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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진수하기 어렵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색욕심은 수련인에게 매우 큰 장애라고 생각한다. 이 색욕 심은 제거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쉽게 반복되며 수시로 변한다. 뿐만 아니라 만약 법리상으로 명석하지 않고 억지로라면 잠시는 자신의 행위를 억제할 수 있지만 철저하게 욕념을 단절할 수 없어 다시 나타나고, 일어나기만 하면 더욱 심한데 나의 주위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난 문제가 매우 많다. 나는 이런 일을 목격하고 마음이 아픈 나머지 내가 보고 들은 일들 중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아낸 것과 법 공부 중에서 깨달은 심득을 교류하고자 하니 수련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남녀가 주고받으면서도 친근하지 않고 의심 받기 쉬운 것을 피하는 것과, 이성에 대해 곁눈질 하지 않는 군자의 풍채와 도량은 신전문화 중에서 인류로 하여금 몇천 년 도덕전통의 행위를 유지하게 한 준칙이다. 전통 도덕관념은 사람의 마음을 규범하고, 사람의 행위를 제약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신을 따르는 유대가 단절되지 않게 보증하는 것으로, 사람의 모습을 지켜낸 가장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수련생들 중에는 보편적으로 이런 일종 견해가 있다. 모두 수련생들이기에 그렇게 중한 남녀 관념이 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체 협조 중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이른바 말이 통하는 이성 수련생과 같이 하려하여 가정관이 감정으로 서로 뒤엉킴이 나타나게 해 모두 이성 수련생과 이야기 하려하며 심지어는 남녀가 가까이 지내는 것을 피하지 않고 무엇이든 모두 이야기 한다. 어떤 남성 수련생들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 수련생들과 감정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면서 색욕심이 매우 담담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무엇이든 다 이야기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이야기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 두려워하는 마음이고 남녀 관념이 너무 중한 것으로 “정 중에서 정을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반성해 보는 것도 괜찮다. 정말 매우 담담하다면 왜 꼭 젊은 여성 수련생을 찾아 한담을 한단 말인가? 남녀는 생리 적 특성이 다르지만, 동성과 이야기 한다면 어떤 문제도 회피하지 않고 교류를 더욱 철저히 할 것이며 제고에 더욱 유리하지 않겠는가? 이성을 찾아 한담하는 이런 행위 자체가 강렬한 색욕심을 덮어 감춘 것으로서 더러운 색욕물질을 동료 수련생에게 던져주고는 심리상의 만족을 얻는 것이다. 혼인 중의 불만과 유감으로 조성된 불량한 정서, 팽창된 욕망을 이성에게 다 털어 놓으려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분출하는데 곧 바로 혼인 외의 만족을 찾으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음(意淫)과 무슨 구별이 있단 말인가?

비록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고층차의 법을 전해주셨고, 또 매우 많은 깨달음의 공간을 남겨주시고 각 방면을 빈틈없이 돌보아 수련할 것이 없게 하였지만 몸이 속세에 있기에 얼마나 높은 도리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언행은 반드시 속인의 가장 표면적인 도덕규범에 따라야 한다. 이 역시 신이 규정한 것이며, 전통문화 중의 정통적 도덕관념이며 역시 법의 가장 낮은 층차에서의 체현이다. 예가 아니거든 보지 말며(非禮勿視), 예가 아니거든 듣지 말라(非禮勿聽). 곧 속인의 사업환경 중에서 미혼자가 그 자리에 있으면 기타 사람들도 되도록 속되고 야비한 화제를 피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사람에 대한 최저한의 존중이다. 그런데 동료 수련생으로서 교류 한다는 명의를 빌어 이성과 부부의 일을 이야기 하는데 열중하고, 결혼생활의 고민을 넋두리 한다면 속인의 도리에도 부합되지 않는데 공공연하게 또 무슨 수련을 교류한단 말인가?

내가 관찰한데 의하면 색욕심이 중할수록 가정의 마난이 더 커서 확실히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가장 좋기는 남성과 남성이 이야기 하고 여성과 여성이 이야기 하면서 이성으로 의심을 받을 만한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도리를 위배한다면 곧 낡은 세력이 손을 쓸 것인데 전문적으로 이성 동수를 찾아 이야기하는 본신(本身)이 곧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한 것으로 이 방면에서의 교훈은 너무나 많다.

가정환경을 잘 원용하지 못하면 개인수련도 모두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여 마음이 법에 있지 않기에 정체 환경을 교란하고 파괴할 수 있는데 하물며 이것은 법을 실증하는 것과는 근본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른바 “정 중에서 정을 버린다”는 본래 도덕이 미끄럼질 친 후의 변이된 관념으로서 마치 분뇨구덩이에 빠진 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깨끗이 씻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덮어 감춘 것은 ‘정욕을 포기하기 어려운 집착’인데 그래도 자신이 매우 용감하다고 생각하면서 분뇨구덩이에 뛰어 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조소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수련인은 결혼할 필요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인식을 말하는 것이며 어디까지 깨달았으면 어디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 한 후에 어떻게 하겠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없고, 결혼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하지 않으면 어떠하다고 원망할 필요도 없다. 매 개인의 길은 모두 자기의 선택이므로 매 개인은 모두 자신을 수련하는 것만이 비로소 수련이며, 문제에 부딪쳤을 때 다른 사람을 눈여겨 본다면 다른 사람을 수련하는 것으로서 안을 향해 자신을 찾고 법으로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일찍 색욕심이 중한 동수를 협조하여 집착하는 정욕에서 걸어 나오게 하려고 시도도 해 보았다. 결국 한 사례도 성공하지 못하고 반대로 자신이 매우 큰 교란을 받게 되었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이성 수련생과 몇 번 이야기하고 난 후 첫 마디 말이 “당신을 매우 생각했습니다”였다. 물론 이것은 몇 년 전의 일로서 당시 나 스스로도 색욕지심을 철저히 제거해 버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 이미 결혼한 어떤 수련생은 자신이 “이성의 품에 안겨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험하기 위해 고의로 색정적인 장소에 가서 자신이 심성을 지킬 수 있는가를 보았다ㅡ집에 혼자있어도 지키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해 시험한단 말인가? 정말 그 어떤 사악한 생각도 다 있는데, 하물며 생활이 좀 신중하지 못한 이들도 더럽다고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엄숙하고 단정한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지만, 한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피차 매 일반인으로서 착오를 범하는 것은 조만간의 일로서 지금 어떤 사람들은 감옥에 잡혀 들어가 ‘검험(檢驗)’받고 있는데 이것이 곧 성욕을 방종하였던 결과다.

결혼하지 않으면 사업, 가족, 사회 각 방면에서의 압력을 마주해야 하는데 이 역시 수련의 의지와 색욕심을 철저히 제거하는 과정이고, 사람으로부터 걸어나오고 정욕으로부터 걸어나오는 과정이다. 나로서도 아주 상당히 어려운 하나의 과정을 걸어왔던 것이다. 외부 압력을 말하지 않더라도 진상을 알리는데 저애작용이 아주 컸는데, 익숙한 사람과는 채 몇 마디 말도 하기 전에 우선 묻는 문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면 결혼할 수 있는가?”이다. 나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왜 결혼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물어보는 매 사람들에게 모두 같은 문제를 해석하려고 해도 그 당시 나는 아직 그렇게 큰 인내력이 없어 아예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하는 일이 매우 좋았고 회사 상사가 비록 나의 믿음을 간섭하지 않았지만 위에서 오는 압력도 매우 컸던 것이다. 일찍이 나의 혼인 문제를 ‘정치임무’로 간주하고 다그쳤는데 속인들은 결혼하여 옆에 사람이 있어야 나를 붙잡아 매 놓을 수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변이된 사회에서 이혼하는 현상은 아주 보편적이어서 결혼적령기를 넘겼다고 하여 결코 조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덕이 파괴된 환경에서는 나이가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낡은 세력의 세심한 계략 하에 집 사람들의 위협, 유혹은 나를 핍박하여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더는 갈 길이 없게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다. 색욕심의 근원을 철저하게 제거해 버리지 못하면 속인의 이 층 교란을 파괴해 버릴 수 없고 사람으로부터 해탈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염을 철저히 단절해 버리려고 결심했다. 매일 저녁 잠자기 전 한 시간 발정념을 하여 색욕 물질을 깨끗하게 제거해 버렸고, 자신을 청리하는 과정에서 부단히 안을 향해 찾고 부단히 지혜를 열어 일사일념을 수정 하였다.

발견한 가장 엄중한 관념은 곧 나는 원래 색욕심은 주요하게 행위에서 체현되기에 나는 행위 문제가 존재하지 않고 어쩌다 약간의 색욕지심이 솟아나도 크게 왕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행에 특별할 정도로 강하게 영향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꿈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색욕관에 부딪 쳤을 뿐이므로 이 약간의 염두를 문제로 삼지 않았다. 나는 속인일 때 매우 전통을 중시해서 종래로 이성에 대해 집착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줄곤 이를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수련을 잘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무정법이라 매 한 층에는 모두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했는데, 나는 아직도 이 층에서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법리에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필경 그냥 속인 중에서 이따금 약간의 염두가 있었지만 얼마나 엄중한가를 인식하지 못했고, 색욕심의 문제를 중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매일 법 공부를 하지만 신의 사유가 사람의 사유를 완전하게 대체하지 못하여 누락이 있었고, 시끄러움이 있게 되므로 응당 일사불란하게 수련해야 했었다. 또 색욕심은 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집착과 함께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를 들면 편안함, 타성, 쟁투심, 식탐 등 어떤 사람의 마음이든지 간에 나타날 때 정념을 조금만 느슨하게 하면 수련해야할 태만, 속인의 생활을 향수하는 것들이 모두 색욕심으로 표출되어 나온다. 특히는 의지하는 마음이 그러하다. 나는 줄곧 나보다 깨달음이 좋고 착실하게 수련하는 수련생이 나를 이끌고 수련해 주기를 희망하면서 자신이 자신을 관리하면서 수련하는 것은 너무나 고생스럽고 너무나 어렵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상적인 인연을 만난다면 나는 대가엽과 같은 수련방식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는 비록 나는 혼인을 요구하지 않지만 잠재의식 중에는 아직도 이러한 약간의 동경을 보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략 한 달쯤 청리한 후 나는 꿈에서 철저하게 관을 넘어 고층 수련에로 진입했다. 꿈에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갔는데 갑자기 멀지 않은 숲속에서 두 남녀가 손을 잡고 매우 애매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즉시 머리를 돌리고 보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 왔는데 여성이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남자가 예절 없이 행동하는 것 같은데 내가 관계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라고 생각했다. 호기심이 생겨 나는 머리를 돌려 어떤 상황인가 보고 싶었다. 이 염두가 나타나자 머리를 돌려 보지도 않았는데 즉시 검은 색욕마당이 사면팔방으로부터 나를 향해 습격해 왔다. 음성물질이 나의 공간장으로 빠르게 침투하면서 순식간에 나의 신체 세포로 침투했다. 나는 몹시 놀라면서 염두가 틀렸음을 의식했다. 색욕관인 것이다. 생각 밖으로 일념이 바르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이처럼 공포 적인 후과를 가져오게 되었으니 나는 급히 사존께 나를 구해 달라고 청하였다. 순식간에 못쓰게 된 물질이 나의 신체를 꿰뚫고 단전을 향해 공격하게 될 매우 위급한 찰나에 단전 부위의 에너지 단이 폭발했다. 거대한 에너지 흐름이 순간 전신을 훤히 꿰뚫으면서 색욕물질을 밀어냈다. 전체 공간장은 맑고 깨끗해졌다. 이때 침대에서 자고 있던 육신 전체가 고에너지 물질로 충실 되면서 거대한 에너지장과 우주가 관통 되어 육신은 이불과 함께 떠올랐는데 신체는 가볍기가 마치 하나의 나뭇닢이 우주에서 떠도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이는 정말 너무나 미묘하고 수승하여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색욕 뿌리가 단절되어 난잡한 것들을 보더라도 보고도 못본 척 할 수 있었는데 근본적으로 나와 연계되는 물질이 없었기 때문에 나를 촉동할 수 없었고, 유혹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유가 매우 청정하여 정념을 움직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타 염두들은 매우 가벼워 나타나서 내가 제거하기 전에 곧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주위의 사람들도 더는 나의 개인 문제에 집착하지 않았는데 마치 이 한 단락의 기억이 지워진 것 같아 제기하는 사람이 더는 없었고, 이른바 ‘가정관’, ‘시끄러움’도 모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잠시는 너무 조용하여 익숙하지 않았는데 원래 일체 번뇌는 모두 마음에 의해 산생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생각하게 된 것은 어떤 수련생들은 욕념을 철저히 제거하려는 마음마저도 없고 변이된 관념을 붙잡고 놓지 않는데 무엇이든 버리기 아쉬워하면서 정욕 중에서 언제까지 발버둥칠 것인가? 말해 보라. 당신의 정욕은 천국으로 가져갈 수 없는 것으로, 도리어 정욕은 당신을 세간에 동여 매어놓고 지옥으로 끌고가게 되므로 지금까지 공로가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정법은 이미 마지막에 접근하였고 도리도 사부님께서 명확히 말씀하셨다. 무엇을 요구하던지 모두 자신이 선택하는데 사실 사람의 것도 베어버리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으로 배후의 요소는 모두 업력과 채권자이기에 선해할 수 있는 것은 선해하고, 선해할 수 없는 것은 정분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승화하여 올라와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한다면 무엇이든 모두 미봉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이 매우 발달하였는데 특히 인터넷에서 알게된 수련생들은 절대 속인의 처세술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이야기하고 기쁘면 밥 한 끼를 같이 먹는 등, 곳곳에서 정을 남겨 놓아 자신의 매 걸음을 감옥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법 때문에 함께 걸어오게 되었기에 법을 실증하기 위해 서로 협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신성한 법의 연분이다. 사람의 것을 조금이라도 가해 넣는다면 곧 낡은 세력이 이용하여 당신을 심연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다. 교훈은 너무나 많은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매우 많은 집착심의 배후에는 색욕심이 숨어 있기에 비록 모든 문제의 출현은 모두 수련인의 최초의 지향과 소망이 아니지만 법을 벗어나는 당신의 그 일념이 악과를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 천리 제방도 개미굴로 인하여 무너진다. 반드시 제때에 변이된 관념을 청리하고 자신을 유혹 중에 처해 있게 하지말아야 하며, 인위적으로 자신에게 난을 가중 시키지 말아야 한다.

문장 완성:2012년 2월 3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2/3/2686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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