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위사위아의 마음을 닦아버리고 문제를 보는 각도를 바꿔보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요즘 새로 한 법 공부팀에 합류해 수련생들과 접촉하면서 오랫동안 법 공부를 잘하지 않고 마음을 참답게 닦지 않았으며 밖으로 보았던 결과가 드러나 수련생과 마찰이 빈번했다. 자신은 이치에 있고 내가 보는 견해가 맞다고 느꼈으나 수련생은 오히려 늘 이것이 틀리고 저것이 틀리다면서 나를 질책했다. 그리하여 내가 제출한 견해는 늘 채용되지 않았다. 비록 대법제자가 안으로 수련하고 안으로 찾아야 함을 알고 있고, 또 이런 일이 나타남은 우연이 아니며, 꼭 자신이 닦아 버려야 할 사람 마음이 있음을 알고 있으나 질책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특히 수련생이 나의 수련의 길을 배치해 어떻게 걸으라고 할 때면 여전히 참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 변론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해석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거니” [1] 해석할수록 스스로 마음이 막혀 더욱 괴로움을 느꼈다. 마침내 어느 날 비교적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그날은 밤이었고 함께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공부했다. 시작하자 모두 매우 조용히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좀 길어지자 물을 마시는 사람, 걸어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마음이 좀 불편했다. 수련생들이 설법을 공부할 때 이런 모습은 정말로 사부님을 존경하지 않고 법을 존경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말씀하시면서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고 비디오 속 수련생들도 참답게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있지 않는가. 비록 우리는 현장에 있지 않지만 비디오를 시청하더라도 참답게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동시에 수련생들이 이렇게 물을 마시러 걸어 다니니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설법을 듣는데 영향 주어 더욱 마음의 평형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또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돼 비디오 화면과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이동해 설법을 들었다. 마음속으로 당신들이 열심히 듣지 않더라도 나는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내려놓을 수 없었고 막혀서 답답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 [2] 최후에 수련생이 옆에서 자고 있는 어린이 수련생을 침대로 옮겨갈 때 나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TV 화면 앞으로 다가갔다. 코끝이 화면에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이때 또 어느 수련생이 나에게 왜 그렇게 가까이 앉느냐고 물었다. 그리하여 나는 화난 모습으로 “들리지 않아서요.” 하고 내뱉었다. 결과 그날 밤 마지막 설법 부분은 모두 잘 듣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채 끝나지 않았는데 집으로 돌아갔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들었으나 나로 인해 억지로 견디며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사부님의 설법을 끝까지 들었으나 듣는 내내 갈수록 마음을 조용히 할 수 없었고 사부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이튿날 오전, 나는 비뚤어지고 화난 심정으로 숙소로 갔다. 좀 억울하고 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향을 올리고 사부님 법상 앞에 앉았다. 사부님의 법상을 보면서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생각했다. 왜 어디로 가든 타인에게 편안함을 주지 못하고, 집에 있으면 가족이 편안할 수 없고, 수련생이 모인 곳으로 가면 수련생이 편안해하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반드시 자신에게서 찾아야 함을 알고 사부님 법상을 향하여 말씀을 올렸다. “저는 반드시 제고할 것이며 이는 저의 심성을 제고하기 위한 일입니다. 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자신을 제고하고 반드시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낼 것입니다.”

오후에 나는 또 수련생 집에 갔다. 길에서 나는 갑자기 명백해졌다. 내가 이런 상태인 것은 자신의 사심이 너무 중하여 문제를 보고 생각하는 기점이 늘 자신의 입장이기 때문이었다. 오직 자신의 어려운 곳만 보이고 다른 사람이 지불하고 있는 대가가 보이지 않았으며 오직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었다. 비록 자신은 사부님을 존경하고 법을 존경하며, 사부님을 수호한다고 여기고 있으나 나의 심태가 순정하지 못하고 사람 마음이 너무나 많았다. 순정하지 않은 심태로 어찌 사부님을 수호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아는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든지 부닥칠 수 있는 그 어떤 시끄러움과 좋지 않은 일, 나아가 당신들이 대법(大法) 일을 위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일까지도,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이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제고만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3] “정말로 이렇듯 제고해 올라와서 당신들이 순정(純淨)한 심태에서 한 일이야말로 가장 좋고 신성한 일이다.” [3]

내가 이러한 것을 의식했을 때 심태에서 나도 모르게 변화가 발생했다. 마음에 막혀 있던 많은 것이 소실됐고 단지 가늘게 한 가닥만 남았다. 동시에 주변의 공간장이 상서롭게 변하기 시작함을 느꼈고 무엇이나 다 보기 좋았다. 그날 오후 나는 노력을 다해 상서로운 심태로 수련생과 나의 생각을 교류했다. 수련생도 모순이 발생한 후 안으로 찾았다. 그리하여 다시 화목해졌고 동시에 그 수련생도 나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은 수련하지 않겠다는 식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사부님께서 들으시면 괴로우실 거라 했다. (나는 일부 고비를 장기적으로 넘지 못해 어떤 때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되어 심성 마찰에서 조급해지면 원망과 화를 내는 심태로 더는 수련할 수 없다는 식의 말을 하여,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법을 얻은 생명이라면 내심의 깊은 곳은 절대 정말로 법을 떠나고 포기하려는 게 아니며 이러한 염두가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을 마음에 간직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정말로 해서는 안 되며 생각마저 하지 말아야 한다. 나타나면 곧 배척하고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의 고도(苦度)에 죄송하게 되며 동시에 역시 사부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과 자신의 중생에게 책임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 사심을 철저히 깨끗이 버리지 않으면 모순은 여전히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사부님께서 아마 떨어져 있는 나를 재빨리 제고시키고 정법노정을 따라갈 수 있게 하시려는 것으로 생각됐다. 이 고비를 금방 넘기자 이튿날 즉시 또 다른 고비가 나타났다. 밍후이왕에서 어느 수련생이 션윈 CD와 션윈 소개 전단을 함께 넣어 사람에게 배부하면 좋으며 될수록 션윈 소개 전단을 사람들이 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건의가 매우 좋다고 생각됐다. 만일 전단을 두루마리로 만들고 파란색 명주 끈으로 나비매듭 리본으로 묶어 CD와 함께 넣으면 전단 접는 것을 피할 수 있고 또 귀중해 보일 것이다. 수련생과 교류하니 괜찮다고 말했으나 이런 명주 끈이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자진하여 오후에 구입해 왔다.

그러나 저녁에 돌아온 후 어린이 수련생을 교육하는 문제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수련생들과 또 마찰이 발생했다. 수련생들이 비록 어린이 수련생을 질책하고 있었으나 마디마디 내 마음을 찔렀다. 나는 자신에게 인내해야 하며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일이 좀 수그러든 후 나는 사 온 명주 끈을 수련생들에게 보여주고 가져갈 것을 바랐다. 그러나 내가 사 온 명주 끈이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고 합당하지 않아 수련생들은 난처해하고 망설이면서 가져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명주 끈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2시간을 걸어서 사 온 명주 끈을 보면서, 그리고 금방 수련생들의 그러한 마음을 찌르는 말들을 생각하자 내 속인 마음이 또 나타났다. 마음이 특별히 슬프고 괴로워 눈물마저 흘러나왔다. 나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사부님의 경문을 공부하려고 컴퓨터를 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반복적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염했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 나는 반복적으로 묵념하면서 참으려 했으나 정말로 너무 괴로웠다. 이렇게 참으려니 신체마저 떨렸고 세포마저 떨렸다. 정말로 너무나 고통스러웠으며 수련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또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드시 참아야 하고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수련해야 하며 제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부님의 설법 한 구절을 공부하면서 점차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이쪽의 것이 아니면 저쪽의 것으로, 모두 겪어야 할 고생이 있는바, 바로 이러한 어려움 중에서,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안으로 찾았는데 여전히 채 버려지지 않은 사심을 발견했다. 일할 때 여전히 오직 자신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이 수련생을 교육하는 문제를 놓고 말하더라도 나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어린이 수련생을 교육하려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이 꼭 맞는 것은 아니잖은가. 만일 어린이 수련생을 잘못 가르쳐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면 책임은 어린이 수련생의 어머니가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아울러 어린이 수련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도 그렇게 순정한 게 아니었다. 비록 확실히 진심으로 어린이 수련생을 잘 인도하려 한 것이나 그 속에는 또 환희심, 과시심과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섞여 있지 않았던가?! 수련생 집에 머물면서 이렇게 많은 번거로움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는데 마땅히 스스로 많이 반성해야 하는 것으로 무슨 억울할 것이 있는가?! 그리고 명주 끈 사건에서 수련생이 사용하지 않겠다면 그만이고 내가 거두어들이면 되는데 괴로워할 것이 무엇인가? 여전히 사심이 있는 것이며 여전히 자신의 느낌을 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서 명백해지자 또 많은 좋지 않은 마음과 부패된 물질이 버려진 게 느껴졌다.

요즘 이러한 고비를 넘기면서 나는 확실히 자신의 마음에 좋지 않은 물질이 많이 없어진 것을 느꼈고 마음이 많이 비었다. 동시에 또 자신의 두려움, 원망, 이익, 의뢰, 질투, 과시, 색욕의 마음, 체면, 결혼에 집착하는 마음,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 등을 찾아냈고 또 노력하여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억제하고 동시에 정념으로 깨끗이 제거하려 했다.

개인적인 체득이라면 안으로 찾는 것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수련하려면 반드시 안으로 수련하고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수(修)는 명사가 아니며 또 형용사도 아니고 동사다. 착실히 자신의 내심에서 아직 깨끗이 버려지지 않은 사람 마음 등 좋지 않은 물질을 버려야 비로소 진정으로 순정해질 수 있으며 비로소 진정으로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할 수 있다.

개인 층차의 제한으로 부당한 곳은 지적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詩詞): ‘홍음 3-논쟁하지 말라’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재인식(再認識)’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3년 4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4/9/27188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