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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 날

글/ 대륙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1996년 11월 13일, 이날은 연공장을 개설한 날로 내가 정식으로 연공한 첫날이다. 이날은 내 생명의 전환점이 되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간염, 홍반성 낭창, 암 등으로 시달리다

전에 간염, 홍반성 낭창, 암 등으로 입원을 적지 않게 했으며, 스스로 침구, 한약, 기공 등 치료방법을 연구한 적이 있었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한 가닥 힘이 나를 잡아당겨 희망과 광명을 보게 하는 것 같았다. 사실, 1971년에 급성 황달성 간염에 걸렸는데, 당시 이런 병은 치료하기 어려워 나중에 만성으로 변했다. 그때 직장에서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치료할 수 있는 곳이라면 가능한 한 차를 지원해 보내줬지만 간 기능 검사결과는 정상이 아니었다.

1983년에는 계통성 홍반성 낭창에 걸렸는데, 이것은 생명까지 위태롭게 되는 교원성(膠原性) 질병이었다. 당시 손발의 관절이 곪아 화장실 가는 것도 매우 힘들었으며, 심장이 비대해지고 신장도 상했다. 누워 있어도 심장박동 수치가 120으로 나타날 정도로 숨이 가빴으며, 밥맛도 없었고 온몸이 무력했다. 나는 성(省) 의학원 2부속병원, 성 1병원, 상하이 화산(華山)병원, 광저우 중산(中山) 의학원 1부속병원, 광저우 중의학원 부속병원을 전전하며 치료하였으나, 치료하지 못하고 단지 병이 발전하지 않도록 억제했을 뿐이며, 여전히 약과 떨어질 수 없었다.

1991년에는 불행하게 또 우측 편도선 저분화(低分化) 암에 걸렸다. 이 암의 독성은 매우 컸다. 며칠 안 되었는데도 땅콩 알만하던 종양이 자갈만큼 커졌으며, 입원한 날 저녁에 잠잘 때는 숨소리가 주위 병실에 다 들릴 정도였다. 방사선 치료를 두 번밖에 하지 않았는데 종양이 없어졌다. 당시 의사도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방사선 치료 외에 화학요법을 가했기에 몸이 많이 상하고 머리카락도 다 빠졌다. 방사선, 화학 요법과 함께 한약도 복용했다.

1994년이 되자 없어졌던 종양이 또 자라나 우측 편도선 저분화 암이 좌측 사타구니로 멀리 전이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치료를 했으며 몇 가지 기공도 배웠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고 나도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이러한 불행을 겪으면서, 유물주의가 절대적 진리인지, 고대 사람이 남긴 것이 모두 무지한 미신인지를 의심하였으며, 진화론의 구속에서 비교적 쉽게 벗어났다. 예를 들면, 원래 자신이 절대적인 유물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홍반성 낭창에 걸렸을 때 어머니가 내게 구해준 성수(聖水)(아마 저령의 정보가 있었을 것임)를 바로 거리에 쏟아버렸는데, 병이 더욱 심해졌다. 나는 이 일로 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나는 봉신연의(封神縯義), 상고신화연의(上古神話縯義) 등에서도 수련에 관한 일부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런 일들을 곧잘 믿었으며, 출생하자마자 사부가 산에 데려가 수련하게 되는 사람들이 아주 부러웠다. 이런 것들은 내가 법을 얻는 데 있어 무신론의 장애를 크게 제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당시 아내가 기공 수련장에 갔는데, 그 책임자는 나의 상황을 알고는 여러 번이나 그곳에 오라고 했다. 남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훗날 찾아갔다.

3일째, 대법제자가 그곳에서 법을 전하고 있었는데, 소개 책자를 보니 아주 좋아 보여 다른 것도 있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바로 ‘전법륜(轉法輪)’을 주었다. ‘전법륜(轉法輪)’도 읽었고 사부님의 설법 영상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가장 쉬운 언어로 우주의 가장 높고 심오한 이치를 말씀하셨다. 정말 우렛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이전에 수련(修煉)이란 두 글자는 신성하고 고상하며, 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부님의 책과 영상을 본 후 마음이 확 트였으며, 인생의 진정한 의의가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힘들게 찾던 물건을 마침내 찾은 것 같았으며, 이후 어떠한 길을 걸어야 할지를 알게 된 것 같았다. 그 기쁨과 감동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제자는 또한 우리에게 5장 공법을 가르쳐주고 법 공부의 중요성을 말해줬으며, 그녀들의 도움으로 1996년 11월 13일, 우리가 사는 곳에 연공장을 개설했다.

우리 연공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 50세 이상의 노인 수련생이었으나, 법 공부를 진지하게 했으며, 매주 두 번씩 단체 법 공부를 했다. 어떤 수련생은 ‘전법륜(轉法輪)’을 베껴 썼고, 어떤 수련생은 ‘정진요지(精進要旨)’와 ‘홍음(洪吟)’을 거의 다 외울 수 있었으며, 연공도 부지런히 했다. 어떤 수련생은 다리를 쌀자루로 1년 동안이나 눌러서야 결가부좌할 수 있었다.

속인의 명리정을 내려놓다

법을 얻기 며칠 전 병원에서 여러 번 진료를 받았다. 의약비를 청구할 때 회계담당 직원은 내게 “진료받을 때마다 돈을 빌리고 차용증을 쓰고 상사의 결재를 받는 것은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아예 몇천 원을 빌려 줄 테니 통장에 넣어두었다가 진료받을 때 찾아 쓰고, 다시 청구하러 오라.”라고 했다. 나는 2,000위안(약 36만 원)을 빌려 은행에 저축해놓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설법 영상을 볼 때 사부님께서는 이미 나의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나는 병이 없는 수련인이니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깊게 믿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직장에 돌려주었으며, 상사를 찾아가 이제는 병이 없으니 다른 사람처럼 출근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출근부에 기록하지 않아도 의약비는 다른 사람과 같았다. (의약비는 매월 16위안(약 2,900원)이었는데, 이 돈을 대법에 쓰겠다고 결정했다.) 집에 돌아온 후 약을 전부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이후로 나는 직장에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신체검사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전에는 명리심이 강했다. 집이니 직명이니 상금이니 업무의 난이도니 급여니 하는 것을 중시했다. 수련 후에는, 수련인은 속인의 명리정을 내려놓아야 하고 이런 것들을 담담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승진시험도 선진평가도 내려놓았으며, 자금을 모아 집을 사는 일도 하지 않았다. 업무의 난이도, 급여, 출퇴근 시각, 밤낮을 고려하지 않고 필요가 있으면 가서 일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전에는 집착하는 것이 아주 많았다. 예를 들면 마작, 중국 장기, 바둑, 트럼프 등인데, 출근할 때도 이런 것에 빠져 놀았다. 직장 상사도 머리 아파했다. 수련 후 이런 것들은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빨리 끊었다. 이상한 것은 직장에서도 이런 현상을 철저히 막았으며, 상사도 기뻐했고 집안사람도 기뻐했다.

전에는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줄 몰랐다. 수련 후에는 자발적으로 사무실을 청소하고 직장의 벽보를 내고, 사무실 동료를 도와 전기난로를 수리하고 세숫대야를 때우고, 이웃의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수리해주고 전등을 설치해주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정적으로 해주었다.

사람들은 나를 달리 보게 되었으며, 내가 딴 사람으로 변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내 얼굴색이 불그레하게 변하고 몸이 아주 건강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인어른은 전에는 내가 달걀 속의 사람처럼 매우 약하고 날씨가 변하면 감기에 걸린다고 했는데, 지금은 딴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물론 나는 이 변화의 배후 원인을 잘 알고 있으며, 사부님께서 그 뇌혈전 환자를 위해 독약을 한 사발 마시셨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감당하신 것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직 많은 집착심을 닦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에서 뒤돌아보지 않고 확고부동하게 용맹정진(勇猛精進)할 것이다.

문장발표: 2013년 8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연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8/16/2778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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