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사부님의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을 배운 후 자신의 이 몇 년간 상태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있게 됐고 특히 구세력의 경제적 박해를 부정하는데서 약간의 돌파가 생겼다. 이곳에서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과 함께 교류하겠다. 정확하지 않는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가정 형편은 박해 중에 날로 악화됐다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었는데 당시 아직 중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젊은 대법제자가 됐다. 우리 가정은 수련 가정이었는데 이전에 그런대로 행복했었다. 가족이 화목했고 부유했으며 이후에 운좋게 법을 얻었다. 아버지는 수련 후 곧 편두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며 온 가족이 심신에 혜택을 받았고 불은호탕(佛恩浩蕩)한 불광 속에서 비할 바 없이 행복했다.
그런데 1999년 7월 20일, 장귀(江鬼)와 사당 중공(중국공산당)은 질투와 공포 때문에 공개적으로 마음을 닦고 선을 지향하는 1억 대법제자를 잔혹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도 재난을 면하지 못했다. 아버지 수련생은 현지에서 무료로 연공을 가르쳐주는 보도원이었고 대법의 공정한 말을 하기 위해 베이징에 몇 번 청원하러 갔었기 때문에 현지 사악한 경찰에게 심하게 박해를 당했고 우리 집도 끊임없이 불법 가택수색이나 협박을 당했다. 이후에 아버지 수련생은 대법을 확고하게 수련했다는 이유로 사악한 경찰에게 박해를 당해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대학교에 다녔고 가정 형편은 사악의 박해로 인해 날로 악화됐다.
그러나 이런 고난도 우리를 좌절시키지 못했다. 신사신법하고 확고하고 착실하게 수련했으며 이 고난들을 제고하는 기회로,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생각했으며 이 고난들은 발밑에 밟고 대법제자가 신이 되는 발판이라고 생각했다.
고난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다
대학 졸업 후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 사악이 잔혹하게 박해해 우리 현지 자료점은 심하게 파괴됐고 많은 수련생들이 납치 수감됐으며 어떤 사람은 노동교양 판결도 받았다. 진상자료 공급이 한동안 중단됐고 가끔 외지에서 진상자료를 가져왔다. 당시 수련생들은 새로운 자료점을 세우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자료점을 만드는 초기에 우리는 기술적 곤란과 소모품을 구매하는 등 많은 곤란에 부딪혔고 다른 공간 사악의 방해와 파괴로 인해 만들어낸 압력도 있었으며 게다가 때때로 수련생이 납치되고 심지어 박해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거나 인터넷에서 보았는데 심정은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동안은 매우 고생했고 매우 큰 압력을 받았다. 다행이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어 수련인은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고난 속에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있는 곳은 현이기 때문에 소모품을 구입하려면 몇 십리 밖 시내로 나가야 했다. 당시 환경이 악랄해 안전과 자금을 절약하는 것을 고려해 우리는 소모품을 갖고 올 때 보통 버스를 타지 않았다. 어떤 때는 자전거를 타고 종이 두 상자 혹은 기타 소모품을 갖고 왔고 어떤 때는 수련생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도 했는데 돌아올 때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실은 소모품이 작은 산더미와 같이 오토바이를 내리눌렀고 오는 도중 내내 흔들거렸다.
기억하건데 어느 날 겨울에 한번은 수련생과 함께 몇 십리 떨어진 복사를 담당하는 수련생에게 원고를 보내주러 갔다. 돌아올 때는 11, 12시 깊은 밤이었고 게다가 눈도 내리기 시작해 길은 정말 미끄러웠다. 둘이 오토바이를 타고 갔는데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바로 넘어졌다. 오는 길 내내 얼마나 곤두박질쳤는지 모른다. 또 한 번은 겨울 깊은 밤중에 일을 보고 한 수련생이 오토바이를 몰고 나는 뒤에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길 한복판에 있는 벽돌과 부딪혔다. 속도가 빨라서 오토바이를 통제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날아갔고 그 수련생은 오토바이에 깔려 넘어졌다. 당시 길에는 행인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몸을 털고 일어나 아직 오토바이 밑에 깔려있는 수련생을 부축해 일으켜보니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다행히 나는 많이 다치지 않았다. 돌아가 간단하게 처치하고 이튿날 정상 출근했고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이런 비슷한 실례는 매우 많았다.
이후에 수련생 몇명이 돈을 모아 전동 삼륜차를 샀다. 속으로 다시는 눈길이 미끄러워 일을 지체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자 무척 기뻤다. 삼륜차는 이륜 오토바이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기억하건데 한번은 한 수련생과 함께 삼륜차를 몰고 일을 보러 갔다 오는데 갑자기 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삼륜차에 누워서 하늘에 휘날리는 눈보라를 보았는데 잠깐 사이에 눈이 한 층이나 몸에 쌓였다. 겨울 깊은 밤길이라 행인이 매우 적었다. 이때 대다수 세인은 집에서 불을 쬐고 가정의 화목함을 누리고 있었으나 대법제자는 추운 겨울밤에도 중생 구도를 위해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자 감개무량했고 동시에 또 매우 위로가 됐다. 대법제자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고 줄곧 매우 노력했기에 한 지역 중생을 볼 면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 우리는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정념을 확고하게 했으며 물러서지 않았고 줄곧 앞으로 달렸다. 현지 자료점은 무에서 유로, 처음에 한 장씩 찍고 소책자를 만들던 데로부터 이후에는 대법서적, ‘9평’서적, 및 각종 CD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대법이 필요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필요하다면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모든 진상자료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며 현지 수련생이 중생을 구도하는 자료의 수요를 전부 공급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힘이 닿는 만큼 주변 수련생에게 자료와 기술적 도움을 제공해줬다.
하지만 법리상 명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의 봉변과 수련 중 겪은 경험을 자기도 모르게 수련하고 제고하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고 빈곤하고 고생하더라도 상관없고 수련은 예전 소도(小道)에서 그 수련하는 것처럼 매우 가난하고 고생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이것이 구세력이 우리에게 전가한 박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어떤 때 고생한 모든 것을 수련의 자본으로 생각했고 우리가 걸어온 위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어려움 앞에서 진지하게 걸어올 수 있는 것은 완전히 사부님의 보호와 착실하게 법공부한 기초 및 수련생들이 서로 협력한 결과이다. 이런 어려움 중 매우 많은 것은 구세력이 대법제자에게 전가해 박해하고 조장한 것이며 매우 많은 것은 사악의 ‘명예상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무너뜨리고 육체적으로 소멸시키는’ 정책의 구체적인 연장이었다. 사악의 박해가 없다면 그 같은 전가된 고난도 없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수련하는 방법을 배치해주셨을 것이고 대법제자는 마찬가지로 수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가장 근본적으로 말하면 당신들은 아직도 구세력의 박해를 타파하는 과정 중에서 위대한 위덕을 세워야 하고 당신들의 가장 높은 위치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일반 경지에서 원만하는 문제가 아니며 또한 통상적인 원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 고난들이 우리를 성숙하게 한 것이 아니라 구세력이 배치한 고난의 박해를 타파하는 과정에서 신의 위덕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고난들을 보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도 구세력의 모든 배치와 박해를 승인하시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왜 그것들을 우리가 제고하고 성숙해지는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승인하면 바로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때 자신이 고생한 것들을 생각하고 스스로 우쭐거리며 뽐내기도 했고 모르는 사이에 구세력의 배치와 그 고난들이 없으면 제고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법에 서서 빈부(貧富)를 보다
2007년, 나는 결혼하고 가정을 가졌다. 아내도 수련생이었는데 결혼하기 전에 사악의 심한 박해를 받았다. 대학 때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학교 악인의 박해를 받아 퇴학하게 됐고 이후에 여러 차례 불법 수감되기도 했으며 사악에게 불법 노동교양 3년형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수련인이고 함께 많은 고생을 겪었으며 모든 것을 수련을 위주로 했다. 생활상 높은 요구가 없었으며 먹고 쓸 것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금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지만 이런 염두 때문에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했고 그것들의 배치를 승인했다. 직장에 다닐 때 월급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생활도 줄곧 여유가 없었다. 2009년에 이르러 우연한 기회에 스스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장사하려는 출발점은 시간이 비교적 여유롭고 더욱 많은 시간으로 법을 실증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돈을 얼마 벌지는 생각하지 않았고 먹고 쓸 것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것은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어 임시로 일하려는 사상이 존재했기 때문으로 장사는 줄곧 큰 진척이 없었고 심지어 일상적인 지출도 매우 힘들었다. 이후에 일부 사건이 발생해 이런 인식이 도대체 법에 있는지 사고하기 시작했다.
아내 수련생은 대학 때 믿음을 포기하지 않아 학교 악인에게 박해받아 퇴학을 당했고 게다가 이후에 여러 차례 불법 수감됐으며 노동교양소 박해까지 받았다. 가정도 늘 사악한 경찰의 교란을 받았으며 가택수색을 당했기 때문에 그녀의 많은 친척, 이웃, 친구는 이런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대법을 수련한 탓으로 이 모든 것을 돌렸고 대법을 수련해 자신의 앞날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도 누구도 듣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차를 산후에야 개변됐다.
2010년 장사 때문에 나는 차를 샀는데 아내의 고향 친척 집에서 잿날을 연다고 해서 우리는 차를 몰고 갔다. 목적은 그들을 구도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차를 산 후 그녀 친척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 이전보다 쉬워졌고 그녀의 많은 친척들도 개변되기 시작했으며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도 진지하게 듣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매우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과였다. 이후에 잇따라 많은 친척을 삼퇴시켰고 심지어 원래 매우 완고하고 진상을 듣기만 하면 버럭 화를 내던 친척까지 적지 않게 삼퇴시켰다.
이런 현상에 대해 처음에는 큰 방면에서 사부님 정법노정의 추진에 따라 사악이 갈수록 적어지고 그것이 사람을 통제하는 능력이 갈수록 약해져 사람들이 쉽게 진상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개인 수련방면에서 우리의 경지가 제고되고 정념이 갈수록 강해지며 사람 마음이 갈수록 적어지고 하는 말이 갈수록 순정해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갈수록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차를 산 후 그녀 친척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차를 산 것을 보자 돈이 있고 재간이 있다고 생각해 우리를 감히 깔보지 못했고 우리의 말을 더욱 잘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가장 깔보았는데 세상 사람들이 너무 세속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에 이런 인식이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인은 오직 속인의 생각만 있고 우리는 수련으로서 오직 사람을 구하는 몫만 있을 뿐이며 중생이 높은 인식을 갖기를 요구할 수 없다.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구도할 필요가 없다. 바로 중생이 안 되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몸소 인간세상에 내려오셔서 정법하시고 중생을 구도하시는 것이다. 도덕관념을 중시하고 근기가 비교적 좋은 소수 사람만이 우리가 부유하거나 권세가 있는지 상관하지 않고 우리를 판단할 것이며, 대다수 세인들은 세속의 관념으로 우리를 판단하는데 돈이 있으면 재능이 있고 사회에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당이 유언비어를 날조해 중상 모략하는 선전 하에 그들은 우리의 생활이 어려운 것이 사악의 박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가 생활을 상관하지 않고 속세의 화식을 먹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사회 중 무슨 탈출구가 없는 사람이 정신적 위탁을 찾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지 않는 인식을 가지며 우리가 한 말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구세력은 바로 우리를 고험한다는 구실로 중생을 훼멸하고 있다. 이것 또한 우리가 구세력의 박해와 배치를 철저히 부정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구세력은 예전 수련인의 고행(苦行)의 표준으로 우리를 고험하고 업력이 있다는 구실로 우리에게 고난을 만들어 놓았으며, 우리가 걸어지나오면 승인하고 우리가 걸어지나오지 못하면 그것들은 이것으로 우리를 도태시키려 한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올 수 있든 없든 중생은 모두 도태될 것이다. 세속의 대다수 중생은 대법제자의 몸에서 사람의 소위 희망과 행복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대부분 빈곤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았으며 이로 인해 여전히 사악이 만들어낸,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고 비방하는 함정 속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다.
우리 이전의 인식은 모두 사적인 기초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과거 수련인의 상태에 빠져있었다. 속인이 어떻게 우리를 보든지 상관하지 않았고 자신만 연마했고 속인이 어떻게 보든 연마해 떠나면 되고 당신들은 제고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넓은 흉금으로 중생의 부족함을 포용하고 자비로 그들을 구도하지 못했다.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려는 이상 왜 중생의 각도에서 문제를 고려하지 못하는가? 타협이나 순종이 아니며 자비로 말이다. 우리는 마땅히 중생 앞에서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여주고 중생에게 희망, 빛, 행복을 가져다줘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 “당신들이 일을 더욱 크게 할수록, 당신들이 돈이 더욱 많을수록 나는 그야말로 기뻐할 것이며, 당신들이 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당신들이 모두 큰 경제 능력이 있다면, 그럼 당신은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 데에 큰 힘이 될 수 있잖은가? 그건 더없이 좋은 것이 아닌가? 나는 여태껏 당신들에게 그런 산속에서 수도하는 사람들처럼, 돈을 한 푼도 가지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속인 사회 중에서 하는 수련 또한 이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으며, 나는 대법수련은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의 형식에 부합해서 수련하는 것이라고 줄곧 말했다”[2]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경제적 박해를 부정하고 주역을 잘해 중생을 구도하다
사부님께서는 “사부가 여러분을 이끌고 션윈을 하는 것은 실제로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션윈을 세계 제일의 쇼로 만들었고, 최소한 문예영역에서, 예술영역에서 션윈은 주역이 됐다. 그럼 다른 항목은 어떠한가? 당신들은 자신이 해놓은 조그마한 성적에도 매우 득의양양해하는데, 당신은 주역이 됐는가? 당신은 조연조차도 맡지 못했으며, 어떤 사람은 못난이 역을 하고 있다! 이것이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인가? 사부가 당신에게 하라고 한 것인가? 우리 어떤 사람은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자금이 부족해서 항목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당신이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당신은 그것을 대법제자가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로 삼아 하지 못했고, 진정한 기업으로 간주해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3]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한 단락 설법을 배웠을 때 장사가 생각났다. 나는 그것을 줄곧 가족을 부양하고 호구하기 위한 한 가지 것으로 생각했는데 비록 고객을 접촉하는 과정 중 진상을 알리기도 했고 일부 고객도 삼퇴시키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진지하게 그것을 잘해내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것을 중생과 선한 인연을 맺는 기회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늘 언제 종결될지도 모르는데 많은 정력을 기울여 장사해도 그때가 되면 쓸모없으니 임시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했다. 사실 이것은 나의 이기적인 사상이 방해하고 있는 것이고 문제를 고려하는 기점이 여전히 자신의 원만, 자신의 득실을 생각하는 것이었으며 진정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각도에서 생각하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만 더욱 많은 중생과 인연을 맺고, 어떻게 해야만 더욱 많은 중생이 쉽게 진상을 알고 구도될 수 있겠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을 철저히 개변해야 한다. 장사는 내 태도와 같이 줄곧 무슨 발전이 없었다. 나는 지금에야 비로소 이 모든 근원이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여태껏 그것을 잘되기를 바라지 않았고 이 영역에서 주역을 맡으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중생이 대법제자 몸에서 희망을 보고 빛을 보게 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 한 층차 법리에서 명백해지자 나는 사상과 인식을 개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중생을 구도하는 각도에서 철저히 구세력의 대법제자에 대한 배치와 박해, 특히 경제적 박해를 철저히 부정했다. 나는 장사를 잘하려고 노력했고 이 분야에서 강하고 크게 해서 주역을 잘 맡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해야만 더욱 많은 중생, 특히 소비 계층이 비교적 높은 사람들을 접촉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이익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도하기 힘들다. 나는 이 중생들이 대법제자와 인연을 맺게 하고, 그들에게 대법제자의 아름답고 밝은 일면을 보여주어 사당이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나쁜 선전을 타파하며 바른 면에서 대법과 대법제자를 인식하게 하고 진상을 알아 구도되게 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 범위 내에서 주역을 맡아 광범위하게 좋은 인연을 맺고 중생을 대량으로 구도해야 한다.
내가 이전의 관념을 개변하자 장사는 뚜렷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매 주문 배후의 중생은 내가 가서 구도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미래의 길은 아직도 매우 길며 이것은 다만 시작이다. 오로지 내가 더욱 잘해야만 중생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내게 소원이 하나 있다. 우리 대법제자가 사회 역할 중 자신의 주역을 잘 맡아 중생이 대법제자 몸에서 더욱 많은 희망을 보게 해야 하지 우리가 박해받는 것만 보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대법제자는 미래의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왜 대법제자의 바른 힘으로 주된 역할을 하지 않는가. 대법제자는 각 분야에 다 존재하므로 우리는 마땅히 후세에게 한 갈래 바른 길을 남겨줘야 한다. 바로 농민이라면 곡식을 누구보다 잘 키워야 하며, 상인이라면 성실하고 신용을 지키고 장사를 누구보다 더 크게 해야 하며, 과학 연구원이라면 근면하고 성실해야 하고 과학연구 성과를 누구보다 많이 내야하며, 관리라면 사람됨이 단정하고 백성을 생각하며 갈수록 높은 관직을 맡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모두 각 분야에서 주역을 잘하면 중생은 우리 몸에서 대법제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며, 대법의 법력이 끝이 없다는 것을 인간세상에게 보여주면 이것이 바로 사악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고 중생에 대한 가장 좋은 구도가 아닌가?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2-정법시기 대법제자’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각 지역 설법-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9/2816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