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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자아를 연마해 없애고 진념(眞念)으로 사람을 구하자

-방송인의 수련과정

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 수년 동안 수차례 내가 수련의 길에서 배회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또한 나의 게으름 때문에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발걸음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밍후이망의 ‘대륙 대법제자 인터넷 법회 교류문장’의 라디오 방송을 듣고 큰 격려를 받았다. 대륙 대법제자를 위해 이런 위대한 교류방식을 개척해주신 사부님께 더욱 감사드린다. 비록 대법 수련에는 모범이 없고 매 사람의 길은 다르지만 이런 교류를 통해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계시와 도움을 줄 수 있으며 특히 박해를 반대하고 안을 향해 찾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법을 실증하는 면에서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교류회를 놓쳤던 나는 오늘 끝내 자신의 게으름과 이기적인 마음을 돌파하고 이 10여년 수련체득을 써내 자비로운 사존께 한편의 보고를 드린다. 부족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1. 사부님을 따라 반본귀진하다

1996년에 어머니 수련생은 기쁘게 대법을 얻어 오래된 고질병을 고쳤고 생명을 구했기 때문에 나와 가족에게 진귀한 책인 ‘전법륜’을 한 권씩 주었다. 당시 나는 고등예술학교 여학생이었고 유명 드라마를 찍어 공을 이루고 이름을 날리려고 생각했으며 하루 종일 속인의 명리정에 빠져 벗어나지 못했다. ‘전법륜’을 보고 좋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속인의 명리심을 내려놓지 못해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서지 못했다.

1999년 대법이 박해를 받자 어머니는 하루 종일 눈물로 얼굴을 적셨고 중남해에 청원하러 갔다가 불법 수감됐었는데 내가 민원 사무실에 가서 어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후 가족과 함께 구치소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비록 그때는 정식으로 수련에 들어서지 않았지만 대법에 대해 비교적 똑똑한 인식이 있었다. 촬영 제작팀에 있을 때 누가 대법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말렸고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기도 했다. 아마 사부님께서도 내가 아직 정념이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것 같다.

2002년 어머니는 유랑 생활을 끝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오셨다. 그때 사부님께서 어머니 꿈에 나타나 내가 수련하도록 권하라고 점화해주셨다. 그때 나는 이미 명리정에 괴롭힘을 당해 몸과 마음이 다 지쳤으며 늘 자신에게 ‘이것이 바로 내가 가지려는 삶인가?’라고 물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정이 있고 경제수준도 높으며 많은 사람이 바라는 직업인 배우를 하고 있었으나 스스로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고 늘 세월을 헛되게 보내는 것 같아 속인 속에서 얻은 모든 것은 내게 추호도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인생의 앞날에 대한 당혹감, 정에 대한 집착은 시시각각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바로 이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께서 나를 반본귀진(返本歸眞)의 길에 들어서게 권하라고 점화하셨다고 했다. 나는 울었다. 그날 저녁 나는 정중하게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고 사부님을 따라 반본귀진하겠다고 맹세했다!

2. 자아를 연마해 없애고 너그럽고 부드럽게 사람을 대하다

사부님께서는 “여러분이 기억하다시피, 나는 늘 당신들에게 한마디 하는데, 대법제자는 어떤 일을 함에 모두 우선 다른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 매번 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일종의 정황이 나타날 때, 설사 작은 일일지라도 나의 첫 일념(一念)은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다른 사람을 우선해 생각하는 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속인 중에서 나는 줄곧 비교적 우수했고 순리로웠으며 어릴 적부터 좀 이름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제멋대로고 오만하고 아주 이기적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2001년에 나는 TV 방송국에 들어가 막후의 일을 했고 연예계에서 벗어났다.

2002년 법을 얻은 초기, 나는 자아를 내려놓고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것을 깊게 체험했으며 수련하고 심성을 제고한 뒤, 대법에서 온 아름다움을 느꼈다. 한번은 방송국에서 작품의 후기편집을 했는데 당시 아직 익숙하지 않아 하루 종일 걸렸고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거의 완성했다. 이때 평소 나와 관계가 비교적 좋은 동료 C가 와서 야근을 했다. 그녀는 내 뒤에 서서 자신의 소재를 공공 저장 공간에 보관하려 했다. 나는 그녀가 전화로 기술 동료에게 컴퓨터 저장 공간이 가득 차서 일부 기한을 넘은 소재를 삭제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금방 말이 끝나자 내 눈앞의 컴퓨터 모니터가 온통 하얗게 됐고 만들었던 내용이 전부 없어졌다. 속으로 초조해 물어보자 원래 C가 삭제한 것은 바로 내가 제작하던 프로그램 소재였다고 했다. 규정에 의하면 보통 방송이 된 프로그램 소재이어야만 삭제할 수 있는데 그녀가 기술 동료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내 소재를 전부 삭제시켰다. 당시 C도 매우 당황했고 당직 네트워크 관리자를 찾아 소재를 회복하려 했지만 이미 삭제되어 아무리해도 복구할 수 없었다. 나는 매우 화가 나서 속으로 ‘내가 바로 당신 뒤에 앉아있었는데 내게 한번만 물어봤다면 이런 멍청한 일을 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를 헛되게 보냈을 뿐만 아니라 내일 납품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밤새워 다시 만들어야 했다. 난 정말 몹시 화가 났다! C를 보지도 않고 단숨에 사무실에서 뛰쳐나갔다. 속으로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말할 것도 없다.

C와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앞에서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다. 누가 그녀 마음대로 지휘하게 했는지 기술 관리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뭐라고 해야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속으로 ‘난 수련인인데 이 전화를 해야 할까?’라고 주저하고 전화를 놓았다. 그래도 속으로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아 또 전화를 들고 번호를 눌렀는데 이번에는 통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화가 또 좀 가라앉았다. 나는 수련생인 어머니에게 전화해 발생한 일을 말해줬다. 어머니께서는 “그 사람이 일부러 한 것도 아니고 부딪힌 일은 모두 우연이 아니다. 생각해봐라 고험이 아닌지? 다시 말해서 대법제자는 어디에 가든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일에 부딪히면 마땅히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전화를 내려놓자 화가 또 많이 가라앉았다. 이때 기술 동료가 내게 전화하고 밤새 당직을 서느라 금방 잠들었다고 했다. 이때 나는 화가 완전히 가라앉았고 그를 비난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휴식을 방해했다고 미안해했고 그녀와 발생한 일에 대해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의 소재를 잘못 삭제한 동료 C도 지금 속으로 초조하고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나는 편집실로 돌아왔다. 한 겨울이라 날씨는 매우 추웠다. 멀리서부터 C가 추운 바람 속에서 편집실 앞을 갔다왔다하는 모습을 봤다. 나는 빠른 발걸음으로 그녀 앞에 걸어와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 다시한번 하면 되는데 뭐? 한 번 더 연습한다고 생각할게!”라고 하자 그녀는 울면서 연속 “미안해!”라고 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금방 편집실에 들어갔는데 네트워크 관리자가 뛰어와 의외로 소재를 복구시켰고 하나도 파손되지 않았다고 했다. 내 컴퓨터 모니터에 편집했던 조각이 그대로 거기에 배열되어 있었다!

나의 마음속은 비할 바 없이 격동됐고 편집실에서 뛰쳐나와 속으로 한번 또 한 번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는 사부님께서 내가 이 관을 넘은 것을 보시고 나를 격려해주신 것이다. 처음으로 심성관을 넘은 초연함과 아름다움을 느꼈으며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과실을 이해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 새로운 경지가 펼쳐지고 있음과 강렬한 승화를 느꼈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자비심의 한 가지 체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후 수련 중 나는 시시각각 이런 경지를 승화한 아름다움과 초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2002년 후부터 나를 알게 된 사람은 내가 낙관적이고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하며 너그럽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고 이전의 오만하거나 제멋대로인 이미지는 하나도 없었다.

3. 진상을 알릴 때 자아를 내려놓고 자비심을 연마해내다

나는 박해 후 정식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으므로 개인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것이 함께 있었다. 거의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기 시작했다.

법을 실증하기 위해 처음에 한 것은 바로 직장에서 대법 전단지를 복사하는 것이었다. 그때 아직 발정념을 할 줄 몰랐고 속으로 벌벌 떨면서 작은 복사실에 숨어서 했다. 그 결과 종이가 기계 속에 끼었는데 당황해서 어쩔 바를 몰랐고 당겨도 나오지 않았다. 이후에 한 동료가 와서 나를 도와 프린터 기계 속에서 종이를 빼줬다. 그녀가 종이 위의 글자를 보고 의혹을 가졌지만 더는 묻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나는 매우 똑똑하게 두려움을 느꼈는데 매우 큰 두려움이었다. ‘평소 나는 담이 매우 크고 심리상태가 매우 좋은 사람이었는데?! 수천 명앞에서도 이렇게 긴장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어찌 두려워 손이 떨리고 당황스러워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지?’라고 곤혹스러워했다. 이후에 법공부를 통해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가 박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마음속이 자주 무거웠고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에 내가 당신들에게 형용했듯이, 일초일목(一草一木)마저도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이 붙어서 당신이 길을 걸어가면 나뭇가지조차 당신의 얼굴을 후려치고 그 풀조차도 당신을 걸어 넘어지게 했으며, 공기는 모두 사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2]

① 시합을 개최하고 선수들에게 진상을 알리다

이후에 나는 방법을 생각해 이런 두려움을 돌파하고 자신에게 맞는 진상 방법을 찾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언어능력은 매우 강했고 말로 일하는 그런 사람임으로 기회를 찾아 진상을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말하겠는가? 당시 일부 친척과 친구에게 진상을 알리는 이외에 방법을 써서 진상을 알리는 환경을 개척하려 했다. 방송국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큰 시합을 개최하면 내가 선수들을 만나는 기회를 빌려 단독으로 신청자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사부님께서 이런 기회를 배치해주셨다. 나의 계획안은 이렇게 매우 쉽게 허락을 받았다. 선수와 만날 때 늘 밖에서 약속을 잡았고 늘 자신의 돈으로 그녀들과 차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처음에 공공장소에서 파룬궁을 얼마나 작은 소리로 말하든지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진상을 듣는 사람도 사방으로 바라보며 혼비백산했다. 이후에 나는 발정념으로 그들을 가지(加持)해주고 아울러 그들 배후의 진상을 못 듣게 하는 사악의 요소를 제거했다. 나는 중생에게 적합한 진상 언어와 내용을 편집하기 시작했다. 어떤 화제가 자연스럽게 박해 화제로 연결될까? 어떻게 진상을 알려야 듣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② TV 매체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다

매체에 종사한 후 자주 시청률을 연구했다. 처음에 늘 불만의 정서를 갖고 속으로 사람을 속이는 매체에게 무슨 시청률이 있겠는가, 시청률마저 가짜고 연구해도 헛된 연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한 속인 전문가가 시청자 심리문제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갑자기 요령을 터득한 것 같았다. 시청자가 듣기 좋아하는 것, 시청자가 관심하게 하는 방법으로 진상을 알리면 쉽게 교착된 국면을 타파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비로소 시청자가 좋아하는 것인가? 진실한 이야기다! 나는 늘 어머니가 수련 중에서 박해받은 것을 실례로 했고 또 주변 기타 대법제자가 박해를 받은 견문을 말해줬다. 속인은 내부소식을 매우 듣기 좋아한다. 그들은 객관성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제3자 각도에서 진상을 알리면 비교적 쉽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론인으로서 인터뷰하고 접촉하는 사람은 대부분 사회에서 비교적 고위직에 있는 화이트칼라, 변호사, 언론인과 회사 고위직 등이다. 그들은 대부분 매우 자부심이 있고 사상이 비교적 복잡하며 농촌 사람처럼 단순하고 소박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풍부한 사례가 있어야 하고 논리성이 강해야 했다. 속인은 모두 ‘당신은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파룬궁이 좋다고 말한다’는 이런 생각이 있으므로 방관자 각도로 말하면 비교적 객관적이고 믿게 된다. 나는 TV 방송국에서 일하는 신분으로 ‘내부인원이 내부의 진실한 상황을 말하는’ 각도에서 분신자살 사건과 TV에서 파룬궁에게 많은 죄를 뒤집어씌움을 말하면 절대적인 신뢰성이 있었다. 일반인은 내가 말한 것이 내부소식이라고 생각하고 매우 관심을 갖고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③ 진상을 알리는 기회와 환경을 개척하다

수련 전에 나는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고 반대로 많은 일에 대해 비교적 무관심했다. 수련 후 나는 늘 직장 동료를 도와줬고 친구 아이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거나 소개팅을 시켜줬으며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나는 한번 만나는 자리를 잡았다. 목적은 진상을 알리는 기회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다. 막 졸업한 아이들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당의 교육 하에 그들은 신념이 없고 심지어 시비도 똑똑하게 구분할 수 없으며 자신 인생과 사업에 대해 명석한 사고와 방향을 세운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나는 자주 어떻게 직업 방향을 계획하는지부터 시작해 방송국에서 자신의 경험으로 공산사당의 통치 하에 방송국은 어떻게 거짓말을 하고 가짜 뉴스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말하면 자연적으로 대법이 박해받는 것을 언급하게 된다. 더 나아가 공산 사당이 왜 파룬궁을 박해하고 공산사당은 무엇인가 말했는데 효과가 비교적 좋았다. 매번 진상을 알릴 때 나는 비교적 상세하게 말했고 보통 2시간 이상 말했다.

나는 비교적 그들의 사고와 제출한 문제를 잘 이끌었고 상대방이 의문을 보이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보통 대법 진상을 말하기 전에 나는 먼저 그들에게 대법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고 그들 마음의 매듭을 안 후 증세에 맞게 약을 썼다. 사부님께서 “중생 구도는 신의 눈으로 볼 때, 인류 사회의 한 사람이 착오를 범하면 사람의 방식으로 사람에게 개과(改過)하게 하는 그런 방법이 절대 아니다. 신은 자비한 것으로, 최대의 관용이 있으며, 정말로 생명을 위하여 책임질 뿐, 사람의 일시일행(一時一行)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은 본질상에서 한 생명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며, 본질상에서 한 생명의 불성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3]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진상을 알리는 외에 나는 그들에게 사람의 도리를 말해줬고 일부 부처를 연마하는 기본 이론을 말해줬으며 그들의 선념을 계발해줬는데 모두 좋은 효과를 얻었다.

진상을 들었던 사람들은 늘 진심으로 내게 “이런 일들을 말해줘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이런 말들을 들을 수 있어 정말 행운입니다……”라고 했다. 비록 그들의 말은 매우 소박했지만 진상을 알게 된 생명의 그런 순진하고 아름다움은 매번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때마다 나는 합장하고 기회를 개척해 주시고 지혜를 주신 자비로운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다. 나는 진심으로 중생을 위해 조건 없이 지불하고 순수한 선으로 한 사람을 감화시키고 한 사람의 불성(佛性)을 깨우치게 하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처음에 나는 일자리를 소개를 해준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만나서 진상을 알렸다. 상대방이 진상을 안 이후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일부 기회를 추천해주거나 내 프로그램에서 실습하게 했다. 대법 수련하는 사람은 ‘진(眞), 선(善), 인(忍)’을 연마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만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되자 나는 난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전부 배치할 수 없는데?! 신기한 것은 이 진상을 들었던 대다수 사람들은 짧은 시간 내에 모두 기타 일자리를 찾았고 각자 좋은 귀착점이 있게 됐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주신 것이고 진상을 알게 된 인연 있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배치를 해주신 것이다! 정말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4]

④ 자아를 내려놓아야만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2004년, 한번은 상하이에서 쿤밍에 가는데 비행기를 탑승하기 전에 인연 있는 사람을 내 곁에 배치해 달라고 사부님께 청했다. 탑승한 후 내 옆에 줄곧 사람이 없었다. 가장 좋기는 젊은 여자가 왔으면 했다. 나는 이런 사람에게 진상을 가장 많이 알렸고 비교적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한 중년 남자가 내 곁에 앉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봤는데 그의 얼굴에는 큰 면적의 점이 있었고 마침 나를 향했다. 속으로 한참 구역질을 했고 단번에 그와 말하려는 생각마저 없어졌다. 비행기가 뜬 후 속으로 줄곧 갈등했다. 이지적인 일면은 끊임없이 이 분은 인연 있는 사람이고 중생에 대해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줬다. 그리하여 결심하고 그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 입을 열지? 나는 점으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을 보면서 그가 한번 나를 보길 바랐다. 이렇게 되면 말할 기회도 생기겠는데 그는 줄곧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속으로 그를 향해 발정념을 했고 기회를 하나 달라고 ‘사부님 제가 틀렸습니다. 용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만약 그와 대화하는 기회를 주시면 꼭 사부님의 배치에 어긋나지 않게 하고 반드시 그를 구하겠습니다’라고 사부님께 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에서 음식을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우리자리까지 왔을 때 비행기가 흔들려 승무원이 내게 건네준 물이 그의 몸에 쏟아졌다. 나는 즉시 그에게 수건을 주고 도와서 닦아줬다. 이렇게 되자 교착상태를 깨뜨렸고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TV 방송국에서 일한다고 하자 그는 내 일에 대해 관심이 매우 많다고 했다. 나는 방송국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우리에게 어느 것은 보도할 수 없고 어느 것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며 내부 동태부터 알린다고 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TV는 중공사당의 대변인이 되고 각종 거짓말을 꾸며 중국 백성들을 속인다고 했다. 예를 들어 분신자살 사건을 만들어 대법에게 뒤집어씌우고 어떻게 소위 중남해를 ‘포위 공격’한다는 가짜 장면을 만드는지 말해줬다. 그는 흥미진진해서 들었다. 때때로 일부 문제도 물어봤다. 이렇게 가는 길 내내 그에게 진상을 말해줬다.

그는 장사하는 사람인데 이번에 일부러 우시(無錫)에 가서 대불상에 절을 하러 간다고 했다. 나는 기회를 잡아 그에게 부처를 숭배하는 것과 정법 수련의 진정한 구별을 말해줬고 불법(佛法)은 법이 있는 것이고 부처는 속인 중의 이익을 보호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오직 정법 수련이야 말로 바른 길이라고 알려줬다.

비행기에서 내릴 무렵에 그는 진심으로 “내게 이런 것을 말해줘서 감사합니다. 만약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난 계속 속고 있었을 겁니다. 내게 말해준 불법에 관한 말은 대단히 도움이 됐어요. 한번 잘 생각해볼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사존의 배치에 감사를 드렸고 진실하게 자아를 내려놓는 중요성을 체득했다. 관건 시각에 속인 마음에 따라 움직이지 말아야 자비심이 나올 수 있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4. 법을 실증하려면 선념으로 해야 하고 사람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된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아버지가 매우 이기적이고 완고하다고 생각해 그에게 불만이 많았다. 어머니가 수련한 후 불치병이 거의 하루 저녁에 다 나았지만 이런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그는 대법에 대해 긍정하려 하지 않았고 박해가 시작한 후 두려움 때문에 사악에게 이용당해 줄곧 어머니의 수련을 방해하고 파괴했으며 나와 언니가 잇따라 대법 수련에 들어섰을 때 그는 사존을 질투하는 마음에서 매우 좋지 않는 말을 했다. 2001년, 어머니는 직장에서 조직한 세뇌반을 피하기 위해 외지에서 1년간 숨어계셨다. 이 1년간 아버지는 늘 직장의 협박과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극도로 괴로웠다. 내가 우리집에 모셔오자 비로소 직장의 소란을 피할 수 있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한 후 아버지는 늘 “넌 아주 예쁜 여자아이인데 왜 이것을 해야 하니(대법수련을 가리킴)?”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여러 번 대법의 박해 진상을 말해주기도 했고 내가 수련한 후의 아름다운 느낌도 말해줬지만 유감스럽게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에 나는 아버지를 향해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주원신과 대화해 대법에 좋지 않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후에 아버지는 점차적으로 내 앞에서는 대법에 대해 나쁜 말을 매우 적게 했으나 사상 상에서 철저히 개변되지는 않았다. 나는 처음에 냉담하고 엄격하게 그를 대하던 데로부터 천천히 아버지의 어려움, 어머니의 수련 때문에 감당한 압력, 마음속 고통을 이해하게 됐으므로 나도 될수록 아버지를 잘 대했고 많이 관심해줬다. 이렇게 우리 관계는 줄곧 비교적 화목하게 지내왔다고 말할 수 있다.

2012년 6월, 7월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요로결석이 발작해 매우 고통스러워 하셨다. 나는 병원으로 모시고 응급진찰을 받았고 아울러 병원에서 밤새 같이 있었다. 이틀이 지나자 아버지는 좀 나아지셨다. 어느 날 저녁에 아버지는 또 나보고 중의사 집에 가서 지압을 받겠다고 했다. 그 중의사는 우리와 친구였기 때문에 그 집에 도착하자 우리는 어머니 수련의 일을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발정념하면서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때 비교적 이지적으로 말했고 비록 그 중의사도 완전히 대법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박해에 대해서 바른 태도를 표시했다.

중의사 집에서 나와 차를 몰고 아버지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차에 오르자 내게 “난 도저히 모르겠다. 너같이 우수하고 예쁘고 젊은 사람이 왜 하필 파룬궁을 배우니?”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비교적 평온하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내가 대법을 배운 후의 느낌을 말해줬으나 아버지는 계속 옆에서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동창생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혼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예 부모를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는 “옳은 말이 전혀 없어. 이것이 바로 너희들의 사악한 부분이야. 파룬궁을 배우지 않으면 이혼하는 것이냐? 부모를 관여하지 않는 것이냐?”라고 사정없는 말로 반박했다. 나는 “그 속인들도 이혼하고 싶지 않고 혼외정사를 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는 겁니다. 유혹이 조금만 있으면 방종하고 자신의 향락만 누려요. 아빠의 동료들을 보세요, 몇 명이나 부모를 보살피고 있나요? 제가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매우 이기적이고 부모님과 생활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듣자마자 노발대발했고 차에서 큰 소리로 욕하기 시작했다. 나도 화가 나서 매우 엄한 말투로 내 앞에서 사부님과 대법을 욕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집에 돌아온 후 속으로 매우 괴로웠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금방 발생한 세부적인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돌이켜 생각해봤다. 꼭 내게 무슨 문제가 있다. 내가 무엇을 말했기에 그 몸에 있던 좋지 않는 물건을 건드렸고 사악에게 통제되어 내 앞에서 표현하는가? 이후에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만약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부모님과 생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후부터 아버지는 히스테리하게 변하게 시작했다.

지금 수련한 후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이 진심이냐고 자신에게 물었다. 계속 나는 사실 내가 아버지를 잘 대하는 것도 목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아버지가 대법을 인정하고 수련인을 인정할 것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몇 년간 마음속에 줄곧 내가 아버지를 부양하니 반드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상이 있었다. 아버지를 잘 대하는 것은 진심이 아니었고 대법 진선인의 요구에 비하면 너무 격차가 컸던 것이다. 이런 사상을 갖고 그보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하고 수련인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하는데 그가 어찌 탄복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대법의 존엄은 속인의 수단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대법제자들 개개인의 진정으로 자비롭고 선(善)한 표현으로 가져오는 것이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는 사람의 행위가 아니고 사람의 수단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는 자비 중에서 생긴 것이고, 중생 구도와 당신의 수련 중에서 체현된 것이다”[5]라고 말씀하셨다.

문제점을 찾은 후 나는 갑자기 이 며칠 자신의 사상에 똑똑한 인식이 있게 됐다. 아버지가 깊은 밤에 병원에 갈 때 나는 이미 번거롭고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깊게 은폐되어 스스로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사악과 구세력은 나의 누락을 봤기 때문에 그를 통제하고 내 앞에서 법을 공격하고 사부님을 공격하게 했다. 자신에게 은폐된 이기적인 마음이 있었지만 줄곧 폭로되지 않았고 그에 대해 형성된 나쁜 관념도 이때 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자 비소로 수련의 표준이 얼마나 엄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심으로 이 깊이 은폐된 이기적인 마음을 꼭 제거하겠다는 일념을 내보냈다. 성심성의껏 그를 잘 모시고 진정으로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해내겠다. 바로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자비롭게 그를 대하겠다.

정말로 신기했다. 이튿날 뜻밖에 그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줄곧 오늘까지 그는 다시는 내 앞에서 대법을 공격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실제행동으로 그가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대법에 대한 관념을 개변하고 진정으로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상은 이 몇 년 동안 수련한 일부 얕은 체득이다. 나는 한 것이 아직 부족하고 우월한 경제적 조건 하에 매우 쉽게 안일심이 생기거나 어떤 때 3가지 일을 다그쳐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주변 속인들은 늘 휴가를 보내고 여행하고 먹고 놀았다. 그들은 내가 궁금해서 자주 “넌 하루 종일 무엇에 바쁘니? 도대체 뭘 좋아하니?”라고 말했다. 그렇다, 내가 뭘 좋아하는가? 이 몇 년 동안 속인의 일에 대해 정말로 점차적으로, 조금씩 담담해졌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게 변했다. 억지로가 아니라 정말로 법 중의 표현이다. 내가 진상을 똑똑하게 알리고 한 생명을 삼퇴시켰을 때야만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수련생이 법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내 법리를 깨닫고 제고와 진보가 있었을 때야만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었으며, 하나의 관을 넘고 하나의 법리를 깨달으며 진실한 제고를 느끼고 사존께서 바로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야만 비할 바 없이 행복했다! 한 수련생은 잘 말했다. “속인 속에서 당신이 지불하면 보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수련은 당신이 지불하기만 하면 꼭 보답이 있다.” 그러므로 수련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수련생들이여, 우리가 3가지 일을 잘하고 자아를 내려놓으면서 최후의 휘황찬란함을 향해 걸어가자!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2-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4-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8/2816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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