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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의 집착에 대한 집착을 제거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다른 수련생과 접촉할 때 나는 그 수련생의 집착심을 보고 교류를 하면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는 것을 보았다. 왜 분명한 일, 분명한 대법의 법리를 놓고서도 내려놓지 못하는가? 나는 곤혹 속에 빠져 벗어나지 못했다.

수련생과 교류를 할 때 나는 말하면 말할수록 격동된다. 상대 수련생은 듣고나서 말하기를 당신은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하지 말고 화내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한방에 나의 급소를 찔렀다. 나의 집착심, 바로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하고 다른 사람이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 집착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수련생을 도와 안을 향해 찾아주려는 배후에 숨겨져 있고, 또 다른 수련생을 도와 집착심을 제거해 함께 제고하려는 배후에 숨겨져 있어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 “여러분은 아마 선종에서도 돈(頓)・점(漸) 구분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선종의 육조(六祖) 혜능은 돈오(頓悟)를 주장하고, 북파(北派)의 신수(神秀)는 점오(漸悟)를 주장했다. 역사상 그들 두 사람은 불학(佛學)에서 아주 장시간 논쟁을 벌였으며, 논쟁하고 또 논쟁했다. 나는 의의가 없다고 말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그들이 가리킨 것은 단지 수련과정 중에서 어떤 이치에 대한 인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이치를 어떤 사람은 단번에 인식했으며, 어떤 사람은 천천히 깨닫고 천천히 인식했다. 어떻게 깨달았든지 안 될 것이 있는가? 단번에 인식하면 더욱 좋고 천천히 깨닫는 그것도 되는데, 모두 깨달은 것이 아닌가? 모두 깨달은 것이므로, 어느 것도 괜찮다”[1]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법에 대조해 나는 깨달았다. 수련생이 집착하여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법에서 깨닫지 못한 것이고 깨달으면 자연히 내려놓기 마련이며 단지 오늘 깨닫는지 내일 깨닫는지 하는 시간 문제다.

사부님의 설법은 나에게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하는 것을 찾게 하셨다. 이 집착의 뿌리는 현대 과학의 독해를 받은 것이다. 단지 한 가지 점만 보고 빠져드는 것이고 다른 면을 보지 못한 것이며 한 가지 집착심을 보고 생명의 전 과정을 보지 못한 것이다. 오직 수련을 잘하지 못한 일면을 보고 대법제자 매 사람이 사부님과 서약을 맺고 오늘까지 서약을 실행하는 전 과정은 전 우주 생명이 다 부러워하고 감탄하며 사부님의 정법과 함께 있는 그런 특수하고 전대미문하며 위대하고 신성하다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이미 수련을 잘했으며 수련이 잘 된 부분은 이미 격리됐다.

나는 안을 향해 찾고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하는 것은 밖으로 찾는 것이고 교류 과정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것을 잊었다. 나는 똑똑히 알고 있다. 어떤 사람과 내가 교류 후 여전히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하며 거듭 이 집착심을 내가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이 집착심이 있는 것이고 그가 나를 도와 집착심을 제거해주는 것이다. 만약 매 수련생이 모두 자신의 집착심을 즉시 내려놓으면, 내가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하는 마음이 폭로되지 못했을 것이고 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진심으로 수련생이 나를 도와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하는 것을 제거해 준 것에 감사한다. 나에게 제고하는 기회를 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3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6/2823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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