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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신사신법,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길을 걷다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004년이 되자 성 사업단위에서는 노동계약제를 실행하면서 ‘합동’을 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합동 중 갑이 을에 대한 규칙에 ‘사상상, 행위상에서 (사당) 당 중앙과 고도로 일치해야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는 사악이 이익을 이용해 중생을 협박하여 태도를 표명하라는 것이고 중생을 훼멸하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 말을 다 들은 상사는 화를 그치고 웃었다. 이렇게 우리 수련생들은 모두 합동을 체결하지 않고도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일반적인 이치에 따르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합동을 체결하지 않았을 때 마음씨 고운 동료는 내가 일자리를 잃을까봐 악당을 크게 욕했는데 결과를 들은 그들은 더욱 대법제자에게 탄복하며 대법에 감복했고 사부님께 감복했다. —-본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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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6년에 법을 얻은 노 대법제자다. 법회 문장을 읽을 때마다 많은 격려를 받았고 정진하고 제고하도록 촉진해 주었다. 이제는 내가 수련한 과정을 적어 수련생과 세인과 함께 나눔으로써 역사를 견증하겠다.

1. 절경에 귀중한 서적을 얻어 정오(正悟)하여 신적(神迹)이 나타나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고 병약했던 나는 출근한 후 노동과 가정에 대한 부담으로 너무 버거웠다. 그러다보니 선천적으로 허약했던 나는 심한 위장병, 만성 인두염, 불면증에 시달렸다. 서른 살도 되지 않아 얼굴이 노랗고 영감 같았는데, 항상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생명이 끊어질 것 같았다. 정말이지 병이 없고 몸이 괴롭지 않은 게 어떤 상태인지 몰랐다. 생활은 나에게는 바로 고통이었고 나또한 생활에 신심을 잃었다.

거의 절망에 빠져있던 나는 1996년 3월 기쁘게 대법을 얻었다. 그로부터 나의 모든 것이 개변됐다. 나는 연공점에서 귀중한 서적 ‘전법륜’을 얻어 하루 저녁에 단숨에 다 읽었다. 그리하여 불법을 얻었고, 찾으려던 것을 찾았고, 생명의 목표를 찾았음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대법의 요구대로 엄격하게 자신을 연마해 심신이 크게 달라졌다. 위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고 십여 년간 나를 괴롭히며 시달리게 한 불면증도 완전히 나았고 심각했던 만성 인두염도 뚜렷하게 나아졌다. 아내가 사 주었던 약은 연공하는 날부터 먹지 않았고 정신과 신체 모두 좋은 방면으로 전화하고 있었다. 나는 대법의 불은(佛恩)하에 유쾌하고 자상해져 있었다.

그동안 몸에 여러 번 심한 소업(消業)현상이 나타난 적이 있었지만,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심성을 지키면서 하나 또 하나의 난관을 넘겼다. 한 예를 들겠다. 1998년 6월경 근무를 마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동료가 고기 몇 점을 내 그릇에 놓아주었다. 할 수 없이 먹고는 집에 돌아가니 배가 매우 아팠다. 처음에는 좋지 않는 고기를 먹어서 인가? 라고 사람의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배가 아프고 설사했는지 보려고 억지로 참고 직장에 출근했는데 함께 먹었던 동료는 멀쩡했다. 갑자기 사부님께서 경문에서 말씀하신 “하지만 병이 발작할 때, 흔히 모두 표면물질 세계에서 한 가지 외인(外因) 조건의 촉발(觸發)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하여 그것은 우리 표면물질 세계의 객관적인 법칙에 부합한다. 다시 말해 세간의 이치에 부합하기 때문에 속인은 곧 병이 내원(來源)한 진상을 알 수 없으며, 곧 미혹되어 깨닫지 못한다.”[1]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또 내게 신체를 정화시켜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속으로 사부님께 “괜찮아요. 제자는 넘어갈 수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관을 넘을 때는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해도 물과 미음을 먹을 수 있었지만, 이튿날에는 뭘 먹으면 뭘 토했으며 배가 아파서 꼬이는 것 같았다. 설사부터 시작하더니 고름과 피를 싸게 됐으며 자주 눈앞이 까맣게 되면서 하루 종일 화장실에 앉아있었고, 내장은 마치 작은 칼로 한 겹 한 겹씩 도려내는 것 같았다. 예전에 위장병을 심하게 앓아 사부님께서 내장을 정화해주시고 있음을 알았다. 하루, 이틀, 삼일…… 옹근 열흘 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끊임없이 고름과 피를 쌌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탈수해서 죽었을 것이다. 열흘째 핏덩이를 배설하자 갑자기 배가 아프지 않고 음식도 먹을 수 있었는데 그동안 5㎏ 가량 살이 빠져 있었다. 얼굴과 몸의 까만 가죽을 벗긴 것 같았는데 그 후부터 나는 까맣고 여위어 병들어 보였던 얼굴과는 작별하고 체중도 약 10㎏ 늘었다.

1998년 7, 8월 우리 지역 보도원이 파룬궁이 병을 없애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효과를 조사한다면서 수련생은 반드시 솔직하게 설문에 응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나의 몸은 일부 아픈 곳이 있었지만 사부님께서 법 중에서 말씀하신 “진짜로 수련하는 사람은 병이 없다. 나의 법신이 모두 제거해 버렸다.”[2] “다시 말해서 당신의 병의 근본원인과 신체가 좋지 못한 근본원인은 우리가 당신에게서 제거해 버렸지만, 당신은 아직도 병의 장(場)이 있다.”[3] 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진짜로 수련하는 사람은 병이 없고 사부님께서 벌써 유백체(奶白體) 상태까지 정화해주셨고 원만하기 전에 소업하는 현상이 있을 것이지만 병은 없음을 깨달았다. 진짜로 수련하는 사부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병이 없는 것이다. 나는 설문지 문제에 모두 100%라고 썼다. 신기하게도 내가 다 쓴 후 몸이 편안하지 않던 상태가 철저히 없어졌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깨달을 수 있으면 깨닫고, 깨닫는 문제이므로 깨닫지 못하면 방법이 없다.”[3]는 것이다.

2. 마음에 법이 있으면 정념이 박해를 제어한다

1999년 ‘7.20’이후 중공 악당은 피비린내 나게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지역의 사악이 중점으로 박해하는 인물 중 한명이었다. ‘7.20’ 당일 나는 성 정부에 상방하러 갔다. 무장 경찰이 대법제자를 무자비하게 때릴 때 나와 일부 수련생은 그것들을 제지하다 광분한 무장경찰에게 폭행당했다. 악한 경찰의 주먹이 빗방울처럼 맹렬하게 머리, 얼굴, 눈을 내리쳤지만 내가 본 것은 금광이 하나하나 맞은 곳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온 몸 모두 상처였으나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후에 나는 우리 지역 공안국에 납치되어 불법으로 하루 감금당했다.

뒷날 출근했더니 상사가 나를 찾아 수련을 포기하고 시말서를 쓰라고 협박했고 암암리에 사람을 파견하여 나의 언행을 감시했다. 내가 그들에게 법을 선전해도 말을 듣지 않아 오랫동안 나는 침묵하곤 ‘홍음’을 외웠다. 그렇게 한동안 지난 어느 날 우리 지역의 한 수련생이 베이징에 가서 상방하다 납치되어 돌아왔다. 직장 상사는 그에 대해 들은 후 나를 사무실에 불러다 놓고 듣기 싫은 말을 미친 듯이 많이 했다. 또 경찰국에 전화해 나를 감금시키겠다면서 줄곧 퇴근할 때까지 야단을 쳤다. 만약 내가 상방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안 쓰면 집에 못 보낸다고 협박했고, 같은 사무실의 사람도 집에 가지 못하게 한다고 윽박질렀다. 그들은 서로 연좌해 동료들이 나와 대법을 미워하게 하려 했다.

이는 너무 사악했기에 나는 당당하게 이치에 맞게 “8시간 근무 할 때는 당신의 말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8시간 외에는 내 자유 시간이므로 당신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 간섭하는 것은 위법이고 연좌제는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상사와 동료 모두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조금 후 상사는 “모두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그 후부터 다시는 정상적으로 퇴근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

그때 사당 TV에서는 거의 매일 일부 지역의 소장과 보도원이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방영했다. 어느 날 상사가 나를 찾아와 “계속 출근하려면 반드시 파룬궁과 철저히 결렬해야 하고 반드시 TV에서 폭로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헌법에서 공민은 신앙자유의 권리가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고 ‘진선인(眞善忍)’대로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은 헌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헌법이야말로 모범이고 헌법과 다른 조례, 법률 등이야말로 위법이다. TV에 출연하면 나는 참말을 해야 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파룬궁을 연마하여 신체가 건강해졌고 도덕이 제고됐다.”라고 했다. 나의 말에 상사는 다시는 TV방송에 나가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믐날 저녁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가 우주에 울려 퍼지다

사악의 소란과 협박은 진짜로 수련하는 제자의 길을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한동안의 사고를 거친 우리 지역의 한 수련생은 압력을 무릅쓰고 작은 교류회를 조직해 어떻게 외지 수련생과 연락하고 어떻게 법을 지키고 어떻게 수련하겠는가에 대해 토론했다. 마침 한 수련생이 베이징 수련생과 연락할 수 있어서 우리는 팩스를 샀다. 베이징 수련생은 외지 수련생이 베이징에 가서 어떻게 호법할 지 밍후이왕에서 정보를 제때에 전달해 주어 우리는 이를 복사해서 다른 수련생에게 전했다. 암흑 속에서 우리는 방향이 보였고 정체 제고는 매우 빨랐다. 몇 협조인은 박해 이후 첫 번째 법회를 조직했는데 우리 지역의 수련생 대부분이 참가했다. 모두가 지금 진짜로 수련하는 제자는 세인을 만나면 홍법하고 베이징에 가서 상방하고 호법하고 법을 실증해야 함을 인식했다.

법회 이후 2000년 그믐날 밤 11시, 우리 지역 수련생이 천안문으로 걸어갔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으로 가 법을 실증하는 수련생이 너무 많았는데, 갓 창안(長安)에 도착했는데 벌써 몇 십미터 반경에서 경찰들이 한 줄로 서서 길가는 사람을 막았다.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은 진정으로 검문소를 하나하나 지나 천안문광장에 도착했다. 나는 몇 발자국 빨리 광장으로 뛰어가 현수막을 들자 한 무리 경찰이 따라와선 나를 경찰차에 밀어 넣었다. 이때 광장, 창안거리, 경찰차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우리 사부님의 청백을 돌려줘라! 대법의 청백을 돌려줘라!”는 소리가 그믐날 밤 베이징 상공에 울려 퍼지고 우주에 울려 퍼지며 사악을 벌벌 떨게 했다.

나는 사악에게 납치돼 천안문 파출소 큰 정원에 갔는데 거기에는 이미 많은 대법제자가 와 있었다. 여러분이 크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우리 사부님의 청백을 돌려줘라! 대법의 청백을 돌려줘라!”고 외치는 소리는 광장 수련생의 고함소리와 서로 어울려 우주에 메아리쳤다. 후에 수련생을 한 방안에 가둔 채 집주소를 적어라고 했는데 한 수련생은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악한 경찰은 “혹형을 견디려면 당신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지 않는 사람은 위에서 명령이 있다. 직접 신강 혹은 대서북 사막에 보낸다.”고 했다.

이틀 후 경찰과 직장 동료가 나를 우리 지역으로 납치해 돌아갔다. 차를 타고 천안문광장을 지나니 광장에는 아직도 대법제자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치고 있었고 현수막도 들고 있었다! 경찰의 말의 의하면 당시 베이징의 모든 구치소가 가득했고 광장 옆에 있는 철 케이지에도 대법제자를 가뒀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나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오늘은 회상하면서 여기까지만 적었지만, 그 당시 모습은 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게 장렬했다. 이는 내가 이 글을 적는 이유인바, 대법과 사존의 정법, 수련생들이 법을 실증하는 증거로 남기려는 것이다.

구치소에서 연공환경을 개척하다

나는 정월 초이튿날 경찰에게 납치돼 우리 지역에 돌아와서 구치소에 바로 갇혔다. 경찰은 나를 ‘호랑이 의자(老虎凳)’에 3일 동안 앉혀놓았다. 내려온 후 감옥의 한 범인이 악독하게 “파룬궁 일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되고 연공해서는 안 되며 빨리 감옥의 규칙을 외워라. 이틀 후에 물어보겠다. 외우지 못하면 내가 혼내주겠다.”라고 했다. “나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범죄인이 아니므로 감옥의 규칙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 파룬궁을 위해 상방한 것이고, 파룬궁을 연마하기 때문에 박해받아 들어온 것이어서 당연히 파룬궁의 일을 말해야 한다. 물론 연공도 해야 하며 당신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 당신은 범죄인이고 장쩌민도 나를 관여하지 못하는데 당신이 뭐 길래?”라고 했다. 감방에 있던 범인들이 멍해졌다. 지금까지 감방에서 범인 두목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다. 범인의 두목은 듣고 오히려 크게 웃었다. 사실 나는 속으론 좀 두려웠다. 하지만 내 생명은 사부님께서 구도하신 것이고, 만약 대법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아마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아예 여기에서 자유롭게 연공하는 환경을 개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억하건데 사부님께서는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3]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머리가 떨어져도 몸은 여전히 가부좌를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비교해 보면 수련함이 어떠한가가 일목요연(一目了然)하다.”[4]라는 게 생각났다. 그때 나는 다만 이 몇 마디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이 몇 마디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악을 이길 수 있다. 비록 몇 마디밖에 생각나지 않았지만 이 몇 마디대로 해내면 사악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밤이 지나 일어나서 동공(動功)을 했는데 범인의 두목은 내가 연공하는 모습을 봤지만 모른 체 하고는 머리를 뒤집어 쓴 채 잠을 잤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침대에 앉아 정공(靜功)을 시작했더니 그가 가만있지 않았다. 4, 5명의 범인에게 내가 수인하는 손을 떼어 놓고 결가부좌한 다리를 갈라놓으라고 했다. 나는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온 머리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갈라놓지 못했다. 범인 두목은 매우 화가나 나를 침대 이쪽에서 저쪽으로 차도 여전히 손을 떼지 않는 것을 보고 또 차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는 땅바닥에 한 바퀴 굴렀지만 여전히 가부좌하고 수인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연마한다! 라는 일념밖에 없었다. 첫날의 1시간 정공은 그렇게 연마했다.

그 후에도 한 달이 넘도록 정공 시간만 되면 감방이 혼란스러웠다. 범인들은 여러 가지 수단으로 나를 괴롭히고 학대하면서 연공하는 것을 막았다. 어떤 때 내가 연공할 때는 감방 안의 범인 12명이 번갈아 나를 폭행했다. 손으로 뺨을 때리고 주먹과 팔꿈치로 옆구리를 찼으며 센 주먹으로 등허리를 쳤다. 악한 사람은 스위치 전원을 누르게 해 때려서 그 부위를 만지기만 하면 온 몸이 아프게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작은 집게로 나의 수염을 뽑아 턱이 피투성이가 됐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내가 연공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오직 숨만 있으면 연공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기간 사존께서는 밤이면 나를 점화시켜주셨고 격려해주셨다. 꿈에서 내가 장갑차를 몰고 돌더미 위를 달린 뒤 뒤돌아보니 금모래로 깔아진 큰길이 되었음을 보았다. 내가 올바르게 했음을 알았다. 어느 날 내가 정공하는데 그들은 나를 때리지 않고 차가운 물 한 대야를 내 머리에 얹고는 “파룬궁, 오늘 한대야 물을 하나도 흘리지 않으면 이후에 당신 마음대로 연공하라.”고 했다. 나는 가부좌를 하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물 한 방울도 떨구지 않았다. 그들은 “파룬궁은 정말 대단하다. 오늘부터 마음대로 연공하라. 연공하지 않아도 안 된다.”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는 법리를 깨닫게 됐으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의 참뜻을 깨닫고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결정하심을 깨달았다.

후에 나는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그들에게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도록 어떻게 가르친다는 것을 알려줬으며 그들도 좀 받아들였다. 2개월 후 불법으로 감금된 대법제자들은 단체로 단식하면서 불법 구치에 항의해 조건 없이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모두 조건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광장에 연공음악이 은은하게 들리다

2000년 5월 13일, 사부님의 생신을 맞이하여 수련생들이 법을 실증하는 길은 이미 명백했다. 바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생사를 내려놓고 걸어 나오는가 하는 것이었다. 걸어 나오려는 수련생이 매우 많았다. 수련생의 조건에 따라 베이징에 갈 수 있는 수련생은 5월 10일에 출발하고 베이징에 갈수 없는 수련생은 5월 11일에 자발적으로 지역 광장에서 단체연공을 약속했다.

5월 11일 오전 4시 30분, 나와 우리 지역의 몇 십 명 수련생은 제시간에 광장에 도착했다. 누군가 소리가 큰 녹음기를 가져왔다. 큰 소리로 연공음악을 틀자 다 같이 음악소리에 따라 태연하게 연공을 했다. 익숙한 동작, 익숙하고 은은한 곡이 광장에 울러 퍼졌다. 아침 운동하던 사람들 모두 동작을 멈추고 서서 봤으며, 층집 안의 사람들은 머리를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경찰도 왔지만 마치 주위의 모든 것이 ‘띵(定)’해진 것처럼 우리가 연공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파룬궁이 누명을 벗었나!?’라고 의논하고 있었다. 우리는 1장부터 4장 공법을 끝까지 한번 했다. 대법의 음악은 흑색테러가 가장 공포적인 분위기에서 우리 지역 정부 광장 앞에서 방해받지 않고 1시간 동안 은은하게 울렸다. 신기했다!

그렇게나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감히 공개적으로 연공했다는 소식은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뉴스가 됐다. 정념이 있는 많은 사람은 “파룬궁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위대하다.”고 했다. 이번에 공개적으로 한 연공은 힘 있게 사악을 벌벌 떨게 했고 수련생들을 격려했다. 유감스러운 것은 내가 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잘하지 않았고, 어떤 수련생이 나를 본보기로 영웅으로 여겨 자신을 제때에 조절하지 못해 그 후에 노동교양 1년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2000년 8월 사악한 노동교양소에서 정념으로 뚫고 나왔다.

3.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 하신다

일자리를 회복하고 불법으로 빼앗긴 임금을 되찾아오다

2000년 불법감금 당한 뒤 직장에서는 나와 아내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못하게 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길거리나 농촌에 가서 과일을 팔며 고생했다. 내가 바로 산 ‘진상자료’였기에 어디에 가면 어디에 진상을 알렸다. 연공해서 몸과 마음이 받은 혜택과 무고하게 박해 받은 사실을 알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러일으킨 줄 모른다. 나는 과일을 파는 동시에 큰 크레용으로 알맞은 전선대에다 대법의 표어를 적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법공부를 통해 나에게 박해자에 대해 원망심, 쟁투심이 있고 이 한차례 박해를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여겼음을 알았다. 인식했으면 고쳐야 한다. 박해자 본신이야말로 진정하게 박해 받는 자이므로 대법제자는 응당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마음가짐을 순정하게 한 후 본지 현 위원회 서기에게 진상편지를 써 친히 보내줬다. 이틀 후 불법으로 우리 지역 구치소에 갇혀있던 아내가 조건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돌아온 후 우리는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일자리를 잃어버려서는 안 됨을 깨달았다. 일자리는 사존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법을 실증하는 것이고, 응당 철저히 사악의 안배와 박해를 부정하고 돌아가 일을 해야 하고 정상적으로 출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달았으면 해내야 했다.

나는 자주 퇴근하기 전에 직장 문 앞에 가서 과일을 팔았다. 직장 동료들이 지나가면 나는 먼저 그들에게 인사한 뒤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폭로했다. 직장 상사는 내가 문 앞에 있는 것을 알고는 퇴근 후에도 감히 나오지 못했다. 후에 물건을 팔러 가지 않고 한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직장에 찾아가 상사에게 출근할 수 있게 하라도 요구했다. 처음에 상사의 태도는 매우 사악하여 어떤 때는 나를 쫓아냈다. 그 과정이 나 자신을 연마하는 과정임을 깨닫고 나는 화를 내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충동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했고, 그가 충동할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자비하고 인자했다. 그 결과 결국 상사의 태도도 좋게 변했으며 내가 겪은 박해의 경력도 들어주었고,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또 새로 부임한 현 위원회 서기에게 진상 편지를 썼다. 2002년 나와 아내, 또 한명의 수련생이 조건 없이 출근하게 됐다. 출근한 후 또 불법으로 지불하지 않았던 3년 분 임금을 받아냈고 그들이 베이징에 가서 나를 납치해 올 때 탄 비행기티켓 값도 도로 받아냈다.

다시 출근하게 된 것은 중생이 대법에 대해 정면적으로 인식하게 했고 수련생에게도 격려가 매우 컸다. 이 모든 것은 사존께서 안배해주신 것이므로 사존께서 말씀하신 “어디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곳에 진상을 알릴 필요가 있다.”[5]는 법을 마음에 새겨두고 대법의 요구대로 해야 하고 길은 사부님께서 모두 우리에게 깔아놓으셨으므로 대법제자가 정념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사악한 불법 합동을 체결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출근해 속인이 탄복하다

2002년 출근한 후 대법의 요구에 따라 열심히 일하여 상사의 신임도 많이 받았다. 박해초기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 모두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출근한 후 나는 직장의 편리한 조건을 이용해 최근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동료, 잘 아는 사람, 친구에게 진상을 알렸더니 그들도 매우 듣기 좋아했고 잘 받아들였다.

2004년이 되자 온 성 사업단위에서는 노동계약제를 실행하고 ‘합동’을 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합동 중에 갑이 을에 대한 규율 요구에 ‘사상상, 행위상에서 (사당) 당 중앙과 일치해야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는 이것은 사악이 이익을 이용해 중생을 협박하여 태도를 표명하라는 것으로, 중생을 훼멸하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 계통내의 대법제자는 사부님의 경문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을 함께 배웠다. “한 생명의 머리에 무엇을 담았으면 무엇이다. 깨끗이 쓸어버리고, 선해(善解)하는데 한 번 지나쳐 가면 그만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중공사당(中共邪黨)을 믿고 나는 중공사당을 위해서 한다고 말한다. 만약 이 우주의 법이 중공사당이 좋다고 여긴다면 그 한 번 지나가는 중에 당신은 남게 되며, 만약 이 우주의 법이 중공사당이 사악하다고 여긴다면 한 번 지나가는 중에 당신은 곧 없어지게 된다. 그때에 가서는 더는 진상을 알리는 것이 아니고, 더는 기회를 주어 어떠어떠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에 가서는 이 일이 없다. 당신이 무엇을 담았다면 당신은 곧 그것의 일원으로서 당신을 그것의 한 개 분자로 본다. 머릿속에 무엇을 담았다면 이 사람은 바로 그것의 일원(一員)이며 한 번 지나쳐 가면 그만이다.”[6] 많은 수련생들은 법공부를 통해 이 ‘합동’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고 인식했지만 합동을 체결하지 않으면 일반적인 이치에 따라 고용을 거절하는 것이므로 해고당할 수 있는 것이다. 수련생은 “해고당해도 체결할 수 없다.”라고 했다. 나와 아내에게도 일정한 압력이 있었다. 갓 출근한지 2년밖에 안됐는데 아마 또 일자리를 잃는 것을 대면해야 할 것이다.

저녁에 나와 아내는 법공부하고 교류했다. 아내는 “사악한 합동을 체결하는 것은 사부님의 안배가 아니다. 이 합동은 법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고 사악이 중생을 훼멸하려는 수단이다. 우리는 그것을 승인해서는 안 되고 체결을 거절해야 한다. 사악이 중생을 훼멸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옳은 것이고 대법의 요구대로 하는 것이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이다. 올바르게 하는데 어떻게 일자리를 잃을 수 있겠어요?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했다. 아내의 이 말은 내 마음 속의 매듭을 풀어줬다. “그렇다!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합동을 체결해서는 안 되고 또한 정상적으로 출근해야 하고 정념 정행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주도하시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튿날, 우리 몇 명의 수련생은 또 교류하여 진일보 법에서 정오(正悟)했다. 직장에 출근했더니 상사가 나에게 합동을 체결하지 않는 것은 개혁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평화롭게 “개혁을 반대하지 않아요. 어떤 개혁도 모두 일과 규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합동도 현행 법률, 법규, 헌법과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국가공민은 국가공무원의 감독과 건의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모두 일치하게 요구한다면 누가 감독하고 누가 건의 하겠어요? 실천이 증명하다시피 ‘문화대혁명’시기, 사악한 당 중앙은 얼마나 많은 잘못을 수습하여 바로잡았던가요, 그때 당 중앙과 불일치하던 게 지금은 다 올바른 것이었어요. 합동은 법률보다 크지 않고 법률도 다만 사람의 행위만 제약할 수 있을 뿐 사람의 사상은 제약할 없는데 이 합동은 사람의 사상마저 다 제약하려는 것인데 이 합동이 법률보다 큰 것인가요? 법률과 저촉되는 게 아닌가요? 그러므로 내가 이 합동을 체결하지 않는 것은 개혁을 방해하는 게 아니고,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에요. 그러므로 개혁을 방해한다는 누명을 쓸 수 없어요. 직장 상사로서 당연히 군중의 의견을 반영하고 또한 합리적인 요구와 합법적인 권익을 보장해줘야 해요.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도와줘야 하고 좋은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은 복이 올 것이에요.”라고 했다.

내 말을 다 들은 상사는 화를 그치고 웃었다. 이렇게 우리 수련생들은 모두 합동을 체결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보통 이치에 따르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합동을 체결하지 않을 때 마음씨 고운 동료는 내가 일자리를 잃을까봐 악당을 크게 욕했다. 결과가 나오자 그들은 더욱 대법제자에 대해 탄복했고 대법에 감복했고 사부님께 감복했다.

그 당시 우리는 밍후이왕에서 어느 지역의 사악이 파룬궁수련생을 협박하여 노동합동을 체결하려면 우선 보증서를 써야 한다는 등 무리한 요구가 있었고 어떤 수련생은 박해를 받았다는 내용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3]라고 말씀하셨다. 생각이 올바르면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보호해주신다고 생각했다.

4. 널리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길을 걸어가다

우리 지역 시내에는 수련생이 매우 많지만 농촌에는 면적이 넓어도 수련생은 적었다. 2002년에 농촌에는 진상자료가 거의 없었다. 나는 낮에 과일을 팔면서 거의 30여리 내의 마을과 부락 모두 다니면서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리는 외에 또 표어를 썼다. 나는 진상자료를 마을 사람들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당시 농민은 사당의 독해를 매우 깊게 받아 대법과 대법제자를 매우 적대시하는 등 농촌 환경은 매우 사악했다. 낮에 몇 몇 농촌으로 진상자료를 보내주던 수련생이 모두 납치당했다. 그래서 나는 저녁에 혼자 자전거를 타고 농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한동안 배포했는데 다른 한 수련생이 찾아와 자기도 중생을 구도하고 싶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파견하여 나를 도와주시면서 함께 제고하라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우리 둘은 서로 배합해서 인근 마을과 부락에 재빨리 모두 배포했다. 2004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 배포할 수 있는 곳은 모두 다 배포했다. 너무 먼 길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너무 힘들다고 여겨 아예 오토바이 한대를 사서 수련생과 함께 대면적으로 진상자료를 보내기 시작했다. 후에 또 한 수련생이 참여했다. 최근에는 우리 지역 농촌과 부락에 거의 다 진상자료를 보내줬다. 어떤 곳은 몇 번이나 보내주어 수련생이 마을에 들어가면 주민들이 알아보고 높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중생은 진상에 명백해지면서 각성하고 있다……

16년 수련의 길은 사존의 보호하에 신사신법만 하면 올바르게 걸을 수 있었고 정념이 족하지 않을 때는 넘어져서 크게 후회하기도 했다. 여러 번 법회에 필을 들다가 또 내려놓았다. 수많은 글을 써도 수많은 말로는 사존께 대한 감사를 다 쓸 수 없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수련의 길을 올바르게 걷도록 하려고 너무 많이 지불하셨다. 어떤 때는 제구실을 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법수련의 길은 여전히 걸어야 하고 아직 많은 사람의 마음을 없애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반드시 안을 향해 찾아 집착을 내려놓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병업’
[2] 리훙쯔사부님의 경문: ‘파룬따파의해-창춘(長春)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
[3] 리훙쯔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대폭로(大曝光)’
[5] 리훙쯔사부님의 경문: ‘각 지역 설법3-대뉴욕지역법회설법’
[6] 리훙쯔사부님의 경문: ‘2004년뉴욕국제법회설법’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6/264803.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4/1371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