니다.” 나는 말했다. “만약 나의 말이 그렇게 중요한 작용을 한다면, 당신의 이론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 분명히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향시키려고 합니까?” 그는 말했다. “ 우리가 원해서 그러는가. 이것을 우리가 결정하는 것인가? 당신이 여기에 와서 누가 전향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당신은 좋은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택하지 마세요. 우리 여기는 독재기관이며 필요할 때 우리는 어떤 방법도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은 죽은 사람에게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나는 여기에서 단식하고 항의하겠습니다. 나에 대한 불법적인 처사, 비밀리에 여러 번 감금한 것에 이르는 등 생명의 마지막까지 항의 하겠습니다. 마싼자는 나를 박해했지만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이 있는 여기에서 죽겠습니다. 이번 당신들의 교양원도 전국에서 이름을 한번 날려 보세요.”

그 이후 모든 당직 교도대장과 성이 탕(唐) 씨인 원장, 장 교도원을 포함한 그들은 매일 밤 당직을 설 때면 나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말하고 각 교양원에서 나를 박해한 내용과 박해수단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동시에 나의 사상 감수도 그들에게 잊지 않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번 사악한 박해과정에서 나는 정의와 사악을 똑똑히 분간했는데,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파룬궁 완고분자가 아니다. 나는 죽어도, 당신들 그리고 천고의 죄인과 사악한 사람으로는 되지 않겠습니다. 파룬궁 이념이 나를 도와 이 점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나의 경지로는 정말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전법륜(轉法輪)’ 이 책을 보지 않았다면, 나를 침으로 찌르는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당신은 믿을 것이다. 나를 박해하고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마땅히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초상적인 경지는 제가 생명의 대가로, 정과 사의 어려운 선택에서 비로소 깨닫고 감수한 것입니다.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에 대해 나는 원래 그렇게 이해하지 못했다. ‘파룬다파하오(法輪大法-파룬따파는 좋습니다)가 왜, 좋은가 하는 그런 감수가 나는 그리 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이번 박해를 통해 선악은 분명해 졌습니다. 나는 비로소 갈수록 이 분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 좋을까, 왜 이렇게 대단한가를 느끼게 됐습니다. 내심에서 나는 그분을 존경합니다. 그 분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개인의 이익을 잃을 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를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바른 사람, 당신이 보기에도 마땅히 존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나는 진정한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이번 사악의 박해 과정에서 그렇게 많은 추악한 꼴을 보게 됐습니다. 사악이 극에 달한 정도는 내가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습니다.”

교도원도 사람이다. 그들은 내가 한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 모두 단지 그들의 일이며 상부에서 지시하고, 하급에서 파견하고 집행(上指下派) 하며, 상사가 어찌하라고 하면 어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못한다고 했다. 한 경찰대장이 말했다. “당신이 굴복하지 않으면 장쩌민을 찾아가 장쩌민을 고소하면 우리도 해탈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룽산교양원의 장 씨 성을 가진 교도원이 당직을 할 때 나를 찾아 대담했다. 그는 작은 소리로 나에게 알렸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꼭 가족에게 알려야 합니다. 당신이 죽으면 어찌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장쩌민은 이미 파룬궁 당신들에 대해 명령을 내렸는데, 당신들이 죽어도 책임지지 않으며, 당신들을 죽여서 증거를 없애라고 했다고 합니다. 알겠어요?”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그의 7세 된 아이에게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를 이야기 해주었다(그는 당직을 설 때 아이를 데리고 왔다).

룽산 교양원은 나에게 엄마, 아이, 남동생을 만나게 했다. 그 교도원은 지혜롭게 나를 도와주었다. 몰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주었던 것이다.

룽산 교양원에서 10일째 되는 날 나는 여자죄수 바오자가 교대하며 나를 지켜 행동이 제한 됐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에게 우리가 박해당한 진상과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알려 주고 그들에게 ‘홍음’을 가르쳐주고 그들을 도와 마음의 매듭을 풀어 주었다. 그녀들에게 어떤 환경에서라도 좋은 사람으로 돼야 하고 덕을 중시하고,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라고 했다. 그들은 좋게 변하고 나는 경찰이 하지 못하는 일을 했다. 교도원은 죄인이 마음이 경박하지 않고 좋게 변하자, 나의 일체 행위를 보고도 못 본체 했다. 파룬궁은 그녀들에게 업무적인 압력을 경감시켰다. 감옥과 교양원은 죄수가 명절과 휴가때 집이 그리워 일이 발생하는 것이 두려워했다.

나는 그곳에서 세뇌 된 후 전향한 과거의 수련생을 늘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들이 줄을 서서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을 보고 나는 사부님이 생각났다. 나는 강렬한 진통이 왔다. ‘치욕’ 두 글자가 나의 심장을 막았다. 나의 피는 거꾸로 흘렀다. 눈물을 머금고 창문 뒤 정원 쪽 식당을 향해 큰소리로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하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주세요.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주세요.” ,“파룬다파하오 ……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 주세요 ….”
5월 10일 10일간 밥도 먹지 않고 한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았다. 룽산 교양원은 다시 나를 선신 교양원으로 밀어냈다. 그들은 내가 룽산 교양원에서 죽을까봐 두려웠고 그들의 ‘전향률’에 영향 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선신교양원에 가서 추구이룽, 런둥메이, 저우연보(周豔波)와 자오쑤전(趙素環) 등을 만났다. 저우쑤전 등 6명의 파룬궁수련생은 ‘남자의 검은 소굴’에서 살아 나왔다. 우리 9명은 다시 함께 감금됐다. 내가 10일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으므로 선신교양원의 대장 궈융은 남자죄수를 데리고 와서 야만스럽게 나에게 음식을 강제로 주입했다. 추구이룽은 감금의 연장문제로 실망하고, 내가 박해당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녀도 단식항의를 했다. 또 이어서 두 명의 수련생이 단식을 했으며, 우리는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며 선양 사법국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어느 날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와 저우쑤전 둘은 음식물을 주입당한 후, 건물 내 한 방에서 선양시 사법국장 한광성(韓廣生)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우리가 겪은 사실의 진술을 모두 들었다. 나는 그에게, 마싼자의 잔혹한 박해와, 바늘로 찌르는 사건, 남자감옥에 감금되어 당한 사건 등을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기간이 만료됐는데도 석방되지 못하고 감금연장상태임을 말했다. 그는 일부 사건에 대해 묻고 우리의 자료를 보았다고 말했다. 우리의 사건은 그가 돌아가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단식을 중단하고 모두 정상적인 식사를 하면서 그가 돌아가 생각해 보겠다고 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결과가 나왔다. 마싼자 교양원 여자 2대대의 악경 왕수쩡(王樹增)이 3개 공문서를 가지고 왔다. 선신교양원에서 나를 포함하여 추구이룽, 런둥메이 등 3명에게 형기를 연장하는 형기연장서[加期單]에 서명하라고 했다. 추구이룽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극도로 흥분하여 이성을 잃고 그 형기 연장서를 찢어버렸다. 나는 추구이룽에게 말했다. “찢지 마라. 장래에 우리를 박해한 증거야.” 왕수쩡은 찢어버린다고 해도 형기는 연장된다고 말하고 문서를 가지고 돌아갔다. 우리는 다시 단식항의를 시작하고 무조건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더는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단지 교양원의 밥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의 몸은 비록 감금돼 있지만 정신만은 반드시 무죄이어야 한다.

단식기간에 나와 추구이룽은 독실에 감금되었는데 나는 1호실에, 추구이룽은 3호실에 각각 감금됐다. 궈융은 매일 쑹샤오스(宋曉石)와 원장 보조원 덩양이 남자죄수와 함께 우리를 결박하고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게 했다. 며칠 후 추구이룽에게 강제로 링거를 주사하려고 했다. 그녀가 거부하며 주사바늘을 뽑아버리자 악경은 세게 그녀를 때렸다. 그녀의 얼굴은 뺨을 맞아 다섯 손가락 자국이 찍혀 있었고 얼굴도 벌겋게 됐다. 나는 독실에 감금되어 이런 사실을 목격하고 조급한 나머지 끊임없이 철문을 흔들며 큰소리로 사악을 폭로하는 소리를 질렀는데, 이것은 구타하는 악경의 주의력을 내게로 옮겨오게 하여 추구이룽이 당하는 구타의 압력을 감소시켜 주려고 그랬던 것이다. 나는 수련생이 이렇게 구타를 당하는 것을 보면 가슴속에서 피가 흘렀다. 독실에서 끊임없이 큰소리로 추구이룽의 이름을 불렀다. “추구이룽, 추구이룽…… 당신들은 그녀를 때리면 안 돼요, 그녀를 때리면 안 돼요!” 추구이룽도 나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나와 추구이룽은 매일 두 번 악경과 남자죄수에게 독실로 끌려가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남자죄수는 우리를 끌고 가면서 저속한 행동을 했다. 나는 큰소리로 사악을 폭로하고 선신 교양원에서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남자죄수를 이용해 우리에게 야만적인 깽패 수단으로 음식물을 주입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뜻 밖에도 그때 그런 항의를 한 후 그들은 정말로 우리의 말을 들었다. 이어서 우리에게 희극적인 보답을 주었다. 한 무리 흰 가운을 입은 중년 남자(감옥 남자의사와 궈융이다)가 손에 음식물주입의 제반 기구를 들고 독실 철문밖에 서 있었다. 당시 나는 깜작 놀랐다. 나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발생한지 몰랐다. 그런데 돌아보니 평소 나를 야만스럽게 끌고 가서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던 대장, 남자죄수, 그 외 몇몇 죄수들도 모두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두 손에는 모두 흰 장갑까지 꼈다. 표정도 아주 엄숙했다. 마치 금방 훈계를 들은 듯하며 정규적인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감자는 바로 감자이고, 영원히 고구마가 될 수 없다. 정말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비록 입은 옷은 변했지만 ‘흑수’가 ‘백수’로 변하지 못했으며, 그들의 악성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하얀 그림자들에게 감싸여 몸부림쳤다. 다시 한 번 끌려가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 당했다. 나의 코와 목구멍, 위는 그들이 관을 과격하게 꽂아 피가 흘렀다.

후에 나의 위는 더는 관을 꽂을 수 없었다. 남자죄수는 힘껏 나의 코를 잡고 음식을 주입했다. 몇 번이나 그런 식으로 강제 주입하는 바람에 질식하여 사망할 뻔 했다. 11일 후 요실금과 혈뇨로 교양원은 나와 상처투성인 추구이룽, 저우연보를 선양 다베이(大北)에 소재한 감시 관리하는 지하병원으로 보냈다. 당시 우리는 모두 사람의 모양은 전혀 없었고, 피골이 상접하여 전신이 붕괴된 상처투성이의 몸뚱이만 남아 있었다.

5월 27일 오전 9시가 넘어서 선신교양원 원장 류징, 대대장 숭샤오스, 궈융, 두 명의 감옥의사, 원장의 보조 덩양, 좀 뚱뚱한 중년 여자교도원(이름은 기억 안 남), 또 한 무리 감옥 경찰과 여자 대장이 모두 독실로 왔다. 그들의 큰 위세는 나를 놀라게 했다. 쑹샤오스는 원반 열쇠(원반둘레에 각방의 모든 열쇠가 있다)로 독실의 문을 열고, 밤새도록 뒤로 수갑을 차고 있으면서 혈뇨로 실신한 나를 풀어줬다.

류징은 “아직 완고하구나. 목숨도 가지고 싶지 않은 것인가? 장쩌민의 명령이 있는데, 당신들 파룬궁 완고분자에게 멸종정책을 취하라고 했다. 때려서 죽어도 죄를 묻지 않으며, 때려죽였으면 자살로 친다고 했다. 당신들은 아직도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으며,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는구나. 당신들이 죽으면 이 빚을(그동안 박해를 가하며 사용된 치료비 등의 비용) 우리에게 뒤집어씌우지 말라.”고 말했다. 키가 좀 작고 뚱뚱한 중년층의 교도원이 나의 앞에 다가와 다급히 말했다. “당신은 아이가 있고 전망이 있고 재간이 있는 여자다. 당신은 장래에 반드시 전망이 좋은 성공한 기업가로 될 것이다. 파룬궁 문제에서 너무 고집을 부리지 말라.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전향서’를 쓰면 아직 희망이 있고 살아서 다시 나가 수련할 수 있어. 얘야!” 나는 말했다. “당신께 감사합니다. 만약 여기에서 이렇게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꼭 모녀처럼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살기 위해 신의를 저버리고 양심을 어기고 선생님께 해를 입히는 일을 하란 말입니까? 어머니가 어찌 아이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까? 당신은 이런 생명을 존중합니까?” 여자 대장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다가와 사리를 모른다고 나를 질책했다. 원장 류징은 쑹샤오스에게 말했다. “그녀들을 데려가라.” 나와 추구이룽, 저우연보는 독실에서 부축을 받으며 나와 승합차에 태워졌다. 차에는 역시 두 개 전기봉이 그들과 동행했다.

8. 선양 다베이감옥 지하죄수 병원

선양 다베이 지하 감옥은 죄수병원이다. 나는 그곳의 역사와 유래를 모른다. 우리를 감시하고 관리하는 병원에 오기 1분 전 우리는 어디로 다시 끌고 가는지 몰랐다. 차는 이 정원에서 멈췄다. 쑹샤오스, 원장보조 덩양(그녀 손에 공문서를 들고 있었다)은 일부 수속을 마치자, 정원 철문에서 중년 남자가 나왔다. 쑹샤오스와 덩양이 다가가 그 남자에게 몇 마디하고는 우리 셋을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부축하고 의지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 사람은 우리를 정원 안으로 데려갔다. 철문은 지하로 통했으며 그 통로를 걸어 들어갔다.

나는 몹시 두려운 마음에 발을 멈췄다. 감히 앞으로 더 갈 수가 없었다. 나의 피부 한층은 순식간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순간 갑자기 심한 한기를 느껴 이를 맞부딪쳤다. 나는 떨며 그 남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 합니까?” 그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놀란 눈길로 말했다. “여기는 감옥의 죄수병원입니다.” 그의 성은 궈 씨(郭 -후에 알았는데 그는 궈용의 동생이다)라고 했다.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안위의 말을 해줬다. 우리는 몸을 떨며 그를 따라 갔다. 걸어서 입구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철 난간 문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 사무용 책상이 있고 책상에 기록부가 있었다. 거기에 사복을 입은 24, 5세 돼 보이는 젊은이가 걸상에 앉아 있었다. 걸상 오른쪽에 두껍고 무거운 방음철문이 열려 있었다(나는 남자감옥 소굴, 마싼자의 독실에서 이런 문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여기의 문은 그곳의 문보다 더 두껍고 무거우며 최소한 한층 더 된다). 우리의 기록을 할 때 열어 놓은 철문 안을 보았는데 오목한 작은 연못에 물이 고여 있는 걸 보았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거기에서 죄수들이 바람을 쐬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젊은이는 내가 그쪽을 보는 것을 알고 문을 닫았다. 내가 다시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고 바로 하나의 벽이었다. 나의 사유는 순간에 이 한 장면에 혼란되었고 자신의 시각을 의심했다(후에 집에 돌아가 파룬궁 수련생 띵옌(丁岩)이 수로감옥(水牢)에서 박해를 받은 걸 보고 나는 이 한 장면이 생각났다).

철 난간 문이 움직이고 두 여자죄수가 나왔다. 젊은 여자죄수에게 “당신들이 그녀들의 몸을 수색하고, 그녀들에게 방을 배치하여 데려가라.”고 했다. 철문을 닫고 시정을 하는 소리가 다시 나면서,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 살려주세요, 사람 구해주세요!” 한 남자의 구원을 청하는 목소리가 처절하게 들려왔다. 여자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에게 “여기는 감옥이라 매일 이렇다. 그 철문 안에는 전부 남자죄수를 감금했다. 그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여기에서 이미 10여 년간이나 감금됐는데 정치범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들은 파룬궁수련생이 아닌가? 여기에 늘 파룬궁수련생이 들어온다. (주: 후에 화장실에 갈 때 이 정치범을 보았다. 그 사람은 키가 크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엄청 길고, 머리카락과 얼굴에는 모두 대변이었고,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었다. 족쇄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면 그가 나온 것이다. 그는 전문요원이 감시하고 있다)

우리 셋은 방으로 들어갔는데 복도에 있는 1인용 침대가 배정됐다. 침대에 는 낡아빠진 침대보가 있었다. 감시원은 우리에게 이불솜을 던져줬다. 누런 이불솜은 크고 작은 구멍이 나 있었으며, 힘줘 비틀면 물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습해 있었다. 이때 우리가 발견한 것은, 이곳은 낮과 밤의 구별이 전혀 없고 음침하고 눅눅하다는 것이었다. 복도 끝에 낡은 목재로 된 병풍이 있었다. 병풍 뒤에는 여러 가지 변기통이 있다. 여기서는 하루에 두 번 밖에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 아침과 저녁에 각 한 번이다. 우리는 임시로 복도에서 잠을 잤는데 머리 위에는 변기통을 가린 그 병풍이다. 그 냄새는 지금까지 잊기 어렵다.
여기에 와서 2번, 방을 관리하는 왕제(王姐)가 우리와 친구가 됐다. 그녀는 50여 세로 우리에게 파룬궁이 박해당한 진실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녀가 구치소에서 파룬궁수련생이 구타당하는 사실을 직접 목격한 상황을 얘기해주기도 했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내가 감옥에서 본 34명 파룬궁수련생”을 읽기 바란다.

왕제는 내가 상처가 심한 것을 보고 나를 그녀의 방으로 데려가 일부 생활용품을 주며 나에게 알려줬다. “여기서는 반드시 밥을 먹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룽산 교양원에서 온 쑨훙연(孫紅豔)은 여기의 잡부(남자죄수)에게 끌려가 음식물 주입을 당하고 나중에 대소변 실금증이 됐다. 이곳의 사람들이 말하는데 그런 것은 보통이라면서, 안 되면 끌려가게 되는데, 결국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사망했다고 했다. 너는 잘살아야 하고, 우리에게 연공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함께 배우자, 5장 공법을 나도 아직 잘 배우지 못했다.”

그리하여 추구이룽과 저우연보는 우리에게 연공을 가르쳤다. 그들 둘은 다 ‘논어’ ,‘홍음’을 외울 줄 알고, 그 방의 40여 명 중 절반의 죄수가 우리를 따라 연공을 했으며, 매일 사람마다 모두 ‘홍음’을 몇 수씩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거기에서 전부 공법을 배웠다. 폐경이 된 왕제는 생리가 또 오게 되고, 다베이 감옥의 여자환자 죄수들은 ‘홍음’을 외운 후 욕을 하는 것이 적게 들리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로채는 현상이 줄어들었다. 우리 세 사람은 법 공부와 연공을 통해 신속히 원기를 회복했다.

2001년 6월 5일 선신 교양원은 우리 세 사람이 아직 살아있으며, 그들의 예상대로 되지 않자, 괜히 우리를 이곳으로 보냈다고 생각하여 크게 화가 나서 우리를 다시 선신 교양원에 압송해 갔다. 우리가 선신 교양원으로 다시 돌아간 후, 그곳의 악경들은, 미친 듯이 큰소리로 욕하고 감시하고 관리했던 지하병원이 우리 셋이 있었던 관계로 파룬궁세상이 됐고 또 연공장으로 변했다고 한다.

선신 교양원으로 돌아온 지 3일 후 한 무리 경찰들이 회의를 열어 모의를 한 후 우리 방에 들어와 강제로 우리에게 교도소 복장을 입으라고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남녀 경찰은 나를 궈융의 사무실에 끌어갔다. 궈융은 말없이 책상의 전기봉으로 나에게 충격을 가했다. 전기봉이 짝짝거리며 천기를 분출했는데 이 건물 온 복도에 다 들렸다. 그는 나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며, “너는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자다. 죄수옷을 입어야 한다. 당신이 입지 않아도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죄수다.” 나는 전기충격으로 소파에까지 밀려갔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바로 나에게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 옷은 당신이 입으면 적합하며, 당신이 입으면 맞습니다.” 그는 전기봉으로 나의 머리와 얼굴에 가했다. 충격으로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에 의해 나는 다시 독실에 감금됐다. 추구이룽도 한 무리 여자 경찰이 때리고 욕하며 독실에 감금시켰다. 1, 3호 독실은 우리 둘이 수시로 박해당하는 기지로 됐다.

우리 둘은 여기에서 생사를 같이 했다. 한 무리 경찰이 올라왔다. 여기에 또 7명 파룬궁수련생이 있다. 독실을 지키는 사람이 오지 않을 때 추구이룽은 나에게 말했다. “리핑, 리핑, 여기에 우리 둘 밖에 없다.” 나는 “그래, 적다고 하지 마라. 이 세계에서 당신만 살아 있다고 해도 그 죄악적인 죄수옷을 입으면 안 돼!” 그녀가 말했다. “알았어요. 리핑, 지금 어때?” 나는 “언니는 괜찮아요?” 그녀는 울며 말하기를 “리핑, 리핑!” 두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며 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죽지 않아요. 나는 줄곧 언니와 있을게요.” 그녀는 “나도 너와 함께 있을게.” 나는 “알았어요. 언니, 경문을 나에게 좀 외워주세요.” 그녀는 “듣고 싶어?” 나는 “우리 함께 ‘무존’을 외우고 또 다른 걸 외워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좋아.”

오후 한 무리 남녀경찰과 남자죄수들이 깡패처럼 독실에 뛰어들었다. 우리 둘은 또 그들에게 구타당했다. 그중 남자 경찰 쑹샤오스, 궈융, 또 중년 경찰도 줄곧 우리를 구타하고 박해했다. 하지만 그는 말이 적어 그 이름을 나는 줄곧 모르고 있다. 여자경찰 덩양도 있다. 그들은 독실에 들어와 말을 하지 않고 오자마자 나를 누르고 옷을 벗기고 옷은 화장실에 버렸다. 나는 손은 어디에 놓을지 몰랐다. 나의 몸은 한 무리의 악마가 함부로 때렸으며, 머리카락은 그들에게 당겨 땅에 널려있다. 나의 머릿속은 공백상태에 빠졌고 사람의 언어로는 그 한순간을 묘사할 수 없다. 그 시각의 심정은 더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들 한 무리 마귀들은 추구이룽의 옷도 벗겼다. 추이구룽의 몸부림치는 소리는 멀리멀리 들렸다. 그녀는 울었다. 나는 그녀가 사악의 앞에서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우리 둘은 언어 교류가 사라졌다. 나는 소리 없이 아들을 생각하며 두 줄기 눈물을 흘렸다. 나는 두 손으로 어깨를 감싸 안고, 저주하지 않고 화장실의 유일한 벽모서리에 머리를 박았다. 경찰이 신속히 뛰어와 문을 열고 나를 땅에 누르고 한 손은 땅에 있는 철고리에 수갑으로 걸어 놓았다. 나의 머리는 큰 혹이 생겨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한 손으로 앞가슴을 가리고 어렵게 몸의 앞을 가렸다. 나는 무겁게 잠이 드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음 날 궈융, 쑹샤오스, 덩양은 그리고 두 여자 경찰과 두 남자죄수는 삽, 괭이, 광주리를 들고 독실로 왔다. 덩양은 손으로 남자죄수에게 말했다. “파룬궁수련을 하면 옷도 입지 않아요. 정말로 낯짝이 없네. 높은 경지까지 수련했나 봐.” 두 남자죄수는 나를 보고 웃었다. 화장실 그 모서리는 그들이 깨고 시멘트로 다시 문질러 놓았다. 나는 한 손으로 어깨를 끌어안고 앉아 있어서 그들이 마음대로 감상을 하게 됐다. 하늘의 관심인지 날아다니는 흙먼지가 나를 위해 부분적인 수치를 가려 주었다.

내가 알몸으로 있으면서도 그들의 노동교양복을 입지 않자, 궈융, 숭샤오스, 덩양 위주로 한 무리 남녀 경찰관과 남자죄수가 다시 한 번 독실로 들어와 나를 짓누르고 수갑을 벗겨 강제로 그들의 사악한 제복인 노동교양 수감자를 대표하는 제복을 입히려고 했다. 이번에 그들은 나의 두 손을 땅에 있는 철고리에 채워놓았다. 나의 정신은 다시 한 번 붕괴되고 한 모금 피가 솟아나왔다. 나는 다시 피를 토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나는 단식을 한 것이 아닌데 심한 구토 증세를 느꼈다. 며칠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자 다시 한 무리 악마에게 끌려가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아마 나의 신체가 너무 허해 그들이 나를 이끌어도 그렇게 격렬하게 반항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사람의 도리를 말해 보려 했다. 그들에게 집에 여자, 엄마, 아내, 딸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에 대해 그런 행위를 하면서 그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매번 나를 끌고 음식물을 주입하려 갈 때 교양원의 정원을 지나야 했다. 4명의 남자죄수가 나의 사지를 잡고 얼굴은 하늘을 향한 채 끌고 갔다.

억울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고, 할 말이 있어도 어디에 가서 할 수 없다. 나는 교양원의 하늘에 대고 말했다. “파룬따파하오” , “파룬따파하오”, 선신교양원이 좋은 사람을 박해하여 천리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파룬궁수련생을 연장하여 감금하고 가족을 못 만나게 합니다. 선신 교양원 경찰은 법을 집행하면서도 법을 위반하며, 마음대로 사람을 때리고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하며, 그들이 우리의 육친정을 끊으려 합니다. TV의 거짓말을 믿지 말아야 하며, 파룬궁은 잘못이 없습니다. 나는 흰 구름 아래 각 층의 철창에 머리를 깎은 맨숭머리 죄수들이 있는 걸 보았다. 그들은 내가 외치는 소리에 따라 점차 많아졌으며 후에 몇 번 음식물 주입을 하러가는 중에 그들은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으며, 또 경례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 온 이 건물의 사람들은 파룬궁수련생들로 박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가 시간의 화제는 파룬궁이다. 왜냐하면 하늘은 그들에게 이 한동안 노역을 나가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어느 하루 독실의 창문 밖에서 남자 아이가 정원을 쓸고 있었다. 그는 몰래 창문의 난간 밖에서 콜라 한 병과 빵 하나를 넣어주었다. 말하기를 “언니, 당신은 정말로 위대하며 대단해요. 감히 경찰에게 말할 수 있다니요? 이것은 건물 안의 친구가 당신에게 준 것입니다. 무슨 의미도 없고 단지 당신을 숭배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세요. 우리 다 당신을 도와줄 수 있어요.” 나는 재빨리 우리 집의 전화번호를 기록해 그에게 주며 무슨 요량을 내서라도 연락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콜라와 빵은 경찰에게 발각되면 형기가 연장되니 빨리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 그는 내 두 손이 수갑에 채워져 있는 걸 보고 얼른 빵과 콜라를 품속에 숨겼다. 그리고 바닥을 쓰는 시늉을 하며 “나는 어렵게 이것을 여기로 가져왔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그는 가져온 것을 내가 받지 못하게 되어 좀 실망했다(후에 이 남자애가 나를 도와 엄마가 나를 찾았다. 하지만 엄마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

위층과 아래층의 남자죄수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철창 앞에서 기다리며 나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점차 더욱 많아졌다. 그들이 서로 창문을 다투어 여는 현상을 궈용은 보았다. 나에게 음식물을 주입하러 가는 경찰은 죄수가 창밖으로 엄지를 세워 내미는 것을 보고 그들은 질겁했다. 그 후부터 나는 더는 끌려가 간 적이 없다. 그들이 음식물을 주입하러가는 새로운 통로를 만들었다. 내가 음식물 주입을 당하러 갈 때는 두 명의 남자죄수가 부축하고(4사람이 들지 않는다) 옆에 한 무리 남녀 대장이 따라간다. 궈융은 나에게, “너희들에게 한 번 음식물을 주입하는데 50위안(8,700원 상당)이 든다. 당신의 집에서 지불하라고 할 것이다.” 나는 “우리 집에는 돈이 없어요… 당신들은 법을 알면서 범법을 하지 말아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는 그런 박해를 하지 말아요.” 궈용은 화가 나서 왼손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힘껏 나의 허리를 연속적으로 가격했다. 나의 오른쪽 다리는 자동적으로 구부러지며 고통스러워 큰소리로 외쳤다. 이런 고통은 참기 어렵다. 그래도 그는 나를 때리며 말했다. “누가 당신을 박해해! 누가 당신을 박해하는 것을 보았는가? 누가 당신을 내가 때리는 것을 보았는가? 당신은 나에게 증인을 찾아줘, 당신이 능력이 있으면 나를 고소해!” 나는 온 몸이 고통스러워 식은땀이 나고 신음소리를 냈다. 나를 독실에 데려갔다. 나는 이미 일어날 수 없었다. 나의 허리는 고통스러워 참기 어려웠고 오른쪽 다리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 한 다리는 길고, 한 다리는 짧다. 이튿날 쑹샤오스와 덩양은 그리고 두 대장과 조끼를 입는(옷으로 구별) 두 남자죄수가 나를 독실에서 부축해내어 승합차에 태우고 선양 8병원에 갔다. 나의 허리를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후에 궈용은 혼자는 나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줄곧 이름을 모르고 말을 적게 하며 매번 박해에 참여한 그중의 중년 남자 대장이 어느 날, 나의 독실철문을 열고 한 봉지 만두를 들고 한 손으로 수갑은 풀어주며 나에게, “교양원의 밥을 당신이 먹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엄마가 가져온 것은 마땅히 먹을 수 있겠지요?” 하고 말했다. 엄마라는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나는 대장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나의 엄마와 이런 방식으로 소통하게 합니까? 이 만두를 먹을 수 있습니까?” 그는 철문을 잠그고 갔다. 나는 땅바닥에 있는 만두를 보고 대성통곡을 했다. 선신 교양원에서 나는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다음에 계속)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저작 :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문장발표 : 2013년 9월 28일
문장분류 : 대륙소식>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9/28/2804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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