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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높게 수련”함을 추구하다 사오를 경계하자

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밍후이왕 문장에서 자주 어떤 사람이 사오한 것을 보았다. 그들의 행위는 이미 정법을 파괴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사오한 원인은 대다수 “공을 높게 수련”하고 ,“극히 높은 층차에 도달”하려 함을 망상하고 추구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극단적으로 방자하고 편집적으로 “공을 높게 수련”하려는 집착심에 이끌려 넘어진 적이 있다.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수련 경험과 결합하여 교류해 보고자 한다.

대법이 박해 당하던 초기, 나는 법공부를 소홀히 해 사악의 ‘세뇌반’에 납치된 적이 있다. 10여 일간 “깨달음”을 통해 마지막 “결론”을 내렸는데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아도 더욱 높은 층차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이렇게 깨달은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탓도 있지만 “공을 높게 수련”을 추구하는 강렬한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한 게 주된 원인이었다.

후에 깨닫고는 법 중에 돌아와 계속 수련했지만 몇 년간 “공을 높게 수련”하려는 마음을 정확하게 대하지 못했고 집착심을 내내 내려놓지 못했다. 그러므로 자주 수련에 큰 지장이 나타났는데 매번 수련을 계속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의 체험에 근거하면 무릇 강렬한 자아의식이 있는 사람은 쉽게 “공을 높게 수련”하고 싶은 집착심으로 교란을 받는다. 이런 사람이 만약 깨우칠 수 있다면 자신이 사부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표면상 역시 수련하고 있지만 대법을 이용해 자신이 “공을 높게 수련”하려는 목적에 도달하려 한다. 이런 집착심은 사람의 멈출 수 없는 오만방자한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신이 그 어떤 사람보다 낫다고 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심에는 얼마간의 질투심도 섞여 있으며 남에게 승복하지도 않는다. 비록 사부님을 인정은 하지만 실은 사부님의 대법을 다른 용도로 빌려 쓰는 것이다. 집착심이 더 팽창해지는데 그것이 곧 “누구도 자신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수련인에 대한 교란이 확실히 크고 수련인을 훼멸시킬 수도 있으며 심지어 법을 파괴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다 법이 육성한 생명이다. 우리의 생명이 법을 떠나 존재할 수 있는가? 공을 얼마나 높게 수련해야 높다고 할 수 있는가? 법을 벗어나서(넘어서)까지 높게 수련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공을 높게 수련”하는 것을 추구하는 데 집착하는 것은 사람이 이성적이지 못한 것에 불과하고 멈추지 못하는 욕망과 오만방자일 뿐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1]우리는 단지 심성을 닦는 데 집착하고 조사정법의 일을 하면 되며 얼마만한 공덕을 성취하는 것은 사부님이 자연히 잘 배치해 주실 것이다. 사부님은 바로 중생과 우주의 아름다움을 위해 정법을 하신다. 우리가 사부님을 믿고 우리의 생명을 사부님의 배치에 맡기고 기타 마음은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만약 한 수련인이 자신의 사부도 믿지 않으면 어찌 수련할 수 있을까? 수련인이 자신의 공을 연화할 수 있는가? 자신의 신체를 개변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깨닫기를 사부님이야말로 제자들의 진정한 부(父)이다! 생명의 진정한 부친이다. 우리가 유일하게 따르고 들어야 할 분이시다.

우리 수련인은 다 알고 있다. 초기 막 수련할 때 우리의 신체 변화가 매우 크며, 정말로 병이 없고 온몸이 가볍다. 속인 중의 누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해 주겠는가? 누가 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해주셨다. 이 세간의 이치로 말한다면 대법 사부님은 우리의 은인이시다! 사부님은 정말로 우리 생명의 아름다움을 위해 책임진다. 세간에 이런 이치가 있다. ‘물 한 방울의 은혜를 입었으면 샘 하나로 보답해야 한다’고. 이 이치로 말하면 우리는 절대 소위 “공을 높게 수련”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으로 정법의 요구에 위배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 사부님과 대법을 모함하고 파괴하는 것을 보고도 나와서 수호하지 않으면 더욱 안 된다.

대법의 법리로 말하면 “대법은 원용한 것이다”[2]어떤 방면에서 말해도 대법은 다 원용한 것이고 통할 수 있다. 세간의 바른 이치든 다른 공간의 이치든 역시 다 통한다. “물 한 방울의 은혜를 입었으면 샘 하나로 보답해야 한다.”는 이치는 세간의 바른 이치이기도 하고 좋은 사람의 표준이기도 하기에 우리는 마땅히 지켜야 한다. 이 이치는 모든 사람의 이치에도 절대적으로 유익하다.

사오한 사람의 많은 행동은 “좋은 사람”의 표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면 어찌 수련할 수 있겠는가? 대법은 수련인이라면 어떤 환경에서도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생명에 대해 유익한 사람으로 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자신이 내려놓지 못한 것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하고 자신의 생명을 사부님의 배치에 맡겨야 한다. 완전히 우리의 사부님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수련의 기초이다.

글로 적어 수련생과 교류하고자 하며 수련생이 다소 거울로 삼기를 희망한다. 동시에 자신을 이 방면에서 더욱 청성하게 하고 대법의 법리로 자신의 깨끗하지 않은 요소를 제거해 버리려 한다.

부족한 곳은 수련생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주:

[1]리홍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전법륜”

[2]리홍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정진요지-선을 알기 쉽게 해설”
 

 

문장발표: 2013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8/273123.html
문장발표: 2013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8/273123.html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8/273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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