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제 나는 1999년 이전에 법을 얻어 수련하던 친척 수련생이 사망했다는 불행한 소식을 들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것은 2011년 여름이었다. 그때 그녀는 이미 뇌혈전 증상이 나타나 휠체어에 앉아야 했고 말도 똑똑히 하지 못했으며 팔도 잘 쓰지 못했으나 의식만은 뚜렷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처음에는 웃었으나 내가 그녀에게 수련에 대해 이야기하자 울고 말았다.
시골에 살았던 그녀가 법을 얻어 수련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50이 넘은 나이였다. 수련 전에 고혈압 등 병이 있었는데 수련한 후 다 나았다. 자녀들도 집에 없어 남편과 함께 20여 이랑의 땅에 농사를 지었다. 당시 마을 보도원이었던 그녀는 농사일이 바쁠 때는 매일 날이 밝기 전에 밭일을 하고 점심은 밭에서 건조식품을 먹었으며 저녁 8시에야 일을 마쳤다. 저녁 9시에 수련생들이 그녀 집에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은 다음 한 시간 동안 연공했다(동공과 정공을 각각 30분씩 했다). 연공이 끝나면 집에 가서 밥을 짓고 저녁 식사 후 곧 잤다. 당시 나는 그녀가 무척 고생한다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고생스럽지 않고 오히려 온몸에 기운이 넘친다고 했다. 이랬던 그녀가 1999년 사악이 천지를 뒤덮을 듯하게 대법제자를 박해할 때 자녀들이 수련하지 말라고 하자 처음에는 견지했으나 압력이 커지자 현(縣)의 수련생들과 연락도 하지 않았으며 이후 수련을 포기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뇌혈전 증상이 나타나서 병원 치료를 했으나 매년 상태가 나빠졌다.
나는 이 일로 나는 다른 한 친척 수련생을 생각하게 됐다. 그도 1999년 이전에 현지 보도원이었으나 1999년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할 때 걸어 나와 법을 보호하지 않았다. 현지의 다른 수련생들이 그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는 온종일 집에서 법공부하고 법을 베껴 쓰고 연공하면서도(당시 그는 퇴직자였음) 정체에 용해되지 못하는 상태였으나 그는 그것이 곧 수련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적지 않게 법공부하고 법을 베껴 쓰고 연공도 부지런히 했으나 법공부를 ‘전법륜(轉法輪)’에만 국한하고 1999년 이후 사부님 설법을 아주 적게 공부했다. 나중에 몸이 점점 좋지 않게 되다가 2010년에 사망했다.
또 한 수련생은 1994년부터 대법을 수련했다. 당시 그는 현지 파룬따파 보도소 부소장이었다. 수련 전 몸이 매우 좋지 않았던 그는 병원에 한 번 입원하면 6개월이었다. 수련 후 몸이 건강해져 자전거를 타면 마치 젊은이 같았다. 당시 그가 수련생들을 조직해 법공부, 연공, 홍법을 하면서 매사를 앞장서서 했기에 현지 수련생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나 1999년 천지를 뒤덮을 듯한 사악의 박해가 시작되자 아내(당시 수련하지 않았음)의 권고로 고향을 떠나 베이징에 가서 3년간 일했다. 그 사이 그는 집으로 오기도 했으나 머문 시간이 너무 짧아 내가 그에게 사부님의 설법과 경문, 밍후이왕 진상자료를 가져다주었으나 다 보지 못하고 또 베이징에 가서 일했다. 2003년 아내의 강요로 비로소 베이징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는 정체를 이탈함으로써 나타나는 손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일하는 곳에서 연공과 법공부도 할 수 있고(당연히 공개적으로는 하지 못함) 주위 사람들에게 진상도 알릴 수 있기에 자신이 수련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일도 잘해 회사에서 표창도 받았다고 했다. 비록 2003년에 돌아와 법공부를 했으나 3년 반 동안의 간격 때문에 사부님의 최근 설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못했다. 게다가 두려워하는 마음과 가족들의 교란까지 더해져 현지 수련생들처럼 수련하기는 어려웠다.
2004년 11월 ‘9평공산당’이 발표된 후 우리는 비로소 단체 법공부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그는 법공부 소조에 참가했으나 교란이 끊임없었다. 그는 또 정체 환경을 떠나 베이징에 있는 딸집에 두 달간 있다가 돌아왔다. 내가 그에게 그곳에 있을 때의 수련상황을 물었더니 그는 상심하면서 “두 달 동안 감옥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3가지 일 중 법공부만 했는데 그것도 몰래 해야 했습니다.(사위가 반대해서)”라고 했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후 병업 상태가 나타나 2005년 8월에 베이징 301병원에 입원했으나 그해 10월에 사망했다.
1994년에 법을 얻은 또 한 수련생은 당시 아주 정진했다. 그녀는 사악이 박해를 시작하자 대법을 실증하는 일부 활동에도 참가했으나 나중에 우리 지역을 떠나 외지에서 생활했다. 정체를 떠났고 현지의 수련환경에 용해되지도 않았기에 점차 대법을 이탈하게 됐다. 나는 그녀가 돌아오자 사부님의 설법과 신경문을 주었으나 그녀는 모두 보지 않았으며, 심지어 우리와 수련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다. 다행히 지금 이 수련생은 새롭게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또 한 수련생의 아이도 당시 대법제자였다. 선량했던 그 아이는 어른들을 따라 연공과 법공부를 했으며 홍법도 했다. 사부님께서 대륙에서 개최하신 학습반에도 어른들을 따라 참가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가정 또는 현지의 법공부 환경을 떠나 외지에 가서 공부하거나 아르바이트하면서 수련을 느슨히 했으며, 외지의 수련환경에도 용해되지 못했다. 게다가 1999년 사악의 박해까지 시작되자 곧 수련하지 않는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어떤 청년들은 외국에 가 있지만 해외의 정법홍세 하에서도 대법 수련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싶지 않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족 수련생도 여러 명 사망했다! 도대체 당시 어린 대법제자 중 몇 명이 아직 수련하고 있는가? 비록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들을 나무라고 싶지 않다. 고통이 지나간 후 오직 얼른 정신을 차려 수련의 엄숙성을 인식하고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조건 안을 향해 찾고 부단히 정진할 것을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내가 오늘 이 문장을 쓰는 것은 ‘법에 용해됨’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1999년에 박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상술한 수련생들은 아주 잘 수련해 오늘까지 걸어왔을 것이다. 박해가 발생한 후에도 여전히 법에 용해되고 단체수련 환경에 용해되어 걸어 나와 법을 수호했더라면 그들은 오늘도 여전히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사악의 교란이 아무리 사악해도 고향의 수련환경을 떠나지 않았다면, 외지에 가서도 신속히 현지 수련환경에 용해됐다면 그들은 그처럼 빨리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해의 어린 대법제자들도 가정 수련환경을 떠나지 않았다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대법제자로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체는 모두 발생했다!
수련생들이여, 우리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만들어주신 이 수련형식(단체 법공부와 연공)을 소중히 여겨 정체에 용해되자.
우리는 하나의 물방울과 같고 정체는 대해(大海)와 같다. 물방울 하나가 대해를 떠나면 즉시 증발한다. 오직 대해에 용해되어야만 비로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본인의 근기에 따른 체험이니 합당하지 못한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2013년 3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3/7/2706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