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이 할머니는 신선이야”

글/ 옥련(玉蓮)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나는 외딴 시골에서 자란 할머니다. 3살 때 부모를 잃고 양어머니가 날 키웠다. 나는 철이 들 때부터 일을 했고 양모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날 구박했다. 10살 때부터 생산대(중국에서 문화대혁명 때 단체노동)에 참가했고 하루 일을 하고 나면 아주 힘든 감이 들었다. 점심 2시간 휴식시간에도 양모는 나에게 일을 시켰다. 너무 고생스러워 하루가 너무 긴 느낌이었고 날도 어두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16살 때 양모는 나에게 남편을 찾아 주었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이 가난하고 나에게 결정권이 없기에 남편에게 시집가게 됐다. 남편은 일하기 싫어하고 자주 나를 때려 두 번이나 기절한 적이 있다. 한번은 칼로 나를 내리치려 해서 손으로 막자 어깨에 칼이 박혀 큰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시부모도 나를 업신여겼다. 갈 곳이 없을 때 나는 6개월 된 아들을 안고 시숙모 집에 가서 말했다. “이렇게 살 순 없어요. 나는 떠날 거예요.” 시숙모는 “가면 안 된다. 장래 세계종말이 올 때 불을 지펴도 불이 붙지 않고 부처를 모시는 향불만 불이 붙는다. 그때 무슨 귀신이나 마귀가 전부 나와 사람을 놀라게 해 죽일 것이다. 그때 우리를 구하는 사람의 성은 리(李)씨다.” 이 말을 한지 지금까지 33년이 지났다. 당시 나는 시숙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고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왔다.

남편에게 구박을 받아 빗자루도 자주 부러졌다. 한번은 풀명자나무를 싣다가 남편이 생트집을 잡았다. 나무의 흙을 깨끗이 치우지 못했다고 욕을 퍼부었다. 나는 남편의 쇠고랑으로 맞을까 봐 줄곧 말을 못했다. 며칠이 지난 후 남편에게 밥을 가져다주는데 내가 밥을 늦게 가져왔다고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 갔던 거지? 나에게 밥을 주지 않고?” 나는 “나도 일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밥을 남편에게 놓고 뒤돌아 집으로 가려 했다. 갑자기 남편은 쇠고랑으로 내 등을 내리쳤다. 나는 피하지 못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집으로 뛰었고 남편은 나를 뒤쫓으며 때리다가 쇠고랑 끝이 부러졌다. 쇠고랑은 세 토막이 됐고 사탕무를 싣는 기사가 와서 뒤에서 남편의 허리를 붙잡자 남편은 뒤돌아 기사를 내리쳤다. 기사는 말했다. “열 받네. 나도 때릴 거야!” 더는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집에 돌아가 보니 온몸은 시퍼렇게 되고 바지에 실수까지 했다.

나는 조용히 울기만 하고 사는 게 너무 고생스럽다고 생각해 농약을 찾아서 마시려 했다. 한 병을 찾으면 농약이 아니었고 또 한 병 찾아도 아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남편이 갑자기 머릿속에 ‘그녀가 농약을 먹으면 어떻게 하지?’란 생각이 떠올라 농약을 숨겨 놓았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죽으면 좋을까? 길에 가서 차에 치여 죽자.’ 아픈 몸을 끌고 집을 나섰다.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차에 다가갈 때 갑자기 두 사람이 내 앞을 가로막았고 어느 집 개도 필사적으로 짖었다. 이때 남편은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나를 찾았다. (이전에는 나를 때리고 전혀 나를 찾은 적이 없었다.) 남편은 단번에 나를 붙잡고 말했다. “당신 뭐하는 짓이야?”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죽으려 해요. 정말로 살 수가 없어요. 당신이 나를 때려 이 모양이 됐어요. 나는 어떤 나쁜 일도 하지 않았고 단지 밥을 좀 늦게 가져다 줬을 뿐인데 날 이렇게 혹독하게 때리다니요.” 그도 냉정해지고 단번에 나를 가슴에 안고 큰소리로 울었다.

나는 늘 생각한다. 나의 운명은 왜 이리도 고생스러울까. 철이 들기 전에 부모를 잃고 어려서 여태껏 가족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었으며 결혼한 후 시부모와 남편의 구박을 받았다. 나는 전에 몇 가지 죽을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전부 성공하지 못했다. 목을 매어 죽으려 하니 끈이 끊어지고(굵은 나일론 끈) 농약을 먹으려하니 농약이 사라졌으며 차에 치려 하니 사람이 막고 개가 짖어 하지 못했는데 마치 어딘가 신이 보호해 주는 것 같았다.

1998년 나는 다른 사람의 소개로 다행히 대법을 얻었다. 나는 처음 ‘전법륜’ 이 소중한 책을 받고 사부님의 사진을 보았을 때 왠지 낯익어 보였다. 어디에서 만난 적이 있는 듯 하고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들었으며 그때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자꾸 눈물만 흘렸다. 마치 부모를 잃은 아이가 부모의 따뜻한 가슴에 돌아온 것 같았다. 이것은 내가 평생 처음으로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이 든 순간이었다.

내가 사부님의 비디오를 볼 때 사부님께서 연속 파룬을 내려주신다고 하자 나는 아랫배에 파룬이 도는 것을 느꼈다. 집에 돌아간 후 나는 기뻐하며 이 일을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믿지 않았다. “허튼소리, 배에서 파룬이 돌 수 있다고?” 나는 말했다. “당신이 믿지 않지만 이건 정말이에요.” 남편은 내가 그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혼자서 중얼거리며 말했다. “이상하다, 정말 신기하네.” 얼마 지난 후 남편은 갑자기 말했다. “내 아랫배에도 왔다갔다 그러는데?” 나는 말했다. “아마 당신도 사부님께서 파룬을 내려주신 걸 거예요. 날 따라 함께 배워요.” 그 후부터 남편도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연공장에 가서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며 중단하지 않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총총히 지나갔다. 이듬해 1999년 7월에 강마두(江魔頭-장쩌민)를 위주로 한 사악은 파룬궁에 대해 하늘을 뒤덮을 듯한 박해를 진행했다. 악독한 비방, 터무니없는 거짓말, 각종 언론매체를 이용하고 각종 방식을 이용해 모든 중국인을 중독시키고 기만했다. 한순간 암흑이 왔고 사람마다 두려워했다. 도시부터 시골까지 온통 시끄럽고 직접 대법제자에게 전면적인 박해를 진행했다. 마을 수련생들은 대부분 수련하지 않게 됐다. 나는 이렇게 좋은 법을 버리면 안 되며 꼭 견지하겠다고 생각했다.

2000년 말 내가 집에서 ‘홍음-마음고생’을 볼 때 갑자기 생각났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사악의 공격을 받으셨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이고 직접 이로움을 본 사람이기에 사악이 사부님을 비방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베이징에 가야하고 사부님을 도와 정의를 찾아야 하며 사부님의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 나는 결정했고 그날 밤 꿈을 꿨다. 금빛 찬란한 대법 법선(法船)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격려해 주시는 것이었다. 다음 날 나는 주머니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를 넣고 홀로 베이징으로 갔다.

법을 공부하고 법을 얻으며 법을 믿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나는 1년 불법노동교양을 받았다. 집에 돌아온 후 과거 법공부팀과 연공장이 사라졌고 수련생과의 교류도 사라졌다. 남편은 한 글자도 모르고 나도 몇 글자 모른다. 이래도 나는 매일 법공부를 하고 모르는 글자는 손에 써서 밖에 나가 학생에게 물었다. 끊임없이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자주 나를 일깨워주셨고 자신도 사부님의 법을 기억할 수 있었으며 수련 중에 관통됐다. 아래는 내가 발정념을 해 병마를 제거한 두 가지 사례다.

한번은 갑자기 머리가 아파 발정념을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우리가 가장 보편적인 것을 말하자면, 사람이 어디에 종양이 자랐고, 어디에 염증이 생겼으며, 어디에 골질증식이 생겼다는 등등이다. 다른 공간에서는 바로 그곳에 한 영체가 엎드려 있는데, 아주 깊은 공간 중에 한 영체가 있다.”[1] 나는 입장하고 생각했다. 다른 공간의 깊은 곳의 영체를 제거한다. 이때 아랫배에서 납작하고 동그란 긴 털을 가진 물건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발정념을 한 후 내 머리는 금방 깨끗해졌다.

또 한 번은 신체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 철저히 다른 공간의 그 영체를 제거하려 했다. 생각밖에 허리부분에서 검은 개 같은 물건이 기어 나왔다. 하지만 머리를 보지 못했고 네 다리로 걸어갔다. 그 후부터 온몸이 가벼워졌다.

또 한 번 기억이 나는데 심성을 지키지 못해 남편과 화를 내서 가슴이 매일 아팠다. 어느 하루 길에서 갑자기 불법은 만능이라는 것이 생각났고 어떤 공능을 가지려 하면 사부님께서 그 공능을 주신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의 심장에 병이 있다고 하면, 이 손을 심장부위에 대고 잡아 쥘 때, 다른 공간의 그 손이 들어간다. 순간적으로, 아주 빨리 잡아 쥔 다음 당신의 바깥 손이 잡기만 하면, 두 손을 한데 합쳐 곧 손에 잡게 된다.”[1] 나는 당초 가슴부위를 향해 두 번 잡아 버리자 가슴이 즉시 아프지 않았다.

내가 이 한 단락을 쓰는 것은 수련생에게 알려 주려는 것인데 당신이 아플 때 어디 불편할 때 그것을 병으로 보지 말 것을 바란다. 사부님께서 수련인은 병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일에 부딪히면 사부님의 법과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통 정념으로 제거해야 한다.

“우리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2008년 사당이 올림픽을 하기 전 나는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파출소에서 나를 붙잡고 처음에는 부드럽게 어깨를 두드리며 “할머니, 수련하지 마세요.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우리는 당신을 놓아줄 수 있어요.” 나는 말했다. “수련합니다! 파룬따파가 좋아 나는 꼭 수련하겠어요.”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할머니 완고하네. 노동교양을 2번이나 하고 또 수련한다고 하다니.” 그들은 쓴 것을 주고 지장을 찍게 하려 했다. 내가 지장을 찍지 않자 몇몇 경찰이 두 손을 잡고 힘을 들여 손가락을 나누려 했지만 실패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본인이 찍지 않으려 하는데 억지로 하려 하다니?” 그들은 웃음보를 터뜨리며 내 손을 놓았지만, 현공안국에 데려가 구치소에 가두었다. 들어가 보니 많은 수련생이 감금되어 있었다. 12일 후 나는 사부님께 청했다. “사부님, 나는 단지 여기서 15일만 있을 거예요. 사부님 도와주세요.” 정말로 제자가 이 일념을 내보내자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15일 후 경찰은 밖에서 내 이름을 불렀고 날 석방했다. 문 입구에 가자 전화에서 내 이름이 들렸고 나를 석방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결정하지 못해. 우리 사부님께서 결정한다. 나는 오직 사부님만 믿는다.” 옆의 경찰이 말했다. “이 할머닌 뭘 중얼거리는 거야?” 이때 밖에서 총총히 키 큰 경찰이 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석방, 석방, 가라고 해.” 이렇게 사부님의 가호아래 나는 구치소를 걸어 나왔다.

비바람과 눈비가 몰아쳐도 중생을 구하다

나는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대법수련을 견지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악이 중점적으로 감시하는 대상이었다. 지방의 경찰차는 나를 추격하고 차단했으며 성의 도시 터미널은 엄격하게 단속했지만 내가 베이징에 가는 것을 가로막지 못했다. 위협하고 감시해도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는데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기에 대법제자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

한번은 나와 남편이 깊은 밤에 자전거로 진상자료 한 자루를 싣고 이웃 마을에 가서 자료를 배포했다. 마을 입구에서 남편에게 남은 절반 자료를 지키고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재빨리 배포하고 또 절반을 가지러 왔다. 배포하고 얼마 남지 않을 때 뒤에서 경찰차가 광속으로 달려왔다. 숨으려 해도 숨을 틈이 없어 나는 진상자료를 가슴에 안고 사부님께서 씌우개를 하나 씌워 주시고 사악이 나를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경찰차는 경광등을 켜고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남은 전단지를 배포하고 남편을 찾아갔다. 남편은 긴장하며 말했다. “아, 방금 전 경찰을 보지 못했어요? 라이트를 켜고 지나갔는데.” 나는 말했다. “두렵지 않아요. 사부님께서 나를 구하셨어요.”

어느 겨울에 나는 외딴 마을이 생각났다. 그곳 중생은 아직 구도되지 못했다. 나는 한 수련생과 새벽 3시에 자전거를 타고 자료와 천안문분신 거짓사건 CD를 지니고 출발했다. 교차로에 도착하니 어디로 갈지 몰랐다. 그 수련생은 “당신은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한번 가볼게요.” 나는 말했다. “필요 없어요. 우리는 사부님께 청합시다.” 나는 두 길에 서서 사부님께서 길을 가리키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한 길이 밝아졌다. 나는 수련생에게 말했다. “알았습니다. 우리 여기로 가요.” 우리 둘이 막 가려 할 때 갑자기 높은 산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수련생은 두려워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나는 사부님의 시를 외우며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眞善忍(쩐싼런)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2] 우리 둘이 계속 앞으로 가자 온통 묘지였다. 묘지마다 작은 창문에 빛이 났다. 내가 사부님의 법을 두 번 읽자 빛이 사라지고 일체가 원래로 회복됐다.

우리가 마을에 도착할 때 마을 산 올라가는 길이 미끄럽고 눈이 많았다. 우리 둘은 있는 힘을 다해 힘들게 자전거를 산꼭대기로 밀며 마을에 들어갔다. 마을의 개가 짖으면 우리는 발정념을 했는데 그러자 짖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발정념을 하고 진상을 집집마다 배포했다. 우리가 돌아갈 때 날이 채 밝지 않았다. 앞에 마차 한 대가 왔다.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우리를 보고 외쳤다. “당신들은 사람이요, 귀신이요?” 나는 그에게 대답해주었다. “신(神)입니다!” 광야에서 내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신(神)입니다!” “신(神)입니다!”

7,8일이 지난 후 우리 집에 17,18세 아가씨가 왔다. 우리 집에 신발을 수리하러 왔다고 했다.(남편은 신발을 수리하는 사람임) 나는 그 아가씨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아가씨는 마을 이름을 말했다. 나는 듣자 우리가 금방 갔던 마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가씨에게 대법자료를 보았냐고 물었다. 아가씨는 “보았어요. 천안문 분신사건은 가짜더군요.” 나는 ‘괜히 간 것 아니구나, 그곳 중생이 구도됐다’고 생각했다.

2002년 나와 남편은 저녁에 현수막을 걸러 갔다. 긴 현수막이라 우리는 쇠사슬로 현수막을 한쪽에 걸고 다시 반대쪽을 긴 막대기로 전봇대에 밀었다. 한편으로 밀고 한편으로 말했다. “사부님 가지해 주세요, 사부님 가지해 주세요.” 그 현수막은 위로 조금씩 올라가고 막대기가 닿지 않는 곳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밤에 14개나 걸었다. 줄곧 다음해 3월까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일체는 다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신 결과이며 일체는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다.

‘9평공산당’이 나온 후 나는 집집마다 배포했다. 하루는 밖에서 큰비가 내려 집에서 법공부를 했다. 이때 머리에서 일념이 떠올랐다. ‘사람을 구하자.’ 나는 즉시 신을 신고 펜 하나와 노트를 갖고 집을 떠났다. 밖에 큰 비가 내리고 길에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 나는 집집마다 찾아가 보자. 이웃집 문을 열고 나는 들어갔다. 그 집 사람이 나를 보고 놀랐다. “이렇게 큰 비에 당신은 무슨 일이 있나요?” 나는 말했다. “일이 없으면 찾아오지 않아요. 나는 당신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들은 왜 그들을 구하느냐고 물었다. “‘갖가지 재난이 모두 머리에 매달려 있어요.’[3] TV에 말하는 천안문분신사건은 가짜입니다.” 그들은 나에게 일부 문제를 물었다. 나는 일일이 그들에게 대답해 주고 삼퇴의 중요성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말했다. “아, 본래 그렇구나. 대법이 우리를 구하러 왔구나. 우리는 전부 퇴출하겠습니다.”

또 한 집에 들어가 진상을 알린 후 온 가족은 삼퇴를 했다. 구들에 80여세 할머니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급히 외쳤다. “내 이름도 적어주세요.” 그 며느리는 “어머님은 무엇도 가입하지 않았는데 뭘 퇴출하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나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나도 쓸 겁니다. 대법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또 공무원 집에 들어가 진상을 알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은 간부입니다. 당신이 감히 실명으로 퇴출하지 못하면 가명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가명으로 하지 않고 대법이 우리를 구하러 왔으니 우리는 대법을 속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실명으로 하겠습니다.” 정말로 중생은 구도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 집에 돌아가 조사해 보니 57명이 퇴출했다. 나는 그때 적지 않게 퇴출했다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의 서약과 비기면 구하는 사람이 훨씬 모자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왜 만족하는 마음이 나올까? 정말로 사부님께 부끄러웠다. 이튿날 나는 또 한집씩 돌면서 진상을 알렸는데 모두 순조로웠다. 우리 마을 대부분은 다 당원, 단원, 소선대에서 퇴출했다.

한번은 산에 한 집이 있어 나는 들어갔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9평’ 대련, 호신부, 달력을 배포했다. 마작을 하는 사람이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전부 배포하지 말아요. 우리에게도 주세요.” 그들의 남자 집주인이 당원을 퇴출시켰는데 모두 12명이 삼퇴했다. 나는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준 물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입니다. 이후에 남겨둬도 가장 좋습니다.” 그 집의 여주인이 격동되어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주는데 나는 대법에 돈을 좀 헌금하겠습니다.” 나는 속인의 돈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거절했다. 하지만 그녀는 꼭 주려고 했다. 나는 거절하지 못해 “그러면 당신은 성의를 표시하세요. 1,2위안이면 됩니다.” “아니에요. 나는 50위안을 주겠습니다.”

나는 한 집씩 돌아가며 진상을 알리고 수시로 인연 닿는 사람에게도 진상을 알렸다. 어느 날 내가 길을 나서자 40여세 되는 중년남자를 만났다. 나는 그와 인사를 하고 그에게 당원에 가입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파룬궁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말했다. “당신은 아직 파룬궁을 언급할 수 있네요. 우리 마을의 OO는 붙잡혀 갔습니다.” 나는 “당신 손오공이 오행산에 500백년 갇혀 있다가 나왔는데 그는 나온 후 무엇으로 변했습니까?” 그는 무엇을 깨달은 것처럼 말했다. “아, 원래 그렇구나!” 동시에 그는 단원을 퇴출했다. 우리가 정확하게 말해주면 중생은 구도될 수 있다. 그렇다면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법이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또 한 번은 내가 모 지역에 나가려 할 때 승합차가 왔다. 내가 차에 오르자 차에 12명이 있었다. 당초 나는 머릿속에 일념이 나왔다. 이것은 모두 나의 중생이다. 나는 그들을 구해야 한다. 나는 큰소리로 차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들은 물었다.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죠?”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마다 이름을 물었다. 한 차에서 12명이 기쁘게 실명으로 삼퇴했다.

모 지방에 가서 내가 차에서 내리자 차에 한 사람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이 할머니는 신선이야!”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위덕’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3-재난은 왜 이리 많은가’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7/282007.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