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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신필(神筆)을 들고 문장쓰기를 배우다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학교 다닐 때 러시아어를 배웠고 26개의 영어 알파벳을 모두 알아보지 못해 딸은 나보고 영맹이라고 했다. 또한, 병음을 거의 잊어버렸기 때문에 맞출 수 없었고, 타자는 내가 부딪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지난해 말, 본지에서 연락이 왔다. 본지에서 아직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을 쓰지 않는 수련생에게 자신이 당한 박해에 대해 쓰라고 했고 이미 쓴 수련생도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라고 했다. 이 기간에 초등학교 2학년 정도 교육수준의 65세 노인 대법제자인 나는 신필을 들고 문장쓰기를 배워 밍후이왕에서 연속 20여 편의 문장을 발표했다. – 본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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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현지의 국민을 향해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자’- 사부님 평어 문장을 발표한 이래, 더욱더 많은 대륙 대법제자가 박해를 폭로하고 사악을 폭로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대법제자가 반드시 잘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하여 많은 대법제자는 아직도 자신이 박해받은 경험을 써내지 못했다.

지난해 말, 본지에서 연락이 왔다. 본지에서 아직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을 쓰지 않는 수련생에게 자신이 당한 박해에 대해 쓰라고 했고 이미 쓴 수련생도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라고 했다. 이 기간에 초등학교 2학년 정도 교육수준의 65세 노인 대법제자인 나는 신필을 들고 문장 쓰기를 배워 밍후이왕에서 연속 20여 편의 문장을 발표했다.

모든 일은 시작이 어렵다

나는 65세의 노인 여 대법제자인데 다만 초등 2학년의 교육수준이고 지금까지 글을 써 본 적이 없었으며 하는 일도 글을 쓰는 것과는 관계가 없었다. 올해 초 어느 날, 수련생이 내게 “왜 아직도 박해를 폭로하는 글을 쓰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나는 “써 본 적이 없어 쓸 줄 몰라요.”라고 하자 수련생은 “당신을 이끌어 드릴 테니 배워보세요.”라고 했다.

거기는 문장 쓰기 팀이었다. 기본적으로 중 청년이며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백발이 된 노부인이 혼자 거기에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 뒷걸음질하려 했다. 수련생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우겼다. 나는 이것은 오리를 내몰아 회대에 오르게 하는 것처럼 나를 곤경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처음에 수련생은 우리에게 박해를 폭로하는 글을 쓰는 기본 방법을 설명해줬다. 후에 내게 명혜주간 두 권을 주면서 집에 돌아가 자세히 읽어 보라고 했다. 하나는 ‘박해 폭로를 어떻게 잘 보도할 것인가’ (첫째), 다른 한 권은 ‘뉴스보도를 잘하여 더욱 많은 세인을 구도하자.’란 소책자였다. 나는 집에 돌아가 자세히 보고 많은 계몽을 받았다. 또 밍후이왕의 ‘괭이에서 마우스까지’의 글이 생각났다. 얼마나 많은 수련생의 격려를 받아 컴퓨터를 배워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때 밍후이왕에 접속하는 것을 배웠다. 그 후로 딸은 다시는 나보고 컴맹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무슨 일도 모르던 데에서 아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줄곧, 문장을 쓰는 것은 교육수준이 높은 수련생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명혜문장도 아주 적게 봤으며 지금까지 스스로 글을 쓰고 웹 사이트에 투고할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안을 향해 ‘무슨 마음이 방해하고 있는가?’를 찾았다. 나이가 많고 교육수준이 낮다는 것을 핑계로 하고 사실 덮어 감춘 것은 얻기만 하고 지불하지 않으려는 사심이고, 가장 좋지 않은 마음이고, 내가 연마해 없애야 하는 마음이다. 다시 말해서 박해를 폭로하는 것은 사악을 제지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인데 이것은 얼마나 신성한 일인가.

자신이 박해받은 경력은 자신이 똑똑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깨달은 후 나는 펜을 들고 자신의 경험부터 쓰기 시작했다. 나의 경험을 하나하나 시간순서대로 서술하여 교육수준이 높은 수령생에게 보여주고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수련생은 내가 손으로 쓴 원고에 진지하게 평을 했다. 머리말이 있어야 하고 단락을 나누어야 하고, 매 부분에 작은 제목이 있는 것이 좋고, 어느 곳은 상세하게 써야 하고, 어느 곳은 생략할 수 있으며 가족에게 준 경제적, 정신적인 상해도 써야 한다고 했다. 원고를 가지고 와서 고치고 보충하고 마지막에 또박또박하게 베껴 쓰고 다시 수련생에게 가져가 타자하여 투고해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밍후이왕에 정말로 발표되었다. 그러자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수련생을 아주 큰 격려를 받았다. 이것은 정체배합의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

대법제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륙 노인 수련생의 교육수준은 보통 낮은 편이어서 아직 많은 수련생은 자신이 박해받았던 경험을 써내서 폭로하지 못했다. 나는 글을 쓰는 기본 방법을 배운 후 주변의 잘 아는 수련생, 법 공부팀의 수련생을 도와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을 쓰거나 정리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러시아어를 배웠고 26개의 영어 알파벳을 모두 알아보지 못해 딸은 나보고 영맹(英盲)이라고 했다. 또한, 병음을 거의 잊어버렸기 때문에 맞출 수 없었고, 타자는 내가 부딪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한편의 문장은 보통 5, 6장이었는데 고치다 보면 깨끗하지 못해서 다시 베껴 쓰고 또 고치고 또 베껴 쓰고 왕왕 3, 4번씩 베껴 써야 했다. 글씨가 조잡해서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할까 봐 깔끔하게 베껴 써서야 다른 사람에게 타자해 달라고 했다. 누구를 찾겠는가? 수련생들이 모두 바쁜 것을 보고 수련생에게 더 번거로움을 가져다주기 싫었다. 가족에 타자해서 전자 원고를 USB에 저장하고 수련생에게 선별하여 투고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딸도 일이 아주 바쁘고 외손자의 학습도 돌봐야 했기 때문에 내 한편의 글을 그녀가 입력해주기를 기다리다 보면 왕왕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외조카, 외조카 딸도 나를 도와 입력해 주곤 했다. 이렇게 수련생의 부담을 덜어줬지만 큰 도움은 못되었다. 연필심은 몇 번 쓰면 다 써서 한번에 10개를 사오곤 했다. 참으로 큰일을 해보려는 모양이었다.

머지않아 딸이 핸드 라이팅(hand writing)이 있다고 알려줘서 사왔다. 원래 이렇게 좋은 물건이 있었는데 이전에 왜 몰랐는지?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다! 남은 것은 문장을 쓸 때 모르는 글뿐인데 이것은 해결하기 좋은 것이다. 자전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쓴 문장을 USB에 저장하고 수련생에게 가져다주고 선별하여 밍후이왕에 보내게 했다.

몇 편의 문장이 연속 밍후이왕에서 발표된 후 수련생이 내게 주소 혹은 전화를 주면서 나보고 알지 못하는 수련생을 인터뷰하고 도와서 박해를 폭로하는 글을 정리하라고 했다. 어떤 곳은 아주 멀어 버스를 타고 가야 했고 어떤 때는 잘 모르는 줄거리가 있거나 명확하지 않은 정보가 있으면 또다시 가서 물었으며 몇 번을 왕복하여 매 편의 문장을 완성한 후 또 당사자에게 읽어주고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으면 제때 고치게 하고 문제가 없으면 수련생에게 검사하고 투고하게 했다.

의지할 곳이 없어 외지에서 돌아온 수련생, 농촌에서 시내로 친척방문을 하러 온 노인 수련생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발적으로 찾아가 그들과 법리적으로 교류하고 그녀들을 도와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을 썼다. 나의 수준이 낮다고 싫어하지 않으면 나는 그녀들을 도와서 써 주기를 아주 좋아했다. 수련생을 도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매주 5일 반나절은 단체 법 공부에 참가했고, 4식구 가정인데 출근하는 사람, 학교 가는 사람이 있어 나는 채소 사고 밥하고 집안 청소를 해야 했으며, 낮에는 아주 먼 곳에 가서 인터뷰하고 기록해야 했으므로 오직 저녁에 아이들이 다 잠들어야 조용하게 앉아서 글을 쓸 수 있었으며 자주 새벽까지 썼다. 내 뱃속에 배운 것이 조금밖에 없어 붓을 놀려 단숨에 글을 써내고 단숨에 문장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하고 고심하여 생각을 짜낸다고 말해도 과분하지 않았다. 인터뷰하고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 중 박해로 수련생이 겪은 고통에 눈물 흘리고 수련생의 정념정행의 장거에 대해 자랑스러웠다. 어떤 수련생은 최근 몇 년에 수련에 정진하지 못했지만, 박해 초기의 베이징에 상방(上訪)했던 정행, 어려운 경험을 회상하면 눈물이 흘렀고 다시 수련하려는 결심을 되찾았으며 나도 그중에 정화되고 제고됐다. 밍후이왕에 발표되면 나는 수련생보고 프린트하여 그녀들에게도 보내주라고 했다. 수련생이 이 기쁨을 나와 함께 나누게 했다.

내가 자주 밤을 새워도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많은 수련생은 나를 보며 의아해하고 나의 머리카락이 검어지고 젊어졌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조그만 일을 했는데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큰 격려를 주셔서 감사의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오직 정진실수하여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수밖에 없다.

신의 길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다

지금까지 나는 이미 20여 명의 수련생을 도와 박해문장을 쓰고 정리해줬으며 잇따라 밍후이왕에도 발표됐다. 자신의 교육수준이 낮아 정확하게 수련생이 받은 박해 정황과 수련생의 정념정행을 표현 못할까 봐 걱정해서 글을 쓰는 경험이 있는 수련생에게 의견도 물어보곤 했다. 다행히 교육수준이 높은 수련생이 도와 먼저 봐주고 더욱 밍후이왕의 수련생들이 책임지고 고쳐주어서 누락이 나타나지 않았다.

글을 쓰는 과정도 내가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이었고 과정 중 나는 고생하고 힘들고 번거로움, 두려워하는 마음을 연마해 없앴다. 수련생의 평어와 명혜편집부가 고쳐준 문장을 보고 나는 많은 것을 배웠으며 문장의 중심을 몇 마디로 압축하여 글의 머리말로 하는 것도 배웠다. 중요한 부분을 앞에 쓰고 부차적인 것은 뒤에 쓰는 것을 배웠으며 하나하나 전부 쓰지 않았다. 그리고 예를 들면 “164cm의 키, 체중이 다만 40kg,사람이 너무 나물처럼 말랐다.”는 글을 편집부의 수련생은 ‘사람이 너무 나물처럼 말랐다’는 것을 지웠다. 체중이 다만 40kg이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으며 ‘사람이 너무 나물처럼 말랐다’는 것은 화사첨족(畫蛇添足)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우리의 문장은 화려한 문체로 장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설명했다.

지금, 내게 미니 ip90 프린터가 하나 있는데 원고를 프린트하여 스스로 고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상자료도 만들 수 있으며 또한 명혜망에 투고하는 것도 배웠으며 독립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나는 시험 삼아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이 아닌 것도 썼다. 다시 대법 중에 돌아온 수련생이 있었는데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아주 잘 권했다. 나는 이 소재가 아주 좋다고 생각하고 주동적으로 인터뷰했다. 투고 문장의 제목은 ‘사부님, 제자 돌아왔어요.’라고 했는데 명혜 편집부에서는 두 개 글자를 첨가해 ‘사부님, 제가 정말 돌아왔어요.’로 고쳐줘서 더욱 적절하고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또 많은 곳을 고쳐주었다. 비록 글이 많지 않지만 화룡점정(畫龍點睛)의 작용을 한 것을 보고 나의 부족을 보게 했다. 나도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일일이 예를 들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더욱 많은 수련생이 나의 예처럼 가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필을 들어 글쓰기를 배우기를 바란다. 교육수준이 높은 수련생에게만 의지하지 말고 우리 자신 및 주변 수련생들의 조사정법, 중생을 구도하는 감격스럽고 눈물겨운 사적들을 기록하여 명혜에 투고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사이트를 수호하고 또한 우리가 비학비수(比學比修)하고 함께 정진하고 수련하는 환경을 수호하는 것이며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여기서 저를 도와주신 수련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허스.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8일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8/265192.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6/1371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