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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로 관념 개변, 수련생이 마난을 뚫고 나오다’를 읽고 인식한 것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에 발표된 ‘정체로 관념 개변, 수련생이 마난을 뚫고 나오다’란 문장을 보고 수련생이 매우 중요한 문제를 제출했다고 생각한다. 바로 수련생을 돕는 마음을 어떻게 이 과정 중 자신을 연마하는 것으로 돌리나 하는 것이다

한 대법제자로서 어떠한 문제에 부딪혀도 모두 수련 중의 문제이며 절대 자신의 수련과 상관없는 문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 중, 참여한 수련생들은 응당 시시각각 자신의 일사 일념이 법에 있는가를 주의해야 하며, 시시각각 어떤 사람 마음이 있는가를 찾아야 하며, 시시각각 어떻게 자신을 내려놓겠는가를 주의해야 하며, 사부님의 정법의 대세에 더욱 잘 배합해야 하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소위 수련생을 돕는 과정이 바로 자신을 연마하는 과정이고 바로 정체로 원용하는 과정이다. 수련생들이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연마하고 법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 법의 위력도 나타나는 것이다.

이 문장을 본 후 또한 동시에 몇 개 인식이 있는데 제출하여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1. 문장에서 관념을 전변하는 과정 중, 수련생들은 질책에서 감사로 변했으며 협조인은 더욱 “모모, 정말로 대단하다. 너무 위대하다. ‘병업(病業)이 가져다준 고통을 감당했고 자신을 연마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를 도와 부족을 찾아줬다. 당신은 우리 매개 사람을 도와줬고 또한 정체를 도와줬다. 감사한다!”라고 했다.

우선, 질책은 사람 마음이고 감사도 사람 마음이다. 수련자로서 응당히 조용한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떠한 문제가 나타나든지 여러분이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수련생마다 대법제자로서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어서 내가 도와주는 것 외에 어떠한 부동(浮動)할 만한 것이 없어야 한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정념으로 이 문제를 대하고,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면 무엇을 하면서, 사람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고, 사상 속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지 않으며, 관계를 모두 아주 바르게 놓고, 그것을 아주 중하게 보지 않으면 무척 평온하다. 구세력은 별로 재미가 없다고 여긴다. ‘이 사람들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구나. 이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니 무슨 재미가 있는가? 상관하지 말자.’ 그의 병업은 단번에 또 좋아졌다.”

다음, 수련생은 이런 정황이 나타난 것을 좋은 일이고 각자를 도왔고 더욱 정체를 도왔다고 인식했다. 이런 인식은 일정한 문제가 존재한다. 본래 이것은 수련생의 누락이 있어 사악에게 틈을 타서 방해받고 박해당한 것이다. 만약 우리 이것을 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사악은 더욱 이유가 있어 방해하고 박해할 이유가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방해와 박해는 우리는 응당 승인하지 않고 당연히 부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악의 방해가 발생한 이상 수련자로서 우리는 응당 똑똑하게 인식하고 방해의 발생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고 또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우리 본신에게 문제가 생겼으면 우리는 당연히 누락이 있는가를 찾아야 하며 우리는 응당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 사악의 방해와 박해를 대하면서 우리는 모두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연마할 때 방해를 제고하는 기회로 개변시키고 좋지 않은 일을 좋은 일로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런 문제가 나타난 것은 방해고 박해고 좋지 않는 일이지만 우리 대법제자가 자신을 찾고 자신을 연마하면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 때문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2. 문장에서 수련생들은 모두 관념이 변했고 수련생 본인은 “그녀는 매우 격동했다. 이후로 배변도 정상적으로 됐고 몸도 하루하루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건대 수련생이 이 문장에서의 본의는 정체에서 수련생들이 모두 관념을 전변하고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연마하여 이 정체도 수련생 당사자도 안을 향해 찾았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정체에서 안을 향해 찾은 정념의 장이 당사자를 안을 향해 찾게 이끌었고 수련생이 이 정념의 장 속에서 자신을 바로 잡아 몸이 하루하루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체의 정념이 사악의 박해를 부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장에서 볼 때 수련생이 문장을 서술할 때 한 문제가 존재한다. 마치 정체 수련생이 안을 향해 찾는 것이 당사자 수련생이 안을 향해 찾는 것을 대신했고 주위 수련생이 자신의 문제를 찾고 자신을 연마하고 제고해 올라와 당사자도 자연히 제고됐고 바로 잡았으며 원래 존재하는 문제는 자동으로 없어졌다. 이런 인식은 마침 바깥을 향해 찾고 바깥을 보고 다른 사람을 찾게 하는 구실을 제공한 것이다.

사실상 이 2주 동안에 본지에도 이런 정황이 나타났다. 병업 가상에 처해있는 수련생 가족(역시 수련생)은 자주 병업 상태에 처해있는 수련생이 접촉하는 일부분 수련생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수련생에게 가상의 병업이 있게 됐다고 생각하고 주위 수련생들 모두 ‘명혜주간’의 이 문장을 보라고 했다. 당연히 주위 수련생들은 응당히 관념을 전변하고 자신을 찾아야 하지만 기타 수련생의 관념의 전변은 자신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고 당사자 수련생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은 왜 생각해보지 않는가. 왜 당신을 교란하는지를, 무엇 때문에 당신을 교란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무슨 집착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내려놓지 못한 것은 없는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가? 진정한 원인은 자신의 이곳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틈을 탈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반드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신의 어디가 잘못되어 사악에 의해 틈을 타게 되었는가를 보라. 잘못되었으면 마땅히 인식하고 마땅히 잘해야 한다.” [3]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사람은 응당 사부님의 법에 따라 자신을 대조해야 한다. 특히 모순과 마난 앞에서. 개인의 층차의 제한이 있는 곳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시카고 법회’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3-대뉴욕지역 법회설법’

문장발표: 2012년 6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6/4/2748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