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후베이 대법제자 매개(梅開)
[밍후이왕] 나는 남편이 선하게 이해해 주는 것이 아주 고마웠다. 그는 이전에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지만 내가 파룬궁을 연공한 후 심신에 이로움을 많이 얻어 온종일 정력이 흘러넘치고 성격도 쾌활하고 진실해졌으며, 선량하고 온화하며 어려움을 참으며 믿음을 견지하는 모습에 그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는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정말로 좋습니다. 제 아내가 파룬궁을 연공한 후 이것저것도 모두 좋아졌어요”라고 자랑하면서 또 아주 많은 다른 파룬궁 제자들의 사례들을 들어 대법을 실증했다. 박해 형세가 얼마나 험악하고 얼마나 큰 압력이 있어도 그는 내가 하는 대법의 일체 일에 대해 조용히 지켜보면서 원망 한 번 없이 지지했다. -본문 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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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사존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6년에 법은 얻은 대법제자다. 십몇 년 동안 수련 노정을 회상해 보면 잘한 면도 있고 못한 면도 있다. 시련을 겪는 중에서 법공부를 통해 끊임없이 안에서 찾으니 점차 성숙된 느낌이다. 속인의 마음이 갈수록 적어지면서 더욱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었고 자발적으로 동료 수련생을 도와주면서 묵묵히 정체에 원용(圓容)됐다. 나에게는 여러 방면에서 체험들이 아주 많다.
오늘 처음으로 문장을 쓰면서 오직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투고’ 기회를 빌어 가정 모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안으로 찾으며 잘 평형을 유지시켰는지, 무사(無私)의 마음으로 친인척을 구도한 사례 등을 교류하려 한다.
나는 남편이 선하게 이해해 주는 것이 아주 고마웠다. 그는 이전에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지만 내가 파룬궁을 연공한 후 심신에 이로움을 많이 얻어 온종일 정력이 흘러넘치고 성격도 쾌활하고 진실해졌으며, 선량하고 온화하며 어려움을 참으며 믿음을 견지하는 모습에 그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는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정말로 좋습니다. 제 아내가 파룬궁을 연공한 후 이것저것도 모두 좋아졌어요”라고 자랑하면서 또 아주 많은 다른 파룬궁 제자들의 사례들을 들어 대법을 실증했다. 박해 형세가 얼마나 험악하고 얼마나 큰 압력이 있어도 그는 내가 하는 대법의 일체 일에 대해 조용히 지켜보면서 원망 한 번 없이 지지했다. 내가 저녁에 밖에 나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려 하면 그는 나를 도와 진상자료 주머니를 들어주면서 나를 지지하고 격려했다. 시련 중에서 내가 사부님의 보호 속에서 오늘날까지 안정적으로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지지와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몇 년간 우리집은 늘 장기적으로 동료 수련생들이 빈번하게 드나들었지만 남편은 언제나 만면에 웃음을 띠고 그들을 대했다. 일단 어느 수련생이 납치되어 박해를 당하면 남편은 우선 속인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의리를 중히 여기는 친구를 통해 관계기관을 찾아가 백방으로 그들을 구했다. 2000~2005년 기간에 내가 여러 번 납치돼 구치소에 감금됐을 때도 남편은 밖에서 결사적으로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번은 내가 감금됐을 때 그가 ‘610’사무실에 찾아가서 질문했다. “당신들은 무슨 이유로 내 아내를 납치했는가? 그녀는 파룬궁을 배운 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무슨 법을 위반했단 말인가? 그녀는 선량하고 이기심이 없으며 근면할 뿐만 아니라 부모에 효도하고 노인을 공양하며 어린이를 아끼고 남편을 자상하게 보살피는 현모양처다. 파룬궁이 이렇게 좋은 사람을 연마해 냈는데 당신들은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가? 정말로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좋은 사람을 붙잡았는데 보응이 두렵지 않는가? 어쨌든 당신들은 반드시 아내를 내놓아야 한다! 누구든지 그녀 솜털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그와 끝장을 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한 번은 내가 국보대대에 불법 납치돼 1년 반 노동교양처분을 받았을 때였다. 남편은 매일 그곳들을 찾아다니며 석방을 요구했다. 오늘은 상부 ‘610’을 찾아가고 내일은 현지 ‘610’ 찾아가고. 모레는 국보대대에 찾아가고, 글피는 구치소로 찾아가서 끊임없이 이치를 따지며 석방을 요구했는데, 그 결과 뜻밖에도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몇 번이나 납치됐지만 모두 순리롭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이는 남편이 포악한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의 정의로운 자선(慈善) 행위는 하늘과 땅을 감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역시 그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튼튼한 기초를 닦아 놓았다.
한 번은 남편이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큰 거리를 가고 있을 때 같은 방향으로 달리던 삼륜차가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우리 오토바이와 충돌하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남편은 급제동해 길바닥에 쓰러졌다. 당시 그 삼륜차는 남편 몸 위를 깔고 지나갔다. 그는 순간 정신을 잃었으며 숨조차 거의 쉬지 못했다. 땅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현장에는 순식간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당황 중에서도 나는 주의식이 아주 강했다. 사부님께 남편을 구해 달라고 청을 드렸다. 갑자기 남편이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구경하던 사람 중에 어느 선한 사람이 즉시 ‘120’ 구급차를 불렀다. 나는 그가 아직 살았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남편에게 나를 따라 계속 외우게 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 처치를 받을 때도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줄곧 그에게 사부님 설법을 듣게 했다. 밤 12시가 됐을 때 그는 갑자기 눈을 떴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 후 그는 아무런 후유증도 남지 않았다.
2007년 우리 시 지역에서 큰 자료점이 박해를 당한 후 단기간 진상자료가 없어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정체에 원용해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는 우리집에 자료점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부님의 보호 속에 이 한 송이 꽃은 우리집에서 줄곧 영원히 시들지 않고 피었다. 사실 자료점을 만들던 처음에는 일부 존재하지 않아야 할 번거로움에 부딪혔다.
기억에 의하면 그날 내가 복사기를 갖고 집으로 왔을 때 남편이 이를 보고 갑자기 노발대발 했다. “잘한다, 당신은 이전에는 밖에서 물건을 집으로 가져오더니, 이제는 그걸 여기서 만들려고! 당신이 밖에서 자료를 갖고와 배포할 때 내가 도와주었는데 열 번은 더 엄호해주고, 백번을 넘게 동반하면서 보호해 줬더니, 지금은 아주 담이 커졌네, 호랑이 담을 가질까봐 두렵네. 복사기까지 집으로 가져오는 걸 보니 욕심이 끝이 없군! 나, 당신이 이것을 하지 못하게 복사기를 부숴버릴 거야!”하고 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당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존께서 그에게 그렇게 화를 내게 하여 나로 하여금 ‘자료점을 만들려는 마음이 확고한지’ 고험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제자는 반드시 자료점을 잘 만들 것입니다!’라고 다짐했다. 이때 이미 남편의 화는 거의 많이 누그러졌다. 그는 말처럼 물건을 부수지 않고 생각을 바꿔 그냥 나가 버렸다. 집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아주 기뻐했다. 이 친구도 반가워하며 남편을 포옹했다. 그때 남편은 갑자기 허리가 삐끗해 통증이 몹시 심했다. 남편은 아직은 화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라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병원으로 가면서 전화로 자초지종을 말했다. 진단 결과 골절상이라고 했다. 빨라야 3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누워 있어야 걸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 기간 대소변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의사 말을 듣고 조급한 마음에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다만 서로 포옹했을 뿐인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재수가 없지?’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바로 자신이 화를 내면서 그 복사기를 부숴버리겠다고 한 일이 생각났고 그것 때문에 보응을 받았다고 단정했다. 남편은 평시 무의식중에 사부님의 일부 설법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는 즉시 나에게 전화로 “여보! 오늘 오후 내가 말을 잘못했어요, 내가 화를 내지 말아야 했는데 지금 벌을 받았네요. 친구와 포옹만 했을 뿐인데 허리 골절이라네요. 너무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의사가 장기입원을 하래요……. 진심으로 당신에게 사과할게요!”하고 말했다.
남편의 진심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법공부도 하지 않은 한 속인이 이처럼 높은 자세로 생각함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수련자인 나는 오히려 어떤 때는 이기심으로 나쁜 말로 남편을 욕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아주 심한 이기심 때문에 남편을 괴롭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무슨 일이나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아직도 개변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만약 내가 그를 존중하고 그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복사기를 집으로 가져오기 전에 미리 남편에게 일의 전말과 이치를 상세하게 이야기하면서 상냥하게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내가 지금까지 안전하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당신이 전심전력으로 나를 위해 지불하고 도와주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거예요”라고 남편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또 “그래서 나는 당신과 상의하는데 그동안 외지에서 자료를 갖고 올 때 그곳에서 하룻밤씩 묵을 때도 있어 동료수련생들을 번거롭게 했고 또 그럴 때면 또 당신도 나 때문에 걱정을 하곤 했는데, 아예 우리가 복사기를 설치해 자료를 만든다면 그런 걱정도 없고 배포하는 데 필요한 적정량을 만들 수도 있어요. 당신의 큰 지지가 있고 뒷심이 되어 준다면 안전하고 또 편리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내가 늘 밖에서 동서남북으로 뛰어 나니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당신이 말해 봐요! 좋은 방법이 아닌가요?”하고 말했다면 상황은 매우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런 선한 언어와 마음으로 남편과 상의해야 한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만약 당시 정말로 이렇게 했더라면 혹시 남편이 화를 내서 골절상을 당하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하고 부끄럽게 한 것은 내가 남편을 데리러 가려고 몸을 일으켰을 때 골절상을 당한 남편이 혼자 몸으로 집까지 돌아온 것이었다. 남편은 문에 들어서면서 하는 말이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좋은 분이예요! 내가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니 허리가 그다지 아프지 않았어요. 나는 이때 골절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어요”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직접 사부님 법상 앞에 가서 두 손을 합장하고 사부님께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런 다음 한 마디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서 ‘전법륜(轉法輪)’ 책을 손에 높이 들고 정식으로 대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주일도 되지 않아서 의사는 모든 골절상이 사라졌다고 했다. 사실 가정을 잘 안정시키고 친인척들에게 법을 실증한 것은 남편 한 사람에게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그 외 딸, 남동생, 시어머니. 시누이 등등에도 영향력이 있었다.
내가 1996년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당시 11세였던 어린 딸을 데리고 대법수련을 했다. 사존께서는 딸에게 지혜와 지능을 열어주시어 거침없이 석사 연구생까지 되어 졸업했다. 현재 인터넷 판매회사 경리로 근무하고 있다. 딸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위도 법을 얻었으며 그들 부부에게는 살결이 희고 통통한 아들이 태어났다.
내 남동생 부부는 직업이 없지만 그들은 경건하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하며 믿었다. 늘 바쁘게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생하며 돈을 벌어 아이들 학비 등 뒷바라지를 하느라 여념이 없어 아직 대법수련의 길에들어서지 못했다. 재작년 한 달 사이남동생은 연속 세 번이나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세 번째 사고에서는 자동차가 전부 파손될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는데도 사람은 무사했다. 그는 “내가 더 이상 대법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미안할거야!”라고 말했다. 이렇게 남동생도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장사가 잘 되어 아주 번창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법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근심걱정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러나 마땅히 갚아야 할 것들이 바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나의 집착심이 어디에 있으면 모두 한 무더기가 그곳에서 나타났다. 하물며 흑색물질, 업력, 무슨 이기심이라든가 마음속에 원한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제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여동생은 장기적으로 도박을 하면서 고리채 빚을 져서 이자가 늘어 몇 십만 위안이나 됐다. 그러자 그녀의 남편은 화를 참지 못하고 이혼하고 말았다. 어느 날부터 그녀의 채권자가 갑자기 우리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빚쟁이들의 출입으로 집안이 말이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시달리다 못해 매달 2천 위안이 넘는 퇴직금을 전부 딸의 빚을 갚는데 썼다. 그러자 시어머니의 일체 생활비를 우리가 모두 부담하게 됐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동생 자궁에 혹이 생겨 수술을 해야 했는데 보살필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내가 1주일 휴가를 내어 자발적으로 그녀를 보살폈다. 이 일이 끝나니 갑자기 시어머니가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다.
우리 부부 월급은 합쳐봤자 3천 위안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다 남동생 두 부부는 금방 직장에서 실직당한 상태라 스스로 생활을 꾸릴 형편이 안 됐다. 이처럼 연속적으로 가족들에게 번거로움이 나타났지만 나는 내 심성을 고험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로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연속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터진 것이다! 바로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 때, 가정의 곤경을 어떻게 겪으며 평형을 잘 이루는지에 대한 고험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의 ‘대근기지인’ 편에서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신 이 한 단락 법에 대해 심리적으로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시어머니를 구하죠. 어머니의 모든 입원비를 우리가 모두 계산하죠. 앞으로 생활비를 좀 더 절약하면 되고 늘 죽을 먹을 정도는 아니겠지요”하고 말했더니 남편은 매우 감동했다.
시어머니는 입원하여 치료받은 지 10여 일 후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른 후 시댁 조카딸들이 모두 조화 대금을 모두 나보고 내라고 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고모도 손님인 것처럼 모른 척했다. 나는 그래도 그들과 다투지 않았다. 그리고 시동생 시누이 쪽 조문객으로부터 들어온 조의금도 모두 각자 몫으로 돌려주었다. 시어머니의 일체 장례비는 모두 우리가 부담했다. 그러고 나자 모든 사람들이 파룬궁이 너무나 좋다고 했다. 남편 동창들은 모두 격동되어 큰 목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하고 외쳤다. 이렇게 나는 소박한 무사(無私)의 자태로 조용히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했다. 여동생과 남동생도 이 일 후 탈당했다. 큰 아주버니도 늘 상서로운 아홉 글자를 외워 몇 십 년 고질병인 두통이 사라졌다.
나는 가정 모순은 여기에서 거의 평화롭게 변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이 일이 지난 지 1년이 넘는 어느 날, 저녁 12시가 조금 지나 내가 발정념을 금방 끝냈는데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귀찮아 죽겠네”하고 내게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여동생이 도박에서 손을 끊고 일하러 가려고 하니 2만 위안을 달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 말을 듣고 혼자말로 “나가서 일하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할까? 우리가 전생에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빚을 졌으면 이렇게 끝도 없이 우리에게 달라붙을까!”하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뜻밖에 남편이 내 말에 아주 크게 화를 내면서 “아예 내일 우리들 가서 이혼하자! 더는 말다툼하지 말자!”고 했다.
당시 나는 화가 치밀어 마치 오장육부가 모두 떨고 있는 것 같았다(왜냐하면 나는 전 남편과 이혼하고 5살 된 딸을 데리고 그와 재혼했으며 당시 그에게도 10세 되는 딸이 있었다. 그 때 남편을 제외한 시집 식구들은 모두 우리 모녀를 멸시했다. 더욱 시누이는 뒤에서 부채질하면서 나를 헐뜯고 이간질을 시켜서 쌓인 원한이 아주 깊었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당신과 살아 온 몇 십 년 동안 어느 면에서 당신에게 미안하게 했고, 또 당신 가족 사람들에게 어느 면에서 미안하게 한 일이 있어요?”라고 묻고 계속해서 “당신이 동생을 위해 상상 외로 이런 말을 하다니… 만약 당신은 반드시 똑똑히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돼요!”하고 말했다. 그 때 내 심성은 속인들 중에서도 너무나 떨어진 상태가 됐다. 너무나 기막히고 화가 나서 정신까지 잃었다가 깨어났지만 한동안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신이 들고 보니 목안에서 벙어리처럼 소리가 날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남편에 대한 화가 울컥 치밀었다. 조금도 스스로 안에서 찾지 못하고 늘 ‘그가 이번에 내 마음을 크게 상처줬어’하며 원망심이 들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매일 대법수련의 3가지 일을 했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났다. 딸의 결혼식에 외사촌 여동생(수련자)이 왔는데 내 목소리가 변한 것을 보고 “왜, 쉰 목소리가 나죠?”하고 물었다. 동생은 내 말을 조용히 다 듣고 나서 나에게 자비로운 지적을 했다. “잘못은 모두 언니에게 있어요. 언니는 원망하는 마음, 질투심, 쟁투심, 이기심,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 지지 않으려는 마음,가족정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잘못을 고집하면서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자비로운 사존께서는 동료 수련자의 입을 통해 ‘방할’로 깨우침을 주신 것이다. 나는 정말로 너무 무기력한 제자였다. 갑자기 오랜 꿈속에서 깨어난 것 같이 조급해 쓰러질 뻔했다. 사촌 동생의 서슴없는 바른 말에 나는 깨어났다. 아주 격동해 “도움에 고마워!”하고 말했다. 동생은 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아, 이제 잘 말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나도 기쁜 심정에서 연속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존의 고도(苦度)에 제자는 감지덕지합니다. 끝내 수련에서 심성의 큰 관을 넘었습니다! 이번의 심성고험을 넘긴 후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보고, 사부님의 호주 설법을 듣고 진정으로 조용히 안에서 찾고 보니 심성에서 새롭게 깨닫게 됐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면 중생구도의 역사적 사명을 어깨에 짊어져야 한다. 우리는 속인 생활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주위에서 발생한 일체 모순은 모두 자기 용량을 확대하는 디딤돌이다. 수련자는 일체 용서 받을 수 없는 것도 모두 녹일 수 있다. 대법제자가 어떻게 화가 나서 졸도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잘못된 심성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나는 부끄러웠다! 자비로운 사부님의 가르침에 부끄러웠다. 수련은 바로 심성을 수련해야 하며 절실하게 마음을 수련하지 않으면 일체가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실제로 대법제자의 생활은 이미 수련과 한 고리 한 고리 엮여 긴밀하게 용합된 것이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한 느슨함은, 실제로 바로 수련에 대한 느슨함이다”(2009년 대뉴욕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남몰래 다짐했다. ‘앞으로 나는 반드시 법 중에서 정진실수(精進實修)하여 대법제자답게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에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중생 구도를 더욱 잘 할 수 있다. 모순 중에서 나는 절실하게 자신의 수련을 잘해 원망심, 질투심, 쟁투심, 이기심, 불평심, 불복심, 가족정 등등 집착심을 심성수련 중에서 하나하나씩 약화시키고 법 중에서 이들을 소멸하겠다. 3가지 일을 잘하여 자신의 생활과 사업 중에 용합시켜 모든 일에서 모두 수련인의 사유와 행위 상태를 유지하겠다.’ ‘대법제자는 가정에서 아주 바른 일언일행도 역시 법을 실증하는 것이 된다. 가정 관계를 잘 평형시키고 신변 가족과 주위 수련생들과 법에 원용하는 것 역시 법을 실증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사전의 서약을 이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 문제는 바로 자신이 가서 실천할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전법륜)
만약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한다.
(밍후이 제9회 중국 대륙대법제자 수련체험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9/2651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