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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공부를 해 심성을 닦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자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아래는 요즘 한동안 내가 수련한 체험으로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려 한다.

1. 법을 잘 배우자

몇 년간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든, 매체 항목을 하든 법을 실증하는 일이 아무리 바빠도 나는 매일 법 공부 시간을 보장했다. 법 공부를 많이 함에 따라 자신의 많은 집착심이 자신도 모르게 사라졌다. 많은 것을 자연히 담담하게 보게 됐다. 예를 들면 경축일 모임이나 축구 등에 담담해졌다. 당시 맛있는 것을 좋아하곤 했는데 지금은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무거나 먹는다. 수련의 엄숙성을 알고 사람이 되는 진정한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그런 개인적인 취미는 모두 제거해 버려야 할 집착이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수련의 긴박감이 약간의 느슨함도 용납하지 않았다.

한동안 정진한 후 나는 법 공부에서 엄중한 문제를 발견했다. 법을 읽을 때 사상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사람은 『전법륜』을 읽을 때 사상이 전일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하며 수련 중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본래는 제고해야 할 때이건만, 오히려 마음에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와 일부 일들을 생각하는데, 제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만약 법을 잘 배우지 못하면 많은 일을 다 잘하지 못하게 된다.” [1] 발견한 후 원인을 찾고 자문했다. 왜 초기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을까? 익숙하게 읽으니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많은 부분을 그저 지나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고 법 공부를 일종 형식으로 간주하지 않았을까? 이후에 발견했는데 이 문제는 자신이 법 공부를 엄숙히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법을 이해하지 않고 법과 사부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을 찾고 법을 배울 때 되도록 경건하고 한 글자 한 글자씩 배우고 되도록 나쁜 사상을 제거했다. 한동안 이렇게 견지하자 법 공부를 마음에 닿게 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만약 이 환경이 없다면 여러분 생각해보라. 오늘날 대법제자도 마찬가지이다. 당신들이 속인 사회에 돌아가면 바로 속인 사회의 환경 속에 있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시간을 다그칠 줄 모르면 오늘 책을 보고 싶으면 좀 보고 내일 나태해지면 적게 보게 되는데, 이 환경이 없으면 정진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은 사람이 수련하고 있기에 사람의 굳어진 습성이 있고 사람은 이 세간 속에서 곳곳마다 교란을 받게 되어 당신 스스로 차이점을 찾기가 몹시 어렵다. 더욱이 더 정진하지 못하고 책을 더 많이 보지 않거나 법을 많이 인식하지 못하면 당신은 자신의 집착을 전혀 보아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단체 법 공부와 연공을 해야 한다.”[2]라고 말씀하셨다. 이후에 한동안 뉴스팀에 가서 법 공부를 했다. 그러나 이후에 일의 조정으로 고정된 시간이 없어 해체됐다. 게다가 매주 한 번의 지역 법 공부도 일 때문에 2주일에 한 번 밖에 가지 못했다. 한동안 단체 법 공부의 환경이 사라지자 스스로 법 공부를 했다. 그러나 한동안 배운 후 때로 비교적 느슨해 그다지 다그치지 않고 많을 배울 때도 있고 적게 배울 때도 있었다. 점차 자신이 느슨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반드시 단체 법 공부 팀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자 사부님께서 나에게 배치해주셨다. 마침 나의 시간과 맞았는데 새벽 발정념을 한 후 법 공부를 한다. 여러 사람은 서로 교류하며 함께 제고하고 정말로 비학비수(比學比修)의 환경이 마련됐다.

2. 협조 중에서 집착을 제거

씬탕런 항목에 참여하는 과정 중 가장 큰 감수는 바로 책임자가 요구하면 가서 하는 것이었다. 그 목표에 따라 노력했고 개인의 관념은 그다지 많지 않아 과정 중에 배로 효과가 있다. 그러나 때로 무조건 협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나의 잘못과 부족함을 지적해 줄 때 표면상 부득이 받아들였지만, 마음속으로 담담하지 못했다. 자신의 집착심이 작용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다른 사람이 지적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 굴복하지 않는 마음,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후에 수련 제고와 경지의 승화로 이런 것이 나오면 즉시 잡아 배척하고 억제했다. 점차 태연하게 대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나와 수련생이 한 항목을 책임졌는데 처음에 전혀 할 줄 몰랐다. 지금까지 배우니 기본상 조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몰랐다. 일할 때 자주 문제가 생겨 모순이 많았다. 안으로 찾지 않고 수련제고의 기회로 보지 않았다. 한번은 일할 때 실수로 나와 협조하던 수련생이 소비자 고발 전화를 받았다. 그 결과 내가 실수를 해 그 수련생은 단번에 화가 치밀어 올라 나에게 화를 냈다. 나도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몇 마디 대응하고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다. 이후에 나에게 체면을 구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나왔다. 상대방도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했다. 이튿날 수련생이 나에게 사과했고 나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 후 자주 이런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매번 모순에 부딪힐 때마다 내가 참고 변명하지 않으면 모순은 풀어진다. 단지 내가 한마디 변명만 해도 논쟁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매번 모순이 나타나도 상대방의 문제라도 되도록 변명하지 않는다. 정말로 참을 수 없으면 끊임없이 사부님의 법 “해석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니” [3]를 외웠다. 그리고 변명을 할 때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이 폭로됐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사이는 갈수록 협조가 말없이 잘 통했다. 협조가 잘되니 문제가 적어지고 교란도 적다. 특히 션윈(神韻)을 널리 알리는 한동안 우리는 교대하면서 션윈을 알렸다. 그가 일이 비교적 많아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한 차례 한 차례 션윈 공연이 곧 시작하므로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자신 한 사람이면 되니 나에게 며칠 머물러도 괜찮다고 했다. 그 수련생의 무사무아(無私無我)의 마음은 나를 감동시켰다.

또 한 번은 본래 외지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한 달 전 신청했을 했을 때였다. 하지만 줄곧 수련생에게 말하지 않고 행사 2주 전 알리려 했다. 그러나 그 수련생이 먼저 나에게 그날 가족과 여행을 간다고 했다. 공교롭게 내 행사와 같은 날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면 그에게 행사 일을 말할까.’ 생각을 바꾸고 그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 ‘평소 그는 일이 힘들고 많고 집안일도 많다. 간신히 여행을 가는데 좀 쉬게 하자.’ 그때 마음이 비교적 평온했다. 그러나 이후에 행사가 다가올수록 사람 마음이 나왔다. 각종 나쁜 생각이 다 나왔다. 천국악단에 참가한 후 기본 행사는 다 참가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기타 도시를 지원하는 행사이므로 일부러 트럼펫 팀을 불렀다고 한다. 게다가 나는 일찍이 신청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불평이 나왔다. 그 후 다른 수련생과 교류를 할 때 갑자기 사부님의 법이 눈앞에 나타났다. 수련생이 보낸 준 것이다. “나에게 얼마만 한 공로가 있어 나는 어떻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속인이라면 그러하다. 우주의 법리의 특징, 어떤 특수한 환경 속에서 아마 이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 [4] 그렇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 내려놓을 수 없는가? 왜 마음에 불평이 있는가?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보니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이며 사람을 구하는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이기심이다. 이런 나쁜 마음을 찾고 법리에서 깨닫고 마음은 평온했다.

그러나 얼마 후 또 하나의 고험이 왔다. 오후에 일을 마치고 저녁에 여러 사람과 함께 법 공부를 했다. 법 공부를 절반 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나와 함께 일하는 수련생이 나에게 한 프로그램을 잘못 배치했고 게다가 방송 3분 전이라며 전화로 나를 한바탕 나무랐다. 애당초 나는 마음이 좀 움직였지만 참고 해명하지 않고 재빨리 가서 바꿨다. 바꾼 후 뒤돌아 생각하니 그때 배치한 순서는 맞지만, 수련생이 프로그램 표를 바꾸고 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이후에 점검해야 할 내가 실수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져 마음속으로 불편했다. 나는 이어 법 공부를 하러 갔다. 마침 내가 읽을 차례가 됐다. “무엇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가? 진정한 원인은 자신의 이곳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틈을 탈 수 있다!” [5], “문제가 생겼을 때, 잘못됐다고 느꼈을 때 반드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신이 어디가 잘못되어 사악 때문에 틈을 타게 됐는가를 보라. 잘못됐으면 마땅히 인식하고 마땅히 잘해야 한다.” [5] 그때 나는 웃었다. 이것은 나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잘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는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수시로 우리 제자를 돌보고 계신다. 사부님의 점화에 감사드린다.

3. 사부님의 배치는 가장 좋다

어느새 씬탕런에 온 지 4년이 됐다. 애초 책임자가 씬탕런이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는 갔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데서 조금씩 배워 지금까지 해왔다. 사실 일에서 부딪힌 곤란이든 수련생 사이의 부딪힌 고험과 모순은 다 수련 제고를 위한 것이고 끊임없이 심성을 닦고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것도 수련 과정이다.

예를 들면 처음에 한 항목에 참가했는데 할 줄 모르는 데서 할 줄 알게 되고 배우면서 했으며 대략 2년의 세월이 걸렸다. 마지막에 기술이 모자라 계속 할 수 없었다. 표면상에서는 그랬지만 그때 그 항목을 떠날 때 마음속에 어떤 동요도 없었고 평온했다. 왜냐하면, 어떤 일도 우연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을 실증하는 항목이기에 항목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고 사람을 구하는 목적을 근본으로 삼으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후에 또 씬탕런의 다른 항목에 참가하고 할 줄 모른 데서 할 줄 알게 되어 지금까지 해왔다. 수련생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전에 배운 것이 낭비가 아닌가요?” 나는 평온하게 말했다. “뒤돌아보면 그 한동안 아주 소중하며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마음을 닦고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이며 수련의 과정입니다.” 나의 이해로는 이런 과정이 없고 수련에서 이런 기초를 닦지 않으면 계속 걸어갈 수 없으며 아마 지금까지 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매 한 걸음은 다음 한 걸음을 위해 깔아놓은 것이다. 그때 씬탕런에 왔을 때 수련환경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매주 단체 법 공부하고 교류하는 시간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 자신이 수련에서 너무 많이 떨어졌기에 나의 수련에 많은 도움이 됐다. 만약 속인의 환경에서 애초 그때의 수련기초와 상태는 정말로 정진하고 제고하기 어렵다.

나는 씬탕런의 수련환경을 소중히 여긴다. 자신도 조금씩 걸어온 이 환경을 소중히 여긴다. 비록 과정에 많은 해결하기 어려운 모순과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씬탕런 수련생에게 많든 적든 일부 나쁜 생각이 있지만 수련인으로 이런 일은 좋은 일로 보고 제고하는 기회라고 보면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씬탕런을 하라고 하셨으면 반드시 할 수 있다. 나는 사부님께서 배치한 것이 가장 좋다고 굳게 믿고 있다.

층차의 제한으로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시정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

[3]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시사: ‘홍음3-논쟁하지 말자’

[4]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설법’

[5]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3-대뉴욕지역법회설법’

문장발표: 2013년 8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8/26/2786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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