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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쌍수’에 대한 재인식

글/ 혜심(慧心)

[밍후이왕] 매번 사이트에서 수련생이 자신이 수련 후 젊고 예쁜 모습으로 법을 실증했다는 문장을 읽을 때면 속으로 몹시 부러웠다. 왜냐하면 나의 외모는 젊어지지도 않고 더 예뻐지지도 않았으며, 속인은 늘 내가 몹시 피곤해 보인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내가 허영심, 과시심 혹은 색심을 내려놓지 않아 이런 가상이 조성됐다고 여기기 시작했고, 그래서 늘 이런 가상을 마음에 두지 않고 할 일을 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동창, 친구들 어떤 이는 나보다 더 젊은 것을 보고는 진상을 알릴 때 ‘성명쌍수’[1]라는 이 한 점을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웠다. 나는 매 개인은 수련의 길이 다르므로 어쩌면 이것이 바로 나의 수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의 법공부를 통해 나는 인식하게 됐다. 사부님은 우리의 수련이 잘된 신체(神體)와 이 공간의 신체(身體)를 협동하게 하려 하시는데 구세력이 막고 있어 최대한도로 신적(神迹)을 나타내 사람을 구할 수 없게 됐다. 그러므로 이를 우리는 승인할 수 없으며 마땅히 발정념으로 이 방해를 돌파하고 대법의 위력을 펼치고 성명쌍수 공법의 풍채를 펼쳐야 한다.

그런데 구세력은 왜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나를 가로 막을 수 있었는가? 왜 어떤 수련생은 이런 교란을 받지 않았는가? 파룬궁 수련을 하여 동년배 사람보다 젊고 건강해진 사례들이 많지 않은가? 세 가지 일을 나도 내내 빠뜨리지 않았잖은가! 이 때문에 나는 늘 곤혹스러웠다. 어쩌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일 수도 있는데, 며칠 동안 발생한 작은 일로 인해 나는 수련 중에 존재하는 문제가 외모 상으로 드러났다는 걸 인식했다.

며칠 전 학교에서 딸에게 화분 하나를 주었다. 딸은 자신의 분무기로 꽃에 물을 주겠다고 했다. 딸은 이 분무기를 아주 좋아했으므로 꽃에 많은 물을 뿌렸다. 그런데 이튿날 꽃과 잎이 모두 시들해진 것이 물이 부족한 것 같았다. 딸은 화분에 또 한 통 물을 뿌리는 것을 보고 나는 화분 흙에도 뿌리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세 번째 날에는 꽃과 잎이 더욱 시들어 막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자세히 관찰해 보니 꽃과 잎이 모두 몹시 마른 것이 아직도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날마다 물을 뿌렸는데도 왜 안 될까? 나는 손으로 흙을 만져보니 외면은 젖었어도 속의 것은 아주 굳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물 한 병을 가져다 화분에 부었다. 잠시 후 잎이 많이 펴졌고 반날 후에는 완전히 회복됐다. 단지 상처를 입었던 듯 이전과 같이 그렇게 유연하지 못할 뿐이었다.

딸은 나에게 물을 뿌려서는 왜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분무는 외면으로부터 물을 보충해 주는 것이니 근본적인 작용을 하지 못하고 뿌리에게 물을 주어야 되는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말을 마치자 나는 갑자기 의식했다. 수련 중에도 역시 이런 이치가 있는 것 아닌가? 가령 한 수련인이 단지 표면 형식으로만 잘하고 세 가지 일도 빼놓지 않고 한다 해도 만약 법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법이 마음속에 닿지 못한다면 근본상 위사위아(爲私爲我)의 본성을 개변하기 어려울 것이고 일하는 것도 사람마음이 중함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며 구세력은 구실을 찾아 가로 막을 것으로 몸에서도 신체(神體)의 펼쳐짐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대법 항목을 하느라 바쁘지만 표면에만 머물러 있게 되는바 바로 분무기로 꽃에 물을 주는 것과도 같이 내재적인 습윤 효과를 내지 못하고 대법의 위력을 펼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진작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제고함으로써 내재적으로 거대한 본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에 의거하고 외재적인 강대한 요소의 도움을 빌린다면, 이는 영원히 당신 사람의 본질을 불성(佛性)으로 전변시킬 수 없다. 만약 당신들이 사람마다 모두 내심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끝없는 법의 체현 ― 인간세상에서 강대한 불법(佛法)의 재현(再現)이다!”[2]

지금 나는 드디어 알게 됐다. 정진이란 날마다 몇 강씩 법공부를 하고 몇 번씩 연공하며, 얼마마한 대법항목을 하는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공부가 마음에 닿아야 하고 아울러 시시각각 법리로 자신의 언행을 지도해 진정으로 법에 용해돼야만 비로소 수련이 형식에 흐르지 않게 되고 비로소 근본적으로 법의 강대한 원천과 역량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내재적인 진정한 개변도 필연적으로 수련인의 외모에 체현될 것인즉 젊었든 늙었든, 오관이 예쁜지 여부를 막론하고 수련의 빛발은 모두 우리를 빛나게 비춰주어 풍채가 늠름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본질상의 거대한 변화는 필연코 구세력의 일체 방해를 돌파할 것이다, 우리 수련이 잘된 신체(神體)의 법력은 이 공간에 펼쳐질 것이며, 내재적으로 발산하는 자비한 역량도 더욱 많은 생명이 구도를 받게 할 것이다.

개인의 수련 체득으로서 수련생과 함께 나누려 한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고하는 말’

문장발표: 2013년 5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28/2744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