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우리 지역의 두 수련생이 잇따라 구세력의 박해를 받아 ‘병업’의 방식으로 사망했다. 이중에는 나와 함께 반(反)박해에 참여한 익숙한 A수련생도 있었다. A수련생은 50세가 되지않아 젊은 축에 속했다. 그가 중생을 구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더욱 많이 해야 할 때 사람의 육신을 잃어버렸다. 우리에게도 사람을 구하는 힘이 적어졌다. 우리 몇몇 수련생이 함께 A수련생을 담론할 때 가슴이 아픈 것 외에 또 문득 홀연히 깨어난 것이 있다. 우리 지방에 정체 수련 중에 누락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이 어디에서 잘 하지 못했는가를 반성했다.
99년 사악이 미친 듯한 박해 초기를 기억하면 당초 나는 두려운 마음이 중하고 이수련생은 자신의 생사와 경제적 곤란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번 혼자 1,000킬로미터 거리의 다른 성(省)에 가 사당이 박해한 증거를 외국으로 전송했다. 10여 년간 그는 사악에 놀라 넘어지지 않고 신사신법하며 수련을 했다. 후에 그는 생계를 유지하고 아들에게 집을 사주기 위해 다른 도시로 갔고, 점차 속인이 추구하는 생활에 신경을 쓰게 됐으며 당초 그런 정진하는 상태가 사라졌다.
나는 그가 수련인 답지 않게 변했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그에게 나쁜 감정이 생겼다. 나는 법에서 그와 교류하지 않고 반대로 그를 멀리하고 그와 만나면 냉정했다.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그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보러 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사람의 일면으로 그를 대한 것이고 법에서 그를 도와 정념으로 이 관을 넘기게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우리가 잘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세력에게 틈을 타서 박해를 받아 사람의 육신을 잃었다. 나는 아주 후회하고 가슴 아팠다. 자신의 수련이 너무 부족하고 영원히 이 유감을 메우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에서 나는 반드시 아주 좋지 못한 자만의 마음, 자신이 법리를 많이 알고 다른 사람보다 잘 수련했다고 겸손하지 않은 사람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체험이 있고, 사람마다 모두 부동한 감수가 있는바, 사람마다 부딪힌 문제에서 모두 같은 인식이 있다거나 모두 같은 겨냥 방식과 처리 방법이 있다고 말하기가 어려운데, 몹시 어렵다. 왜냐하면, 사유 방식과 사상 내원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1]
사부님의 법에 따르면 자신의 표준으로 수련생이 법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수련인은 사람 마음이 있어야 수련할 수 있고 각자 자신이 어디에 잘 하지 못한가를 찾아야 한다. “수련하는 사람은 수련하는 신(神)이 아니므로 수련과정 중에 누구든지 잘못이 있게 마련이지만 관건은 어떻게 대하는가이다.”[2]
분명히 할 것은 수련생이 문제가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이 방면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제고해야 할 부분이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수련 중 아직 법을 실증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실증하는가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법을 실증하면 자신을 과분하게 보지 않는다. 수련생의 부족한 문제에 대해서도 사실상 자신이 수련하는 두 가지 상태의 반응이다. 하나는 사람 마음의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법에 부합되는 수련이다. 사람의 표현은 말하기를 자신이 법으로 가늠한다고 하지만 사실 표면상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고 밖으로 찾는 것이고 기점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법에 부합된 수련은 자신이 법리를 깨달은 후에 승화하여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의 표준으로 수련생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법에 대조하고 자신의 문제를 찾고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어떻게 자신의 부족함을 제거해 버리고 메우고 정체를 원용하는 것이다. 수련생이 부족한 면이 있으면 매 사람의 수련의 층차에 관계되고 매 사람마다 수련상태가 다르고 심성과 경지도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인식이 다 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수련생을 대하는 구체적인 방법에서 우선 자문해야 하고 왜 자신이 보게 됐는가를 보아야 한다. 자신의 사람 마음과 어떤 좋지 않은 마음이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수련생을 얕보고 초조하고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찾고 번거로워하고, 싫어하고 자만하는 마음이 폭로되어 나오면 자신이 제거해야 할 사람 마음이 아닌가? 이렇게 되면 안을 향해 찾고 안으로 수련해야 한다. 자신을 잘 수련해야 비로소 수련의 길에서 법을 실증하고 자신을 실증하지 않을 것이고 법에 따라 하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더욱 많이 구할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을 제고할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사부님께서 요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것도 심성의 표현이다. 착실한 수련에서 수련생의 좋은 일면을 보는 것도 아주 어렵다. 그것은 오직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에서 제고해야 진정으로 착실한 수련에 도달할 수 있다. 사실 수련생의 부족한 면을 보는 것은 선하지 않는 것이다. 수련생의 부족한 점만 보면 수련생에게 바른 에너지로 가지해 주지 못하고 수련생 사이의 소통도 간격을 조성할 수 있다. 이것은 구세력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고, 이것을 빌어 우리에게 마난을 증가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구세력이 배치한 길에 따라 가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에게 좋지 않는 물질을 증가하고 자신의 수련 중에서 불필요한 장애를 조성한다. 수련생의 부족한 면만 보는 것은 자신의 장점만 보는 표현이고 역시 숨겨진 쟁투심의 표현이다.
수련생의 부족한 면만 보는 사례를 통하여 나는 자성하며 자신이 법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 행위를 바로 잡으려 노력한다. 수련생도 나의 일을 통해 교훈을 얻으면 수련의 길에서 굽은 길을 적게 걷고 사부님이 제자에 대한 요구에 도달한다. 사실, 매 수련생은 다 수련을 잘 한 일면이 있고 단지 볼 수 있거나 보지 못하는 것이고 보고 싶거나 보고 싶지 않거나 하는 것이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정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일을 겪은 후 매번 나와 수련생이 함께 수련생의 부족한 면을 볼 때 나는 자신에게 청성해야 한다고 경계한다. 수련은 엄숙한 일이다. 자신을 잘 수련 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이때 자신이 표현되어 나오는 마음은 어떤 좋지 않는 마음인가를 보고 그것을 제거한다. 나는 자신이 법리를 알고 심성을 제고한 후 수련인은 수련에서 마땅히 수련생의 좋은 일면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되면 좋은 환경이 형성되고 정체적인 제고를 촉진시킨다. 이것은 대법 수련자의 상태일 뿐만 아니라 역시 정법 수련 중의 수련인이 반드시 해내야 하며 단지 이래야만 비로소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하고 착실히 수련할 수 있으며, 정체를 원용하고 서로 협조를 잘 할 수 있고 강렬한 정체를 이룰 수 있다. 더 큰 에너지로 3가지 일을 잘 할 수 있으며 법을 실증하는데 중생을 구도하는 데 더욱 유리하다.
수련생들이 정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인식하면 수련생의 부족한 면만 보지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로 간주해 원용하고 앉아서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고 서로 잘 협조하며 함께 반(反) 박해를 하고 역사적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이상은 자신의 약간의 인식이며 층차의 제한으로 부족한 점은 수련생 여러분들이 자비로 시정해 주시기 바란다.
주:
[1]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경문: “2013년 대뉴욕지역 법회설법”
[2]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3-역시 방할하노라”
문장발표: 2013년 9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기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9/28/2803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