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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박해를 타파하고 퇴직금을 돌려 받다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 ‘7.20’대법이 박해를 받아 나는 내가 직접 겪은 좋은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에 상방하여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다 도리어 베이징 경찰에게 체포되어 현지에 돌아온 후 불법으로 구류됐다. 직장상사는 구치소에서 나에게 내가 대법수련을 견지했기에 나를 공직에서 파면한다고 통보했다. 당시 나는 이것은 나에 대한 경제적 박해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 다만 이것은 우리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끄러움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묵인하고 반 박해도 하지 않았다. 후에 나는 또 불법으로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2003년 내가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후 경제력도 없어 생활은 매우 곤란하였고 이때 나는 이미 퇴직연령을 넘었다. 나의 가족 동료 친척 친우는 모두 나에게 직장에 가서 퇴직수속을 하라고 했다. 나는 주관 단위에 가서 퇴직을 문의했다. 상사는 너는 이미 해고당했는데 또 무슨 퇴직이냐? 당시 자신이 두려운 마음이 있기에 다시 찾지 않기로 생각했으며 각종구실로 얼버무려 마음으로 법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그래도 이익을 버렸다고 여겼다. 사실 바로 법리가 똑똑하지 못하고 개인수련과 정법수련관계를 똑똑히 알지 못했으며 이것이 나에 대한 경제적 박해란 것을 깨닫지 못했다.

후에 끊임없는 법 공부를 통해 심성이 제고되고 이것이 나에 대한 경제적 박해임을 깨닫고 나는 그것을 승인할 수 없었다. 나는 반드시 요구해야 하며 나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으나 이런 형식을 통해 진상을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먼저 현 노동국을 찾았다. 주관 과장은 나를 보고 무척 화가 나서 질책하기 시작하며 심지어 나를 욕했다. “너는 아직도 퇴직하려느냐? 너는 사람을 모두 괴롭히는구나……” 아주 듣기 거북하게 말했다. 당시 정말 뼈에 사무치게 마음을 후볐으나 나는 도리어 매우 평정하게 조금도 성을 내지 않았다. 그가 다 말한 후 나는 웃으며 그와 말했다: “나 본인이 잘하지 않아 나는 수련 중에 있는 사람인데 잘 수련하지 못해 착오를 피하기 어려워……” 이어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후에 나는 또 두 번 갔으며 한번이 다른 한번보다 좋았다. 네 번째를 기다려 그것은 2005년 후 이 발행되어 어떤 사람이 그에게 진상을 알려 ‘3퇴’를 권했다. 나는 다시 그를 찾아가니 그는 말했다. “나 여기는 문제가 없으나 시국을 통해야 한다. 당신 스스로 가서 찾아 만약 시국에서 동의하면 나도 당신에게 해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시 노동국을 찾아 당시 정념이 부족하여 두 번 갔으나 담당자조차 찾지 못해 마음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힘들구나!’ 마음으로 중도에서 뒷걸음치며 찾으려 생각하지 않았다 .

후에 나는 또 현 사회보험을 찾았다. 나는 먼저 이전에 알고 있던 국장을 찾아 진상을 알렸는데 그는 들은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모상사를 찾으라고 했다. 지난 후 들으니 그가 기뻐하지 않았고 오히려 돌아서게 했는데 내가 너무 극단으로 갔다는 것을 알았다. 후에 나는 또 모모상사를 찾아 이 일을 물으니 그 상사는 “시국에 신청하라, 시국에서 답변이 없으면 당신을 퇴직시켜 줄 수 없다, 오직 당신 개인이 낸 부분만 되돌려 준다.”고 말했다. 나는 듣자 ‘그것이 어찌 될 소리냐!’하고 생각했다.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는 찾지 않기로 생각했다

사실 나의 정념이 부족하고 신심이 부족하며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중에 또 가장 큰 난제가 있었는데 바로 나는 새로운 신분증이 없었다. 원래의 낡은 신분증은 공안국에서 없앴다. 또 정념이 없어 공안국에 가서 새 신분증을 신청하지 않았는데 늘 자신의 ‘이름을 건’ 것으로 여겨 다시는 공안국에 가려고 생각지도 않았다. 사실 다시 말하면 바로 두려운 마음이 있어 줄곧 미뤄 실행하지 못했다. 신분증이 없으면 어떻게 퇴직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퇴직에 대하여 신심이 없었다. 다른 한편 그래도 수련인으로 여겨 이익에서의 일에 집착하지 않고 법리로부터 이일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로부터 나의 친척 친우들은 늘 나에게 가서 찾으라고 재촉했다. 나는 각종 구실로 회피하여 반 박해를 하지 않았으며 소극적으로 감당하고 대법을 실증할 수 없었다. 반대로 또 일부 부면영향을 가져와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해 내가 진상을 알리는데 일정한 어려움을 초래했다.

2009년 나는 큰 마난을 겪었다. 후에 법공부를 통해 심성이 제고되고 인식에서 승화됐다. 나는 정법수련과 개인 수련의 다른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이익의 마음’을 버리라는 문제가 아닌가, 반 박해이고 법을 실증하며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고 기점은 같지 않는 것이다. 나는 반드시 나의 퇴직금을 되찾아 세인들에게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틀리지 않으며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우리는 마땅히 박해받지 말아야 하며 틀린 것은 박해자임을 알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계속 나의 퇴직금을 찾는 것을 결정하여 구세력의 나에 대한 경제적 박해를 타파했다.

우선 공안국에 가서 새로운 신분증을 신청하는 문제에 관련하여, 정념이 강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두려울 것이 뭐냐? 내가 당신과 함께 가겠다! 증명처리청의 민원 담당자는 우리에게 위층 경찰을 찾으라 하여 우리는 경찰을 찾았고 그들은 연공하겠는가 따위의 말을 물었고 또 우리에게 무엇을 쓰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나는 오늘 와서 신분증을 신청하는데 아무것도 당신들에게 쓰지 않겠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며 나에게 잘해 주었다. 신분증을 가지러갈 때 시끄러움을 만났다. 그들은 나를 무슨 ‘주의인물’이니 반드시 나에게 서명하라 했고 서명하지 않으면 신분증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연속 십 몇 차례 갔다. 어떤 경찰은 나를 보고 말했다. 파룬궁이 또 왔다. 무엇하러 왔느냐? 나는 신분증을 가지러 왔다고 말했다. 나는 시종 상화하고 자비로운 심태를 품고 아는 경찰을 만나면 인사하고 몇 마디 평상시 말을 하며 기회가 있으면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경찰들과 접촉하는 것을 통하여 그들 대부분 사람들은 대법에 대해 적대시하지 않으며 다만 두려운 마음이 있어 들으려 하지 않고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 차례 가는 것을 통해 나는 또 담당 국장에게 진상편지를 보냈으며 몇 차례 곡절을 거쳐 최후에 마침내 다른 방법을 거쳐 신분증을 받았다.

그 다음 나는 또 노동국 사회보험에 퇴직 신청을 했다. 다시 하면서 이전에 비해 잘 되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사부님의 정법형세가 이 일보로 밀고 와 세인도 갈수록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국 담당자가 나를 도와 유관 문건을 찾아 회신공문을 보냈다. 사회보험 담당 상사는 당시 파룬따파를 견지했기에 제명된 나의 ‘결정’을 보고 관련문건을 찾으며 말했다. “어떻든지 사람으로 하여금 밥을 먹게 해야 한다.” 나에게 보충하여 내라고 했다. 내심으로 내가 어떻게 하고 누구를 찾는지 등을 알려주었다. 그는 또 시국에 나를 위해 몇 번 다녀갔다. 당연히 나도 감격의 말을 했으며 그들은 전인이 될 수 있더라도 마땅히 전인이 되어야 한다고 문건에서 규정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사람의 어려운 점을 도우면 당신은 공덕을 쌓으며 특히 대법수련자를 도우면 당신은 복을 얻는다.” 어떤 주관 책임자는 나에게 “내 이 다리가 아주 아픈데 당신은 나를 도와 당신 스승님에게 나의 다리가 좋게 요구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성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읽으라고 했고, 그에게 호신부를 주었고 그는 아주 기쁘게 받았다.

나는 또 주관국(主管局)에 가서 도장을 찍어야 했다. 당시의 상사는 대부분 모두 퇴직하고 당시에 내가 박해 받는 것을 목격한 상사 한 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당시의 일을 기억하지 않고 그와 열정적으로 인사하고 진상을 알렸다. 그는 나에게 ‘하늘이 중공을 멸한다.’와 ‘장즈스’는 어찌된 일인지를 물었다. 나는 그에게 말해 주었다. 후에 ‘3퇴’도 했다. 이 이전에 나는 어느 한번 길에서 당시 나를 제명한 담당상사를 만나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다 알았다고 말하고 당신들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당시 “큰 압력 하에 우리도 방법이 없었다. 지금 당신이 나를 찾으니 퇴직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새로 부임한 담당상사는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워 나에게 도장을 찍으려 하지 않아 나는 몇 번 가서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는 일부 진상을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고려하는 마음이 있어 내가 ‘상사에게 시끄러움을 끼치지 않는다’는 보증을 하라고 했다. 나는 당시 급히 성사하려고 고려하지 않고 보증서를 썼다. 지난 후 나는 내가 한 것이 틀렸다고 생각되어 당시 나는 진상을 제 위치대로 하지 못해 우리는 본래 박해 받았는데 또 그들에게 그 무슨 보증이 필요한가? 나는 이 관을 내가 잘 지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후에 나는 또 그에게 진상편지를 보냈다.

몇 년간 분주히 뛰어다녀 2011년 말에 마침내 퇴직금, 이 일을 성사시켜 일 년간의 보충월급을 탔으며 이렇게 나의 경제 내원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대법을 실증했다. 친척 친우들 동료 등은 나에게 축하하며 모두 말했다. 사람들이 쩐싼런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니 본래 틀리지 않았구나! 어떤 사람은 “이는 당신들이 맞고 그들이 틀린 것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다시 진상을 알릴 때 아주 많이 쉬웠으며 설득력이 있었다.

이번 퇴직금의 일은 그 중 일체는 모두 사존의 가지이고 우리는 다만 다리를 놀리고 입을 움직여 정념정행하였다는 것을 심심히 체득했다. 사존의 일체는 모두 우리를 위해 잘 펼쳤고 우리들의 그 한 걸음 차이이다. 매번 이런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어떤 때는 정념이 부족하여 사람마음이 너무 중해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정말 창피하다. 오직 정진해야만 비로소 사명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서 사존님께 감사드리고 나에게 도움을 준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2013년 4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 >수련경력 >정념으로 박해를 해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4/16/2721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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