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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할 정신 3할 병”으로부터 생각한 것

글/ 대법제자 칭즈렌(清之蓮)

[밍후이왕] 십여 년 수련한 노 수련생에게 나타난 병업 가상의 교란 중에서, 관념이 완고한 부친을 설득하는 중에서 나는 “정신이 7할이고 병이 3할이다.” [1]의 작용과 반작용을 깨닫게 되었다. 이 ‘7할 정신’이 만약 확고한 바른 믿음의 일면에 있다면 바로 바른 에너지로서 그 ‘3할 사기’(邪氣)를 용해할 수 있고, 천도(天道)가 바른 것을 부추겨 사(邪)를 물리칠 것이다. 천도란 사람이 하늘의 뜻에 따르고, 대법에 동화하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표현에서 사람의 정의, 양지를 늠름한 정기와 같다고 한다면 중공 사령의 독해(毒害)는 암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 마음이 어디에 속하게 하는가의 선택은 그 개인이 작용하는 힘과 먼 미래와 또 전혀 다르게 좋고 나쁨이 뒤바뀌는, 미래에 나타날 환경에 대하여 정과 사의 비례를 결정한다. 신체의 소우주적 표현, 신체에 나타나는 병세나 부딪히는 곤경을 어떤 심태로 대하며 이해하는가는 7할, 3할의 취사선택이 작용을 주도하여 신체에 병의 유무, 그리고 길흉이 나타나게 되는 더 높은 한 층의 뜻을 볼 수 있게 한다. 견강한 의지력은 주의식이 강한 표식이고 도리가 명백하게 한 것이야말로 신사신법 한 후의 대법을 실증하는 표현이다.

부친은 지금 70여 세이고 수련에 대해서는 한 발은 문 안에 있고 한 발은 문밖에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가 1994년~95년 사이에는 파룬궁 수련을 하였고 또 베이징 ‘전법륜’ 출판 기념회에서 사존을 뵈옵는 행운을 갖기도 했다. 전후로 수개월을 수련하면서 대법 책에 표시하고 줄을 그었으며 내가 법을 얻자 그는 수련을 포기하였다. 십여 년 이래 때론 명백하다가도 때론 분명하지 못했는데 반복이 그치지 않았다. 그의 이런 표현에 대해 나는 분개하기도 하고 괴상해하기도 하고 응대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기도 했으며 여러 번 선을 권하기도 했다. 설령 부친이라 해도 대법을 조금이라도 비방하면 안 되기에 나는 정에 집착한 나머지 분노에 차 말하기를 “진상 도리도 말해 드렸고, 기회도 여러 번 드렸으니 지옥이든 천당이든 다 아버지의 선택입니다.”라고 했다. 조용해진 후에는 또 그를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에서 귀찮음도 마다치 않고 그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십몇 년 사이에 부친은 여러 번 재난이 복으로 전화된 일이 있었는데 신이 보우한 것이다. 하나는 그 자신이 친히 사부님 설법을 경청해서 가져온 복이고 또 하나는 내가 대법을 수련한 연고임을 나는 알고 있다.

사례1

그 스스로 말하는 제일 위험했던 한 차례는 차에 부딪혀 3미터 밖으로 나가떨어진 때이다. 기사와 주위 사람들은 모두 병원으로 가자고 했으나 그 자신은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음을 느끼고 일어나서 그들더러 가라고 했다. 행인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차 번호를 적어 그에게 주기까지 했다.

사례2

평지에서 몇 번이나 넘어졌어도 몸에 불편한 데가 없었다. 어느 겨울날 어두운 저녁, 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부친은 즉각 뒤로 머리를 땅에 박으며 넘어졌다. 중국 사람들은 화를 자초할까 두려워 부친이 넘어진 지 오래돼도(그의 말로는 약 십 여분쯤) 많은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이 있었으나 멈춰서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일어나서 불편한 데가 없기에 스스로 집에 돌아왔다. 넘어지지 않고 추운 베이징의 겨울 날씨에 무의식에 빠진 노인이 땅에 그렇게 오래 누워 있었다면 젊은이라 해도 위험한 것이다.

사례3

형님이 말하기를 “나는 부친이 집에서 갑자기 꼿꼿한 채로 바닥에 넘어졌지만 그렇게 많은 나이에 아무 일도 없는 것을 직접 보았다. 나였다면 큰일 났을 거다. 정말 기적이다. 동료들에게 말하니 모두 신기하다고 하는데 나는 대법이 보우했음을 믿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의 신체 상황으로도 대법이 준 생명임을 느낀다. 전 세계의 재부를 다 주면서 나더러 대법이 나쁘다는 말 한마디를 하라 해도 나는 안 할 것인데 아빠, 아빠는 왜 잘 생각해 보지 않습니까? 어리석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사례4

십여 년 전 모친이 세상을 뜬 후, 부친은 내내 정서가 우울해지고 소침했으며, 모친이 세상을 떠난 것은 약을 먹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원망했다. 이 매듭으로 인해 부친은 오랫동안 난동을 부렸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는 꿈에 부친이 대안[隔岸, 강 건너]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초점 없는 눈으로 돌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귓가에 누군가가 저건 저승 다리인데 저 사람은 당신 부친이 아니냐고 하는 말이 들렸다. 나는 문득 알아듣고대안으로 날아가서 부친의 뒤에서 연속 그를 불렀으나 그는 듣지 못한 듯 그냥 앞으로만 걸어갔다. 나는 그의 앞으로 날아가 막아서며 시선이 없는 그의 눈을 보면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그제야 그는 정신이 든 듯 나의 아명[小名]을 불렀다.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으니 창핑(그곳에는 온통 황릉, 묘지가 있고 베이징의 유명한 13릉도 그곳에 있다.)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못 간다고 일러줬다. 그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후 부친에게 전화해서야 그가 고모 집에 가려고 사촌 남동생이 와서 차표까지 끊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가지 말고 내가 간 다음 다시 보자고 했으나 그는 고집을 부렸고 형님이 권유해도 듣지 않았다. 오후에 다시 전화했더니 부친은 가지 않았다며 길가의 점쟁이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따라오며 근래 생명 위험이 있으니 먼 길을 가지 말라 했다고 했다.

그 후 며칠 동안 그의 눈에 공포가 서리고 불안해했다. 나는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수련의 도리를 말해주었는데 그는 처음으로 참답게 들었고 아울러 말하기를 네가 말하니 내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조용해졌다고 했다. 나의 권유로 그는 ‘전법륜’을 세 번 보았는데 다시 한 차례 기연과 크나큰 복을 그에게 다져 주었다. 그의 마음은 마침내 안정됐다.

사례5

나는 베이징에서 천리 밖으로 왔다. 새벽에 오른쪽 눈이 전에 없이 뛰었다. 정념으로 청리해도 제지할 수 없었다. 연공을 마친 후에도 좀 낫기는 해도 여전히 뛰었다. 우선 구세력이 배치한 교란 요소와 가상을 부정하고 배후 요소를 청리하는 데 치중하였다. 자신은 대법제자이므로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믿었다. 떠나오기 전 부친의 줏대 없는 정신상태가 걱정되고 베이징에 있는 이른바 ‘병업관’을 넘고 있는 수련생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는 정이고 구세력이 박해할 빌미가 된다는 것을 의식했다. 계속하여 이런 걱정 자체가 구세력의 존재를 승인하는 것이며,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주관하시고 가거나 남는 것도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시며 사부님 안배는 모두 가장 좋은 것인데 내가 쓸데없이 집착하며 타인을 교란하고 또 버려야 할 사람 관념으로 정념의 발휘를 억제하려 했다. 명백해진 후 마음을 놓았고 아무 일도 없을 것임을 알게 됐다.

이틀 후 베이징으로 돌아오니 부친께서 알려 주셨다. 이틀 전 집의 가스레인지가 천연가스 호스와 함께 불이 붙었다. 불길이 타오르는 속에 그는 손을 내밀어 밸브를 닫고 천연가스를 차단했는데 당시 아주 위험했다. 후에 수리공이 와서 새것으로 바꿨는데 부친께서 불 속에 밀어 넣은 손은 상한 데 없이 멀쩡했다. 나는 부친의 진술을 들으면서 또다시 사부님의 보호로 대법이 신의 위력을 펼쳤음을 알게 되었다.

설령 이러했지만 여러 가지 불가사의에 직면해서도 부친께서는 여전히 대법 수련에 대해 좀 불만이 있었다. “수억의 속세 사람을 독해시킨” [2] 중공의 통치하에서 그에게는 두려움, 나약한 자아보호 성격이 형성되어 차츰 사람이 되는 본분과 표준을 잃게 됐지만 도리어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사람으로 불렸다. 그는 미끄러져 내려온 관념으로 시시비비를 판단했다. 서서히 이기적 사고의 습관과 능력을 포기했지만, 스톡홀름 증후군은 이미 골수에까지 파고 들어갔다. 70여 세의 부친은 몸 이곳저곳이 때때로 불편할 때가 있는데 작은 일도 크게 보는 그의 사고방식 때문에 병고를 가중시켰고, 동시에 대법에 대한 경신(敬信) 정도와 중공사당에 대한 식별 능력, 그리고 그의 몸에 나타난 불편함에 대해 모두 같은 층차의 관념으로의 대응관계가 있었다. 주의식이 태만하여 분명한 주관이 없고 그의 사유를 혼돈하게 했으며 비 자각적으로, 무의식중에 사당을 수호하고 대법 수련을 편파적으로 대했다.

매번 이런 생각이나 병고가 나타날 때면 나는 그에게 사당 무신론 관념에 독해 되어 이지가 분명하지 못해 자신을 해치는 것을 보고 처음처럼 그에게 해석해 주고 시비곡직을 분석하며 그의 관념에 얽매이는 고통을 제거해 주었다. 이렇게 여러 해를 지나오니 그도 서서히 진상을 알게 되고 업을 적게 빚는 가운데 부분적으로 자신의 사상과 정확한 시비 표준을 갖게 되었고, 내심의 정사 대전을 거쳐 마침내 바른 것이 바르지 못한 것을 이길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대법제자의 자비를 생각하고는 관념으로 사람과 일을 가늠하지 않았는데, 중생 구도 역시 우리를 수련하는 것이고 대법을 원용하는 것으로,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며 관념을 타파한 후에는 곤경 속에서 언제나 희망을 보게 되고 부동한 경지의 법리가 나에게 펼쳐졌다. 이 “7할 정신 3할 병”과 마찬가지로 어떤 관념은 어떤 정도의 크고 작은 병고와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된다. 사람은 흔히 그 3할을 고정적으로 보고 그 가상에 미혹되며 심지어 모조품을 정말로 여겨 자신과 타인에게 후환을 남겨 나중에는 귀신을 불러오게 된다. 주도 작용을 하는 7할 정신은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어 홀시 당한다. 정신은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 중생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그들의 구도와 가고 남음에 영향 준다.

나의 부친은 속인이라 이러하지만, 우리 대법제자에게는 생명에 대한 걱정이 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 나타난 이른바 병업 가상은 얼마나 큰 정도의 자신의 사람 마음과 관념의 작용 하에서 허용되며 구세력의 배치에 따르게 되고 병업 가상이 초래한 이른바 고험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박해를 승인한 당신의 신체와 바른 믿음 정도가 바로 구세력의 존재를 승인한 것이 아닌가? 병업 가상을 대하는 당신의 심태와 일념이 바로 자신을 배치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곧 생로병사이고 신의 염두가 바로 업력의 속박을 해탈한 후의 승화이며 부동한 심성이 부동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내가 병업 가상이 나타난 수련생에게서 본 것은 고통 속에서 우선은 두려움이고 그런 후에는 정념이 약해지고, 장시기 호전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의지가 소모되고 사람 마음이 심지(心智)의 교란을 가중시켜 밖에서 무슨 방법을 찾아 고비를 넘으려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바른 믿음이, 당신의 바른 믿음의 근본을 동요하는 것이야말로 구세력이 박해하는 구실과 수단이 되고 손을 쓰게 되는 누락이다.

나의 부친이든 수련생이든 이른바 병업이 나타나면 나는 모두 그의 바른 믿음과 정념을 강화하도록 하는데 내가 알기에는 이렇게 해야만 걸어 나올 수 있고 수련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바로 그 선을 향하고 향상하는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옅은 개인 인식이니 적절하지 못한 것은 자비로 지적하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홍음2-일다(淘)’

문장발표 : 2013년 8월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8/12/2780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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