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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금강(金剛)의 의지를 주조해내다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대법을 18년 동안 수련했고 업력투성이로부터 정정당당한 대법제자가 되었다. 나의 제고는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에서 한걸음도 떠날 수 없었고 사존의 심혈을 기울이신 배치 하에 연마해낸 것이다. 제10회 대륙 법회에서 수련체득을 써 사존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다음은 나의 체득인데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1. 대법은 나와 가족이 새로 태어나게 했다

대법을 배우기 전에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곳곳에서 배척을 받았고, 집에서도 사랑을 받고 싶었으나 결혼 후 남편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리고 욕했으며 심지어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도 나를 때리고 욕했다. 내가 아이를 낳은 지 한 달쯤 남편은 시아버지와 두 시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나를 때렸다. 그들은 나를 바닥에 때려 넘어뜨리고 테이블을 던지고 물건을 엉망진창으로 뒤집어놓았으며 마지막에는 내 품속의 아이까지 빼앗아 갔다. 북방의 추운 섣달이었음에도 그들은 아이를 솜이불로 감싸지 않아 아이는 놀라고 배고프고 추위에 떨었다. 결국 자꾸 울어서 돌보지 못하게 되자 아이를 다시 내게로 보내왔다. 이후로 아이는 늘 침을 맞고 약을 먹고 입원했으며 나도 약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자주 혼절하고 입맛이 없었으며 서있기만 하면 어지러워 출근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자주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이따금 한번 들어오기만 하면 나와 아이를 한바탕 때리고 욕했다. 바닥은 물건을 집어던져 온통 엉망진창이 됐고 그는 아이의 울음소리만 남겨놓고 훌쩍 떠나버렸다.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인생은 길고 긴 밤과 같았으며 끝없는 고통이었다. 몇 번이고 다리에 가서 아이를 강물에 빠뜨리고 나도 따라서 뛰어내리고 싶었으나 매번 어린 아이가 생명을 잃는 것이 가슴 아파서 자살할 생각을 포기했다. 아이가 좀 더 커서 스스로 밥을 먹고 걸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먹여 살릴 수 있을 때까지 키우면 나는 정법(正法)을 연마하러 가겠다고 결심했다. 인간세상은 너무 험악하고 나는 다시는 이런 더러운 곳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가족이 가장 비참할 때 신기한 책 ‘전법륜’을 얻어 가족의 운명을 개변시켰다. 동료가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고 소개해 ‘전법륜’을 봤는데 책을 보던 첫날에 아이는 울지도 않았고 시끄럽게 굴지도 않았으며 조용하게 잠들었다. 대법책을 보고 연공하자 모든 질병이 내 몸에서 사라졌고 아이도 활발한 어린 대법제자가 됐다. 남편은 자발적으로 내게 “다시는 당신과 아이를 괴롭히지 않겠소”라고 했다. 동료는 살지도 죽지도 못하던 내가 정력이 왕성하고 얼굴색이 불그스레하며 신체가 건강해진 것을 보고 잇달아 대법 수련에 들어섰고 직장의 관리자도 대법을 배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좋게 변한 것을 보고 우리에게 큰 회의실과 마당을 제공해주고 단체 법공부와 연공을 하게 했다. 친척과 친구들은 나와 아이의 천지개벽의 변화를 보고 잇달아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2.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수련의 길을 바로 걷다

1999년 중국공산당은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선량한 사람에 대한 박해를 개시했다. 공안국, 파출소, 주민위원회, 직장 등에서는 한꺼번에 나와 수련생들을 공격했다. 그들은 각 방면의 능력을 유용해 집을 수색하고 소란을 피웠으며 감시하고 퇴직, 해고시키고 벌금을 물리며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시가와 남편의 압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남편은 이혼을 조건으로 걸고 나에게 대법수련을 포기하라고 협박했다. 대법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줄곧 찾았던 것이고 이렇게 위대한 법이 인간 세상에 널리 전해졌으며, 천년만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내가 만나게 됐는데 어떻게 되든 꼭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악들은 나의 확고한 의지를 동요시키지 못하자 나를 구치소에 납치해 갔고 불법 수감했다. 1개월, 2개월 가두고 괴롭혔는데 몸이 몹시 허약하게 되면 나를 석방했고 또 잡아 들이고 또 다시 석방하면서 이렇게 네 차례나 불법 수감시켰고 또 정신병원으로 납치해 한 달간 괴롭혀 죽을 지경이 되자 1,2만 위안(약 180만원, 360만원)의 벌금을 물리고서야 가족에게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그때 이미 나는 남편과 이혼했고 직장에서도 나를 해고했으며 몇 살 밖에 안된 아이는 외할머니가 키우고 있었다. 70여 세의 부모는 한숨을 내쉬고 몇 살 된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울었지만 나는 당시 사부님,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밖에 없었다. 대법을 수련하면 복이 많을 것이고 주위 사람들도 마땅히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들은 왜 나에게 대법을 포기하라고 협박하는 줄 몰랐고 수련 중 내가 어디가 부족한지 몰랐다.

법공부하고 자신을 바로 잡지도 못했는데 나는 또 불법 노동교양 3년을 받았다. 힘든 노예 노동, 층층의 세뇌, 각종 잔혹한 시달림에 나는 불구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후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이 기간에 우리 집은 두 차례 도둑을 당해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집 안 물건은 거의 사라졌으며 정원에는 잡초가 크게 자랐다. 부모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됐고 어머니는 링거를 맞고 계셨으며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낯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감히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다. 가족의 걱정하는 눈빛을 보고 “괜찮아요, 대법을 배우고 사부님께서 관여하시고 있기 때문에 법공부하고 연공만 하면 빨리 좋아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수련생은 내게 사부님의 신경문과 대법책을 보내줬다. 법공부를 통해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가 구치소, 노동교양소, 감옥에 수감되어 박해를 감당하시라고 배치하시지 않으셨고 이것은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라는 것이 명백했다. 내가 법리가 똑똑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었고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 몇 년을 헛되게 보내 사부님께 마음고생을 하시게 했고 친구와 친척에게 상처를 가져다 줬다. 나는 사존의 제자고 사존의 배치만 가지고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만 가겠다고 결심하고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법공부하고 연공한지 얼마 안 되서 불구가 됐던 신체도 건강을 회복했다. 주변 친척과 친구들은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3. 진상자료를 만들면서 제고하다

내가 노동교양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서 현지 자료점이 파괴되었고 수련생이 납치되어 기계와 소모품을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몇 년간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상태가 좋지 않고 가정환경도 좋지 않았으며 사악한 경찰도 소란을 피우러 왔다. 박해받는 기간, 나는 체계적으로 착실하게 법공부를 하지 못했으므로 정법노정에 뒤떨어진 것 같았다. 나는 컴퓨터, 프린터, 타자, 인터넷 등 기술에 대해 전혀 몰랐다. 기계는 우리 집에 쓰지 않고 내버려 두었고 사람을 구하는 진상자료를 공급할 수 없었다. 안달하는 나는 사존의 법상에 무릎 꿇고 절을 드리고 빨리 심성을 제고하도록, 기술을 아는 수련생이 와서 기계를 가져가도록 배치해 달라고 사부님께 요청을 드렸다. 이때 사존의 “사부의 세심한 배치다”라는 자비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사존께서 나에게 진상자료를 만들라고 격려해주시는 것이구나! 당시 비록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지만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하게 믿었고 사존께서 배치한 일이라면 꼭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와 가족들도 매우 지지해줬다.

처음에 컴퓨터, 프린터 등을 봤을 때 어디서부터 해야 할 줄 몰라 다른 수련생보고 사용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나는 수련생이 능란하게 손을 놀리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누르는 것만 보였지 절차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수련생은 기본조작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그녀가 마땅히 가르쳐줘야 할 것만 가르쳤다. 5분 안에 다 가르치고는 나보고 알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고 했다. 수련생은 또 빠른 속도로 내게 한번 가르쳐주고 또 내게 알겠느냐고 물었다. 수련생이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알았다고 했지만 사실 다만 수련생이 능란하게 키보드만 누르는 것만 봤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컴퓨터의 열기 닫기마저 몰랐다.

집에 돌아온 후 사존께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나는 이 키보드를 만져보고 이것저것 스위치를 눌러봤다. 사존의 인도 하에 나는 매우 빨리 진상전단지를 출력해냈고 컴퓨터, CD라이터, 프린터, 코팅기 등을 사용할 줄 알게 되었으며 독립적으로 타자, 인터넷 접속, 내려받기, 업로드, 편집, 조판, 설치, CD굽기, 수리 등을 할 줄 알게 됐다. 아이는 “엄마, 우리는 사진관하고 컴퓨터 장사를 해도 될 것 같아요”라고 칭찬했다.

수련생과 함께 각종 정교한 진상전단지, 소책자, CD, 호신부, 진상화폐를 만들었고 ‘9평’, 대법책을 만들었다. 컴퓨터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이 어느 학습반에도 참가하지 않고 짧은 시간 내에 이런 기술들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파룬따파를 수련했기 때문이다.

션윈CD도 만들었는데 2013년에는 션윈CD 제작 요구가 높아졌다. 밍후이왕 션윈CD 제작에 관한 요구가 나오자 나는 션윈CD의 제작, 전달, 배포, 기계 등에 관한 요구를 열심히 읽어봤고 사용하는 기계와 소모품의 품질, 기종, 브랜드 요구로부터 다운 받고 전달하고 제작하고 배포하는 등 과정까지 전부 엄격하게 사존의 요구대로 했으며 엄격히 관리했다. 진정으로 자료점의 CD 한 장, 진상자료 하나하나가 내용과 품질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작용을 일으키는데 도달하도록 하게 했다.

나의 가정 자료점은 7년 넘게 운영했고 사존의 극진한 보호 하에 갈수록 더 잘 되어가고 있다.

4. 사존께서 주신 신필(神筆)로 법을 실증하다

사부님께서 현지 사악을 폭로해야 한다는 설법을 하신 후 우리 지역 일부 수련생은 개인적으로 혹은 작은 범위 내에서 사악을 폭로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으며, 일부 문장들 역시 밍후이왕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수련생이 박해당한 소식에 어두운 등 원인으로 보도해낸 문장의 정보가 완벽하고 상세하지 못했으며 인명, 지명의 오류도 있었다. 빈번하게 수련생을 박해하는 지역이지만 현지 사악을 폭로하는 문장이 매우 적고 제때에 보도되지 않았다. 밍후이왕에도 우리 지역 사악을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폭로하는 전체 문장이 없었고 사악을 폭로하는 지방 전문 소책자가 없는 것을 발견하자 이 일을 하겠다는 일념이 나왔다.

이 일을 하려면 온 지역 그렇게 많은 현지 수련생과 연락해야 하고 확인하며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일이 매우 많다고 생각했다. 현지 수련생을 많이 몰라 연락할 수 없었다. 사존께서는 내가 하려는 소원을 보시고 도와주셨다. 그날 저녁 비몽사몽간에 있는데 많은 수련생이 우리 집에 날아왔다. 그들을 이전에 만나본 적이 없지만 또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내게 또 현지 수련생이 납치됐는데 그들을 도와 자료를 좀 정리하고 빨리 수련생을 구원해달라고 했다. 나는 납치된 수련생을 모른다고 하자 그들은 내게 많은 자료와 전화번호, 인명을 가져다줬고 어떤 수련생은 단독적으로 내게 상황을 소개했다. 이때 나는 꿈에서 깨어났고 시간은 새벽 1시였다. 꿈 속 장면이 눈앞에 생생했다. 나는 즉시 일어나 옷을 걸치고 밍후이왕에 접속하자 우리 지역 두 수련생이 박해를 당했다는 소식이 눈에 들어왔고 꿈속에서 말한 것과 똑같았다. 그러나 보도는 매우 간단했고 소식은 하나뿐이었으며 악인의 이름, 전화 등 정보도 없었다. 이 현의 수련생은 한 명도 연락할 방법이 없었는데 내가 무슨 방법을 통해 이 현 수련생을 찾을 수 있겠는가? 기차를 타고 갈까 택시를 타고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이때 사존의 법신이 오셔서 “효율이 너무 낮다. 금강불파의 정체를 형성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밍후이왕에 있는 우리 지역의 모든 수련생이 발표한 박해문장을 전부 내려받고 아직 어떤 자료들이 부족한지 찾아내고, 어느 방면에 보충할 필요가 있는가를 확인했으며, 어느 정보를 내가 다시 수련생을 찾아 보충해야 하는지 전부 지역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했다.

며칠이 지나서 두 이웃 현의 협조인이 나에게 한번 왔다가라고 해서 갔는데 그들에게 나의 생각을 말하자 수련생들은 매우 지지했고 내게 많은 전화번호와 자료를 제공해줬다. 이 협조인을 통해 나는 수련생이 수감되어 있는 곳을 찾아갔고 현지 수련생과 연락할 수 있었으며 직접적인 자료를 얻어냈다. 잇따라 기타 몇 개 현 수련생도 자발적으로 내게 편리한 조건을 제공해줬고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모든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줬으며 수련생들도 매우 지지했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1]였다.

나는 우리 온 지역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를 당하고 사악한 경찰, 악인, 악행, 악보, 대법수련 중 신기함, 세인이 진상을 명백한 후 복을 얻은 실례를 종합 서술해 밍후이왕에 보냈다. 잇따라 또 수련생이 전해준 대법이 좋다는 장편 실화 문학을 정리하고 투고했다. 세인의 전화번호, 공검법(공안, 검찰, 사법) 관련자의 정보, 수련생이 박해당한 상황을 수집하고 확인했으며, 체계적으로 공검법과 ‘610’의 사악한 경찰들의 범죄 사실을 폭로하는 진상전단지, 녹음전화와 소책자로 편집해 제때에 투고했으며, 인터넷 법회, 일상 교류문장을 타자하고 문장을 수정하고 투고했으며, 중요한 명절 카드 제작, 엄정성명, 정중성명, 삼퇴성명을 투고했고, 적시에 현지 최신 정보 등을 보도했다. 밍후이왕 통신원을 잘하는 것도 내가 법을 실증하는 일부분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법시기에 밍후이왕 통신원이 되고 펜으로 법을 실증할 수 있어서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5. 강인한 의지를 연마해내다

최후일수록, 높은 곳으로 연마할수록 사존께서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가 더욱 엄격해졌다. 올해 사람을 구하는 긴박감을 더욱 느꼈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고 대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며 3가지 일을 잘해내지 못한다면 심지어 중생을 구도하는데 손실을 준다는 것을 깊게 체득했다. 올해 각 항목 때문에 나는 눈코 뜰 수 없었고 사존께서 매우 긴박하게 배치해주셨는데 이 항목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다음 항목이 벌써 왔다. 마음의 용량을 확대시킬 필요가 있고 강인한 의지를 주조해야 하며 정법이 나에 대한 요구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3월의 어느 날 아침밥을 먹지도 못한 채 컴퓨터, 프린터를 켜고 종이 자르는 칼을 꺼내며 진상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한창 바쁠 때 수련생에게 전화가 왔는데 어린 수련생에 관한 일인데 한번 왔다가라고 했다. 1면 밖에 출력하지 못한 전단지와 소책자를 정리하지도 못한 채 부랴부랴 수련생들이 있는 곳에 가서 교류하고 오후 4시에야 집에 돌아왔다. 나는 즉시 기계를 켜고 아침에 아직 완성하지 못한 진상자료를 만들려고 하는데 얼마 하지 못했는데 외지 수련생 전화가 왔다. “한번 왔다가요. 오늘 저녁 기차로. 내일 아침 마중 나갈게요. 이렇게 하죠”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선택할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내 전화번호를 알지만 나는 그녀 전화번호를 몰랐는데 그곳 안전을 위해 우리는 모두 공중전화로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이 외지 수련생에게 그들 현지 수련생들이 박해받은 것, 대법 중 혜택을 본 것, 사악한 경찰의 악행악보의 실례를 정리하겠다고 했다. 협조인들이 함께 모여서 말로 좀 정리하거나 초고문장을 쓴 후에 내가 종합정리하기로 했다. 아마 수련생들이 다 준비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손에 있는 자료는 아직 준비되지 못했다. 나는 밍후이왕에서 내려받고 손에 있는 그들 지역 수련생이 박해받은 상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종합하며 출력하고 책으로 만들어 가져가야만 거기에 있는 수련생에게 보여주고 수련생들이 다시 확인하고 수정하고 보충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밥 먹을 틈도 없이 즉시 컴퓨터를 켜고 정리했는데 차 떠날 한 시간 전에야 드디어 다 정리해냈다. 그제야 밥 먹을 생각이 나서 밥을 하면서 옷을 정리했고 컴퓨터, 프린터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진상자료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커버로 씌워놓고 내일 저녁에 계속 하려 했다. 시간을 보니 차 떠날 시간이 반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집에서 역까지 걸어서 가면 40분이 걸리는데 택시를 못 잡으면 뛰어가야 했고 아니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었다. 나는 뛰면서 (한밤중이기 때문에 길에 행인이 없었다.) 꼭 제 시간에 도착해달라고 사부님께 요청했다.

6시간 기차를 타고 나는 순조롭게 수련생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러 사람들이 하나하나 정보를 확인하고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4시 기차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마침 현지 수련생이 오늘 저녁 기차를 타고 헤이룽장성 여자 감옥에서 가서 불법적으로 몇 년간 수감된 수련생을 구원하겠다고 했다. 나의 첫 일념은 집에서 발정념하려고 했다. 원래 그들은 이미 사람을 다 정해놓았고 표도 사놓았는데 그들은 내가 임시로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고 결정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마음의 준비도 없고 교통비, 식비도 부족하며 집에 기계, 자료, 소모품도 아직 잘 정리하지 못했고 직접 감옥, 사법국, 감옥 관리국, 법원, 검찰원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아직 해본 적이 없어 두려움이 매우 많고 정념도 부족했는데 나는 자신의 상태 때문에 정체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나의 상황을 수련생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수련생은 “꼭 당신보고 제1선에 가라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자료를 좀 정리하고 인터넷에 업로드 해달라는 겁니다”라고 했다.

수련 중에 우연한 일이 없고 대법의 수요라면 나의 무조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기차역에 도착하자 사존의 법신이 오신 것을 봤다. 나는 사존께 왜 가게 배치하셨는지 물었다. 사존의 법신께서는 “대오에서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 온 이상 수련생들과 함께 있고 제1선에서 사람을 구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사존의 법신께서는 또 발정념을 중시하라고 하셨다.

10여 시간 기차를 타고 우리는 마침내 내렸다. 간신히 우리를 마중하러 나온 수련생을 만났고 반시간을 기다려서야 버스에 올라탔는데 연속 잠을 못자고 휴식을 적게 했는데 버스 안이 매우 비좁아 나는 차멀미를 하기 시작했고 메스꺼워 죽을 뻔 하면서 견디기 어려운 1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차에서 내린 후 머리가 무겁고 얼굴색이 창백했지만 우리는 또 3여리 길을 걸어서야 수련생 집에 도착하고 단체 법공부와 교류를 했다. 차멀미를 해서 메스꺼워 밥도 먹지 못했고 수련생의 집이 좁아 모두 잘 수 없어 다른 한 수련생은 자발적으로 그녀 집에 가서 자자고 했다. 우리는 저녁 8시쯤 버스 정거장에 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1시간 버스를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탔는데 길이 막히고 비좁았으며 추웠다. 게다가 차멀미하는 바람에 고통스러웠지만 주변 사람 몸에 토하고 버스 안을 더럽힐까봐 꾹 참고 나는 대법제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수련생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쯤이었다. 세수하고 12시 발정념하고 우리는 자료를 새벽 2시 넘게까지 정리했다. 피곤해 컴퓨터 키보드에 엎드려 있는 60여 세 노인 수련생을 보자 “밍후이왕 통신원을 하는 것은 정말로 고생이구나. 평소에 다른 수련생들과 항목에 참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수련생이 휴식할 때도 시간을 다그쳐 문장을 정리하고 제때에 보도해야 하니”라고 감동했다. 이튿날 아침 버스를 타고 어제 그 수련생 몇 명을 찾아가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하며 어떻게 수련생을 구원하겠는지 상의해야 했다.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나는 좀 무서워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2]를 묵념하면서 사존께 가지해달라고 요청했고 발정념해서 모든 방해와 박해를 제거했다.

여러 사람이 점심식사를 할 때 나는 내부 메일로 수련생들과 연락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아직 끝내지 못했는데 수련생들은 감옥에 가서 사람을 구원하러 갈 준비를 했다. 나는 얼른 거두고 수련생을 따라 차에 올랐다. 여자 감옥에 도착했는데 경비실 경찰은 처음에 난폭하게 굴면서 면회를 못하게 하고 통보하지 않았다. 우리가 발정념하자 경찰이 전화로 통보하더니 내일 아침에 면회하게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수련생을 구원하는 과정은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튿날 우리는 또 여자 감옥에 갔는데 면회 날이라 사람이 많아 길게 줄을 섰다. 나와 수련생은 묵묵히 발정념하고 주변 세인에게 진상을 알렸다. 이후에 면회하러 온 경비실 사람은 거의 다 면회하게 했는데 아직 우리 차례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가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들의 선념을 계발해서야 그들이 다시 한 번 통보하고 들어가 면회하게 했다. 들어간 후 감옥 ‘610’, 대장 등 사람은 우리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인지 캐물었다. 수련생은 “연마하든 하지 않든 우리가 가족을 만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경찰은 말문이 막혔다. 잇따라 신분증과 면회증을 달라고 했다. 수련생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그들은 전혀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련생을 감옥 ‘610사무실’로 끌고 갔다. 돌아온 후 우리는 안을 향해 찾았고 모두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냈다. 두려움이 있고 자비심이 부족했으며 그들을 구하려면 그들의 선한 일면을 불러일으켜야 하고 악한 일면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존께서 설법 중 “진상을 말하는 것이 만능열쇠”[3]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우리가 아직 진상을 똑똑하게 잘 말하지 못했고 여러 수련생은 어디에 가든지 중생을 구도하는 이 주선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수련생은 내가 문자자료를 정리하고 사법국, 법원, 검찰원 등 부서에 가서 사람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그들이 석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들이 진상을 명백하게 하고 그들을 구도하도록 하겠다고 결정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 당신들 앞에 놓인 길은 오직 착실하게 수련하는 길 뿐이며 다른 길이 없다”[4]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지역에 많은 정진하는 수련생들은 모두 여러 항목을 겸하고 있다. 기술자이기도 하고 각 지역 협조인이기도 하며, 소모품을 사기도 하고 CD와 진상자료도 제작하고 배포하기도 하고, 직장도 있고 가정도 있고 법공부도 하고 연공도 하고 바쁘면 밥도 못 먹고 잠자는 시간도 매우 적었다. 그리고 또 주변 세인, 가족의 구제를 생각해야 했는데 다른 방법이 없고 오직 법에서 제고하고 스스로 노력하고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

성 소재지에서 돌아온 후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단층집을 개조하고 어머니가 이사하고 언니가 이사하며 두 여동생도 이사하기 시작했는데 두 달 동안 이사하는데 바빴다. 그들의 어떤 물건은 놔둘 곳이 없어 우리집은 단층집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물건을 우리집에 끌어다 놓거나 내게 줬으며 우리집에 창고를 지었다. 우리집으로 슬라브, 나무판자, 크고 작은 단지를 실어와 정원과 대문 및 채소밭에 전부 던져놔 발 디딜 곳도 없었으며 내가 또 접대해야 했다. 가족은 또 일부 일꾼을 찾아 일을 돕게 했다. 내 방안에는 간단한 일상용품 외에 모두 소모품, 기계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숨겨야 할까? 진상자료를 만드는 것을 멈추면 수련생은 자료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프린터, CD라이터를 잘 설치해 기계가 자동적으로 일하게 했고 문을 닫아걸고 바깥에서 일을 했다. 더운 날이라 가족과 일꾼도 덥고 힘들어 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휴식할 때 그들은 앉아있거나 나무판자에 누워있었다. 예의상 그들보고 방안에 들어가 휴식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괜찮다고 했다. 사존의 보호 하에 어느 가족 혹은 일하는 외부 사람은 누구도 방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사존의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수련하지 않는 남동생과 아버지는 방 열쇠를 갖고 있었지만 몇 번 문 앞에서 열쇠로 열어봤지만 열지 못했다. 그때 나는 방안에서 진상자료를 만드는데 바빴다.

이사하는 두 달 동안 나의 기계는 계속 일했고 수련생도 제때에 션윈CD, 진상자료를 수많은 집에 배포했으며 사부님의 신경문과 새로운 책 제작도 하나도 지체하지 않았다. 약 3개월 만에 수련생의 협력 하에 아름다운 션윈CD만 해도 2,400여 장을 만들었고 CD케이스는 비교적 비싼 케이스를 사용했으며 CD는 품질이 가장 좋은 대만산 양장본을 사용했고, 한 장 한 장 CD에 표지를 인쇄하고 CD케이스 속표지는 한 장 한 장 가위로 직접 잘라 냈으며 포장하기 전에 하나하나 검사했다. 우리가 마음을 써서 하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고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함은 진짜로 수련하는 대법제자 몸에서 체현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6. 협조하고 협력하는 중 착실히 수련하다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어떻게 세우고 완성해야 하는가는 협조인으로서 마땅히 중시해야 하는 문제다. 사존께서는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수련은 일맥이 백맥을 이끄는 이런 형식을 피하여, 시작부터 백맥을 이끌어 동시에 열며, 백맥을 동시에 운행할 것을 요구한다.”[2] “최후에는 만여 갈래 맥이 한데로 이어지게 하여, 맥이 없고 혈(穴)이 없는 경지에 도달해 전반 신체가 하나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통맥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적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만여 갈래 맥이 한데로 이어지게 하고 현지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서 금강불파(金剛不破)의 정체를 형성할 수 있는가는 협조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 마땅히 될수록 매 항목을 만들고 완벽하게 해야 하는 동시에 정체 제고하고, 수련생들이 각자 특성에 따라 각종 항목 중에서 더욱 좋게 충분히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줄곧 수련생이 법리에 대해 이성적인 인식으로 매 대법제자를 연결하고 정체를 형성하며 함께 정진하려고 생각했다. 여태껏 늘 이 수련생을 도우면서 또 저 수련생을 이끌었고 이 수련생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또 저 수련생이 뒤떨어질까봐 걱정했으며, 이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하고 저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 했으며 이 법공부팀을 조직하고 또 저 법공부팀을 조직했다. 마음속으로는 일부 수련생이 어찌 그렇게도 정진하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이후에 나는 갑자기 내가 제고하도록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것이고 여러 수련생이 나를 도와 제고시켜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존께서는 나에게 보기 드문 수련환경을 배치해주셨다. 내가 정진하지 않기 때문에 정진하지 않는 수련생을 보게 하셨고 사람 마음이 있기 때문에 수련생들의 사람 마음을 보게 하셨다.

법회 교류문장을 쓰면서 협조인의 몇 편 교류문장을 보고 나는 안을 향해 깊게 찾아보았는데 나도 비슷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현지 보도원이고 협조인이며 현지 대법 수련 중 특수한 경험과 자신의 우월한 조건 등 요소가 있어 자기도 모르게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다른 사람이 비평하지 못하게 하며 스스로 잘난 체하고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지도하기 좋아했다. 철이 강으로 제련되지 않은 것을 원망하고 정체가 신속히 제고되기를 조급하게 바라는 긴박감 등 집착이 있었으며 연마하지 못한 과시심은 무의식중에 주위 수련생들이 나에 대해 의존하는 마음, 숭배하는 마음이 생기게 했다. 나의 모든 능력과 우월한 조건은 모두 사존께서 주셨고 나에게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라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수련에는 지름길이 없다. 표면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 승화하고 심성 제고야 말로 중요한 것이다. 협조인은 우선 수련인이고 기타 수련생과 차별이 없고 다만 분야가 다를 뿐인데 다른 수련생보다 높고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고 시시각각 법을 실증하는 것을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

7. 마음속에 자비를 품고 진상을 알리다

처음에 진상을 알릴 때 나의 두려움, 우려, 체면이 매우 심했고 몇 번 진상을 알리겠다고 결심하고 나갔어도 입을 열지 못하고 한 바퀴 돌고 한 사람에게도 진상을 못 알리고 또 돌아오곤 했다.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안 돼, 꼭 나가서 진상을 알려야 해’라고 후회했지만 세인을 만나면 여전히 두려워하는 마음에 방해돼 한 사람에게도 진상을 못 알리고 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자비로운 사존께서 이끌어주셔서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위로 연마했고 내가 마땅히 진상을 알려야 하는데 관념의 집착에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을 보시면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 진상을 알리도록 나를 격려해주셨다. 기억하건대 한번은 내가 흥성한 중앙대로 슈퍼 앞에서 정념이 족하지 않아 또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피하려고 하자 이때 사존께서는 “법은 중생을 제도하고 사부가 인도하나니 돛 하나 오르자 억만 돛이 나부끼네”[5]를 내 머리에 반영하셨다. 사존의 법은 대법의 무한한 법력을 갖고 층층 우주를 꿰뚫고 나의 깊은 마음속을 흔들어 진아(眞我)가 깨어나자 즉시 모든 두려움의 집착이 모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나는 당당정정한 정법시기 대법제자고 중생을 구도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신성한 책임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가 세인에게 진상을 알렸다. 이후로 생활 중, 사업 중, 내가 접촉하는 세인마다 연령, 직업계층, 문화정도, 빈천하고 부귀하든 관계없이 모두 내가 진상을 알리는 대상이고 내가 구도하려는 중생이 됐다. 지금 진상을 알리는 것은 이미 단단히 나의 생활 속에 관통됐다. 내가 나가서 진상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진상을 알리는 것은 이미 나의 생활, 사업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어 접촉할 수 있는 모든 세인에게 대법의 복음을 가져다줬다.

그날 슈퍼에 갔다가 금방 판매원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켜주고 고개를 들었는데 이전에 늘 우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 수련을 포기하라고 나를 협박하고 납치했던 경찰을 봤다. 내가 자발적으로 그에게 인사하자 그는 즉시 다른 코너로 피했다. 나는 따라가서 그에게 “파룬궁은 진선인(眞善忍)의 표준대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이미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으며 세계에서 오직 중공(중국공산당)만 박해하고 있습니다. 장쩌민은 이미 전 세계에서 고소당했고 보시라이, 왕리쥔 등은 이미 판결을 받았습니다. 파룬궁을 박해하는 두목도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데 누가 당신을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는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가 계산대로 계산하러 가자 나는 또 따라갔다. 그는 “왜 자꾸 날 따라다녀요?”라고 하자 나는 “당신과 가족이 좋은 미래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라고 했다. 그는 “파룬궁은 정말로 대단해요”라고 하고 슈퍼를 나가자 나도 따라서 나왔고 그와 함께 걸어가면서 그에게 “이전에 나를 납치하고 박해했지만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 당신에게 파룬궁 진상을 똑똑하게 말해줘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난 일하는 것뿐이고 돈 벌고 생활하기 위한 겁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박해를 멈추고 대법을 선하게 대하고 파룬궁 수련생을 선하게 대하며 파룬궁에게 준 손실을 만회하기 바라고 중공의 모든 조직에서 탈퇴하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는 즉시 당, 단, 대에서 탈퇴하겠다고 했고 이후로 다시는 파룬궁을 박해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시인했다.

이후로 진상을 알리는 질을 중시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고 3가지 일을 잘하여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겠다.

대법을 수련한 10여 년에 나는 시시각각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내가 성공한 사건마다 매번 제고와 승화에는 모두 사부님의 커다란 감당과 지불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말로도 사부님의 불은호탕(浩蕩佛恩)을 다 말할 수 없고 모든 문자를 다 사용해도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수승(殊勝)함을 써낼 수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2-사도은(師徒恩)’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각 지역 설법4-2003년 애틀랜타 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각 지역 설법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5]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2-심자명(心自明)’

문장발표: 2013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8/2811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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