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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구하는 마음을 경계하자

글/ 닝징(寧靜)

[밍후이왕]명예와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하는 중에서, 착실한 수련 과정 중에서 봉착한 심성 고비에서 명예, 이익과 접촉하지 않는 외에 또 명예와 이익 속에서 어떻게 자신에 대한 고험을 잘 파악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기점이라면 선하고 바른 생명도 쉽게 자아인식에 집착하고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형성된다고 이해한다. 자신의 우세와 장점을 모두 자아의 개성과 특징을 펼치는데 사용한다. 그러므로 늘 사부님과 법을 첫 자리에 놓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쉽게 난법 작용을 일으킨다.

최근 밍후이 편집부에서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를 발표한 후 나도 일부 보편적인 현상을 보아냈다. 바로 일부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수련생들은, 또 여러 천체에서 함께 인연을 맺고 내려왔는데 그중 일부 수련생은 언제나 작은 단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작은 단체가 형성된 후 그 속에는 언제나 말솜씨가 좋은 사람이 이끌어가며, 필경 이끌고 가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조직능력이 비교적 좋다. 수련생이 이끌어가는 수련생의 언행이 법에 있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그 문제를 지적하면, 그 결과 이끌고 가는 수련생의 사람 마음을 찔러 단번에 다른 사람 앞에 설 체면이 없어지게 된다. 일단 그 심성이 문제에 봉착해 첫 일념이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지 않는다면 그 사람 마음은 곧 우세를 점한다. 비자각적으로 수련생들의 자신에 대한 신임을 이용해 다른 수련생을 부추기고 각종 구원병을 불러 지적한 수련생을 겨냥하고 타격하며, 사람 중에서 반체제인사를 제거하는 그런 술수를 쓴다. 다른 수련생의 자원을 자신의 ‘개인재산’으로 여기고, 수련생 중에서 이름을 날리고 개인의 명성을 다투며 세력을 위해 ‘분투’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표면적으로 일을 하고 성적을 내는데 빠져서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모순 중에서 알고 있는 수련생들이 잇달아 찾아와 두어마디 하는데, 백 명이라면 백가지 자아 경지의 인식을 듣게 되고 돌아가며 변론을 하게 된다. 말할수록 더욱 복잡하고 분란이 생기기에 누가 옳고 그른지도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데 오히려 가장 근본인 “眞(쩐)·善(싼)·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1]를 망각한다. 누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표준으로 사고하고 행한다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며, 누가 그럴듯한 방패막이로 투쟁의 그 술수를 쓴다면 그 사람은 곧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언제나 모순 속에 빠져 자신이 처한 경지의 그런 인식, 자신이 알고 있는 편면적인 상황으로, 사부님의 법이 아닌 것으로 자신을 대조해 옳고 그름을 가늠한다.

더욱 많은 수련생은 모두 말을 하지 않는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모순의 불똥이 자신에게 튕길까 두려워한다. 설령 말을 몇 마디 하더라도 말을 아끼며 모순의 쌍방이 말을 하지 않으면 문제와 모순이 곧 해결된 듯하다. 내가 이런 수련생을 분석해보면 자신이 왜 이런 모순에 봉착했는지 모르고 있고 진선인의 법으로 가늠하고 원용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순의 쌍방이 모두 말하지 않는 것을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 개인은 구세력이 강제로 자신 경지의 인식과 법리로 우주를 바로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여겨진다. 그것들은 자신이 하려는 것을 고집하고 있으며, 사부님을 이용하여 그것들이 집착하고 있는 일을 완성하려 하지, 전반적으로 사부님의 지휘와 배치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세력에 대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것들은 모두 매 층차에서 제일 뛰어난 생명들인데”[2] “정법 이 일을 박해하는 데 참여한 것은 오직 구세력의 그 일부분이며, 그것은 부동한 층차(層次)에서 생명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더 많은 생명은 참여하지 않았는데, 참여하지 않은 그것들마저 모두 관찰하고 있고, 이 일체를 보고 있다.”[3] 그럼 우리 사람 중에 있는 수련자에도 이런 대응이 나타난다. 수련자 중에는 작은 명성을 갖고 있으며 집착으로 자아를 실증하고 있으나 사부님과 법의 표준과 필요성을 첫 자리에 놓지 않는 사람이 있다.

정말로 많은 면에서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많은 공상적인 경지는 늘 모두 그럴듯한 허황된 탈들이다. 통과될지 안 될지도 모두 문제다. 착실히 수련하지 않고 각종 깊은 법리에 이끌려 사오(邪悟)함도 모두 매우 쉬운 것이다. 일단 자신의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지 않으면 지불한 일체 노력은 자칫 나쁜 일을 하는 것으로 될 수 있다.

수련생 중에서 일정한 명성과 영향력이 있을수록 시시각각 자신이 법 중에서 행위와 일사일념의 근원을 경계해야 하며 우선 법으로 가늠해봐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과시심, 게다가 환희심은 마(魔)에게 이용당하기가 가장 쉽다.”[4] 명예를 구하는 마음은 더욱 마의 장애(魔障)이다. 우리가 늘 청성(淸醒)과 이지를 유지하길 바란다.

개인의 작은 인식이며 잘못된 곳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역설법(2)-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정론(定論)’

문장발표: 2013년 6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6/25/2757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