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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공호룡’의 계시

[밍후이왕] 어렸을 때 ‘섭공호룡’ 우화를 배웠을 때 그 뜻이 심원하다고 느꼈다. 섭공은 용을 특별히 좋아해서 생활 속에서 체현해 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하늘의 진짜 용을 감동시키게 되어진룡(眞龍)이 특별히그를 만나러 내려왔다. 하지만 섭공은 막상 진룡을 보자 혼비백산하여 그림자도 없을 만큼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사실 그가 좋아했던 것은 진룡이 아니라 용과 비슷한 물건이었는데, 이 이야기는 그럴싸하게 말만 늘어놓고 실제적이지 못한 나쁜 사상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다.

대법을 수련한 후섭공 이야기가 종종 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끔은 나에게도 섭공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내가 매일 법공부하고, 발정념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게, 마치 사부님 말씀대로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것인지? 이론과 실제가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내심으로부터 대법에 동화되고 있는지? 아니면 다만 표면형식이나 임무 완성식으로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법을 학습할 때 집중되지 않고, 발정념 할 때 마음이 고요하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하는 데만 그치고, 사람을 구할 때 자비심이 적어 쉽게 영향을 받고, 모순에 부딪치면 안으로 잘 찾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서 어떻게 진정한 수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수련’이라는 이 단어가 다만 아름다운 경계를 지향하거나 애호하는 것일 뿐, ‘수련’이라는 형식과 이름을 내건 채 속인 마음으로 일을 하다 보니 근본적인 불성이 숨겨져 있었고, 본성을 움직이지 못했으며, 깨어나지 못했다. 우리가 신불을 지향하는 것은, 그의 세계가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더욱 많이는 드넓은 흉금과 자비로운 경계에 사람들이 탄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다는 것을 똑똑히 알면서 관건적인 시각에는 왜 자신을 내려놓고 신불을 향해 학습하지 못하는가? 숭배하거나 애호만 해서는 부족하다. 스스로 경험하고 힘껏 해내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수련이다.

또한 ‘섭공호룡’은 사람이 겉으로는 한 사물을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으로는 전혀 좋아하지 않음을 형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진정으로 사물의 본질과 내함을 이해하거나 장악하지 못했기에 초래한 것이다.

만약 한 수련자가 법리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주 강한 과시심과 환희심의 영향을 받게 되면 겉과 속이 다를 것이고, 수련생이나 속인 앞에서 우쭐거리거나 표현하기 좋아할 것이다. 그가 하는 일체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자신의 결심이나 성의, 자비를 증명하는 것이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했다 해도 마음이 순정하지 않으면 모두 헛된 것이기에 참으로 슬프고 유감스럽다.

나는 늘 주변의 어떤 수련생들이 말만 하면 ‘대법’, ‘수련’, ‘사부님 점화’를 입에 달고 있고, 큰 도리도 아주 잘 말하며, 매 한가지 일이나 매 한 사람에 대해 대법으로 평론하기 좋아하면서 크게 떠드는 것을 보곤 한다. 마치 법리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보이기에 잘 모르는 사람은 듣고서 “이 사람은 법을 정말 잘 학습했네요. 깨달음이 참으로 높네요.”라고 말한다. 사실 그것은 법에 대한 자신의 이해로 다른 사람에게 정의를 내리는 것이고, ‘법리’를 다른 사람에게 씌우는 것으로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는 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제대로 잘 배우지 못한 사람만이 평론하기 좋아하는데 그는 대법으로 자신의 언행을 단속하지 못한다. 섭공 같은 인물은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을 수’ 없으면서도 스스로 자신이 아주 경건하다고 여겨 표면과 형식에 심혈을 기울인다.

마치 어떤 수련생은 향을 피울 때 반드시 아홉 대를 해야 하고, 그 다음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큰 절을 몇 번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는 그렇게 하면 사존의 승인과 가지를 받는다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자질구레한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서덕을 잃을까봐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일을 함에 극단적이고, 어떤 사람은 법 학습의 수량을 ‘정진’하는가의 상징으로 여긴다. 또 적지 않는 수련생들은 시끌벅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대법의 일을 할 때도 떠들썩하게 하면 원만할 수 있는 줄 여긴다. 만약 협조인이 ‘섭공’식 인물이라면 그건 더욱 무서운 것으로 아주 강한 은폐성과 미혹성을 띠게 된다. 표면으로만 할 뿐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명을 구하는’ 등 집착이 아주 강하지만 스스로는 모르고 있다. 그는 부지불식간에 수련생을 빗나가게 이끌 것이고, 수련생들이 크게 떠들썩하게 하도록 하여 그 결과 사악의 엄중한 박해를 대규모로 받게 만드는데, 그 교훈은 그야말로 너무도 심각하다.

예를 들어 우리 지역의 어느 한 수련생 집에는 사부님의 법상으로 가득 찼고, 집 안팎에다 여러 가지 진상표어를 가득 붙여 놓고 있었다. 협조인은 수련생들을 몇 차례 나누어 그 수련생의 집에 가서 참관하고 학습하게 하였다. 수련생 중에는 그 표어를 베껴 침대 머리맡에 붙이는 사람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그의 집에서 법상을 가져오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한 동안 떠들썩하였다. 들은 말에 의하면 협조인의 집에도 사부님의 여러 법상으로 가득했는데, 다른 수련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자 그는 이 장(場)이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는 것이다. 협조인은 외지에서 강연자를 데리고 와 현지 수련생의 제고를 돕는다고 했는데. 이 연설자가 한 말은 대부분 법을 훔치거나 법을 어지럽히거나 혹은 사오한 말이었는데도 협조인은 흥미진진하게 들으면서 연설자의 층차가 높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 지역 수련생 모두 그 연설자를 따라다니며 옹호하고 숭배했다.

수련은 응당 마음 깊은 본질부터 개변해야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많은 수련생들은 모두 밖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할 때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떨어질 까봐 걱정을 한다. 법으로 좋고 나쁨을 가늠해야 하는 것을 잊고는 어떤 사람들은 표면에서는 변했지만 내심은 변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표면은 변하지 않았어도 내심은 변했다.

‘섭공’식의 수련생은 타인을 미혹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미혹되어 있다. 그리하여 마비된 채 자신이 분명히 수련자의 상태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이 잘 닦았다고 여기는데, 마치 독뱀에 물린 것처럼 사람은 느끼지 못한다. 독소가 확산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죽음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는데, 우리 매 수련생은 모두 자신에게 ‘섭공’식 경향이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있다면 빨리 자신을 일깨워 더 이상 귀 막고 방울을 훔치거나, 스스로를 기만하고 남을 속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수련상태를 직시하고 심태를 단정하게 수련을 엄숙하게 대해야지 그럭저럭 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법리를 알기만 할 뿐 실천하지 않는 것은 거짓 수련으로써 이론상에서 논쟁할 필요가 없이 무조건 “쩐(真), 싼(善), 런(忍)”에 동화되고 자신을 법속에 용해시켜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래 ‘진룡’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정정당당하게 진룡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될 수 있다.

문장발표: 2013년 8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8/23/2785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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