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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향해 찾으니, 우리 모두 제고되다

글/헤이룽장 대법제자 샤오롄

[밍후이왕] 우리 법 공부팀에 할머니 한 분이 꽤 오랫동안 다리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매일 법 공부하러 올 때, 발정념 할 때도 가부좌를 하지 못하고, 게다가 법 공부하면서 다리를 두드렸다. 법 공부팀의 몇몇 수련생은 보고 걱정하며, 할머니에게 안을 향해 찾고 조사경법[尊師敬法] 하라고 늘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겉으로는 말이 없었지만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서로 잘 아는 사이라, 수련생은 그녀를 위해 ‘책임’진다는 태도로 부단히 그녀의 그런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마찬가지였다. 후에 다급해진 그녀는 “당신들은 다 나를 질책하고 있어. 당신들은 나를 도와 발정념 하지 않을지언정 그런 질책하는 말투로 나를 꾸짖는가?!” 하고 말했다.

모두 그녀가 억지를 쓴다고 생각하고 안으로 찾지 않았다. 그래서 후에 모두 그 수련생의 잘못을 차라리 말하지 않았다. 그 수련생의 다리 통증은 여전히 감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수련생과 마음속으로 일정한 간격이 형성됐다.

후에,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이 회사에서 돌아와 법 공부하고, 그 수련생이 법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간 후, 팀의 수련생이 우리와 이 일을 교류했다. 그들의 안달 난 상태를 보고, 나와 다른 수련생은 이것은 우리 공간장의 정확하지 않은 원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안으로 잘 찾고 자신의 잘못을 보아야 한다고 느꼈다.

나부터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 나는 말했다. “수련은 평등하며 빈부와 계층, 연령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내심에서 나는 나이가 많은 수련생과 법 공부를 함께 하기 싫어한다. 그들이 법을 읽는 속도가 느리고 오성이 좋지 않다는 분별심이 있다. 이것이 바로 간격이다.” 또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지금 속인은 모두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낫다고 자주 많이 말하고, 스스로 자신은 위에 있어 높다는 마음이 있다. 우리가 아직 이런 극히 나쁜 사람 마음이 섞인 말투로 말하면 당연히 다른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겉으론 다른 사람을 위한 것 같지만 깊이 파헤치면 실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치대로 말하면, 수련자로서 다른 사람이 어떤 말투와 태도를 취하든, 단지 자신의 제고에 유리하면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을 생각지 못했다. 수련자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그녀)에게 다 집착의 요소가 안에 있다. 만약 이때 상대방이 당신의 어투가 표면상 이치가 있어도 배후에 질책, 원망, 심지어 고고재상(高高在上) 등의 여러 많은 사람의 마음으로 충만하면 그(그녀)는 즉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후에, 우리 팀의 몇몇 수련생은 다 안을 향해 찾고 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았다. 교류를 통해 다 기본적으로 깨달았다. 노인의 다리가 아픈 상태가 나타난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녀의 수련뿐만 아니고, 사악은 그녀 개인의 교란뿐만이 아니니, 이 일을 우리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 존재하는 많은 부족한 점을 비춰 주었다.

예컨대 우리가 평소 마음속으로 무한한 숭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대법과 사부님을 말했는가? 우리는 100%의 100으로 사부님을 믿었는가? 사부님의 요구에 우리는 아직 절충하고 있지 않은가? 수련생을 대할 때 정말로 자비로운가? 비록 우리가 말하는 것이 스스로 자비롭다고 느끼는데 왜 다른 사람을 감동하게 하지 못하는가? 이 수련생이 우리에게 말한 것이 기억났다. 당신들이 말한 것은 아직 자비롭지 않다. 당신들의 말은 나를 감동하게, 눈물을 흘리게 하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 노인 수련생이 안으로 찾지 않은 사람 마음이 있지만 우리로 말하자면 확실히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가 법 공부하는 목적에 있어서, 인간세상에서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사실은 이런 유사한 일은 ‘원만을 향해 걸어가자’의 경문에서 사부님께서 벌써 우리에게 지적해 주셨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났는데, 이 방면의 ‘근본적인 집착’으로 일체 사람 마음을 버리지 못해 원만해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조성하지 않았는가?

수련생은 후에 깨달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비로우면 상대방이 받아들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우리는 다 진심으로 상대방이 제고되어 올라오기를 희망하는데, 지금 이런 원망 같은, 그녀를 상관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다.

다 자신의 여러 방면의 사람 마음을 찾고 본래 성실하게 노인에게 스스로 부족한 점을 말하려 했다. 노인을 만나자 수련생이 말하려 할 때 의외로, 노인은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되네. 나는 말하지 않았나, 당신들이 제고되면 나 여기도 좋아진다고.” 수련생이 그녀에게 “다리는 어떠냐?”고 묻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많이 나아졌다네!”

이때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오직 정법수련의 에너지장만이 비로소 이런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거에 불교 중에는 이런 한마디 말이 있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 (佛光普照, 禮義圓明)’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뜻이다.” [1] 단지 우리의 마당이 바르기만 하면 자연히 쇠를 철로 용해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두 가지 사례가 아직 있다. 여기에서 간단히 서술해 보려 한다.

한 협조인이 수련생과 충돌이 있어 다른 수련생에게 ‘암호’ 메시지를 보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수련생은 보고 자비로운 심태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결과 이틀이 지난 후 수련생을 보고 말했다. 본래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고 싶었지만 당신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 나는 무엇을 말할지 몰랐다…….

또 다른 수련생이 집에서 심성 관을 정말로 넘기기 힘들어 소형 법회에서 불평과 원망을 품고 이 일을 여러 사람에게 말하자, 협조인 수련생은 이런 장소에서 말하면 법회의 질에 영향을 미칠까 봐 그녀의 발언을 중단시켰다. 후에 수련생이 배후에서 그녀의 많은 부족한 점을 말했다. 이때 마침 막 온 수련생에 경고를 받았다. “수련생을 뒷공론하지 말자. 수련생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그 자체마저 어려운데 어찌 그녀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가?” 수련생은 듣고 즉시 깨달았다. ‘수련생이 일시 법에서 인식하지 못해도 수련생과 간격을 형성하면 안 되고, 사악의 웃음거리로 되면 안 된다!’ 그리하여 밤 9시에 그녀에게 ‘내일 나는 휴식한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튿날 수련생이 정말로 왔다. 그들은 성실하게 교류를 했고, 신기한 것은 수련생이 그녀에게 문제점을 제기하기 전에 그 수련생은 마음고생을 털어놓은 후에, 이런 것은 스스로 허영심이 불러온 마난이라고 인식했다!

이런 유사한 일은 우리 팀에 사례가 많고도 많다. 지면의 제한으로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단지 우리가 엄격히 법을 사부로 모시면, 여러 문제에 봉착해도 다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이 어느 방면에서 빗나가 이런저런 국면이 나타나는가를 보면 일체는 다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수련생 간에 오직 함께 안을 향해 찾으면 공동으로 제고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주: [1] 리홍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 ‘전법륜’

문장발표: 2013년 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2/25/2681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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