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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련생은 나를 왜 의지하는가?

글/ 허난(河南) 대법제자

[밍후이왕] 아내(수련생)의 코에 종기가 나서 점차 커졌다. 아내는 여러 번 자신을 도와 발정념으로 청리해 달라고 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 자신의 문제이므로 자신이 해결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작은 일도 다른 사람이 도와야 하는가? 이것은 병치료도 아니고 병치료도 할 수 없다. 때로 급하면 아내를 질책하고 심지어 비웃었다. 그러나 아내는 계속 요구했다. 막 집을 떠나 직장에 갔는데 문자메시지를 보내 또 커졌다며 즉시 ‘행동’(발정념)하라고 했다. 아내는 왜 계속 그럴까? 이런 작은 일도 복잡하게 만들다니? 의뢰심이 이렇게 강하다니? 오늘 법공부를 할 때 갑자기 깨달았다. ‘아, 나는 줄곧 밖으로 찾았고 줄곧 아내의 부족함만 보고 아내의 의뢰심만 보며, 여태껏 아내가 왜 나에게 의지하는지 생각한 적이 없었구나.’ 지금까지 자신의 무슨 마음이 아내의 의뢰심을 초래했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일념을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매일 ‘안으로 찾는다’, ‘안으로 찾는다’고 말하고 이 신성한 법을 다른 수련생을 비판하고 수련생과 교류를 시작할 때 형식적으로 언급하는 데에만 이용했다. 매번 교류를 할 때 이런 문제를 들으면 반드시 우리에게 수련제고 요소가 있고 자신도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술술 말한다. 그러나 실제상 이것은 단지 처음에 습관적으로 하는 말일 뿐이고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속이는 명사가 됐는데 진정으로 깊이 안으로 찾지 않고 심지어 생각마저 하지 않는다. 나는 적지 않은 수련생도 이런 것을 보았는데 처음에는 술술 안으로 찾는다고 말하고 잇따라 다른 사람을 맹공격하며 비판한다. 결국 자신의 문제를 찾았다는 말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

아내는 왜 계속 그럴까? 이런 작은 일도 복잡하게 만들다니? 의뢰심이 이렇게 강하다니? 오늘 법공부를 할 때 갑자기 깨달았다. ‘아, 나는 줄곧 밖으로 찾았고 줄곧 아내의 부족함만 보고 아내의 의뢰심만 보며, 여태껏 아내가 왜 나에게 의지하는지 생각한 적이 없었구나.’ 지금까지 자신의 무슨 마음이 아내의 의뢰심을 초래했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일념을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매일 ‘안으로 찾는다’, ‘안으로 찾는다’고 말하고 이 신성한 법을 다른 수련생을 비판하고 수련생과 교류를 시작할 때 형식적으로 언급하는 데에만 이용했다. 매번 교류를 할 때 이런 문제를 들으면 반드시 우리에게 수련제고 요소가 있고 자신도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술술 말한다. 그러나 실제상 이것은 단지 처음에 습관적으로 하는 말일 뿐이고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속이는 명사가 됐는데 진정으로 깊이 안으로 찾지 않고 심지어 생각마저 하지 않는다. 나는 적지 않은 수련생도 이런 것을 보았는데 처음에는 술술 안으로 찾는다고 말하고 잇따라 다른 사람을 맹공격하며 비판한다. 결국 자신의 문제를 찾았다는 말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

아내가 나를 이렇게 의지하는 것은(물론 이 한 가지 일만은 아니다) 나 자신이 늘 내가 아내보다 정진한다고 생각하고 아내보다 인식이 높다고 생각하며 오성이 아내보다 높다고 생각하고 아내보다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시심을 피할 수 없고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선생님 말투로 무리하게 결정을 내리고 심지어 비웃고 놀린다. 자신의 이 행위는 진선인(眞善忍)에 얼마나 먼가? 자신의 이런 표현과 이런 심성 누락은 아내 수련생에게 두 가지 대립되고 실제와 맞지 않는 상태가 나타나게 했다. 너무 과도하게 의지하거나 혹은 일체를 강렬하게 배척하고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모두 나의 심성 누락이 초래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확 트이게 되고 또 가슴이 아팠다. 몇 년간 아내 수련생은 정말로 나를 많이 도와줬고 지불도 많이 했으나 나는 실속 있게 수련하지 못해 제고할 기회를 많이 놓치고 많은 유감을 남겼다. 매번 기회는 사부님께서 고생스럽게 배치하시고 이용하시는 것이다. 많은 수련생이 의뢰심 문제를 교류할 때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는 것을 교류하고 왜 의뢰를 받는 지에 대해 교류하는 것이 적다. 사실 이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고 상대적으로 대응되는 양면이 아닌가? 의뢰심은 물론 중시해야 하며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의뢰를 받는 배후에도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가 숨겨져 있다. 더욱이 과시심과 자신에 집착하고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이 있다. 자아 팽창의 마음이 쉽게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 더욱 위험하고 위험이 더욱 크다. 만약 의뢰를 많이 받게 되면 습관이 되고 심지어 중독되는데 아마 사악에 멀지 않으며 자심생마에 멀지 않다.개인적인 약간의 체험이자 견해이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 주기 바란다.

많은 수련생이 의뢰심 문제를 교류할 때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는 것을 교류하고 왜 의뢰를 받는 지에 대해 교류하는 것이 적다. 사실 이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고 상대적으로 대응되는 양면이 아닌가? 의뢰심은 물론 중시해야 하며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의뢰를 받는 배후에도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가 숨겨져 있다. 더욱이 과시심과 자신에 집착하고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이 있다. 자아 팽창의 마음이 쉽게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 더욱 위험하고 위험이 더욱 크다. 만약 의뢰를 많이 받게 되면 습관이 되고 심지어 중독되는데 아마 사악에 멀지 않으며 자심생마에 멀지 않다.

개인적인 약간의 체험이자 견해이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3년 3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3/23/2712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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