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련에 대한 약간의 사고
글 /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줄곧 션윈 수련생의 수련에 대해 신비롭게 느꼈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즉 사부님 곁에 있는 대법제자들의 정진하는 상태에 대해 아주 많은 부러움을 느꼈다. 비록 사부님 곁에서 수련할 수 있는 것은 수련생에게 크나큰 연분이 있기 때문인데 나 역시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잘하여 사부님이 안배하신, 사부님이 바라는 생명이 되겠다고 자신한테 경고할지라도 말이다. 션윈 사이트의 수련생 영상을 보기 좋아하고 션윈 수련생의 인터뷰를 보기 좋아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제한된 자료에서 그들이 그렇게 정진하고 또 그렇게 성공한 ‘비결’을 알아내고 싶었다. 수련생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신이 돕는다.'(모두 속인을 향한 것이기에 이러한 인터뷰에서 그들은 직접 사부님에 대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마움과 공경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고 나도 이로써 수련 특유의 내포(대부분 속인의 소감에서도 느낄 수 있다.)를 느끼게 되었다.
그전에 집에서 자료를 만들 때 나는 늘 한편으로 일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션윈 CD를 틀었는데 원래 아주 초조하던 마음은 직접 눈으로 션윈을 보고 있지 않더라도, 단지 듣는 과정에서도 아주 평화롭게 변하였다. 한번은 아래층 창고에서 인쇄지를 몇 묶음 들고 올라와 숨이 가빠 헐떡거릴 때 마침 ‘뮬란이 군대에 들어가다.’ 중 마지막 부분에서 뮬란이 그렇게 많은 동작을 한 후 뭇 병사들에게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는 근접 샷이 눈에 들어왔다. 그토록 미묘한 무용 자태 중에 안 보이는 곳에서 수련생은’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사부님이 나를 점화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 또한 수련생의 정진과 노력에 깊이 감동되었다.
수련생의 많지 않은 인터뷰를 보면 거의 모두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때 의외로 완벽하게 표현해 낼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더는 공중에서 텀블링할 수 없다고 여겼을 때 몇 분 동안의 무대 표현에서는 의외로 여전히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결론적으로 모두 ‘신이 도와주는 것 같다’거나 ‘신이 도와준다’고 말하였다. 나는 사부님의 정법시기 대법제자 내포를 깊이 느끼게 되었지만, 여전히 호기심과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국내 수련생들이 해외에 갔다 온 후 하는 말이 션윈 수련생들은 정말로 목숨을 걸고 한다는 것이었다. 목숨을 내걸고 한다는 말이 나는 낯설지 않다. 왜냐하면, 나도 자신이 목숨을 내걸고 법을 학습한다고 하지만 갈수록 아직도 너무 많이 부족하거나 혹은 아예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션윈 수련생에게서 너무너무 배우고 싶었고, 사부님 곁에 있는 대법제자들이 어떻게 수련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중에는 꼭 호기심과 다른 것도 섞여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말하지 않겠다.) 나는 하나의 문제를 깨닫게 되었는데 수련생이 순정하게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최대한 노력하여 생명의 언약을 실행하려고 할 때에 사부님의 거대한 자비와 가지(加持)가 있을 것이고, 사부님이 거대한 힘을 주실 것이다. 하나의 개체 생명은 사부님 법에서 아주 미소하지만, 사부님의 정법시기와 같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영광과 위덕이 있고 사부님 제자의 행운과 사명이 있는 것이다.
한동안 위에서 말한 션윈 수련생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밍후이 문장에서 이번 해외법회 때 션윈 수련생의 수련체득 영상을 보여주었다고 하자 나는 더욱 기대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우주 생명에 대해 마찬가지로 자비로우신데 사부님 곁에 있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션윈에도 떠나간 수련생이 있지 않은가? 나는 너무 유감스럽게 여기면서 속으로 수련은 제멋대로 해서는 안 되고 사부님 곁에서 소중히 여기지 않고 착실히 수련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이 소중하기 그지없는 인연을 잃는다고 생각하면서 반드시 자신을 잘 파악하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법 학습에서 유례가 없는 장애에 부딪히게 되었고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모를 때 나는 수련생의 ‘목숨을 내건다.’라는 내포가 생각났다. (사실 나도 늘 이러하다. 이 몇 해 동안 마치 철사를 걷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매일 세 가지 일을 힘겹게 하고 나면 바로 철사를 딛고 넘어온 것이고 이튿날 계속하여 밟아야 한다. 가끔은 중도에 떨어지기도 하는데 너무 후회스럽고 고통스러웠으며 다시 노력하려고 한다.) 나는 ‘목숨을 내걸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머리가 멍해져 법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때, 한 글자 한 글자를 주시하면서 힘들게 읽고 있을 때 갑자기 법을 읽거나 법을 외울 때에도 줄곧 깨닫지 못했던 법의 한 단락 표면 함의가 아주 명확하게 나에게 펼쳐졌다. (후에 다시 이 단락을 읽을 때 무슨 함의인가를 생각해보았지만, 또 생각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두 번이나 나타났다. 사실 이러할 때 그전에 사부님께서는 계속해 보라고 나를 여러 번 점화해 주셨지만 나는 모두 여러 가지 구실로 견지해 나가지 못했고 지금은 돌파하지 않으면 계속해 나아가기 어려웠다.
자신도 언제 변화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수련생들의 시비 속에서 어느 말을 누가 한 것인지 아예 기억도 못 한 채 갈수록 빠져 들어갔고, 최후의 논쟁과 모순은 최초의 초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보기에는 마디마디 모두 법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일부 수련생은 서로 만나면 당신은 언제 무엇을 하고, 법 학습은 어떻게 하고 언제 하며, 하루에 얼마만큼 학습하는지, 이러저러한 작은 것에까지 관심을 보이며 모두 똑똑히 알려고 한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일체를 우리 매 사람한테 갖다 주셨지만, 진정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우리 매 개인을 봐야 한다. 션윈 수련생들이 ‘목숨을 내걸고’하며 법회에서 교류하는 수련생(사실 수많은 좋은 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훌륭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부분 부분에서도 우리는 수련생이 정념정행함으로써 사부님이 보여주신 기적을 보아낼 수 있다.)의 사부님 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은 이러한 표면적인 방법과 여러 가지 그럴듯한 방법으로 연구 토론하거나 모방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션윈예술단이라고 하는 그렇게 정진하는 환경에서도 왜 떠나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가끔 나는 생각하게 된다. 생명에서 안으로 찾는 것은 몹시 어려운 것으로, 법 속에서 힘들게 수련할 때 밖에서 방법을 찾으려 하고, 밖에서 구하기가 쉽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 이렇게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였고 우리에게 희망을 건 중생들을 저버렸다. 우리가 성숙하지 못하고 정진하지 못함으로써 도태된 생명은 이미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그럼 제한된 이 소중한 시간에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련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엄숙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당신이 되고 안 되고는 수련이 아직 결속되지 않았으므로 모두 기회이고 모두 미지수다.” (당신은 수련인인가? ◎사부님 평어), “누가 어떠하면 어떤 결과를 얻는다.” (무엇을 실증하는가? ◎사부님 평어)
문장발표: 2013년 7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7/16/2767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