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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박해로 인한 생각

글/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요즘 경제 박해에 처한 수련생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 자신도 몇 년간 구세력에게 경제적인 박해를 받았는데 최근 걸어나오게 됐다. 나는 경제적인 박해를 해체하고 정법수련을 확실히 이해하는 등 관련문제를 교류해 보려 한다.

나는 의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대학 3학년 때 실습할 때 일은 가장 많이 하고 기술은 오히려 배우지 못했으며 졸업 후 몇 년간 허송세월을 보냈다. 기술이 전혀 없어 단지 몇 백 위안의 봉급만 받았으며 3년간 의사자격시험을 봐서야 합격했다. 지금은 월 2천 위안을 받아 사회 수준과 맞먹는다.

며칠 전 발생한 일이 내 경제적 박해 문제를 건드려 심각하게 안을 향해 찾게 됐다. 우리 병원에 새 동료가 왔다. 이 동료는 환자를 잘 빼앗는다.(개인 병원의 의사 봉급은 주로 보너스다) 이전에 있던 의사는 서로 다투지도 않고 잘 지냈다. 새 동료가 와서 이런 평형을 깨뜨리자 한순간 질투심, 원망심, 쟁투심, 이익에 대한 마음 등 사람 마음이 전부 밀물처럼 밀려나왔다. 그 며칠간 출근만 하면 마음이 들끓었고 새 동료가 환자를 뺏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체면상 그녀와 다투지 못했다. 그녀와 경쟁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환자를 빼앗다가 다투게 될까 봐, 표면상 ‘평화’를 깨뜨릴까 봐 두려웠다. 직장을 바꾸자니 내 기술도 보통이고 어디에 가도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곤혹스러웠다. 이때 수련생이 쓴 글 ‘질투심 밑에 감춰진 두려운 마음’을 보고 계발을 받았다. 나는 냉정하게 자신이 존재하는 문제를 사색했다. 나의 기술은 왜 보통 수준인가? 왜 나는 선의로 경쟁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실적이 보통 수준인가? 상사와 동료는 왜 내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대법제자는 어떤 것을 해도 다 잘할 수 있는데 나는 왜 할 수 없는가?

집에 돌아가 수련생 어머니와 교류를 하고 인식했다. 선량한 사람은 만만한 사람으로 여겨지면 안 되고 대법제자 역시 표면상 평화와 소위 ‘인격이 높고 절개가 있다’는 것을 수호하는 것만이 아니다. 대법제자의 관용은 사욕에 대한 무한한 방임이 아니고 약육강식, 정글법칙의 희생양이 아니다. 생명은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고 정법에서 위치를 다시 놓는다. 대법의 자비와 위엄을 펼치는 것은 바르지 않는 일체를 바로 잡아 사악을 해체하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협애한 개인 수련에서 걸어나와 법의 입장에 서서 중생을 구도하고 바른 길을 걷는 것이다.

마지막에 우리는 깨달았다. 대법제자가 사람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법을 수호하고 중생에 대한 자비이다. 사부님은 말씀했다. “우리 사람은 살아서는 삶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생활환경 역시 사람이 생활하는 데에 적합해야 한다.”[1]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것은 나의 직책이고 일이며 내가 정상으로 일하는 범위 내에 있으며 우리가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다. 지금은 정법시기이기에 개인 수련의 쟁투심을 제거하는 중에 빠지면 안 된다. 이 점을 깨닫고 다음 날 나는 환자를 받았고 그 달 실적은 이전의 두 배였으며 새로 온 의사도 나와 환자를 빼앗지 않고 나를 존중했다.

나는 이 일로 무엇이 정법수련이며 구세력이 우리 가정, 경제, 병업 등에 대한 박해를 깊이 이해하고 고려했다. 주변의 많은 수련생은 아직 구세력의 여러 방면 박해 중에 처해 있는 것을 보았고, 그들은 심지어 박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며 아직도 구세력이 강요한 박해 중에서 ‘인(忍)’과 ‘선(善)’을 닦고 있다. 일부 수련생은 자신이 사악의 교란 중에 처해 있는지 알면서도 자신이 왜 박해를 당하는지 찾지 못했고 마난 속에서 어렵게 수련하고 있다. 나는 깨달았는데 바르게 걷지 못하고 박해를 해체하지 못하는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법리가 분명치 않고 정법수련 기점에 입각해 문제를 보지 못했다. 두 번째는 관념을 전환시키지 못했고 확대된 집착심을 해체하지 못했다.

1. 정법수련의 기점에 입각해 문제를 보다

나는 이것이 지금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기초와 전제라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만약 무엇이 정법시기 수련이라는 것을 철저히 이해하지 못하면 정법의 기점에 입각해 문제를 보지 못하며, 우리는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을 수 있고 또 박해당할 수 있다.

내 주변에 한 노년 수련생은 아들이 괴롭혀도 감히 말도 하지 못하고 늘 이렇게 말한다. “참자, 참자, 누구도 나보다 잘 참을 순 없다!” 수련생이 어떻게 그와 법공부하고 교류를 해도 그는 “참음!”을 닦는다. 결과 자신의 병업가상이 심해지고, 아들은 집과 돈을 전부 가져가고 가스로 모친까지 독살하려 했다! 노인 수련생은 주의식이 분명치 않아 마침내 병마에 끌려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수련생은 두려운 마음이 적고 확고했다. 그는 속인 중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 한 일은 그의 눈에 차지도 않는다. 그는 “대법제자는 어디에서나 다 잘 해야 한다”, “집에서 역시 잘해야 한다”는 것에 매우 집착하기에 몇 년간 집에 큰일 작은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비록 3가지 일을 하지만 한계가 있었고 늘 가족행사에 얽매였다. 다른 수련생이 근거리 발정념에 그를 요청해도 완만하게 거절하고 다들 정체 협조와 진상을 알리는데 참가하자고 해도 집에 일이 있어 참가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 관념에 장애가 되어 늘 정체에 용해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명확히 지시하셨다. “이 글 ‘무엇이 진정한 선(善)인가’는 정법(正法)과 수련의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아주 명백히 말했다. 대법제자는 정법 중에 있기에 과거의 개인수련과는 다르다. 무리한 상해(傷害)에 직면하거나 대법(大法)에 대한 박해에 직면하거나 우리에게 강제로 주어진 불공정에 직면할 때, 예전의 개인수련처럼 그렇게 대하여 일률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는 현재 정법시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개인의 집착과 잘못으로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은 반드시 사악이 교란하거나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2]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 또 위의 두 수련생의 사례를 비춰보면 그들은 법리가 똑똑치 않는 것이고 무엇이 정법수련인지 철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기점을 바로 잡지 못했고 개인수련 중에 처해 있기에 비로소 사악이 틈을 타게 되고 그것들은 수련생이 사람 마음과 집착심을 닦지 못한 것을 이용해 병업, 육친정, 가정, 경제 등 방면으로 박해한다.

지금 정법시기이고 우리의 수련은 과거 어떤 시기의 수련형식과 전부 다르다. 나는 깨달았는데 수련생이 대법과 대법제자, 대법과 구세력, 대법제자와 구세력 간의 관계를 잘 놓지 못하면, 무엇이 대법수련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개인 수련의 틀에 빠지게 되어 문제를 보는 기점을 똑바로 놓을 수 없다. 우리가 납치, 재산몰수, 불법판결을 당해야 비로소 박해를 당하는 것이 아니고 아직 은폐되고 쉽게 느끼지 못하는 박해가 있다. 예를 들면 가정, 경제, 병업 등 여러 방면이다. 나는 깨달았다. 구세력의 박해는 우리가 수련해 버리지 못한 집착심을 확대하고 강화해 우리를 고험하고 소멸하는 목적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수련 중에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과 다르다. 우리는 반드시 청성하고 분명해야 한다.

대법의 내포는 박대정심(博大精深)하다. 우리가 만약 아직 무엇이 정법시기 대법제자, 무엇이 정법수련이지 모르면 우리는 자신의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지 못하고 구세력에게 끝없이 박해를 당하게 된다. 앞에 서술한 두 수련생은 3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은 수련을 대체할 수 없고 우리가 매일 3가지를 한다고 해서 수련이 아니다. 우리가 법리에 분명치 않으면 중생을 구하는커녕 자신도 박해당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수련은 엄숙한 것이고 절대 그럭저럭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부님의 정법수련에 관한 설법을 보기를 바라며 진정으로 법리가 청성하고 이지적으로 수련을 대해야 한다.

2. 우리를 교란하는 관념과 집착심을 찾아 해체하자

법리가 똑똑치 않고 기점을 잘 놓지 못하는 것 외에, 우리를 박해에 처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바르지 못한 집착과 관념이다. 나는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해서 나약하고 담이 작으며 자심감이 없고 걱정이 많으며 열등감이 많고 부정적 사유를 자주 했다. 또 자신을 보호하려는 등 관념이 있다. 이번 일에서 나는 깊이 반성하고 의식했는데 몇 년간 허송세월하며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것은 이런 관념과 성격이 나를 저애했기 때문이다. 나약하고 걱정이 많으며 부정적 사유가 많았다! 기술이 없고 의사자격증이 없어 자신감이 없고 이것저것을 두려워했다. 또 아주 강한 자아가 있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상처를 받을까 봐 현실사회 모순에 감히 직면하지 못하고 늘 표면적 허위와 조화를 추구했다. 이런 관념의 저애에서 사회상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며 일자리를 과감히 찾지 못하고 집에서 몇 년간 단독 수련해 경제상의 박해를 받았다!

나는 구세력의 악독한 수법을 꿰뚫어 보았다. 그들은 이런 관념으로 나를 박해하려 한다. 나를 더욱 담이 작고 나약하게 만들며 자신감이 없게 하고 갈수록 용기를 내지 못하게 하며 모순을 피하게 하고 동료와 감히 정당한 이익을 쟁취하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나에게 이런 관념의 구속에서 이 사회를 싫어하게 하고 피하게 하며 점차 이 사회를 이탈하게 하고 마지막에 사회에서 도태되게 하여 나의 경제적 자원을 끊어버린다! 그러나 나는 이미 청성해졌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바로 속인의 복잡한 환경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있는데 어찌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하고 모순을 피하려 하는가?! 나는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나약함, 자신이 없고 부정적인 사유 등 후천적 관념을 해체하고 이젠 이런 집착심에 구속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나는 대법제자로서 법의 존엄성과 용기를 수호해야 하는데 좋은 사람은 업신여김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또 깨달았는데 이런 두려움, 나약함, 자신감이 없고, 부정적인 사유 등 관념은 구세력이 우리에게 강요한 것이고 그들이 오랜 전부터 배치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생생세세 윤회 중에서 강제로 이런 나쁜 부패물질을 주입한 것인데 목적은 정법시기에 교란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청성하지 않을 때, 이런 관념은 구세력에 이용당하고 확대될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의 조사정법, 구도중생을 저애한다. 이것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런 것을 깨닫고 내 주변 환경은 곧 변화가 발생했다. 동료는 이젠 나와 환자를 뺐지 않고 반대로 나를 존중했다. 그리고 이번 달의 실적은 과거에 2배였고 진료 영업율은 몇 년간 최고를 기록했다!

나는 깨달았는데 우리가 가정, 경제, 병업 등 마난 중에 빠진 것은 우리가 각종 관념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전에 고행의 수련형식 관념을 전환하지 못했다. 혹은 현실 가상의 틀에 사로 잡혀 자신이 현재 생활상태 등을 무력하여 개변할 수 없다는 등 방면이다.(밍후이왕에서 2월 15일 발표한 ‘구세력이 배치한 경제적 곤경에서 벗어나자’에서 이미 서술했다.) 그런 관념이 장애가 되는 것은 자신의 이해로는 우리가 아직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법 중에 다 있고 대법제자가 자신을 통해 세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을 펼쳐 보이는 것도 수련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협애한 개인관념에 좌우지되면 안 되고 극단적으로 법을 이해하면 안 된다.

깨어난 후 지나온 이 몇 년을 돌이켜보면 자신이 그런 관념에 저애되어 경제적 박해를 받았고 수련의 많은 기회를 잃었으며 동시에 이 방면에서 자신의 길을 잘 걷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내 주변에 아직 가정, 경제, 병업마난 중에 빠진 사람을 보았는데 매우 애타고 마음이 아프다. 근본원인은 법리가 똑똑치 않고 기점을 잘 놓지 못했으며 관념과 집착심에 저애당해 어쩔 수 없이 박해를 감당한다! 오늘까지 수련했으면 마땅히 깨어나야 해야 한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을 하고 법공부를 했다고 수련이 아니다. 표면상 사람도 3가지 일을 할 수 있다. 수련인과 속인의 구별은 착실히 마음을 닦는 것이다! 매번 사람과 관념의 충돌에서 근본적으로 마음이 법에 있는가? 사부님 설법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는가? 어느 정도할 수 있는가? 무엇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인지 우리는 마땅히 자신에 자문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련생 여러분에게 사부님의 99년 이후에 발표한 설법과 경문 ‘도항’, ‘정진요지2’, ‘북미순회설법’,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더는 참을 수 없다’, ‘정법과 수련’, ‘정법시기대법제자’, ‘대법의 위엄에 대한 평론’, ‘정념의 작용’ 등 관련 경문과 설법을 보기를 건의한다. 명백히 수련하고 되도록 마난에서 걸어나오기를 바란다!

이상은 단지 개인적인 깨달음이고 적절하지 않은 점은 시정해 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정법과 수련’

문장발표: 2013년 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2/27/2704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