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허베이대법제자롄화
[밍후이왕] 2007년 겨울, 다른 시골의 한 수련생이 병업 박해로 이미 두 달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배가 무척 아팠다. 그녀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우리에게 알려 그녀의 집에 오라고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이 수련생을 나의 집에 데려왔다. 집에 도착한 후 우리 마을 수련생들이 보고 일부 수련생은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고 또 일부 수련생은 만약 위험이 있다면 그녀의 가족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이는 큰 번거로움을 찾는 것이 아닌가? 나와 남편은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사부님과 법을 단호히 믿었는데 수련생은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 본문 작가
* * * * * * *
* * * * * * *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농촌의 대법제자이고 올해 70여 세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법회에 투고했다. 이는 법을 실증하는 얻기 힘든 기회로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련 체험을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존께 보고할 것이고 또한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할 것입니다.
1.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를 확실히 체험[1〕
나와 남편은 1999년 정월 15일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모두 위중한 환자였다. 나는 관상동맥질환과 류머티즘이 있었고 남편은 기관지염과 위장병이 있었는데 법 학습과 연공을 통해 우리의 병은 전부 나았다. 정말로 ‘병이 없으니 온몸이 가볍다’란 뜻을 느낄 수 있었고 우리는 더욱 단호히 사부님과 법을 믿게 되었다.
‘7.20’ 사당이 파룬궁과 파룬궁 수련생 박해를 시작한 후 우리가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우리가 연공하는지를 아무도 몰라 우리는 계속 사부님의 설법과 경문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와 남편은 “우리는 반드시 신사신법하고 단호하게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라며 서로를 격려했다. 두 사람은 수련에 대한 마음이 동요된 적이 없었다.
2003년 우리는 마침내 사부님의 ‘2003년 정월 대보름설법’을 받아 보았고 우리는 필사본을 빌려서 진지하게 베꼈다. 이듬해 우리는 또 타 지역의 수련생과 연결되어 사부님의 더 많은 설법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서야 우리는 대법제자가 중생 구도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후에 우리는 현지 수련생들과 연결되었고 교류를 통해 어떻게 진상을 알려야 하고 자료를 배포하여 중생을 구도하고 사부님께서 맡겨주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완성하고 우리의 사전 대원을 실현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늘 자전거를 타고 주변의 마을에 가서 자료를 배포했다. 이 과정 중 신기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2005년 ‘9평공산당’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낮에 남편은 자전거로 나를 태우고 우리 마을에서 십여 리 밖에 있는 곳에 가서 ‘9평공산당’을 배포했다. 그곳에 도착한 후 그는 길 서쪽에서 배포하고 나는 동쪽에서 배포했는데 걸어가다가 세 사람이 거기에 서 있는 것이 보였는데 나는 그들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다음 날 친구가 나의 딸(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의식중에 어제 진에서 경찰차 3대가 친구의 마을에 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마을에서 ‘9평공산당’이 발견되었다고 고발했기 때문이었다. 그 경찰들은 어떤 사람이 배포했는지를 조사했고 마을 사람들은 보기는 보았는데 비구니스님이 배포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일은 이렇게 흐지부지되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 주셨음을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세인들 앞에서 비구니의 형상으로 연화하게 하셔서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었다. 나의 마음은 사부님에 대한 은혜로 충만하였다.
어느 한 해 섣달 그믐날 밤, 우리 현지 수련생들은 정체 협조하여 진상 표어를 적었다. 나와 다른 한 70여 세 되는 노년 수련생이 한 팀이 되었다. 이 수련생은 오토바이를 탈 수 있어 나를 데리고 출발했다. 십여 리 밖을 지나서 우리는 앞에 깊은 구덩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날이 너무 어두워 전혀 길이 보이지 않아 우리는 그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까지 적고자 했다. 진상 표어를 쓰고 쓰다가, 노수련생의 오토바이가 갑자기 망가져서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뒤에서 밀어서야 오토바이가 겨우 움직였다. 이렇게 나는 한참 밀다가 한참 쉬었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70여 세 되는 사람이지만 조금도 힘든 줄 몰랐고 오토바이를 밀면서 걸었지만 젊은이가 걸어가는 것처럼 나는 듯했다. 집에 거의 도착해서 오토바이가 멈춰 섰다. 차에 기름이 없었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집으로 끌고 왔다. 다음날 수련생은 오토바이에 기름을 더 넣었고 세 사람이 밀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최후에는 큰 힘을 들여서 겨우 오토바이를 밀 수 있었다. 나는 전날 밤 사부님께서 두 사람을 도와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 이 할머니가 어찌 홀가분하게 오토바이를 끌 수 있을까? 이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 주신 것이고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밤중에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정말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 [1]였다.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제자의 곁에 계시고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자비하심은 오로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언어로 형용하기 어렵다!
2. 사부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인에게 전하다
2006년 8월 16일 그날 점심이 다가와서 나는 마침 딸 집에 있었다. 문 밖에 연세가 많은 한 노인이 서 있었는데 옷이 너덜너덜하고 흙과 물이 묻어 있었다. 이 노인은 딸 집의 물통으로 달려가서 물을 마시려고 했다. 밖의 이 항아리 속의 물은 마실 수 없는 물이라 우리 모녀는 다급히 방안으로 달려가서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꿀꺽 꿀꺽’ 단번에 마셔버렸다. 나는 ‘그가 정신병 환자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말을 걸어 물어보았는데, 대화를 통해 우리는 그가 완전한 정상인임을 알았다. 그는 거의 84세로, 8월 15일 집을 나서서 길을 잃었고 이미 하루 반나절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길을 걷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마을을 지나면서 사람들에게 물을 달라고 했지만 한 사람도 그에게 물을 주지 않았고 밥도 주지 않았으며 내쫓았다고 한다. 나와 딸은 이 말을 듣고 그를 방안에 들어오게 하여 쌀밥과 볶음반찬을 만들어 식사하게 했다. 딸은 또 노인에게 익은 음식을 사주었고 우리는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의 집이 60~70리 밖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이때 남편은 버스를 찾아 노인을 태워 집에 보내려 했는데 버스는 노인을 태우지 못했다. 이때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고 나와 남편이 노인을 같이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다. 남편보고 먼저 차에 오르게 하고 차에서 노인을 잡아당기게 하고 나와 딸은 땅에서 그를 밀어서 차에 태웠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린 후 또 택시를 탔다. 그의 집에 가 보니 집 안팎에 많은 고향사람이 몰려 있었다. 모두 조급하게 노인을 찾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인이 집에 도착한 것을 보고 아주 기뻐했다. 노인이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하자 그의 아들은 그 자리에서 나와 남편을 향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연속 “정말로 은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 그의 아들은 큰 사장이었고 기어코 나와 남편에게 돈을 주려고 하면서 무엇이든 줄 수 있다고 했다. 나의 남편이 생각해보니 이것이 마침 법을 실증하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우는 사람이고 당신들이 감사드리려면 나의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옆에 있던 택시기사가 감동했고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감탄했다. 지금 이 세월에 파룬궁(法輪功)을 배우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누가 감히 이런 일을 하겠는가? 노인이 이렇게 나이가 많아 모두 귀찮아하고 사람들은 남이 죽고 사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다음날 그들 온 가족은 내 마을의 서기를 데리고 자가용을 타고 내 집에 왔다. 아주 귀중한 선물을 사 왔지만 우리는 받지 않았고 그들은 기어코 두고 가려고 했다. 이때 나와 남편은 그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리고 그들에게 ‘3퇴’ 하게 했다. 그들 일가족은 딸과 사위를 포함해서 전부 ‘3퇴’ 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 나와 남편은 논의했다. 즉 대법제자가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곳곳에서 타인을 고려함에 있어 보답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음날 두 사람은 그들이 가져온 선물을 전부 돌려주었고, 그들에게 수련인은 보답을 받지 않고 사부님의 제자이기만 하면 모두 이렇게 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후 갔던 김에 전날에 오지 못한 친척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은 ‘3퇴’ 했다. 사람들은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제자의 사심 없음에 감동했다.
이 일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재미있는 것은 후에 나의 남편이 다른 마을에 가서 벽돌을 살 때 벽돌 팔던 사람이 남편에게, “소문에 의하면 당신 마을에 대법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요.”라고 했다. 그 다음 그가 이 일을 한번 이야기해주었는데 이 일이 아주 멀리까지도 전해지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나의 남편은 그가 이 일을 한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벽돌을 팔던 이 사람은 그 자리에서 기어코 돈을 적게 받고자 했다. 남편은 정상 가격으로 받으라고 요구하면서 많은 대법진상을 알려주었고 그에게 ‘파룬따파는 좋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했다.
사람을 더 많이 구도하기 위해 명절이나 공휴일, 집안 대사를 치르는 날 등 기회만 있으면 놓치지 않았고 기회가 닿기만 하면 남들이 우리를 청하지 않아도 우리는 가서 인사를 드리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진상을 알렸다. 어느 한번 나의 오빠는 65세 생신을 보내는데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문밖에는 트렘펫을 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불러다가 ‘3퇴’를 권해서 그 당시에 30여 명을 탈퇴시켰는데 그중 많은 사람이 당원이었다.
3. 병업 박해를 받던 수련생을 자비롭게 도와주다
2007년 겨울, 다른 마을에 있던 수련생이 병업 박해를 받아 2달이 넘도록 음식을 먹지 못했다. 대변도 보지 못하고 배가 무척 아팠는데 더는 참을 수 없어 우리를 그녀의 집으로 불렀다. 우리는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곳 수련생들에게 알려 발정념 하고 한참 교류했다. 교류에서 일부 사람들은 그녀 자신의 업력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고, 남이 발정념 해도 소용 없다고 말했다. 일부는 그녀가 안을 향해 찾고 남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고 하는 등등이다. 이때 이 수련생은 정말로 정념이 없어져 속인 말을 했다. 자신에게 병이 있다고 했다. 이런 가상의 교란을 마주하고 나와 남편은 상의했다. 사부님께서는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고 당신의 일은 바로 그의 일이다” [2]라고 하셨다. 우리는 수련생을 우리 집에 데려왔고 우리 마을 수련생들이 보고는 어떤 수련생은 걱정했다.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하고 어떤 이는 수련생한테 위험이 있으면 그녀의 가족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는 번거로움을 찾은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나와 남편은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사부님의 법만 생각했다. “마음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압할 수 있다” [3] 우리는 사부님과 법을 단호히 믿을 뿐이다. 수련생은 반드시 잘할 수 있다!
나의 집은 법 학습이 진행되는 곳이라 매일 이 수련생과 같이 법 학습하고 발정념 하고 동시에 그의 정념을 강화시켰다. 가끔 도시에서 수련생이 오면 우리는 온 밤 수련생에게 발정념을 해주고 생활에서도 나는 그녀를 되도록 보살펴주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그녀에게 계란죽을 해주었다.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강대한 위력으로 4일 째 되는 날, 수련생의 배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전에 음식물을 먹지 않아 위에서 소리가 없었는데 그날 오후 수련생은 대변을 보았다. 그 후 수련생은 천천히 정상을 회복했고 배도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보름 정도 같이 지내자 수련생은 전부 나았다. 이 수련생의 수련하지 않는 남편이 나의 집에 와서, 원래 가망이 없던 사람이 약도 먹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고 건강을 회복한 그녀를 보고는 격동의 눈물을 흘렸다. 단번에 나의 앞에 꿇어앉았다. 나는 급히 그를 부축하며 연거푸 이런 말을 했다. “이는 모두 대법의 은혜입니다. 사부님의 자비입니다. 우리 같이 사부님께 감사드립시다. 대법에 감사드립시다!” 이 일체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실증해주었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니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 [4]
매번 수련생에게 마난이 있거나 병업 박해가 있으면 나는 모두 우리가 하나의 정체이므로 자비롭게 서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념으로 수련생을 도와 일체 구세력의 교란 박해를 해체해야 한다. 가끔 수련생에게 돌발 상태가 나타나 한밤중에 전화가 오면 우리는 전화를 받자마자 수련생의 집으로 달려갔다. 항상 고생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나는 이 일체가 모두 사부님의 배치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속에는 우리가 수련해서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수련생과 정체를 이루어 법을 실증하고 사악을 해체하고 수련생을 돕는 동시에 중생을 구도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4. 중임을 용감히 감당하고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다
나의 집은 법 학습장소로 지금까지 운영되면서 어떠한 정황에서도 멈춘 적이 없었다. 가끔 타 지역의 수련생이 오면 모두 같이 법 학습을 했다. 이렇게 할 뿐만 아니라 나는 또 남편과 협력하여 정체적인 협조를 했다.
중생을 구도함에 있어 십여 년 동안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도하는 일을 멈춘 적이 없었다. 주변 몇십 리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대법의 복음과 중생을 구도하는 희망을 집집마다 전해주었다. 우리는 각종 형식을 취하여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고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 화폐를 사용하고 접착테이프를 붙이고 표어를 쓰고 DVD를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었다. 나눠서 하고 또한 협조도 있었다. 모두 팀을 나누었는데 나가지 못하는 이들은 집에서 발정념 하여 협조했다. 가끔 우리는 낮에 행하고 가끔 밤에 하는데 사람을 구함에 있어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행했다. 우리는 모두 사전에 방향을 정했고 각 마을마다 나누어 질서 있게 행했다. 가끔 편벽한 곳에서도 대법진상자료를 보게 하기 위해 수련생들은 차를 몰고 밤낮을 운전하여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 진정법위 서기, 촌장, 대대서기 등 직접 박해에 참여한 이들은 ‘3퇴’ 했다. 2008년 올림픽 때, 대대서기는 ‘위’에서 박해하러 온 사당 관원을 직접 막아서 돌려보내기도 했다.
우리는 주변 각 마을의 수련생들과 잘 협조하여 모두 참여하고 정체로 승화 제고하게 했다. 수련생들이 정진하기 시작한 후 법 학습을 통해 일부는 자료 업무를 맡고 일부는 협조를 책임져서 현지 수련생들은 ‘비학비수’의 환경을 만들었다. 양호한 환경이 있은 후 수련생들은 모두 아주 쉽게 정체적으로 협조하는 국면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 기간에 남편은 늘 자전거를 타고 싱글벙글 웃으며 주변 마을의 수련생들에게 사부님의 설법과 자료를 전해주었고 정체적인 협조가 필요할 때 구두로 소식을 전해주었다. 엄동설한이든 눈이 뒤덮이든 큰 비가 쏟아지든 남편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일이 있기만 하면 바로 나갔다. 자신이 나이가 많아서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 자신은 이렇게 말한다. “사부님께서 ‘진정으로 대법을 수련하나니 오로지 이것만이 큰일이로세’ [5]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에게도 많은 신기한 경력이 있었다.
한번은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다른 마을의 수련생에게 물건을 전하고 돌아오는데 비가 내렸다. 그는 빨리 집에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근데 누가 알았으랴, 그가 이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자신이 마을 입구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집에 돌아온 후 몸에 비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 그는 마치 다른 공간을 걸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 함에 감탄했다.
2003년, 2004년 현지 일부 수련생들이 사악의 공갈을 이기지 못하고 사오했다. 사악의 지시로 그들은 곳곳에서 수련생을 찾고 수련생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우리는 재빨리 수련생들에게 소식을 알려서 수련생들이 사오자의 선전을 듣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는 거의 한 사람도 사오하지 않았다. 한번은 나와 딸은 지난날의 수련생을 찾아갔고 그 당시 그녀의 남편이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온 뜻을 알자 그 당시 화가 나서 우리를 내쫓고 큰소리를 질렀다. “빨리 가시오! 가지 않으면 ‘610’에 신고하겠소.” 그때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또한 큰 소리로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그는 또 삽을 들고 나를 때리는 시늉도 했다.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반시간 동안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듣고 듣다가 갑자기 얼굴에 웃음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본래 이런 거군요!” 그는 우리를 방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물도 주고 과일도 주었다. 나는 그의 배후의 마가 해체되어 사람이 완전히 변한 것을 알게 되었다. 후에 수련생의 말을 듣고 알게 되었는데 이전에 한 수련생이 그의 집에 가면 그는 마성이 크게 나와서 수련생의 차를 웅덩이에 밀어 넣기도 했다고 한다. 또 돌을 들고 수련생을 쫓아가서 때리려 했다고 한다. 그 후로 더는 그 수련생의 집에 가는 사람이 없었다. 보아하니 자신이 관념만 없다면 그 마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정체적으로 협조를 잘하면 수련생을 구도함에 있어 강대한 위력을 나타낸다.
2009년 현지 여러 명의 수련생이 사악에 의해 동시에 불법으로 수감되었다. 한 협조인을 붙잡지 못하여 사악은 늘 그를 붙잡으려고 했는데 경찰차는 날마다 그의 집 문앞에서 기다렸다. 이런 정황에서 우리는 이 협조인을 보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박해받고 있는 수련생들을 구출해야 했는데 공기마저 아주 긴장되어 있었다. 이때 우리는 정체적인 협조를 펼쳤다.
1. 시간마다 정체적으로 발정념 하고 밭에 나가 일할 때만 제외했다.
2. 자료를 ‘610’과 국보대대 등 관련 인원들의 집 앞에 배포했다. 접착테이프를 악경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붙여 사악을 강하게 폭로했다.
3. 불법으로 수감된 수련생에게 사부님의 설법을 전하여 그들에게 정념을 강화하게 했다. 이렇게 사부님의 가지와 수련생들의 정체적인 협조로 얼마 안가서 수련생 여러 명이 전부 구출되었다. 보기엔 사악의 박해가 기세등등해 보이지만(그 당시 이 동수들의 거처에서 트럭 2대 분량의 물건을 실어 갔다.) 대법제자의 정념의 마당에서, 사악은 대법제자에 대해 힘이 없었다.
여러 해 동안 사부님의 보호로 나와 남편은 안정되게 오늘까지 걸어왔다. 나 개인의 가장 큰 체험은 염두가 반드시 올바르고 어떠한 사악과 구세력의 박해도 인정하지 않으면 전혀 ‘두려움’이란 관념이 없다. 수련인은 일체 ‘법을 가장 크게 놓아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나온 이 한 단락의 길을 돌이켜보면 제자는 마음속으로 오로지 이 한마디 말뿐이다. “사부님 수고하셨습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로 제자는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제자는 오직 더욱 정진함으로써 사부님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더시게 하고 위안을 더 드리고 싶습니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각지설법2-2002년 워싱턴DC법회설법’
〔3〕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2-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
〔4〕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홍음2-사도은’
〔5〕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홍음-득법‘
문장발표: 2012년 11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3/2643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