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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 변화

–‘무엇을 실증하는가?◎사부님 평어’를 보고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의 신경문 평어는 마치 방할(棒喝) 같았고 또한 경종이었다. 사부님의 자비는 앞으로의 수련의 길을 나에게 분명히 지적해 주셨다. 현재 내 수련상태로부터 나는 깨달았다. “진짜와 가짜가 같이 있고”라고 하심에 나는 진수를 선택할 것이고, “사람마음과 정념이 같이 있다”라고 하심에 나는 정념을 요구하고 모래를 이는 단계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부딪힌 일체를 모두 제고의 조건으로 삼고 교란으로 보지 않겠다. 최후의 길을 바르게 잘 걷겠다.

나는 철저하게 관념을 개변하고 사람의 사유를 이탈하며 진정으로 법에서 법을 인식해야 한다. 일체 미혹과 오해를 던져 버리고 철저하게 사람에서 걸어나와야 한다. 안을 향해 찾는 바른 사유로 이미 양성된 밖을 향해 보는 부정적인 사유를 배제해야 한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나의 이 인식이 너무 추상적이고 이론적이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 한 시기 바로 미혹 중에서 몸부림을 쳤으나 해탈하지 못했다. 바로 이때 사부님의 신경문이 발표되어 나로 놓고 말하면 오랜 가뭄이 단비를 만난 것 같았고 어두운 밤에 등불을 보게 된 것과 같았다. 어떻게 개변해야 할지 모르던 상태에서 사부님께서 가르쳐 준 길을 보게 됐던 것이다.

나는 공직 회복을 요구하는 몇 년 간의 반(反)박해 중에서 처음에 고군분투로부터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정체 협조하여 그것을 중생을 구도하는 한 가지 항목으로 간주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항목 일을 크게 벌인 이상 나의 용량도 크게 확대돼야 하며 심성도 따라 가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교란이라고 여긴 일도 많았다. 예를 들면 신체의 가상이 갑자기 심해지는가 하면 법공부를 하려고 하면 수련생이 찾아오거나 기타 일이 생기곤 한다. 저녁에는 휴식을 잘하지 못해 발정념을 할 때면 손이 기울어지고 연공할 때면 흐리멍덩하고 법공부하면 졸곤 했는데 정말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 처했다. 항목은 진전이 없고 비록 전화, 우편물, 진상 알리기도 매우 긴장하게 진행하고 협조도 괜찮지만 회사에서는 그 항목을 질질 끌면서 미룬다. 비록 나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성이 제 위치에 서지 못했기에 진상도 제 위치에 오르지 못해 많은 관과 어려움을 넘기가 너무나 힘들며 안을 향해 찾아도 변화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 때 사부님의 경문이 발표됐다. 이 며칠 간 법공부할 때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중에서 부단히 ‘평어’의 내포를 인식하게 됐고 오늘 발정념 시 사부님께서 머릿속에 ‘관념, 사유’에 대해 알려주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 방면부터 찾으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찾으니 비로소 이 방면의 문제임을 발견했는데 이미 매우 돌출했던 것이다. 만약 일에 부딪히게 되면 우선 나오는 것이 많게는 사람 관념이지 신의 신념(神念)이 아니었고 이후에야 비로소 정념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것이 이미 나타났기에 누락이 있으며 번거로움을 가져와 고생해야만 비로소 닦아 버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사유를 주재하는 것이 아직도 사부님께서 ‘논어’에서 말씀하신 ‘속인의 관념’, ‘전통적인 관념’, ‘굳어진 관념’ 중에서 승화해 올라오지 못해 신념(神念)의 사유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련 중에서 신체상의 고생, 심성상의 어려움, 환경 중의 번거로움을 좋은 일로 간주해야 하는데 고난에 대항하면 고난도 더욱 커지고 내려놓지 못한 물건도 더 많아진다. 고통 속에서 참고 견디면서 수련하면서도 문제가 있다고 느껴짐은 원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근본적인 집착을 찾지 못해 그것이 꼬여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만 관념을 개변할 수 있는가? 법공부 중에서 나는 깨달았다. 법공부를 잘하는 것이 관념 개변의 기초이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은 관념을 개변하는 관건으로서 정면적인 사유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점을 보는 것으로 이것이 관념이 변화하는 표준이다. 만약 이 습관을 양성한다면 기제가 형성되어 누구를 보던 눈에 거슬리지 않을 것이며 모두 좋고 모두 기쁜 일로 된다.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수련 환경도 자연히 좋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관념을 변화해야 하고 진수(眞修), 실수(實修)하면서 정법노정을 따르고 역사적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2013년 3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3/6/2706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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