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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불볕이 이글거리는 길 위에서

글/ 산시(山西) 타이위안(太原)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밍후이왕 편집부에서 주최한 ‘제10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인터넷 수련심득 교류회’의 원고 모집을 보고 심정이 매우 격동됐다. 나는 비록 단지 초등학교 학력 정도로 문장을 아주 잘 쓰지는 못하지만, 또 자신이 걸어온 이 단락의 비범한 길을 써내 모두와 함께 나누려 한다.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고도(苦度)해 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수련생들의 도움에 감사를 드린다.

나는 1995년에 대법을 얻은 노수련생으로 올해 이미 60여 세다.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신체의 모든 질병이 나아졌을 뿐만 아니라, 명리정(名利情) 속에서도 아주 많이 달관했다. 특히 최근의 정법 이 몇 해 동안에 매일 법공부, 연공, 발정념, 외출해 진상을 알림을 지체하지 않았는데 할수록 순리로웠다. 나는 ‘홍음3(洪吟三)’을 종이 위에 베껴서 버스 위에서 외웠다. 결국 모두 외울 줄을 알게 되면 곧 제목을 종이 위에 써서 가방 안에 넣고 시간이 있으면 제목을 보면서 외웠다. 잠자기 전에는 반드시 ‘논어(論語)’를 외웠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다

나는 교외에서 살았는데 이곳에는 대법제자가 매우 적어 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몇 년 전에 사악의 박해가 심각해 내가 알고 있는 몇 명 수련생도 모두 어느 정도 박해를 당했다. 3~4년 전, 수련생이 일부 진상자료를 가져오면 나는 인근에서 배포했다. 한 동안 시간이 지난 후 이 지방에는 기본상 보편적으로 한 차례 배포됐다. 나는 숨을 돌리며 했으니 됐다는 느낌이 들어 곧 수련생과 “다음번에는 저에게 좀 적게 주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현지 중공(중국공산당) 인원에 의해 박해하는 중점 대상이었던 이유로 악경(惡警-사악한 경찰)이 늘 집으로 와서 교란했기에 집안에 자료를 많이 놓으면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하루 저녁에 수련생이 택시를 타고 와서 두 주머니의 진상자료를 가져올 줄은 누가 알았으랴. 400여 부가 되는 듯 했다. 나는 매우 언짢았고 또 나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려웠다.

이렇게 많은 진상자료를 집안에 놓아두면 안전하지 못한데 나는 어디로 가서 배포할 것인가? 나는 걱정됐다. 내가 살고 있는 인근에는 이미 한 차례 배포한 적이 있었다. 모두 저녁에 산보하러 나가서 배포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녁에 혼자 다른 촌으로 가기 아주 어려웠다. 길이 먼데다가 가로등도 없고 또 자전거를 타면 길이 보이지 않았으며 저녁에는 차가 다니지 않았다. 농촌 저녁에는 개가 많고 낮에는 한가한 사람이 많았다. 많은 노인과 부녀자는 모두 거리에서 한가하게 앉아 낯선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누구네 집을 찾는지를 물었으며 또 꼭 눈에서 사라져야 안심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자료를 집에 놓아두면 어찌하겠는가? 나는 낮에 자전거를 타고 일부 자료를 가지고 인근 농촌으로 가서 시험 삼아 배포했다. 한 번에 20여 부를 가져다가 다 한 후 서둘러 떠나갔다. 그러나 인근 몇 개의 마을을 다 하면 또 어찌하겠는가? 다른 곳은 또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또 시험 삼아 버스에 앉아 비교적 먼 일부 지방으로 가서 배포했다. 나는 반복되거나 혹은 누락된 것이 있을까 염려되어 매번 돌아와서는 모두 기록해 두었다. 이때부터 점점 순조로웠고 점점 더 많이 배포했다. 몇 해 동안 견지해 지금까지 이미 230여 개 촌을 250여 차례나 했는데 2개 시, 3개 구, 2개 현의 많은 마을과 일부 주택단지를 포함한다. 그 후 나는 수련생에게 “당신이 당시 그렇게 많은 자료를 가져온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비로소 제가 자신의 길을 개척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불볕이 이글거리는 길 위에서

나는 속인 중에서 강인한 사람으로 눈물을 아주 적게 흘렸고 맹렬하고 신속했다. 또 직업이 없었기에 간다고 말하면 곧 떠났다. 나는 모두 혼자서 했다. 정거장 표지 앞에서 촌 이름을 보고는 곧 출발했다. 어떤 때는 몇 개 촌을 지나는지 혹은 앞뒤 좌우가 어느 마을인지, 혹은 어디에 도착해 무슨 차를 갈아타는지, 또 몇 개 촌을 갈 수 있는지 문의하고는 곧 종이 위에 적었다가 시간을 내서 갔다. 촌마다 모두 동쪽에서 서쪽이거나 북쪽에서 남쪽으로 갔는데 전 촌을 한 번 다 지났다. 극력으로 인연 있는 집을 빠뜨리지 않고 CD케이스와 소책자를 문안에 넣어두거나 혹은 자동차 와이퍼 위, 차문 손잡이 위, 차 바구니 안이거나 혹은 사람들이 쉽게 받을 수 있는 곳에 붙였다. 올해는 또 얼굴을 맞대고 션윈공연CD를 선사했는데 어떤 때는 마을이 크지만 적게 지녔기에 어느 곳을 배포하지 않았는지를 기억했다가 다음번에 다시 갔다. 어떤 때에는 마을이 작고 많이 지녔기에 남은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에게는 회보(會譜)가 있었는데 어느 촌에 묘회(廟會)가 있으면 곧 갔다. 묘회에는 예전에 사람이 많았는데 친구들은 친척방문을 하러 갔었다. 그들은 진상자료를 얻으면 서로 전해보고 의논하며 더욱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상을 알게 했다. 어떤 집에는 DVD가 없었으나 친척과 친구도 가져다가 볼 수 있게 되어 내버려 두거나 낭비를 조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농촌에는 묘회가 없었기에 점심시간을 빼내 가서 했다. 점심에 사람들은 모두 밥을 먹고, 휴식을 했으므로 거리에 한가한 사람이 아주 적었다. 특히 봄과 여름에는 특히 적었다. 이러면 하기도 빠르고 또 많이 했다. 그들이 오후에 집 문을 나설 때면 진상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아침에 발정념을 발하고 연공을 다 하고 책을 보았다. 그런 다음 좀 뭔가 먹고 몸에 어울리는 옷을 단정하게 입고는 앞당겨 준비해 놓은 자료를 가방 안에 넣고 물 한 병을 지녔다. 겨울에는 작은 사과나 배를 갖고 다니며 밥 대신 먹고 또 물 대신 먹었다. 배낭 안에는 펜을 넣었다가 적합한 곳을 마주치면 진상을 썼다. 그리고 진상을 알리는 전화를 지녀 한 편으로 진상을 배포하며 한 편으로 걸었다. 다른 사람은 사람을 찾는 것으로 보여 또 엄호할 수도 있었다. 또 차를 기다리거나 시간을 빼내 걸었으며 진상 화폐를 지녔다. 매번 외출하기 전에 나는 모두 이런 물건들을 한 편에 놓고 발정념을 발해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고 정신(正神)이 보호해 주시길 바랐다. 발정념을 다 발하고는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그 후 가까운 곳은 다 했기에 할수록 점점 더 멀어졌다. 어떤 때는 차를 3~4차례 갈아탔으며 자전거는 10여 리거나 20여 리를 탔다.

어느 한 번은 회보를 보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두 개 촌에 묘회가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하나는 동쪽이고 하나는 북쪽이었다. 나는 자료 두 주머니를 준비해 한 주머니는 들고 한 주머니는 메고 길을 떠났다. 차를 세 번 갈아타고 동쪽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보았는데 한 사람도 없었다. 이곳이 묘회가 맞나? 겨우 한 사람을 만나 물었더니 어제 모두 진행했는데 회보를 잘못 찍었던 것이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면 아직도 3~4km가 있었는데, 그곳은 아주 편벽해 중생도 서둘러 진상을 알고 구도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 점심 때에, 이렇게 태양이 강렬하고 불볕이 이글거리는데 또 자료를 두 주머니를 갖고 그렇게 먼 곳을 걸었다. 나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자료 한 주머니를 옥수수 밭에 넣어두고 표시를 하고 발정념을 했다. 그런 뒤에 햇볕을 무릅쓰고 자료 한 주머니를 메고 시골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걸어갔다. 날씨가 너무 덥고 신바닥이 너무 얇아 큰길은 플라스틱 신바닥까지 녹였다. 점심에는 길에 한 사람도 없었고 차량 한 대도 없었다. 나는 혼자 길을 걷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걸어갈지 몰랐다. 나는 물을 꺼냈는데 많이 마시면 없었기에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였다. 그리고 마땅히 이쪽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길에서 사부님의 경문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1]를 외웠다. 걸으면서 마을을 보았는데, 원래 농작물에 막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을에 들어섰는데 사람들은 어떤 사람은 시원한 바람을 쐬고 어떤 사람은 점심밥을 먹고 있었다.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았다. 나는 자료를 배포하며 진상 음성전화를 걸었고, 또 한 편으로는 인연 있는 사람이 진상을 얻고 서로 전해 보도록 발정념을 했다. 전 마을은 한 번 다 걷고 나서 나머지 자료는 또 메고 원래 길을 따라 걸어나왔다.

표시를 해 둔 그곳에서 또 자료 한 주머니를 꺼냈다. 나는 북쪽 마을로 갈지를 생각했다. 점심 때 태양 볕이 이렇게 강렬하고 또 거리가 멀어 큰길마저 녹을 듯 했다. 내 발은 여러 차례 10여 리를 왔다 갔다 해서 에이는 듯 아팠다. 나는 배고프고 지쳤으며 또 덥고도 목말라서 정말 걸을 수 없었다. 또, 오늘 북쪽 촌에 묘회에 온 사람이 많은데 마을 사람과 친척 친구들에게 진상을 얻게 하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집으로 가는 길과 좀 편했다. 나는 또 차를 두 차례 갈아탔다. 마침 오후 3시가 넘어서 날이 더욱 더웠고 차량 지붕 철판이 달아서 얼굴이 화끈화끈하게 아팠다. 차에서 내리자 발은 마치 불고기 철판 위에서 걷는 듯이 뜨거워 나는 발마저 땅에 닿을 수 없었다. 한 걸음을 걸으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억지로 발 측면으로 걸었는데 절뚝거리며 또 3~4리를 걸었다. 마을에 들어섰다. 이곳은 비탈에 접근한 산골이었는데 산길은 걷기가 힘들었고 높고 낮음이 평평하지 않았다. 나는 자료를 배포하며 발정념을 했으며 또 한 편으로 진상 음성전화를 걸었다. 그곳에서 앉아 휴식하며 진상을 알렸다. 그리고 사람을 도와 삼퇴(三退)를 하고는 마을을 나왔다. 걸으면서 전봇대 위와 적합한 곳에 진상을 썼다. 마음속으로는 ‘겨우 한 번 왔는데 좀 더 많이 해서 사람을 많이 구하자. 다음번에 언제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 마지막에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이미 오후 6시가 넘었다. 양말을 벗고 보니, 발밑은 데어서 계란만한 큰 물집이 생겼다. 나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너무 아프고 지쳤다. 나는 집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아예 몰래 잠깐 울었다. 그러나 중생이 구도 받고 사람을 많이 구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어느 한 번은 역시 자료를 배포하러 갔는데 나는 한 주머니를 멨다. 버스에 앉을 때 발이 갑자기 자동차 발판 위에 부딪혔다. 나는 아파서 자동차 계단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사악이 나를 가지 못하게 교란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한 편으로 발정념을 발해 사악을 해체하고 한 편으로는 이를 악물고 다른 좌석으로 기어가서는 다리를 한 번도 보지 않고 곧 사부님께 보호해 주시도록 빌었다. 차가 30여 리를 가서 차에서 내렸는데 다리는 절뚝거렸고 또 아팠다. 나는 참으면서 친구 집으로 가서 자전거를 빌렸다. 그 촌은 묘회가 있지만 차가 다닐 수 없었기에 5~6리를 탄 뒤에 자전거를 밀었는데 사실은 자전거에 지탱했다. 다리가 너무 아팠던 이유로 나는 절뚝거리며 한집 한집씩 진상을 배포해 전 촌을 한 번 다 걸어 다녔다. 그리고 인연 있는 사람이 진상을 얻고 서로 돌려가며 보도록 발정념을 했다. 집으로 되돌아갈 때 다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양말마저 감아져 내려왔다. 다리 위의 혹은 찐빵에 비해 더 컸고 중간의 큰 상처에서는 피가 흘렀다. 나는 질금질금 눈물을 흘리며 또 한 번 울었다. 어쨌든 또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수련함은 어떤 때는 매우 고생스러웠다. 겨울에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얼굴이 얼어서 부어올랐고 여름에는 뙤약볕이 내리쬐어 팔에 살갗이 일어나고 발에 물집에 생겼다. 밥을 먹지 못하고 물을 마실 수 없는 그런 일은 늘 있는 일이었다. 특히 농촌에는 조건이 또 좋지 않았다. 이런 것을 제외하고 또 더욱 이지적이고 안전에 주의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법 제자이며 세계상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행복한 생명이다. 오직 사람을 많이 구할 수 만 있다면 좀 고생을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것인가!

천문이 열리다

이렇게 많이 말했는데, 나는 마치 아주 고생스럽게 한 듯하다. 그럼 모두에게 기쁜 일을 말하겠다. 다들 모두 올해가 매우 덥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 한동안 시간에 나는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점심 11시 반이 넘어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는데 마침 태양이 가장 강렬한 때였다. 나는 진상 자료를 지니고 자전거로 15리를 타고 한 마을로 갔다. 마을 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때, 나는 갑자기 감각이 있었다. 머리를 들고 보니 하늘에 천문(天門)이 세워져 있었는데 높고 웅장하며 휘황하고 아름다웠으며 또 조각한 꽃무늬와 토템(totem)이 있었다. 하나의 의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이 촌(천국세계)의 중생이 구도되는구나. 신이 나에게 그들을 구하러 오게 했구나.”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다시 하늘을 보았는데 천문이 없어졌다. 나는 지금까지도 천문의 모양을 기억할 수 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사람을 많이 구하도록 격려하심을 깨달았다. 한 촌의 사람이 대법의 구도를 기다리는데 역시 한 천국 세계의 중생이 구도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는 촌에 들어서서 발정념을 발하면서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곧 션윈공연CD를 선사했다. 또 다음번에 가서 쉽게 하기 위해 인근에 몇 개 촌이 있는지 문의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걸으면서 알맞은 곳에 진상 표어를 써놓았다. 점심때는 너무 더웠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으로, 불광이 널리 비추네.”

정법위 서기가 놀라 당황하다

나는 시간이 있기만 하면 이리저리 다니면서 진상전화를 걸었다. 어떤 때는 아예 농작물 밭에 앉아 핸드폰 두개를 함께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 받기를 기다렸다가 또 다른 한 핸드폰을 걸 수 있었는데 시간을 절약하고 사람을 많이 구했다. 속인에게 전화를 건 외에 어떤 때는 또 밍후이왕에서 전화번호를 베껴 써서 악인이거나 다른 집 사람에게 걸었다. 어떤 때에 중생은 “알았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또 어떤 악독한 경찰은 “당신이 능력이 있으면 와 봐”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한 번은 부시장, 정법위 서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늘 받지 않았다. 나는 매번 먼저 그에게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다른 곳에 걸었다. 어느 한 번은 그가 전화를 받았다. 한 남자 목소리가 울려왔는데 흐느끼며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당신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먼 곳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법제자의 진상전화가 그렇게 큰 위력이 있으며 사악을 진섭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매번 많은 자료를 가졌기에 해마다 자료점에 2천 위안을 주었고 어떤 때는 3천 위안을 주었다. 나는 생활이 그다지 부유하지 않아 봄이면 야채를 캐서 먹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배를 채우기 위해 그는 무엇이든 잡히는 대로 먹었다. 오로지 배를 채우기만 하고 어떤 음식물이든지 집착이 없으면 상관이 없다.”[2]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은 중생에게, 대법제자는 쉽지 않는바, 진상을 소중히 여기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알려주고자 한다.

사존을 그리다

나는 닫혀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대법제자이고 사부님 말씀을 듣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함을 알았다. 다른 것은 또 많이 생각지 않았고 또 공상하지도 않았다. 사실 제자가 이 일들을 할 수 있었지만 모두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고 가호해 주셔서야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문장을 다 쓰고 원고를 심사할 때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아마도 사부님 은혜에 대해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서 눈물만 흘렸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을 지옥에서 건져주셨고 가호해 주셔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우리들을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행복한 생명으로 되게 하셨다. 이것은 천만 언어로도, 어떠한 방식으로도 보답해 드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는 늘 사부님을 생각한다. 사부님을 생각하기만 하면 뜨거운 눈물이 글썽인다. 나는 정말 사부님을 뵙고 싶다. 꿈을 꾸어서라도 좋다. 그러나 아직 뵌 적이 없다. 나는 다들 모두 잘 수련하고 용맹정진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람을 많이 구해야 하며, 또 사악을 좀 일찍 해체해 사부님께서 대륙으로 돌아오심을 영접하는 그때면 사부님을 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하면서 너무 기뻐 눈물을 또 흘렸다.

주:

[1]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2-정념정행(正念正行)’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밍후이왕 제10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English Translation: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22/143349p.html)

문장발표: 2013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기 대륙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0/2811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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