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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작품] 창춘에서의 파룬따파(5)

— 진상을 알려 사부님은혜에 보답

[명혜망](전편에 이어)

1. 창춘 파룬따파의 날

2001년 12월 22일은 창춘에서 특별한 날이었다. 바로 ‘창춘 파룬따파의 날’이었다.

‘창춘 파룬따파의 날’은 12월 22일로 정했다. 이날은 음력으로 동지이며, 동지는 음양이 교체되는 시기로 여겨져 왔다. 밤이 점점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며 천지가 소생하는 때다. 이날을 선택한 것은 사악의 기운이 다했고 광명이 세상을 비추기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명혜망은 2001년 12월 21일, 중국 창춘 제자들을 위해 창춘 파룬따파의 날을 제정하며 특별 보도를 실었다.

“‘창춘 파룬따파의 날’ 제안과 관련 활동은 많은 제자들의 지지와 관심을 받았다. 제안이 나온 후 많은 수련자들의 원고와 의견, 제안이 접수됐다. 이번 활동은 제자들의 융합을 촉진했고, 사악이 만든 수련자들 간의 많은 장애를 타파했으며, 동시에 모두들 그 속에서 많은 속인의 관념도 돌파했다. 풍파를 겪으며 성숙해진 창춘 대법제자들은 점차 진정으로 안정되고 깨지지 않는 하나의 정체(整體)가 될 것이며, 이로써 정법 중에서 정체의 홍대한 힘을 드러내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창춘 파룬따파의 날’은 창춘 제자들에게 있어 단지 더욱 광범위하고, 더욱 심도 있고, 더욱 세밀하게 진상을 알리는 시작일 뿐이다.”

보도가 나간 후, 가장 먼저 미국 서부 파룬따파학회와 미국 서부 전체 대법제자들이 12월 21일에 ‘창춘 파룬따파의 날’을 축하했다. 대법의 날 당일에는 또 세계 각지의 축하를 받았다. 이탈리아, 북유럽, 오스트리아, 미국 뉴잉글랜드, 호주, 캐나다, 프랑스 등 국가의 대법제자들이 대법불학회, 협회, 대법제자의 이름으로 창춘 대법제자들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국내의 현재와 같이 험악한 환경 속에서도, 수련자들이 사악한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움과 위험을 뚫고 나섰다. ‘창춘 파룬따파의 날’의 수립은 추악하게 대법을 박해하는 사악한 세력에 정면으로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대법제자들에게 빛나는 형상을 세워주었으며, 눈물겹도록 훌륭하다. 해외 수련자들은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창춘 파룬따파의 날’ 전날인 2001년 12월 21일 아침, 창춘시 몇몇 주요 도로 양쪽과 일부 주거지역 내, 일부 대학교 교내에 많은 파룬따파 현수막이 걸렸다. 그 위에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파룬따파는 결백하다’, ‘사부님은 결백하시다’, ‘천고의 원한 파룬궁 박해’, ‘파룬궁 박해를 중단하라’ 등이 선명하게 씌어 있었다. 현수막은 길고 짧은 것을 합해 1천여 개나 됐다. 이는 창춘 대법제자들이 또 한 번 단체로 대법을 실증하고 ‘창춘 파룬따파의 날’을 맞이하면서 창춘 시민들에게 보내는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街旁店门外的条幅
거리 상점 문 앞의 현수막
一路条幅迎风舞(远处可见其他条幅)
바람에 휘날리는 현수막들(멀리서 다른 현수막들이 보임)
晨曦与条幅(1)
새벽과 현수막(1)
晨曦与条幅(2)
새벽과 현수막(2)
还我师父清白
“사부님은 결백하시다”
还法轮大法清白
“파룬따파는 결백하다”
校园内条幅
교내의 현수막
小区窗外条幅
주거단지 창문 밖의 현수막
小区窗外条幅远景
주거단지 창문 밖의 현수막 원경
高楼条幅堪称杰作
고층 건물의 현수막
高楼条幅远景
고층 건물 현수막 원경

창춘 파룬따파의 날 활동 보도: 이른 아침 창춘 거리의 현수막 풍경

그 시기에 대법제자들은 현수막 걸기, 구호 스프레이, 수소풍선 띄우기, 전단지 부착, 확성기 방송 등이 진상을 알리는 주요 방식이었으며, 동시에 세인을 구하는 가운데 점차 성숙해져 갔다.

成批印制的大型条幅令邪恶胆寒
대량 제작된 대형 현수막은 사악을 떨게 만들었다.
居民区内
주거지역 내 ‘파룬따파는 세인을 구합니다’라는 소형 현수막이 곳곳에서 보였다.
法轮大法救度众生的精美条幅
파룬따파가 중생을 구한다는 정교한 현수막
在邪恶的迫害中,这位大法弟子用刷子写出了自己心底的声音
사악한 박해 속에서 이 대법제자는 스프레이로 자신의 마음속 소리를 썼다.
这是大法弟子自己印制的劝善粘贴
대법제자가 직접 제작한 권선(勸善) 스티커
这是大法弟子在放氢气球
대법제자가 수소풍선을 띄운 모습

2. ‘3.5’ TV 삽입 방송

2002년 3월 5일 저녁 7시 30분경, 시내 네 개 구역의 일부 주민들이 케이블TV 여덟 개 채널에서 삽입 방송을 접했다.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와 ‘분신인가 아니면 사기극인가’ VCD 영상을 보게 된 것이다. 첫 번째는 5분간 지속됐고, 두 번째는 7시 55분부터 8시 40분까지 45분간 지속됐다.

TV화면에 대법 진상이 나타났을 때 모든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수십만 창춘 시민이 천안문 분신 진상을 알게 됐고, 파룬궁이 세계에 널리 전해진 상황을 알게 됐다. 많은 사람이 서로 전화해 친지와 친구에게 TV를 보라고 알렸다.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은 ‘파룬궁이 명예회복됐다!’였다. 방송 다음날 창춘 전체가 들끓었다. 사람들은 모두 천안문 분신 사건에 대해 공산당이 파룬궁을 모함하며 연출한 한 편의 연극이라고 했다. 또 파룬궁은 중국에서 박해받기 전처럼 전 세계에서 널리 전파되고 있고, 어느 나라나 다 연마하게 한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파룬궁이 좋기 때문에 전 세계 많은 나라에 모두 있고, 정부가 다 지지한다고 했다. “파룬궁이 정말 대단하다. 사람들을 겁먹게 하지도 못했고, 무너뜨리지도 못했다”고 했다. TV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매우 아쉬워했다.

중공 악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거짓말이 폭로되는 것이다. 장쩌민은 방송에 관여한 수련자들을 “가차 없이 죽여라!”라고 비밀 명령을 내렸다. 이어서 전 시의 대대적인 수색과 납치가 벌어졌고 1년도 안 되어 창춘 지역에서 약 5천 명의 수련자가 납치됐고 수많은 사람이 떠돌이 신세가 됐다. 창춘 삽입 방송에 참여한 파룬궁수련자 15명은 4년에서 20년의 형을 선고받았고, 최소 8명이 박해로 사망했다.

‘3.5’ 방송 사흘 후, 사부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자 경문 ‘정념으로 문제를 보자’를 발표하셨다. 사부님은 TV 삽입 방송으로 진상을 알리는 방식을 긍정하시며 말씀하셨다. “현재 대륙 대법제자들이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인민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는 것이고, 사악의 기만에 중독된 중생을 구도하는 것으로서, 이는 慈悲(츠뻬이)하고도 위대한 행동이다.”

그 후 중국 각지 대법제자들이 TV 삽입 방송으로 진상을 알리는 일이 연이어 일어났고, 더 많은 민중이 진상을 알게 됐다.

5년 후, 아태인권재단은 TV 삽입 방송으로 진상을 전하다가 중공에 의해 박해받아 사망한 파룬궁수련자 류청쥔(劉成軍)에게 ‘단심한청상(丹心汗靑獎)’을 수여했다.

2011년 미국 ‘스탠더드 위클리’는 ‘미세한 전파 속으로 – 몇몇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열사가 어떻게 전 세계의 자유 사업을 도왔는가’라는 제목의 장편 보도를 실으며, 이번 쾌거가 중국인이 자유 세계의 정보를 얻도록 도왔다고 칭송했다.

2012년 ‘3.5’ TV 삽입 방송 10주년을 맞아, NTD(新唐人) TV는 특집 프로그램 ‘영원한 전파’를 제작했다. 영상 마지막에 이런 내레이션이 있었다. “8명의 생생한 생명, 15명의 청춘, 수백 수천 가정의 행복이 정확히 50분의 진상과 맞바꾸어졌다. 이 50분의 진상은 이제 더 이상 수십만 창춘시민의 마음에서 지워버릴 수 없게 됐다. 중공 매체가 아무리 분신 날조극과 기타 조작으로 파룬궁을 비방하더라도, 창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늘 다른 소리와 영상이 떠오른다. 바로 2002년 3월 5일, 나는 파룬궁의 진상을 보았다는 것이다.”

삽입 방송에 참여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류청쥔(劉成軍)은 눙안(農安)현 사람으로, 아버지 류창타이(劉長太)는 눙안 양곡창고 주임이었고, 큰누나 류린(劉琳)은 방역소의 의사였으며, 둘째 누나 류루(劉璐)는 영화사에서 회계 일을 했다. 모두가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대가족이 모두 수련하며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뒷줄 우측부터 류청쥔, 둘째 누나 류루, 큰누나 류린, 형수 단화, 형 류청린 아랫줄 우측부터 아버지 류창타이(큰누나의 딸 웨이란신을 안고 있음), 어머니 류궈팡(동생의 아들 류양을 안고 있음)

류청쥔은 양식전문대학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양곡창고에서 일했다. 키 180이 넘는 이 건장한 청년은 법을 배우기 전에는 성격이 급했고 싸움을 좋아했다. 수련한 후 진선인(眞·善·忍) 우주대법이 그를 바꾸어놓았다. 사회에서 시장의 관리원이 그를 때리고 욕하고 괴롭혔을 때 그는 가장 참기 힘든 상황에서도 참아냈다. 집에서는 장모가 이유도 모르게 늘 그를 욕하고 때로는 때리기까지 했다. 한번은 정말 참을 수 없어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심지어 장모의 집을 불태워버리겠다는 나쁜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을 때 자신이 대법제자이고 속인의 경지를 초월한 수련하는 사람이니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냐고 생각했다. 그때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작은 의자를 가져와 장모의 곁에 앉아 매우 침착하게 말했다. “어머님, 기분 푸세요. 저를 때리고 욕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화가 나서 몸을 상하게 하시면 안 됩니다.” 장모는 이 말을 듣고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더 이상 욕하지 않았다. 하지만 류청쥔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울었다.

1999년 장쩌민이 무자비하게 파룬궁을 박해하고 대법제자들을 박해할 때 그는 28살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공산당의 거짓말에 속지 않고, 불법(佛法) 앞에서 죄를 짓지 않고, 수련하는 사람을 차별하거나 미워하거나 악의적으로 상해를 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동시에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감당했다. 여러 방면의 고통이었다.

2002년 3월 24일, 류청쥔은 경찰에게 납치돼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공안국에서 52일 동안 ‘호랑이 의자’(고문 도구)에 묶여 있었고, 나중에는 수갑으로 ‘시체 침대'(고문 도구)에 며칠 동안 채워졌다. 사악한 마굴에서 그는 수없이 많은 다른 형태의 폭행을 당했다. 이 강인한 사나이는 잔혹한 박해 속에서도 신성한 신념을 지키며 가장 강인한 의지로 한 번 또 한 번의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이겨냈다. 왜냐하면 우주대법을 얻은 생명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불법을 수호하고, 진리를 수호하며, 악을 제거하고, 중생을 구하며,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한번은 류청쥔이 아들 모한(默涵)을 데리고 다른 수련자들과 함께 쓰는 숙소에 갔다. 당시 아들은 겨우 5, 6세였다. 밤에 류청쥔이 아들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잠들게 했다. 이렇게 어린 아이가 이 사악한 박해 속에서 어른들처럼 시련과 고통을 감당하고 있었다. 류청쥔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아버지의 자애로움이 가득했다.

2003년 말, 수많은 고문과 학대를 당한 류청쥔은 이미 죽음 직전이었다. 가족들이 지린시 중심병원에서 그를 만났을 때 이미 온몸에 상처가 있었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으며, 눈이 깊이 패어 들어가고 오장육부가 모두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말하기도 힘들어 거의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가족들이 그를 보자 그는 자신을 돌보는 죄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분이 제 대소변을 처리해주었는데 제가 떠나면 저분을 잘 대해주고 구해주세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감동해 눈물을 흘렸고 그 간호 죄수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는 “별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2003년 12월 26일, 창춘 중일연의(中日聯誼) 병원에서 가족들은 마지막으로 류청쥔을 보았다. 그는 몸의 일곱 구멍에서 피가 나고 온몸이 피투성이였으며, 다리의 혈관이 터진 듯했고 바닥은 온통 피였다. 바닥의 피는 류청쥔의 옷으로 닦았다. 류청쥔은 이렇게 떠났다. 그해 32세였다. 사악은 죄악을 은폐하기 위해 가족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강제로 화장했다.

량전싱(梁振興)은 1964년생으로 지린성 창춘 사람이며, 집안에서 셋째였다. 그는 한때 수도난방 엔지니어였고 영리하고 유능했으며 선량했다. 90년대에 이미 수십만 위안의 개인 자산과 승용차 두 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부유한 생활을 했다. 속인 사회의 오염으로 인해 그도 일부 나쁜 습관에 물들어 가정이 불화하고 부부가 다투어 가정이 파탄 직전이었다. 1998년, 파룬궁을 수련하는 이웃이 량전싱에게 파룬궁을 소개했다. 량전싱은 파룬궁을 배운 후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됐고 어떻게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

梁振兴的照片
량전싱의 사진

그는 과거의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나쁜 습관을 끊었으며 가정이 화목해졌다. 생활은 단순하고 간소했지만 매우 행복했다. 그의 수련 전후의 커다란 변화를 보고 량전싱의 아내와 딸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그의 가정을 사랑했고 어린 딸을 사랑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량전싱은 자신의 수련 체험과 가정이 파탄에서 회복된 경험을 통해 파룬궁이 진정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도덕성을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공의 파룬궁 비방과 매체를 이용한 선전의 날조 모함은 많은 세인을 기만했다. 이후 량전싱은 계속해서 각종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고 중공의 거짓말에 속지 않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3.5’ TV 삽입 방송 사건 후 량전싱은 19년형을 선고받고 지린시 감옥, 창춘시 톄베이 감옥, 스핑시 스링 감옥, 궁주링 감옥으로 전전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잔혹한 박해 수단이 매일 량전싱에게 가해졌고, 량전싱도 일반인의 인내력을 초월했다. 하지만 그의 생명이 존재하는 매 순간은 모든 사람에게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2009년 말이 되자 량전싱은 이미 매우 허약했고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으며 때로는 정신도 온전치 않았다. 스핑 감옥은 이대로 가다가는 생명이 위험할 것을 보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2010년 설날에 량전싱을 궁주링 감옥으로 이송했다.

스핑 감옥을 떠나기 바로 전날, 량전싱은 한때 그를 박해하는 데 가담했던 형사범에게 진상을 알렸다. 량전싱은 “제가 당신을 이렇게 잘 대해드리니 신이 있다는 것을 꼭 믿으세요”라고 말했다. 상대방은 “저는 신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죄수는 나중에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다. 다음날 많은 감시 죄수들이 그를 감옥 문 앞까지 배웅했고, 량전싱은 그들에게 “대법이 좋다는 걸 기억하세요”라고 말했다. 그토록 잔혹한 박해 속에서도, 한때 그에게 폭력을 가했던 죄수들을 대면하며 량전싱은 원망도 미움도 없이 여전히 그들을 구하는 것을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진선인 파룬따파가 만들어낸 위대한 생명이다!

궁주링 감옥에 도착한 후 감옥경찰은 다시 량전싱에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했고, 량전싱은 다시 단식 항의를 했다. 감옥 경찰이 량전싱에게 관을 삽입해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다가 실수로 관을 폐에 삽입했고, 궁주링 중심병원으로 이송됐을 때 량전싱은 이미 호흡이 없었다. 그날은 2010년 5월 1일이었고 량전싱은 겨우 46세였다. 지금까지도 그의 유해는 궁주링 장례식장에 안치되어 있다.

쑨창쥔(孫長軍)은 당시 방송 때 26세였다. 전문대를 졸업한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왕칭현 뤄쯔거우진 정부의 진장(鎭長) 보좌관이 됐다. 창바이산(백두산) 임구(林區) 출신인 이 젊은이는 선량하고 순박하며 효성스러웠다. 집에서는 늘 노모의 발을 씻겨드렸다. 어머니는 전족을 했던 분이라 발가락이 모두 구부러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가 자신을 못 씻기게 하며 “너는 이제 정부에서 일하는데 남들이 보면 어떡하니?”라고 했다. 쑨창쥔은 “어머니는 제 어머니이시고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천경지의(天經地義)의 일인데 누가 비웃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방송 후 쑨창쥔은 17년형을 선고받고 지린 감옥에 수감됐다. 한번은 함께 수감된 사람이 그가 뇌낭충증에 걸려 반신불수가 된 죄수의 발톱을 깎아주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매우 지저분했고 온몸에서 비린내가 났으며 모두가 그를 꺼렸다. 쑨창쥔은 그의 손발톱이 살 속으로 자라 들어간 것을 보고 온수로 발을 담그게 한 다음 깎아주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인정미 있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고 했다.

쑨창쥔은 감옥에서 10년 가까운 힘든 세월을 보냈다. 호랑이 의자 고문, 고압 전기봉 고문, 갈비뼈 하나가 부러졌다. 70일 동안 엄격한 관리 하에 박해를 받아 체중이 20kg이나 빠졌다. 폐결핵으로 한 번에 피를 반 가래통이나 토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병세가 더욱 악화됐다. 폐결핵, 흉막염 결핵, 복막염 결핵, 흉수, 복수가 생겼고 앙상한 뼈만 남았으며 배가 북처럼 부풀었다. 쑨창쥔이 신앙을 고수하고 ‘오서(五書, 5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쓰지 않자 지린 감옥은 그의 병보석을 거부했다. 알려진 바로는 쑨창쥔의 건강 상태는 약간 호전됐지만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레이밍(雷明)은 창춘시 공안국 1처와 지린 감옥의 고문으로 불구가 된 후 2006년 8월 6일 불행히도 세상을 떠났다. 웨이슈산(魏修山)은 지린 감옥에서 류청쥔, 량전싱, 레이밍, 쑨창쥔과 같은 박해를 겪었다. 납치된 당일 고문으로 사망한 류하이보(劉海波), 허우밍카이(侯明凱)도 있었다. 지린 감옥에서 윈칭빈(云慶彬)은 이미 박해로 정신 이상이 됐다…

雷明
레이밍

여기에는 또 20년형을 선고받은 저우룬쥔(周潤君)이 있는데, 대법에 의해 구원받은 생명으로 현재 마굴에서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류웨이밍(劉偉明)은 당시 방송을 할 때 이 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짊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다. 소중한 중국인들, 자신의 부모형제와 이웃들이 진상을 보고 더 이상 기만당하지 않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20년의 억울한 옥살이에 직면했다. 장원(張聞)은 조용하고 심지어 수줍음 많은 청년이었으며, 펜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전기공이었다. 자신의 청춘과 배운 기술을 가장 신성한 사명, 세인을 구원하는 데 바쳤다.

3. 자료점이 도처에서 꽃 피다

초기 창춘시의 파룬궁 진상자료는 모두 대형 자료점에서 만들었다. 대형 자료점은 기본적으로 임대한 집이었고, 수시로 주변 환경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으며, 자신의 안전과 연락하고 자료를 가져가는 수련자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등 매우 큰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다. 게다가 대형 자료점의 대부분 수련자는 모두 집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먹고 자며 폐쇄적으로 지내야 했고, 기본적으로 가정, 사회와 격리되어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몇 년 동안 단일한 한 가지 일만 해야 했다. 거기에 경제적 곤란까지 더해져 그들이 감당한 것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초기 단계, 사악의 박해가 가장 포악했던 시기에 대법제자들이 사부님의 설법과 명혜망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대형 자료점 덕분이었고, 중생에게 전해진 진상자료도 대형 자료점에 의존했다. 이러한 대법제자들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창춘 자료점이 도처에 꽃피게 된 것은 주로 2002년 ‘3.5’ TV 삽입 방송 사건 이후부터였다. 사악의 광적인 대대적인 납치로 대형 자료점이 전면적으로 파괴됐다. 2년여의 박해를 겪으면서 모두가 점차 성숙해졌고, 어떻게 사악에 대처하고, 어떻게 자신의 길을 잘 걸으며, 어떻게 각자의 책임을 감당하고, 어떻게 ‘대도무형(大道無形)’의 대법이 세상에서 형세를 이루는지 알게 됐다.

한 가정 자료점을 독립적이고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너무나 많았다. 경제적인 면의 장애를 돌파하고, 가정환경을 원만하게 하며, 지식과 기술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등 하나하나 돌파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승화하며 제로에서 걸어왔다. 물론 그 과정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한 수련자는 작은 자료점을 만들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몇 번이나 울었다. 나중에 어떻게든 노트북을 샀지만 자료를 출력할 수 없었다! 수련생이 알고는 돈을 모아 장비를 갖춰주었다. 그 시기에 이런 장비들은 유동적이었다. 누구에게 필요하면 갖고 가고, 자신이 필요하면 다시 사기도 했다. 몇 사람이 돈을 모으면 ‘작은 꽃(자료점)’ 하나가 피었다. 또 어떤 수련자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수만 위안을 내놓았다. 어느 집에서든 자료점을 시작하고 싶으면 필요한 장비를 모두 한 세트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각각 독립된 가정 자료점이었지만 사실은 모두 정체(整體)의 협조였고, 단지 이 정체의 범위가 크고 작을 뿐이었다. 우리 집은 인쇄하고, 당신 집은 CD를 굽고, 그의 집은 자료를 다운로드하고, 삼퇴 명단을 업로드했다. 이는 2005년 이후 창춘시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한 수련자는 처음으로 ‘명혜주간(明慧週刊)’을 인쇄할 때 프린터 소리가 클까봐 큰 솜이불을 기계 위에 덮고, 자신도 큰 솜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인쇄했다. 수련하지 않는 남편이 퇴근해서 방에 들어와 보고는 즉시 엄하게 말했다. “난 당신이 이런 일 하는 걸 반대해!” 그녀는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난 반드시 해야 해요!” 남편은 화가 나서 문을 쾅 닫고 안방으로 들어갔다가 곧바로 나와서 말했다. “당신은 소리가 크다고 걱정하는 거 아니야? 내가 TV 소리를 크게 하면 되잖아!” 단호한 이 생각으로 그녀 가정의 장애가 돌파됐다.

창춘의 이런 ‘작은 꽃’들은 집안에서 피었지만 집안에는 대법제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 가족들에게 잘해서, 진상을 잘 알려서, 꽃들은 집안에서 매우 번성하게 피었다. 가족들은 수련하지는 않았지만 대법제자를 돕는 경우가 많았다. 두 노년 수련자는 자녀들의 아이를 봐주며 매일 20권의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인쇄해서 제본했다. 자녀들은 모두 수련하지 않았지만 종이를 사고 ‘9평’을 배포하는 일을 책임졌다. 매일 아이를 데리러 올 때 동시에 주머니에 몇 권을 가지고 가서 순조롭게 배포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아이도 잘 봐주고 중생을 구하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평온하게 걸어왔다.

자료점이 도처에 꽃피는 것은 시시각각 사부님의 보살핌을 받은 것이며, 그 기간의 신기한 일이 너무나 많았다. 한 수련자는 그 시기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감개무량해 하며 말했다. “도처에 꽃이 핀 지 1년여가 되었을 때 기술을 아는 두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들이 우리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설정을 알게 됐을 때 모두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죠. 그들 말로는 우리가 사용하는 시스템이 모든 보안상 취약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도, 놀랍게도 아무 문제없이 잘 진행됐다는 겁니다. 우리식 표현으로는 ‘호랑이처럼 무모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했지만, 모든 것을 제로에서 시작해서 각자 노트북에 작업 방법을 여러 권씩 기록해가며 해냈습니다. 프린터 드라이버 설치를 못하다가 사부님께 청했더니 기적적으로 설치된 경우도 있습니다. 70세의 소수민족 누님은, 수련생이 그녀의 컴퓨터를 새로 설치할 때 프린터 드라이버 설치를 잊어버렸습니다. 나중에 그녀가 프린터를 사용하려 할 때 되지 않아 조급해졌는데, 작업할 때마다 수련생이 한자로 써준 노트의 지침을 따라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노트에 없는 문제가 생기자 그녀는 사부님께 ‘사부님, 도와주세요!’라고 청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흥분된 목소리로 ‘사부님께서 제게 (드라이버를) 설치해주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수련자들의 CD와 9평 제작 과정

4. ‘9평’을 널리 전하고 삼퇴를 권하다

2004년 11월 18일 ‘대기원시보(大紀元時報, 에포크타임스)’는 시리즈 사설 ‘9평 공산당’을 발표했고, 2005년 1월 12일 대기원은 ‘엄숙한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엄숙히 선언한다. 공산당과 공산당의 기타 조직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사악에게 짐승의 표식을 찍힌 사람)은 빨리 탈퇴해 사악의 표식을 지우길 바란다.”

1년에 한 번 있는 농업박람회는 매우 활기찼다. 성 안팎의 현, 특히 농촌에서 많은 사람이 왔는데, 이는 집중적으로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는 절호의 기회였다. 수련자들은 진지하게 자료를 접어서 봉투에 넣고 포장했다. 이 모든 진상자료에는 대법제자의 심혈이 깃들어 있었다. 이런 사악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자비롭게 중생을 구하는 진상자료를 한 장 한 장 인연이 있는 사람들 손에 전달하려면 대법제자들의 용기와 지혜, 금강부동의 의지, 그리고 완전히 중생을 위한 자비로운 마음이 필요했다. 농업박람회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몇몇 수련자가 적당한 위치를 찾아 각각 인파 속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배포했는데, 모든 사람이 기꺼이 받았고 거절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명백한 일면은 이것이 가장 좋고 가장 귀중한 것임을 알았다.

9평 공산당

대법제자가 혼자서 박람회를 ‘구경’하러 간 경우는 더 많았다. 한 수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시회 둘째 날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 구운 떡 두 장을 가져가고 찬물 한 병을 들고 농업박람회에 갔다. 가는 길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사람을 찾아 말을 걸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한 남자를 보고 ‘형님, 몇 시예요?’라고 물었다. 버스 안에서는 한 중년 여성 옆에 서서 ‘누님, 오늘 덥죠!’라고 했다. 말만 걸면 모두 공산당 조직 탈퇴를 권했다. 버스가 박람회 주차장에 도착해서 보니 인산인해였다. 사람이 사람에 닿을 정도였다. 나는 빨리 말을 걸어야 했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생각했다. 바로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옆에 모녀가 있어서 “이분이 따님이시군요, 정말 예쁘시네요”라고 했다. 말을 걸고 나서 “모녀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나는 부처를 수련하는 사람이라서 평안을 기원한다고 했다. 모녀가 당원, 단원, 소선대원인지 물었다. 입단이나 입대할 때 맹세를 했으니 그게 표식을 남긴 것이고 짐승의 표식이라고도 하는데, 이 표식은 반드시 없애야 하며 이것을 ‘삼퇴하면 평안을 지킨다’라고 했다. 하늘이 공산당을 멸망시키려 하니 반드시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해 표식을 없애야 평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좋아요, 빨리 없애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또 “돈 들여 보험 들 필요 없어요. 이건 천리잖아요. 이제 여러분은 구원받을 수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 모녀의 이름을 적었다. 이런 식으로 박람회의 각 전시관, 정자, 휴게실을 다 돌아다니며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며 ‘삼퇴’를 권했다. 이날 총 88명이 탈퇴했으며, 박람회 마지막 날에는 90명이 탈퇴했다.”

5. 사존의 제도에 감사드리다

10여 년 동안 창춘 대법제자들은 대규모 단체 연공 조건이 없어졌지만 신년, 설날, 추석, 특히 대법의 날이 되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명혜망’에 모였다. 한마디 축복, 한마디 안부, 한 장의 축하카드로 수련자들의 진정한 마음을 전달했다. 이런 축복과 안부는 한 가정, 한 법공부 팀, 한 옛 연공장, 한 직장, 한 부서, 한 업종, 한 지역 수련자들로부터 왔다. 또한 아직도 창춘의 사악한 검은 소굴(감옥이나 수용소 등)에 갇혀 박해받고 있는 대법제자들이 외부 수련자에게 부탁해서 만든 축하카드도 있었다. 모두가 시를 덧붙여 사부님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 정법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믿음, 악을 제거하려는 결심과 의지를 표현했다.

안부 인사 중에는 아이들의 동심도 있었다. 이는 새롭게 태어난 세대로, 이 사악한 박해 환경 속에서 자랐으며, 마찬가지로 음산함과 공포, 피비린내를 겪었다. 다행히도 윗세대 수련자들의 인도로 대법에 들어와 수련을 견지했다. 아이들은 법을 공부하고, 법을 암송하고, 연공을 하며, 부모와 함께 자료를 인쇄하고,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렸다. 한 어린 제자는 션윈 공연에서 뭇 신들이 사부님을 따라 내려오는 장면을 보고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맨 마지막이 바로 저예요!”

이것은 어린 제자들은 색깔 있는 구슬로 작은 연꽃을 만들어 사부님께 바친 것이다. 이들은 꽃을 만들 때 매우 진지하고 무척 기뻐했다! 왜냐하면 이는 자신이 직접 사부님께 감사와 축복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든 후 수련자들이 여러 가지 도안으로 배열해서 사진을 찍어 명혜망에 보내면서 네 구절을 썼다. “연꽃 한 송이에 축복 하나, 연꽃 한 송이에 소원 하나, 연꽃 한 송이에 기대 하나, 연꽃 한 송이에 세계 하나”, 그 작은 손으로 만든 연꽃은 어린 제자들의 하나하나의 마음이고, 그 마음속에는 하나의 세계, 정법 후의 새로운 세계가 담겨 있었다.

정법 형세가 진행됨에 따라 더 많은 세인이 진상을 알게 됐고, 리훙쯔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렸다. 매년 명절이 되면 명혜망에는 해마다 ‘창춘 시민들이 파룬궁 창시자께 드리는 진심 어린 명절 문안’이 실렸고, 그중에는 정교한 축하카드도 있었다. [명혜망 2009년 10월 3일] ‘주역’에 관해 상당한 연구를 한 한 노인은 자신이 존경하는 파룬궁 창시자께 기축년 추석 문안을 드리면서 친지들에게 감회를 말했다. “깨달은 이를 따라가면 어찌 틀릴 수 있겠는가. 션윈 공연은 바로 사람들에게 목숨을 보존하는 길을 알려주고 있다. ‘제공의 신부 빼앗기’ 그 장면에서 제공이 신부를 빼앗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께서 자비롭게 사람을 구할 때는 온갖 방법을 다 쓰신다. 지금 신께서 세인에게 알려주시길,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니 ‘삼퇴'(탈당, 탈단, 탈대)해 사악한 공산주의를 멀리하고, 중공 악당을 멀리해서 목숨을 보존하라고 한다. 이 전염병을 보라, 기세를 막을 수 없는데 하늘은 누구를 멸망시키러 왔는가? 사악한 공산주의, 공산 악당 이 쓰레기 더미다. 그것과 관련된 것을 모조리 없앨 것이니 어서 ‘삼퇴’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생사가 걸린 큰일이다.”

매년 파룬따파의 날과 사부님 생신에 창춘 대법제자들은 각기 다른 형식으로 사존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사부님의 정법을 돕겠다는 결심을 표현했다.

14년간의 사악한 박해의 피비린내 나는 광풍 속에서 많은 대법제자 가정에서는 정중하게 사부님 법상을 모셨다. 평소에 환경이 매우 편치 않은 수련자들도 명절이 되면, 특히 사부님의 생신에는 반드시 생화와 과일을 올리고 향을 피웠다. 사부님께서 늘 곁에서 보살펴주셔서 우리는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떠돌아다니고 여건이 좋지 않은 수련자들은 모두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만약 새 집을 사서 자신의 집이 생기면 먼저 가장 좋은 방을 골라 사부님의 법상을 모시고 공경스럽게 모셔놓겠다는 것이었다. 마치 사존을 직접 뵙는 것처럼 말이다. 사부님이 계셔야 우주의 미래가 있고, 생명의 미래가 있다.

또 한 단체의 수련자, 한 가족의 수련자들이 이날 함께 모여 대법을 암송하고, 대법 노래를 함께 부르며, 시를 지어 낭송하고, 사존과 대법을 찬양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는 체득을 교류하고, ‘법선에 중생을 가득 싣고 돌아가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자’는 소원을 표현했다.

맺음말

창춘은 사부님의 고향이자 대법이 널리 전해진 성지(聖地)로서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가 우러러보는 곳인가. 2006년 봄, 외지 수련자들이 창춘에 와서 사부님께서 설법하시고 설법반을 여셨던 장소를 꼭 보고 싶어 했다. 창춘 노수련자들이 그들을 데리고 사부님이 설법하시며 걸으셨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가는 길에서 모두가 사람의 말로는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우신 제도에 감사드리는 것을 표현할 수 없었고, 사부님의 홍대한 은혜를 표현할 수 없었다. 창춘의 대법제자들은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 사부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생각하고, 사부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하며, 사부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고, 사부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창춘에서 학습반을 여셨던 곳과 사부님의 집

사부님이 법을 전하신 지 20년, 창춘 대법제자들은 사부님을 따라 이 20년을 걸어왔다. 20년의 고생스러운 수고, 20년의 비바람, 20년의 연마로 이루어졌다. 지난 20년이여, 정법은 반드시 이뤄지고, 대법제자는 반드시 성취한다!

96년 초를 돌이켜보면, 사부님께서 ‘창춘에서의 파룬따파[法輪大法在長春]’라고 써주실 때 사부님께서는 쓰시면서 감탄하셨다. “창춘(長春)은 영원히 존재한다!”

창춘은 영원히 존재하고, 사부님이 개창하신 신우주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전문 끝)

 

원문발표: 2012년 6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나의 사부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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