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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혹이 법공부를 하는 중에서 명백해지다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후]수련생이 나를 보러 왔다. 5분간 앉아 있었는데 한마디 인사말도 없었다. 나는 수련생이 잘 수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련생이 가기 전에 한마디 했다. “회사에서 당신이 도대체 수련인인지 아는가요?” 나는 이 말의 뜻을 알고 있다. ‘우리는 사악에 박해 당한 적이 있고 당신 부모를 포함해서. 하지만 당신만이 왜 박해 받지 않는가?’ 이를 직접 나한테 물어본 적이 있고 암암리 남을 헐뜯는 것도 있고 뒷담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로 인해 나는 고민했다. ‘박해 받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왜 반드시 박해 받아야 하는가?’

3년 전 나는 이 지역에 유일하게 박해를 받지 않은 대법제자로 됐다. 수련생에게서 오는 압력은 나를 분노하게 했고 곤란하게 했다. 수련생의 태도는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나는 한동안 자포자기하고 소침해졌다. 수련생이 나를 의심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자신이 별로 잘 수련하지 못한 것 같고 말도 잘 하지 않고 성격이 융통성이 없다. 이런 사람이 610, 경찰, 특무를 대면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특히 상하이 세계박람회 때 어느 회의에서 우리 단위 지도자는 한 수련생에게 보호성 차원에서 한마디 했는데 이는 나를 일깨워 주었다. “상사와 일을 하면서 소책자를 배포한다고 하는데 우리 여기는 이런 일이 없지요.” 수련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이것은 중생이 진상을 알고 자신의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수련생의 태도도 나를 장기간 곤혹스럽게 했고 스스로에게 불만을 가졌다. 내가 정말로 문제가 있어 수련생이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몇 년간 나는 자주 수련생의 문제에 곤혹스러워했다. 나는 왜 박해 당하지 않았는가? 오늘 ‘2007년 뉴욕법회설법’을 볼 때 “매 수련자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자기 수련의 표현이다.” 나는 약간 깨달은 느낌이며 계속 보았다. “물론 어떤 일이든 말하기는 간단하지만 내가 참여하기만 하면 이 성질이 곧 변한다. 여러분 알다시피, 대법제자는 법을 실증하는 것인데 그럼 사부는 무엇을 하러 온 것인가? 사부는 정법(正法)하러 온 것이다.” 두 번째 ‘사부’를 읽었을 때 스스로 중얼거렸다. “사부 , 사부 ” 나는 마치 사부님 신체 하나의 분자로 됐다. 갑자기 한줄기 에너지가 가부좌한 다리에서 정수리로 올라갔다. 나는 갑자기 깨달았는데 대법을 수련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16~17년이 됐는데 사부님은 세간에서 나의 유일한 친인이다. 그날부터 나는 인간의 세상물정을 잊었다. 본래부터 나는 세간의 물정을 잘 모르고 내가 법을 얻어 유일한 희망은 다그쳐 수련해 하루 일찍이 사부님의 곁에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침착하게 걸어올 수 있는 수련의 길이다. 마음에 잡념이 없고 단지 마음속에 사부님 밖에 없고 대법 밖에 없다. 대법을 수련하면서 내가 세간에 있는 일체는 ‘수(修)’와 ‘연(煉)’을 위한 것이다. 정법이 시작된 후 내가 유일하게 해야 하는 것은 3가지 일을 잘 하는 것이고 세간에서 바라는 것이 없다. 대법은 나에게 세간의 일체를 담담하게 보게 했고 법공부는 사악한 구세력이 틈을 타지 못하게 했으며 사부님의 말을 듣고 일체 구할 수 있는 생명을 구했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는 이미 옷이 젖어있었다. 나는 ‘사부’ 단어의 뜻은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고 3가지 일을 잘 하면 일체는 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자비 구도에 감사합니다.

문장발표: 2013년 10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0/2/2805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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