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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신앙

글/ 다칭(大慶)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람은 신과의 위치를 바로 잡아야 하며 사람은 신의 발밑에 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늘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석가모니를 믿는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는 사바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아미타불을 믿는다. 왜냐하면 서방의 극락세계를 동경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신을 믿고 기대는 것은 신이 위대하고 밝으며 신의 세계는 아름답고 법력이 끝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단지 신의 발밑의 먼지 한 알에 불과하다. 신이 손을 한번 흔들면 인류는 멸망할 수도 있고 구도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신 앞에서 어떤 이유로 겸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왕(萬王)중의 왕을 대면해 제자는 반드시 겸손해야 한다. 우리 대법제자는 다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만왕중의 왕이고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며 천국에서 지극히 존귀하신 분이다. 대법제자는 아무리 높이 수련해도 사부님의 발밑에 있다. 마치 손오공이 부처님의 손바닥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이름을 지옥에서 제명해 주셨고 무수한 업력을 소업해 주셨으며 아울러 모든 것을 배치해 놓아 비로소 우리는 법을 얻고 수련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생생세세의 업력은 우리 자신을 훼멸시켰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로서 반드시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불법(佛法) 앞에서 반드시 법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춰야 한다. 불법은 우주의 특성이며 선과 악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 불법의 각 층차, 각 공간에서 펼쳐진 법리는 마치 푸른 바다의 좁쌀 한 톨(滄海一粟)과 같다. 불법 앞에서 사람은 자신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며 불법의 박대정심을 알아야 하고 자신이 미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법은 광대하고 무한한 위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집착,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아야 하며 겸손하게 불법을 배워야 비로소 진보가 있다.

신앙은 겸손에서 시작된다. 겸손이 없으면 기초가 없다. 속인은 미혹 속에 있어 독선적이고 스스로 즐거워하며 산다. 다만 신과의 격차를 볼 수 있어야 비로소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자신의 무지를 알아야 비로소 배울 동력이 있다. 인류가 겸손함을 알면 인류는 비로소 성장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많이 알면 알수록 더욱 겸손하고 존경을 받는다.

깨달은 자는 자랑하지도 않고 뽐내지도 않는다. 석가모니는 개공개오한 후 말했다. “그는 또 매 층차의 법은 모두 법의 매 층차 중의 체현(體現)이며, 매 층차에는 모두 법이 있지만, 모두 우주 중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발견했다. 한 층 높은 층차의 법은 한 층 낮은 층차의 법에 비해 우주의 특성에 더 접근했기 때문에 그는 법무정법(法無定法)이라고 했다”[1], “최후에 석가모니는 또 말했다: 나는 일생 동안 아무런 법도 말하지 않았다.”[1] 석가모니가 이미 개공개오했지만 단지 적은 것만 알고 모든 것은 모른다고 했다. 불법 앞에서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잊을 것을 바랐고 자신에게 구속 받지 않기를 바랐다. 이것이야 말로 각자의 겸손이며 품격이다.

영예는 신이 준 것이며 자화자찬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아무리 높게 깨달아도 법보다 높지 않고 자신이 아무리 수련을 잘해도 사부님과 비기면 보잘 것 없다. 사부님께서 우리가 위대하다고 하신 것은 사부님께서 긍정하신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 자랑할 필요가 없다. 위덕은 스스로 수련해 낸 것이고 심판할 때는 신이 판사가 된다. 우리가 호언장담할 때 신이 보기에는 어리석고 가소롭다. 우리가 묵묵히 착실히 수련할 때 신이 보기에 장엄하고 신성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3년 8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8/14/2780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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