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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수련생을 구출하는 중에서 세인을 구도하다

글/ 후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39세 생일에 운 좋게 대법을 얻었고, 사존의 홍은자비와 구도 속에서 18년의 비바람 몰아치는 여정을 지나왔다. 밍후이왕 제10회 법회에 즈음하여 정법수련의 비범한 세월에 내가 수련생을 구조하는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사람을 구한 심득체험을 은사님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법을 얻기 전, 나는 우리 지역 정부기관 직속 접대기관에서 접대업무를 주관했다. 말로는 부서 책임자였지만 대부분 내가 한 일은 총책임자의 일이었다. 특히 나는 법을 얻기 전후 8년간 여러 차례 국가 대형 접대활동을 책임졌다. 그때 나는 상급 지도자가 지명한 대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나의 직위는 영향력이 높은 위치였고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생기는 게 많은 자리였다. 그러나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명리를 따지지 않았으며 일을 할 때는 열심히 책임졌다. 고객을 대함에는 열정적이고 빈틈없었으며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했다. 업무상 거의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았기에 전국에서 시중들기 힘들다고 이름난 사람마저 여러 차례 우리 직장을 지명하면서 이곳에 투숙해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철도총회사의 총지휘장, 총회계사는 우리 회사에서 떠날 때 사례연회에서, 내가 사리를 도모하기 위해 입 한번 열지 않았으며 사업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그들에게 입을 열기만 하면 나는 적으면 몇 만, 많으면 몇 십만의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원인을 묻자 나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에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모두 내가 바보라고 여기면서 불가사의하다고 느꼈다. ‘어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이렇게 좋은 돈 벌 기회를 뜻밖에 싫다고 하면서 고생만 하다니.’

그때 나는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후에 나는 그 당시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부님께서 법을 얻기 전부터 나를 관리하셨기 때문이라고 깨달았다. 나에게 심성을 지키고 업을 적게 짓게 했기 때문에 법을 얻자마자 용맹정진할 수 있었다. 법공부한지 10여 일 만에 나는 온몸의 병이 전부 없어졌고 날마다 생기가 넘쳤으며 40세 되는 사람이 20여 세 같았다. 법공부하는 것도 절실했는데 날마다 직장일이 얼마나 바쁘든지, 얼마나 힘들든 지 막론하고 나는 꼭 시간을 짜내어 법공부를 했다. 단체 법공부에서 사람들은 모두 가부좌하는 시간의 길고 짧음을 비겼지만 나는 언제나 법공부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비겼다. 그때 착실하게 배움을 비기고 수련한 덕에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다른 공간의 특별한 광경을 보여주셨다. 또 말솜씨가 좋은 개성과 교제능력 및 남과 잘 어울리며 처세하는 수준이 비교적 강한 특징 등등도 모두 대법 및 대법제자가 위기에 처한 기간에 법을 실증해야 할 소질을 사부님께서 부여해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인도 하에 수련생을 찾았고 박해 첫날 공안국을 놀라게 하다

99년 ‘7.20’ 그 날 나의 심정은 특별히 무거웠고 아주 불안했다. 아침 일찍 직장에 와서 책임자를 찾아 휴가를 냈다. 이전에 내가 한 번도 휴가를 낸 적이 없었기에 그는 놀라며 말했다. “나는 출장가려고 하는데 당신이 회사의 모든 업무를 책임져야 해요!”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아주 조급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저는 아주 피곤해요. 저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는 아주 확고한 내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좋아요! 당신은 하루만 쉬어요!” 내가 물건을 정리하고 직장 문을 나오자마자 급히 나를 찾아오는 두 수련생을 만났다. 어제 한밤중에 우리 이곳 보도원 몇 명이 모두 경찰에 잡혀갔고 현재 어디에 갇혀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들은 후 크게 놀라서 즉시 한 보도원집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파악했다. 그런 후 더 생각지도 않고 그 두 명의 수련생에게 말했다. “가요, 가서 사람을 내놓으라고 합시다!” 그 중 한 수련생은 시내에 그렇게 많은 파출소가 있는데 어디에 가서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겠냐고 말했다. 나는 그럼 한 곳 한 곳 찾아가 보자고 했다. 본 관할구역 파출소 문 앞에 왔을 때 한 가닥 힘이 나를 밀고 앞으로 나가는 것을 느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물었다. “누구를 찾죠?” 내가 머리를 들고 보니 공교롭게도 공안국장이었다. 이전에 그를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이것은 진짜 사부님의 배치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답했다. “당신을 찾습니다!” 이 때 그도 나를 알아보았다. 이렇게 되어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직접 그에게 우리의 보도원을 붙잡아오지 않았는지, 현재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는 듣자마자 나를 한쪽에 끌어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모두 상급에서 하라고 시킨 것이기에 나도 방법이 없어요.” 나는 듣자마자 즉시 엄숙하게 그에게 말했다. “그들이 무슨 법을 범했나요?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일뿐이고 날마다 연공장에서 테이프를 틀어놓고 깨끗하게 청소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보기에 저는 좋은 사람이지요. 그들은 저보다 더 좋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연공을 하여 몸에 병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국가에 많은 의료비를 절약해주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자신에게 요구합니다. 사회 풍기도 좋아지고 정말 나라와 국민에 모두 유리합니다. 당신 부인도 연마하지 않나요? 당신들은 왜 이런 좋은 사람을 붙잡지요?” 여기까지 들은 그는 놀라서 얼굴색까지 변하면서 얼른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이미 연마하지 않아요! 이 일은 상급에서 시킨 것이기에 나도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은 국장인데 당신의 말을 그들이 감히 듣지 않을 수 있나요? 당신이 그들에게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세요!” 그는 즉시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아마 내가 말해도 안 될 겁니다!” 그의 말을 듣자 내 마음 속은 즉시 일종 불길한 느낌으로 휩싸였고 나의 심정은 더욱 무거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할 수 없이 그와 몇 명 경찰에게 바른 말을 했다. “그럼 당신들은 마음대로 우리 보도원을 때리면 안돼요! 누가 때리면 누가 꼭 보응을 받을 겁니다!” 그들은 얼른 웃으면서 말했다. “어찌 그럴 수 있겠어요! 안 때려요, 안 때릴 겁니다!”

경찰이 진상을 알게 되니 환경이 느슨해지다

2000년 하반기 어느 일요일, 나와 같은 법공부 팀에 있는 A수련생이 갑자기 전화를 나에게 걸어 말했다. “지금 경찰 두 명이 우리 집에 있는데 그들에게 뜨거운 물을 부어주는 기회를 이용해 전화하는 겁니다.” 나는 듣자마자 생각했다. 이 수련생은 베이징에 청원을 간 적이 있는데 지금 경찰이 그녀를 찾아가 무엇을 하려는가? 안 된다. 나는 반드시 즉시 가서 보아야겠다. 그리하여 나는 고구마를 담아 들고 고구마를 그의 아이에게 먹이려 하는 척하며 한 수련생과 함께 그의 집에 들렀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A수련생 집에 도착하자 멀리서 수련생의 4살 아들의 우는 소리가 들렸고 아이는 두 사람이 엄마를 데려갔다고 말했다. 둘러보니 집은 수색 당했고 집안은 난장판이 됐는데 평소 책상 위에 놓여있던 대법책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함께 온 수련생에게 말했다. “안 좋은데요, 틀림없이 파출소에 끌려갔어요, 당신은 빨리 가서 그의 집 식구들에게 알려주세요. 저는 파출소에 가 보겠어요.” 말이 끝나자, 나는 급히 파출소에 달려갔다. 길에서 나는 끊임없이 금방 배운 경문을 외웠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1] 파출소에 도착하자 나는 한눈에 A수련생이 수위실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기지를 발휘해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여기서 뭘 해요? 당신 아들이 울면서 가련하게 도처에서 당신을 찾던데 나에게까지 찾아왔어요. 현재 우리 집에 두었어요!” 이 때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경찰이 바로 파출소 지도원임을 알아보았는데 그는 예전에 우리 회사에 와서 나를 감시했기에 그를 알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에게 아는 척을 하며 말했다. “당신들은 그녀를 데려다가 뭘 하려고 그러죠? 그녀는 나쁜 일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 그녀 아이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울고 있는데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들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어요. 그녀 형제도 모두 만만치 않고 또 게다가 우리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모두 선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들이잖아요! 빨리 그녀를 돌아가게 하세요!” 그러자 그 지도원은 그녀가 밖에서 늘 파룬궁을 선전한다고 누가 제보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게 뭐 그리 나쁘죠? 법을 범한 것도 아닌데”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론 수련생을 밀고 밖으로 걸어 나갔으며 이렇게 때 맞춰 수련생을 구해냈다.

돌아온 후 나는 또 반드시 이런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그들이 또 와서 소란을 피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 지도원의 전우(수련생임)를 찾았고 함께 그에게 진상을 알릴 일을 상의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충분한 준비를 했고 많은 자료를 찾았으며, 한번은 지도원 집에 찾아가서 진상을 알리고 그에게 다시는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 것과 다시는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는 일을 관계하지 말 것을 권했다. 그런 후 우리는 또 밖에서 몇 번 그를 만난 기연을 이용해 그에게 몇 번 진상을 알렸다. 이후에 그는 진짜로 다시는 파룬궁을 박해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또 삼퇴를 했다. 어느 한번, 그와 파출소소장, 부소장은 우리 직장에 와서 이른바 ‘관심 방문’을 했는데, 사실은 내가 또 베이징에 가서 청원을 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나는 또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한 시간 동안 진상을 알렸고 떠날 때 그들은 또 나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2001년, 전시 공안계통 인원의 대 이동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간호사의 남편은 원래는 향진의 정법위 서기였는데 현재 우리 관할구로 전근되어 파출소 소장이 됐고 전문적으로 나에 대한 감시 관리를 책임졌다. 나는 이 간호사를 찾아 그녀의 남편에게 진상 자료를 가져가서 보여줄 것을 부탁했고 또 남편에게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남편이 아주 바쁘다면서 아마 나를 만날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이튿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가 골목 어귀를 나갈 때 그녀의 남편과 우연히 만났다. 당시 나는 ‘진짜 내가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면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배치를 해주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금방 그를 만나보고 싶다고 말하자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묘하게 만나게 해주셨다! 나는 그인 것을 보고 얼른 말했다. “당신이 소장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봐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모레 내가 당직을 서니 나를 찾아오세요!” 나는 통쾌하게 대답했다. 그 후 나는 치밀한 배치와 준비를 했다. 우선 그의 상황에 근거해 자세한 자료와 서적을 준비했고, 또 그가 제기할 수 있는 일부 문제에 대비해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생각해놓았으며, 또 수련생이 나를 위해 발정념을 하도록 배치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말을 완곡하게 하며 어조가 선해야 함을 각인시켰다. 약속한 그날이 되자 나는 제때에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고 그와 두 시간 동안 상세히 말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99년 ‘7.20’ 그날, 상급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전 향(鄕) 백여 명 파룬궁 수련생들을 향 강당에 모이게 했는데 이 사람들은 하루 동안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시 파룬궁이 어떻게 된 건지 특별히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나처럼 그들 부부가 모두 비교적 탄복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왜 파룬궁을 연마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가 제기한 이런 문제에 근거해 그에게 파룬궁을 소개하고 자신이 수련 후 심신에 발생한 거대한 변화를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대법이 널리 전해진 후 중국에 1억이 넘는 사람들이 수련하고 사회도덕이 승화됐으며, 대법이 국외 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전파됐지만 유독 중국에서만 박해를 당하는 등등 문제를 이야기했다. 마지막에 나는 또 그에게 파룬궁 문제를 대할 때 눈을 감아주라고 권했다. 자신의 직무의 편리한 점을 이용해 파룬궁 수련생을 보호하고 자신을 위해 공덕을 쌓아야 장래에 좋은 미래가 있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떠날 때 나는 가져간 자료를 모두 그에게 주었고 그는 꼭 시간을 내어 자세히 볼 것이라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한 생명이 명백해졌으니 사부님 가지해 주세요. 집에 돌아간 후 사부님의 법상을 보니 마치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몇 년간, 이 소장이 임직하는 기간에 앞에서 말했던 A수련생이 밖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다른 사람의 고발을 당해 파출소에 잡혀갔다. 내가 그의 사무실에 가서 사람을 석방하라고 할 때 그는 우리에게 이후 주의하라고 당부하고는 몇 분 후 놓아주었다. 또 한 노년 여자수련생이 진상자료를 붙이다가 공안국 사람에게 잡혀갔다. 그는 내 전화를 받고 말했다. “그녀 집에 물건이 너무 많아요.(대법서적자료 등을 가리킴)” 이후에 붙잡혔던 이 수련생이 돌아와서 말한 데 의하면 그날 이 파출소장의 부하는 그녀 집에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으며 그 부국장이 사람을 데리고 집을 뒤진 것이라고 했다. 15일간 불법구류를 한 후 내가 소장을 찾아 ‘방행증(放行證)’을 떼려고 하자 그는 두말없이 떼 주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일을 함에 과정을 가장 중시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에게 진상을 알게 할 수 있고 과정에서 세상 사람을 구도할 수 있고 과정 중에서 그 진상을 폭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2]

그 몇 년간 종종 수련생이 납치와 판결, 세뇌를 당했다. 나는 구출에 참여하면서 어떤 때는 환경이 허락하지 않았고 시간도 급박해 진상을 제대로 알릴 수 없었으며 구체적이지 못하고 전면적이지 못했다. 많은 경찰과 정부 관리들은 더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다만 형식적인 대응만 했으며 구도를 받지 못했다. 우리는 마땅히 여러 사람의 각기 상황에 맞춰 늘 여러 내용의 진상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전력을 다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박해에 참여하지 않게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냉풍(冷風)’을 하사하시고 지혜로 ‘정보’를 전하다

2001년 어느 봄날 오후, 대법제자들에게 발정념을 하라고 요구하는 통지를 받았다. 한 수련생이 우리는 이 통지를 여러 구류소에 감금된 수련생들에게 제때에 알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말하기는 쉬워도 하려면 어려운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내가 한창 구류된 현지 수련생들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큰 바람이 불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고 날씨가 갑자기 아주 추워졌다고 느꼈다. 이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날씨가 차가워졌으니 이 기회를 이용해 안에 있는 수련생들에게 옷을 보내주자!

그리하여 나는 감금되어 있는 여수련생 동생 집에 나는 듯이 달려갔다. 발정념을 하라는 요구를 그에게 알려주면서 그에게 구실을 찾아 그의 누나에게 옷을 보내주고 소식을 안에 전해주라고 했다. 그런데 수련생의 동생은 자기가 막 구류소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들이 하루에 두 번 만나게 하지 않을 것이며 다음 번 면회는 5일 후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사부님께서 이미 ‘냉풍’을 보내셔서 도와주셨어요. 날씨가 추워졌으니 옷을 들여보내는 것도 이치에 맞는 일입니다!” 말하면서 수련생의 옷 몇 벌을 찾아내게 했고 나는 준비해놓은 쪽지를 교묘하게 꽃 티셔츠 주머니 안에 기워 넣었으며, 수련생의 동생에게 가져가게 했다. 그 결과 아주 순조롭게 옷과 ‘정보’를 구류소에 들여보냈고 총명한 수련생도 제때에 쪽지를 발견했으며, 소식을 구류소 안 다른 수련생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때부터 간수소 안의 환경도 확연한 변화가 발생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사부님께서 늘 우리 신변에 계시면서 우리 매 대법제자에게 관심을 갖고 보호해주심을 깊이 느꼈다. 오직 우리가 수시로 정념을 유지하고 신사신법하면서 정념정행한다면 못해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여 년이 지나갔고 나는 실시간 발정념을 중단하지 않고 견지해왔으며 그것을 기제로 형성했고 생명의 한 부분으로 간주했다.

가족을 설득해 수련생을 구하게 하고 사부께서는 신통을 하사해 호랑이입에서 벗어나게 하시다

2004년 청명절, 우리 현지 3명의 여수련생이 농촌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저녁이 되자 지형에 익숙하지 못해 한 젊은 여수련생이 다른 수련생들과 헤어졌는데 3일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찾을 곳을 다 찾고 수련생들이 발정념하면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도처에서 수소문하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상황을 알게 됐을 때 나는 한창 신체 소업을 하고 있었으며 아주 괴로웠다. 전해들은 후 즉시 차를 타고 인근 파출소에 가서 수소문하려 했다. 가는 길에 마침 이미 진상을 알린 경찰을 만나게 됐다. 나는 그에게 이 며칠간 파출소에 파룬궁 수련생이 감금된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파출소 유치장에 가서 보라고 말하면서 공덕이 무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즉시 대답했다. 10여 분 후, 그는 진지하게 나에게 정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를 ‘방(악인방)’에 올리지 말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되고 파룬궁 일을 관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당신을 ‘공덕방’에 올릴 것입니다”라고 했다.

사당(邪黨)이 이 수련생에 대해 여러 차례 박해를 가했기에 그녀의 가정, 남편, 아이에 대한 피해가 아주 컸다. 이 며칠간 다른 수련생들이 그녀 남편을 찾아가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안국과 구류소에 가서 사람을 찾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 남편은 문도 열어주려 하지 않거나 혹은 문을 열어도 상대하지 않았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이런 상황을 보고 나도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의 일은 바로 당신의 일이고, 당신의 일은 바로 그의 일이다.”[3] 나는 생각했다. 이 몇 년간 수련생을 구조하는 일에서 나는 지금껏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갔으며 그 일을 자신의 사명과 책임이라고 여겼다. 이번에 나는 왜 속수무책인가? 자세히 안을 향해 찾으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었다. 이번에 나는 진정으로 수련생을 가족으로 생각했는가? 우리는 다만 수련생의 가족을 핍박해서 가서 찾으라고만 하고 조급하여 원망만 했지, 왜 사부님 법의 요구에 따라 가서 하지 않는가? 나는 또 사부님 말씀을 생각했다. “대법제자여, 당신들은 모두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해야 하고 정말로 정법 중에서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사부의 정법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들은 마음을 써야만 비로소 해낼 수 있고,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부담만 될 뿐이며, 해내지 못한다면 교란을 할 것이고 대법제자의 약속을 이행할 수 없을 것인데, 정말로 중시해야만 비로소 된다.”[4]

어느 날 밤, 나는 다른 한 수련생과 약속한 후 재차 실종 수련생의 가족을 찾아갔다. 진정한 마음과 선념으로 실종 수련생의 가족의 각도에서, 아내가 이 몇 년간 박해를 당할 때 그가 감당한 압력과 곤란 및 속수무책과 고통을 이해해주었다. 그와 2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끝내 감동을 받았고 우리와 함께 그의 아내를 찾으러 가는데 동의했다. 이 기간, 다른 수련생들은 자발적으로 와서 그를 도와 아이를 돌봐주고 집안일을 해주었다.

이튿날 우리는 직접 구류소에 왔다. 길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고 반드시 꼭 수련생을 찾도록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것을 바랐다. 구류소에 도착한 후 우리는 당직 경찰에게 실종 수련생을 확인해 보았다. 그는 우리에게 수련생과 어떤 관계냐고 반문했다.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나의 조카딸이라고 말하면서 수련생 남편에게 증명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렇게 드디어 실종된 수련생을 찾았다.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부축되어 나오는 것을 본 우리는 모두 몹시 놀랐다. 외모가 완전히 변했는데 얼굴도 맞아서 변형 됐고 위에는 또 몇 개의 자줏빛 혈흔이 있었다. 나는 간단히 그녀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고 그녀는 파출소에서 경찰이 고용한 깡패들에게 맞은 것이라고 했다. 그녀 남편은 그녀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는 거의 울음을 터뜨렸고 당직자는 급히 그녀를 데려갔다.

이 사이에 나는 기회를 다잡아 당직 경찰에게 몇 마디 진상을 알렸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나에게 이름을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말했는데 이 때문에 후환을 남길 줄은 몰랐다. 며칠 후의 어느 날 밤 10시 경, 나는 한창 집에서 사부님께서 새로 말씀하신 설법을 기타 수련생들에게 나눠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밖을 내다보니 본 관할구 파출소 부소장과 몇몇 경찰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 나는 한편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서 한편으론 문을 꼭 잠그려 했는데 입구에 가서야 우리 집 문이 잠겨있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나는 얼른 자물쇠로 잠근 후 마음속으로 그들이 왜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신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문을 열지 않자 그럼 내일 파출소에 한번 왔다가라고 속였다. 사실 그들은 나를 마비시키려는 것이었고 나의 경계심을 늦추려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자 나는 대답했다.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파출소에 가서 뭘 하죠?” 그런 후 나는 파출소장(앞에서 말한 간호사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 했다. 그런데 그는 감히 전화를 받지 못했다. 나는 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수련생에게 알려주면서 그들이 나를 도와 발정념을 해줄 것을 청했다. 그런 후 나는 새로 온 ‘홍음2’를 읽고 안에 있는 경문을 암송했으며, 또 발정념을 했다. 이튿날 아침 이웃사람이 베란다에서 나에게 손짓을 하면서 밖을 내다보라고 했다. 나는 창문으로 내다보고 깜작 놀랐다. 나는 그 경찰들이 어젯밤에 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가지 않았고 또 경찰들이 더 많이 와서 우리 집 골목입구를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집에 있는 대법서적, 자료, 사부님 법상 등을 한 보따리 정리해서 이웃집 울안에 들여놓았다. 그런 후 발정념을 시작했고 사부님의 가지를 빌었다. 온 하루 동안 발정념을 했는데 중간에 피곤해서 잠깐 휴식하고는 이어서 계속했다. 다행이 그 경찰들은 다만 우리집을 포위하고 있었을 뿐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전부 사부님의 보호에 의지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나를 감동시킨 것은 한 노년수련생 부부가 자신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채소를 파는 것처럼 가장하고는 우리 집 문 앞에 와서 소식을 알아본 것이다. 저녁 10시가 되자 나는 밖에 있는 수련생이 작은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를 데려가려고 한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재빨리 ‘전법륜’ 한 권을 들고 집 문에서 달려 나왔다. 나온 후 골목입구에는 가로등이 없어 어두컴컴했고 나는 또 나를 데리러 온 수련생들을 보지 못했다. 할 수 없이 혼자서 밖으로 달렸는데 길에서 나는 내 신체가 TV에서 나오는 느린 동작 같음을 느꼈다. 또 신체가 빛을 내보내고 있었으며 아주 밝았는데 길가의 몇 명 노인까지 비추어서 모두 내가 달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나는 자신이 날기 시작했음을 느꼈고 나는 격동되어 울려고 했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저에게 신통을 하사해주시고 제가 호랑이입에서 도망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천 제방까지 왔을 때 수련생들이 차를 타고 나를 따라잡았다. 나를 도와 인력삼륜차를 불렀고 한 수련생 집까지 와서 그녀들과 함께 한 강의를 배웠다. 12시에 우리는 함께 발정념을 했는데 정(定) 상태에서 한 미륵불이 우리 시의 한 큰 산 위에서 나를 보고 웃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는 꼭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금 안전해졌다고 점화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나는 맞은편에 살고 있는 친척에게서 전해 들었는데 그날 내가 금방 가자마자 경찰들이 돌아왔고, 어찌하여 밤참을 먹자마자 사람이 보이지 않느냐고 떠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우리집을 포위했던 경찰 중에서 두 명이 더위를 먹었다고 했다. 나는 4월에도 더위를 먹느냐고 생각하면서 아마 보응을 받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10여 일을 전전하며 다른 성에 갔고 밖에서 2년 반 동안 유랑했다. 이 기간 나는 끊임없이 나에 대한 박해에 참여한 경찰과 지도자에게 편지를 썼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이후에 내가 집에 돌아온 후 다시는 나에게 소란을 피우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 위험이 있은 후 나는 그 당시의 고통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고 진정하게 안을 향해 찾았으며, 자신의 하나의 큰 누락을 찾았다. 몇 년 간, 나는 적극적으로 수련생을 구조하는데 참여하면서, 매번 공개 장소에 얼굴을 드러내놓았지만 아주 순조로웠다. 수련생들의 탄복하는 눈길에서 천천히 과시심과 자만심이 생겨났고, 어떤 때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정념신통을 자신의 능력으로 여겼다. 마치 마음속으로는 일체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고 법을 실증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실증하고 있었다. 수련생 앞에서 늘 좋지 않은 염두가 나왔고, 또 득의양양해했다. 그 때 일단 바쁘기만 하면 법공부를 착실하게 하지 않았고 마음이 조용하지 못했으며 속인이 대법 일을 하는 것으로 됐다. 표면에서는 사악한 경찰의 박해를 받는 것 같았지만 사실 자신의 강대한 과시심이 사악에게 빈틈을 준 것이었다.

수련생을 구함에 정을 내려놓고 정체에 협조하니 도처에 신기가 나타나다

핍박에 의해 집을 떠나기 전 나는 줄곧 자신에게 착실히 수련하고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세 가지 일을 잘 할 것을 요구했다. 고향을 떠난 후 나는 줄곧 생활이 어려워 도처를 떠도는 생활을 했다. 우선 아들이 일하고 있는 다른 성의 도시에 갔다가 연후 또 성소재지에 왔으며 줄곧 아주 고생스러웠다. 이 기간 비록 끊임없이 세 가지 일을 했지만 생존의 압력에 직면해서 그래도 게을러졌으며 이전처럼 정진하지 못함을 느꼈다.

작년에 며느리가 아이를 낳게 되자 아들은 외성으로 와서 손자를 돌봐달라고 했다. 나는 갔고 이번에 ‘정마(情魔)’의 올가미에 걸릴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온 하루 손자와 아들을 돌보느라 바빴고 세 가지 일을 하는데 거의 시간을 짜낼 수 없었다. 나도 여러 번 이렇게 나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현실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나를 가장 걱정하게 만든 것은 고향의 C수련생이 납치당한 지 반년이 되고, 집도 수색 당했으며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어느 곳에 감금되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수련생을 생각하기만 하면 내 마음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괴로웠다.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생각하고 사부님의 자비고도를 생각하니 나는 진짜 즉시 돌아가 구조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가 떠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고 만약 내가 간다면 손자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내가 안절부절하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을 때 며느리가 갑자기 고향의 한 수련생이 나를 찾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단을 내렸으며 이 기회를 빌려 돌아가 집을 처리하고 직장에서 나의 임금지급을 중지한 문제를 처리하겠다고 했다. 비록 자식들이 내가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내가 이미 결정을 내린 것을 보고는 더 막지 않았다. 당시 10여 일 후면 설을 맞기에 나는 고향에 돌아가는 차표를 사지 못할까 걱정했다. 이튿날 아침에 나는 인근 매표소에 달려갔는데 진짜 신기하게도 평소에는 표를 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던 것이 내가 가서 살 때는 한 사람도 없었다. 내가 매표창구에 가서 최근에 고향에 돌아가는 차표를 한 장 달라고 하자 매표원은 딱 한 장이 남았고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도착하는 급행열차라고 했다. 차에서 내리면 집에 돌아갈 수 있었는데 아주 편리했고 평소에 이런 표는 사기 아주 어려웠는데 나는 그처럼 쉽게 살 수 있었다. 이것은 정말이지 사부님의 고심한 배치였다!

고향집에 돌아온 후 나는 휴식도 하지 않고 즉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수련생을 찾아 상황을 파악했다. C수련생이 붙잡혔던 첫 두 달, 그의 아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해 기타 수련생들과 함께 사람을 찾았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약간 게을러졌다. 수개월 간 다른 수련생들은 아직도 끊임없이 그에게 권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와 수련생들은 함께 구원계획을 세웠다. 우선 내가 이전의 인맥관계를 통해 수련생이 감금된 곳을 알아본 후 다시 방법을 찾아 구원하기로 했다. 이와 동시에 나와 다른 수련생들은 시간을 내어 재차 C수련생의 아들을 찾아가 권했는데 그의 입장에 서서 진심어린 교류를 하자 그의 아들은 재차 우리와 협조해 구원하는데 동의했다. 나는 진상을 알고 있는 이전의 동료를 찾아가 그에게 C수련생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는데 그는 아주 흔쾌히 대답했으며 꼭 우리를 도와 사람을 찾아주겠다고 승낙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이튿날 곧 C수련생이 감금된 곳을 알아냈다. 이어서 우리는 또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한 퇴직한 지도자를 여러 차례 찾아갔고, 진상을 그에게 똑똑히 알리는 것을 통해 그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우리들의 공동 노력으로 그는 마침내 판사처 서기로 있는 그의 아들에게, 이후 다시는 파룬궁 일을 상관하지 말라고 말해주기로 대답했다.

이후에 우리는 또 C수련생의 안건이 이미 사법부서 등에 넘겨져 답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냈다. 이 날 나는 많은 자료를 갖고 성 정부 소재지에 내가 전에 알고 있던 지도자를 찾아가 진상을 알리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길가에 오자 한 가닥 힘이 나를 밀고 옆에 있는 한 높은 건물로 가게 하는 것을 느꼈다. 문에 들어선 후에야 이것은 사법기관 청사임을 알았다. 수위가 누구를 찾는지 묻자 나는 엉겁결에 한 고향사람을 찾는다고 대답했다. 이때, 나는 갑자기 내 친척의 동창이 성 사법계통에서 일한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나와 그는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했고 심지어 그의 이름마저 똑똑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 어찌하나? 내가 찾으려는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자 입구 경비는 나를 보고 맞은 켠 접대실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찾으려는 사람의 대략적인 외모, 키, 연령을 접대실 노인에게 말해주었다. 그는 이런 사람이 있는데 OO라고 했고 나는 듣자마자 그라고 했다. 수위는 나를 도와 내가 찾으려는 사람을 연락해주었다. 위층에 올라가 만나자 그는 말했다. “진짜 신기하네! 어떻게 저를 찾아왔어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니, 신이 나를 도와주고 있어요!” 나는 그에게 진상을 이야기하고 C수련생이 박해를 받는 상황을 말하면서 그의 도움을 청했다. 뜻밖에 C수련생의 안건은 그의 부하가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당장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처리할 것을 요구했고 나에게 급해하지 말라고 권하면서 그들이 꼭 빨리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사람을 찾는 전반 과정을 생각해보니 이 일체가 아주 묘한 것 같았지만 실제는 모두 사부님의 순서 있는 배치였다. 위대하시고 자비로운 사존! 정말 제자들을 위해 노심초사하시고 계셨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참을 수 없어 눈물을 흘렸고 당시 그런 격동과 은혜의 심정은 진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때 수련생들은 긴밀히 협조해 날마다 법원에 가서 발정념을 하고 나가서 진상표어를 붙였으며, 편지를 보내고 수련생을 가지했다. 며칠 안 지나 C수련생의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C수련생은 나온 후 악독한 경찰이 그에게 3년 판결, 4년 유예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의 길은 사부님께 결정권이 있으며 누가 말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수련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모두들 함께 안을 향해 찾고 정체적으로 아주 잘 협조했다. 게다가 C수련생의 정념이 강했기에 그들이 어떻게 박해를 하든지 시종 사악에게 수련생 한 명도 말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순조롭게 집에 돌아왔다. 우리 모든 수련생들은 이 일을 통해 모두 정체적인 제고와 승화를 얻었다.

깊이 느끼고 깨달은 점

10여 년의 수련여정에서 나는 수련생을 구하는 항목에서 연마됐으며, 수련과정 중에 심성 제고에 따라 자신이 부단히 승화됨을 체험했다. 이 기간 여러 차례 자신의 부족함과 집착이 폭로됐다. 비록 수련생의 도움과 끊임없는 법공부 및 수련 중에서 적지 않은 것을 수련해버렸지만, 아직도 자신이 어떤 때는 선을 수련함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성격이 급하고 일에 봉착하면 그다지 냉정하지 못하며 환희심과 과시심도 완전히 제거되지 못했음을 느낀다. 특히 당 문화 사상도 비교적 엄중해 이전에 속인 중에서 양성된 대화방식과 어조는 늘 수련생들에게 반감을 준다. 어떤 때는 또 심성제고가 늦고 일을 함에 효율이 낮은 수련생을 깔보기도 한다. 현재 비록 환경이 느슨해졌지만 자신의 수련상태는 가끔 오히려 박해가 엄중하던 몇 년 전보다 못한 것 같았다. 정법 시간이 이미 얼마 남지 않은 나날에 나는 사부님께 보증을 드린다. 반드시 용맹정진하고 다잡아 착실히 수련하며 부족함을 채우고 세 가지 일을 잘하겠습니다. 자신의 사전 서약을 실행하고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으며 사부님을 따라 원만하여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사존께 큰 절을 올립니다! 허스(合十)로 수련생들이 함께 동반해주고 공동정진한데 감사를 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각지 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각지 설법2-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각지 설법10-따지웬(大紀元) 회의 설법’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2013년 11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10회 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8/2815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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