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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덕을 구하지 않는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늘 수련생에게서 내가 이 일을 하면 위덕이 있고, 하지 않으면 위덕이 없다거나 혹은 어떻게 하면 더욱 큰 위덕이 있게 되고, 심지어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큰 위덕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사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러한 수련생들이 구하는 ‘위덕’은 전혀 수련인의 위덕이 아니며, 정확하게 말한다면 ‘명리’로서 대법제자 항목 중에서 명리, 지위, 남보다 뛰어난 것을 구하는 것이다.

나 자신은 평소 ‘위덕’이라는 두 글자에 대해 아주 드물게 생각한다. 다만 어떻게 하면 세 가지 일을 잘 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중생구도를 더욱 잘 할 것인지, 내가 구도하려는 사람들을 구도했는지 등을 생각한다. 그래서 매번 수련생이 입버릇처럼 ‘위덕’을 언급할 때면 내 귀에 아주 거슬렸는데 그러면 위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집착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마음 때문에 수련생 사이의 간격이 아주 컸는데 자신을 닦는 것을 노력하고 선의로 수련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위덕’을 가지려 다투고, 심지어는 질투까지 하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수련을 잘하지 못한 수련생을 업신여기기도 한다. 일종의 변이된 마성이 됐고 따라서 중생 구도도 가로막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공덕을 성취함은 나중의 일이라 하늘을 바로잡고 땅을 바로잡고 중생을 바로잡노라”[1]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왜 깨닫지 못하는가? 자신이 정정당당하게 중생을 구도하러 가고, 다른 수련생을 도와 심성을 제고해 주며, 수련생을 협조하여 그들이 하고자 하는 사람 구하는 일을 잘하는 것은 사실 모두 사부님의 안배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럼 이것이 바로 조사정법 아닌가? 바로 위덕을 수립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속으로 위덕이 크고 출세하기를 바라며, 따라서 다른 수련생을 질투하거나 도와주지 않으며 심지어 궁지에 빠뜨리게 하고, 오로지 자기에게 좋은 것만 골라내며, 자신이 보기에 위덕이 크다는 항목을 서로 다투고 빼앗는 것은 모두 마성의 이끌림 하에 한 것으로서 한 것들은 모두 마가 기뻐하는 일들이다. 어찌 위덕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위덕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한 것으로 어떠한 위덕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법을 파괴하는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대륙의 수련생들도 비슷한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일체 집착심을 내려놓고 수련하자’ 중에서 이 수련생은 깨닫게 됐다. “나중에 안으로 닦는 중에서 이러한 집착심들을 층층이 일정 정도로 파냈을 때 나는 숨어 있던 다른 하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됐다. 즉 늘 그 항목이 더욱 중요하고 더욱 큰 위덕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으며 자신의 머릿속에 대법 수련 속에서 ‘남보다 뛰어나겠다’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도 모르게 참여하는 항목을 ‘명예를 다투고 이익을 추구하는’ 장소로 여겼다. 이러한 욕망의 부추김 하에 자신의 일체 집착과 나쁜 사상은 전부 남김없이 폭로됐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러한 집착심은 속인보다 더욱 나쁘고 저급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구하고자 함이 없어야만 자연히 얻는다! 대법제자들이 오늘날 한 일체는 바로 역사가 당신들에게 부여한 책임으로서 당신은 당당하게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하도록 하라. 무엇이든 모두 그 속에 있다. 당신이 늘 원만에 이르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원만에 이를 수 없다”[2]라고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정말로 세 가지 일을 열심히 잘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닦아야지,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는다면 대법제자 속에서 얼렁뚱땅 묻어가는 것과 같으며, 무의식중에 파괴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의 얕은 깨달음으로서 적합하지 않는 곳은 지적해 주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2 – 일념중’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문장발표: 2013년 10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0/18/2813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