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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90년생 이후 제자도 마땅히 자신의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글/ 화둥(華東) 젊은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90년도에 출생한 젊은 대법제자입니다. 부모님을 따라 비바람 속에서 오늘까지 수련해 왔습니다. 성장 과정 중에서 심성을 제고한 후의 기쁨도 맛보았고 역시 고난[魔難] 중에서 고통과 번뇌도 맛보았습니다. 너무 많은 고난에 부딪힐 때면 항상 부모님께서 깨우쳐 주셨습니다. 저는 이미 22세가 됐으므로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3가지 일을 잘해야 합니다. 아래에 법회를 빌어 대법 중에서 수련하면서 성장한 경험들을 사존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일가족 3식구가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서다

기억한데 의하면 제가 6세 때 어머니께서 풍습성 관절염으로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치료하는 과정 중에서 행운으로 한 대법을 수련하는 의사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 의사의 소개로 어머니는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이 회복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가서 연공하고 가는 곳마다 대법의 아름다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로 저를 교육하면서 모범을 보여 주셨으며 저를 어린 대법제자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남자 아이로서 비교적 장난이 심했습니다. 한 번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 가는 도중에 담장에 기어 올라가서 아래로 뛰어내리다가 주의하지 않아 돌에 부딪혔습니다. 그 당시 ‘퍽’하는 소리가 나더니 걸을 수 없었습니다. 몇몇 학우들이 부축해 학교까지 갔습니다. 하교한 후 학우들이 또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을 때 발등이 아주 크게 부었으며 신발을 신을 수 없었고 또 통증으로 ‘왕!’하고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그 이튿날 저는 학교에 갈 수 없었습니다. 교사였던 어머니는 출근하기 전에 저를 위층에 있는 수련생 할머니 집에다 맡겼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보여 주었습니다. 한 두시간 정도 보고나니 발이 그렇게 아프지 않은 느낌이어서 일어섰더니 걸을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 저는 또 깡충깡충 뛰어서 학교로 갔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한 지도자급 간부로서 당시 이기심이 아주 많아서 수련이란 자체를 믿지 않았으며 처음 몇 년간은 아주 거부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도 신체가 좋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대법을 수련하라고 권고할까 봐 아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책을 보기 시작했고 동작을 배우면서 법공부도 했습니다. 그는 점차적으로 파룬궁에 대해 깨닫고 수련을 시작했으며 신체도 건강해졌습니다. 또 초상(超常)적인 현상도 보았으므로 수련에 대한 믿음이 더욱 증가되었습니다.

99년 7.20 이후 공산사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해 어머니와 수련생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러 베이징(北京)으로 갔습니다. 갈 때 저에게 “아들아! 내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려고 하는데 너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지?”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대법을 믿으니 어머니는 가 보세요.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을 게요”하고 대답했다. 당시 저는 어머니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떠난 후 전 가족이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만약 제가 말한다면 어머니는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베이징에서 불법적으로 감금됐다는 소식이 들려서야 저는 아버지에게 경과를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가 불법 감금된 반년이 넘는 사이에 저와 아버지는 서로 굳게 의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밥을 할 줄 몰랐으며 또 늘 회사에 며칠씩 숙박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면 저는 이모 집에 가서 지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면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자발적으로 아버지와 함께 법공부를 했는데 대법은 제 어린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혔습니다.

2. 그리운 어린이 수련생 법공부팀

나는 중등급 도시에서 생활했으며 저와 나이가 비슷한 어린 대법제자가 10여명이 됐습니다. 대법이 박해를 당한 후 매년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이 되면 모두 우리 집에서 어린이 단체 법공부를 했는데 줄곧 몇 년간 견지했습니다. 어머니의 지도 하에 우리는 ‘전법륜’과 사부님의 후기 새로운 설법을 공부하고 매일 단체 연공을 했습니다. 우리들이 교류할 때 모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으면서 함께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겼습니다. 정공을 할 때 다른 어린이 수련생이 다리를 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 우리도 모두 견지했습니다. 한 번은 한 시간 음악이 끝났는데도 한 어린이 수련생이 출정하지 않고 있어 우리는 모두 조용히 그가 출정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일부 마찰이 생길 때도 있었는데 일단 모순이 발생하면 어머니는 바로 우리에게 안에서 찾으라고 깨우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양보를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정말로 사람을 융합시키는데 당시 우리의 심성, 경지는 재빨리 승화됐습니다. 그 몇 년간 방학 때마다 있었던 단체 수련은 우리들에게 향후 거대한 사악의 박해 중에서, 학교 공부의 압력에서도 걸어나올 수 있도록 튼튼한 기초를 닦아 놓았습니다.

2008년 내가 고등학교(高中) 3학년이었을 때 어머니께서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을 당하게 됐습니다. 이 1년간 예전에는 나에게 신경도 쓰지 않던 아버지가 줄곧 나에게 법공부를 독촉하셨습니다. 나는 이 어려운 1년을 보내고 나니 많을 것들을 깨닫게 됐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옆에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 역시 지내기 쉽지 않으셨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정법노정의 수련에서 나는 예전에 있었던 어린 대법제자들의 단체 법공부팀이 그리웠습니다.

3. 어떠한 모순도 모두 틀림없이 자신의 잘못

고등학교를 다닐 때었습니다. 한 반 학우들 대부분 시골에서 생활했습니다. 나는 어머니 학교에서 공부했기에 많은 선생님들은 모두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월감이나 과시심이 나왔으며 늘 명령식으로 학우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관념이 줄곧 오랫동안 나를 좌우지 했습니다. 한 번은 가장 친한 기숙사 친구와 컴퓨터 한 대로 인해 관계가 나빠졌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그 친구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차서 그가 얼마나 이기심이 많고 또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등 불만을 가득 토로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인내심 있게 내 말을 끝까지 다 들으신 후 “안에서 찾아야 한다. 잘 생각해 보아라! 네가 금방 말한 다른 사람이 너에게 잘못한 일을 말했는데 그것이 바로 네가 예전에 다른 사람에게 한 짓이 아니냐?”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맞아! 내가 정말로 예전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했었지!’ 일을 함에 독단적이었고 늘 학우들에게 성질을 부리고 말투도 아주 나빴습니다. 오늘 그가 바로 나에게 그 맛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나는 자신에게서 아주 많은 이기심, 과시심, 쟁투심, 또 질투심 등 집착심을 찾았습니다. 예전에 법공부하면서 아주 많은 이론을 배운 것 같은데 하나도 실천에 옮겨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일에 부딪히면 본래 한 발 물러서서 집착심을 내려놓았더라면 해결됐을 것인데 줄곧 여태까지 내려놓지 못했으니 이런 일까지 초래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 후부터 나는 학우 사이에서 강박하는 일이 적어졌으며 참음이 많아졌습니다. 나와 기숙사 친구 사이의 관계는 뚜렷하게 호전됐습니다. 사실 예전에 그러한 서로 단합되지 못한 아주 많은 문제들이 모두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습니다. 나는 당년에 어린 수련생들이 대부분 모두 막 사회에 진출했거나 혹은 아직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우들과 모순이 발생할 때면 한 발 먼저 양보했는데 마음이 아주 편안했고 모순도 역시 참음으로 해결됐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접촉한 사람은 모두 일부 금방 학교를 졸업한 학우들이었습니다. 일부는 1년 후 조그마한 사회적 성과가 있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자기들의 직업에 대한 일을 말하는데 뿌듯한 모양이었습니다. 내 마음은 곧바로 평형을 잡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난 아직도 계속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는 일부 거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공부를 하면서 ‘질투심’까지 읽었을 때 나는 나에게 강렬한 질투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 중에서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만약 잘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후부터 나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을 배웠으며 다른 사람이 기뻐하면 함께 기뻐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말하기를 즐겼습니다.

4. 어린 대법제자라도 집에서는 마땅히 수련생의 작용을 해야 한다

비록 부모님이 모두 수련한다고 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심성상 마찰이 늘 발생했습니다. 아래에 부모가 모순이 발생했을 때 내가 어떻게 했는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예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많이 했는데 각자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나무랐습니다. 처음에 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그들이 서로 질책하고 있을 때 가끔씩 한 사람 편에 서서 변호했습니다. 나중에 나는 점차적으로 이 문제를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들에게 마찰이 발생하면 나는 오직 한 마디 “부모님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을 찾으세요!”했더니 그들은 바로 조용해 졌습니다.

나는 수련생로서 자신을 이들의 자녀라고 생각하지 말고 마땅히 제때에 법에서 그들을 깨우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부모님에게 마찰이 생기면 나도 안에서 자신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늘 목적성을 갖고 누가 나에게 좋게 대하면 그쪽 편을 위해 변명을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지? 여기서 부모 사이를 이간질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됐습니다. 아직도 자신의 이기심이 장난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5. 나는 컸으니 마땅히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나는 늘 아버지를 따라 진상을 알렸는데 처음에는 진상자료를 배포했고, 또 사람을 만나면 아버지는 진상을 알렸는데 나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가끔씩 또 아버지가 음성이 너무 높다고 나무라기까지 했습니다. 나의 이런 두려운 마음은 진상에서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켰습니다. 나는 이 점을 인식한 후 아버지가 진상을 알리실 때면 나도 한 마디씩 더 보태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늘 인터넷에서 일부 속인들이 사당의 수치스러운 사실을 폭로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진상을 알릴 때면 나도 협조해 몇 마디씩 이야기 했는데 아주 좋은 효과를 얻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하는 중에서 나는 많은 학우들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하여 공청단 조직에서 퇴출시켰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나는 늘 진상자료를 갖고 다니면서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농구를 하러 갈 때면 밍후이주간을 갖고 가서 친구들에게 주거나 작은 주택단지에도 배포했습니다. 우리는 어린 대법제자라고 자칭하지만 사실은 어린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미 성년이 됐으므로 마땅히 독립적으로 중생구도의 일을 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한평생 이끌고 수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부 수련 중에서의 체험은 이후 생활 중에서 수련하면서 차츰차츰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같은 청년 대법제자는 대부분 부모님이 시켜서 법공부를 했으므로 자신에 대해 엄격한 요구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법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기에 법리상에서 인식한 부분이 그렇게 뚜렷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우리가 마땅히 자신들이 가서 세 가지 일을 해야 할 시기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체험)

문장발표: 2012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62651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