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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엔 오직 대법의 세 가지 일뿐이다

글/후베이 대법제자 쩐슈(珍修)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머리말

내 나이는 70세 정도다. 1996년 상반기에 기쁜 마음으로 대법을 얻어 수련을 시작했다. 첫날 파룬궁 연공장에 찾아갔는데 연공장의 상공에 붉은 빛의 씌우개가 덮여 있었다. 신 수련생은 모두 연공장에서 보도원을 따라 동작을 배웠다. 그때 나는 붉은 빛 위에 금색의 사람이 서서 공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공은 단순한 것이 아니구나, 정말로 매우 신기하구나! 나는 매우 격동됐고 빨리 그 금색의 사람을 따라 동작을 배웠다.

나중에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사존께서 붉은 빛 위에서 나에게 공을 가르치셨음을 깨달았다! ‘전법륜’에서 서술된 많은 현상은 나의 몸에서 나타났다. 길을 걸으면 발바닥에 바람이 일듯 가벼웠고 가부좌하면 신체가 위로 날았고 이불과 침대마저 함께 날아올랐다… 수련 후 나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몰랐으며 사존의 가르침을 마음에 아로새겼고 조사정법은 이미 나의 생명의 전부가 됐다. “사악이 발광해도 길을 잃지 않거니 / 사악을 제거함은 먼지 쓸 듯하여라” [1] 사악의 박해 13년간 나는 줄곧 굳건하게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바짝 따랐다…

1. 법을 얻다

나는 70세 정도 된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각종 질병을 앓았다. 관절통, 골질증식, 체질이 허약하고 감기에 쉽게 걸렸으며 여름에도 감히 찬물에 손을 댈 수 없었다. 건강이 나빠지자 성격도 매우 조급하고 포악해졌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공도 연마했으나 호전이 없었다. 1996년 상반기의 어느 날 계단을 내려가다 조심하지 않아 다리를 다쳐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매우 힘이 들었다. 의사가 다리에 쇠를 넣어야 한다는 말에 나는 기겁했다. 바로 이때 친구가 파룬궁을 추천해주었다. 특히 파룬궁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데 기이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줬다. 나는 시험해 보자는 마음을 품고 저녁에 친구를 따라 부근의 연공장에 갔다. 연공장 상공에는 붉은 빛 씌우개가 있었으며 매우 수승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아주 신기했다. 이 공법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에 일념이 생겼다. “나는 파룬궁을 연마할 것이야!” 정말 다행히 연공장에 빈자리 하나가 있어 나는 그곳에 서서 동작을 배웠다. 그때 신 수련생이 비교적 많아 보도원은 한 사람씩 동작을 가르쳐주기에 벅찼다. 나는 매우 조급했다! 머리를 들어보니 붉은 빛 위에 금색의 사람이 서서 나를 마주하고 동작을 가르쳤다. 나는 매우 격동돼 그 금색의 사람을 따라 동작을 배웠다. 나중에 ‘전법륜’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원래는 사존께서 붉은 빛 위에서 나에게 동작을 가르쳐주셨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연공장에서 돌아와 밥도 먹지 않은 채 나는 단숨에 ‘파룬궁(수정본)’을 읽었다. 큰 보물을 얻은 느낌이었다. 단체법공부와 연공에 참가하여 매우 빨리 결과부좌를 틀 수 있었으며 공을 가르치는 비디오를 보는데 신체에 극심한 진동이 생겼고 몸에 파룬이 있는 느낌이 있었다… 일주일 뒤 다친 다리가 신기하게 회복됐다. 그 뒤로 일찍 연공장에 도착해 자발적으로 청소하고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다. 얼마 후 몸에 있던 각종 질병이 남김없이 사라졌고 성격도 좋아졌다. ‘전법륜’에서 서술된 많은 현상이 몸에서 나타났다. 길을 걸으면 발바닥에 바람이 일듯 가벼웠고 가부좌할 때 몸이 위로 날아올랐으며 이불과 침대마저 함께 날아올랐다. 그때 법을 막 얻은 시기라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내 침대를 위로 미는가? 나는 침대 옆에 세워둔 몽둥이를 들어 침대 밑을 찔렀다. 침대 밑에 나쁜 사람이 숨어 있는 줄로 여겼다. 그러나 침대 밑에는 아무도 없었다. 법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나는 비로소 사부님께서 나에게 대주천이 통한 후의 상태를 체험하게 하셨음을 깨달았다.

2. 법 실증

1) 청원

1999년 7.20은 마른하늘에 청천벽력이었다. 사악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렇게 좋은 대법이 박해당하리라 생각조차 못했으며, 우리 사부님과 대법의 결백함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모함당했다. 나와 수련생은 성정부에 청원 갔다. 정부에서는 오히려 매우 많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큰 군대 차를 몰아왔다. 차가 도착하자 무력도 우리 연공인을 향하여 충격해 왔다. 우선은 고압 물총으로 우리에게 한바탕 맹렬하게 쏘고 차에서 뛰어내린 무장경찰은 손에 든 전기 몽둥이로 수련생들을 몰아 차에 실었다. 이렇게 단번에 혼란에 빠졌고 어떻게 하다 보니 나는 밖으로 밀려 나왔다. 수련생들이 큰 차에 실리는 것을 보고 나는 급했다. 나는 차 문으로 달려가 차에 타려고 했으나 두 명의 무장경찰이 가로막아 차에 오를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더러 어서 가라고 했다. 나는 듣지 않고 마침내 차에 올랐다. 차는 매우 빠르게 시동을 걸고 자리를 떴다. 차가 장강대교를 지날 때 나는 마음이 급했다. 도대체 우리 좋은 사람을 어디로 끌어가려나? 속으로 이 차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으면 했다. 다른 한 수련생도 차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라고 중얼거렸다. 생각 밖으로 우리의 염두가 나오자 차바퀴가 터졌다. 차는 달릴 수 없게 됐고 길가에 멈춰 섰다. 우리는 그때 자비로운 사존께서 우리에게 어서 그 자리를 떠나라는 점화임을 깨닫지 못했다. 무장경찰은 또 많은 지프가 오도록 명령했다. 우리는 지프에 나뉘어져 탔고 어디로 끌고 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경찰이 기록할 때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 수련 후 큰 혜텍 받음을 알리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그들에게 ‘전법륜’을 구해서 읽어보라고 했다. 젊은 경찰은 매우 참답게 들었고 나는 그들 눈에서 광채가 번뜩임을 보았다. 족히 한 시간가량 이야기하고 경찰은 나를 풀어주었다.

2001년 종래로 먼 곳에 외출한 적이 없었던 나는 어린 손자를 데리고 베이징에 갔다. 이렇게 길을 익히고 그 후 수련생을 이끌고 2번 더 갔다. 베이징은 사악의 검은 소굴이며 근거지이다. 그곳의 환경은 확실히 매우 사악했다. 세 번 모두 나는 순조롭게 진상자료와 진상 CD를 베이징 각 곳에 배부하여 연분 있는 사람이 진상을 볼 수 있길 바랐다.

2) 현지 자료점을 건립하여 중생 구도하다

2001년 수련생들은 마땅히 큰 힘을 들여 현지 중생에게 진상 알려야 함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대법의 진상을 알 수 있도록, 나는 남편과 살았던 도시의 집을 판 몇만 위안으로 자료점을 건립했다. 그때 우리 지역에서 컴퓨터 기술을 아는 수련생이 매우 적어 걸음마다 곤란이 겹겹이었다. 설비를 사는 것에서부터 여러 가지로 걸음마다 사부님의 점화와 도움으로 순조롭게 지나왔고 자료점을 잘 운영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 지역은 전체적으로 모두 승화했고 곳곳에 작은 꽃들이 피어났다. 나와 합작하고 있는 어린이 수련생도 수련이 착실하며 이 작은 꽃을 더욱 짙게 피울 수 있었다.

3) 세 가지 일을 매일 일상생활 중에서 용해하다

나는 소중한 우주 대법을 얻어서부터 매우 행복했고 완전히 우주 대법 속에 동화된 새로운 생명으로 변했다. 1999년 7.20부터 사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해서 나는 한 시각도 쉼 없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대법의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인지 방법을 생각했다. 편지 쓰고 족자를 걸고, 집집마다 진상자료를 배부하고 진상 스티커를 붙이고 진상 CD를 제작하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상관없이 나의 그림자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남겨졌다. 밍후이왕에서 수련생들이 교류한 사람을 구하는 좋은 방법을, 나는 다 사람을 구도하는 데 사용했다. 나는 늘 단잠을 잘 수 없었으며 늘 시간이 부족함을 느꼈다. 법 공부, 발정념, 진상자료 만들기, 사람 구도, 하루도 빠짐없이 해왔다. 대법이 하루빨리 바르게 사람들에게 인식되기를 바랐고 대륙의 제자가 하루빨리 정정당당하게 사존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랐다. 사존의 존안을 뵙고 싶었다! 비록 “사제는 정을 따지지 않나니 / 부처의 은혜 천지를 녹이네” [2]라고 말씀하셨으나 사존을 생각만 하면 멈출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는 이른바 사당의 ‘민감일’이 없다. 나의 생명에는 오직 사부님께 들은 말씀만 있으며 사부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으면 나는 곧 그대로 하며 나의 매일 생활은 오직 세 가지 일뿐이다.

사당의 양회 동안에 사악한 기염이 매우 컸다. 그러나 사부님 앞에서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내 옆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번은 사당의 양회 동안 나는 시장에 채소 사러 갔다가 젊었을 때 몇 번 만난 적 있는 고향 사람(부대 노 간부)을 만났다. 나는 사부님께서 연분 있는 사람을 내게 안내하신 걸 깨달았다. 나는 재빨리 그에게 물었다. “삼퇴에 관련하여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탈당, 탈단, 탈대에 관해서요.” 그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나는 재빨리 그에게 진상을 알려 왜 탈당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지자 나는 목청을 크게 하여 주변 사람들이 모두 진상을 들을 수 있게 했다. 과연 주변 사람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고 귀 기울여 조용히 들었다. 나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천안문 분신사건으로부터 장자석, 현 중공당국의 부정부패에 이르기까지 말했다. 내가 말했다. “나의 사부님께서 당신을 구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서 사당에서 탈출하세요!” 그는 알아듣고 기쁜 마음으로 삼퇴 했고 연이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느 한번 친척 집이 있는 타 지역에서 사람을 구도하게 됐다. 나는 큰 여행용 가방에 진상자료를 가득 메고 정념으로 안전검사에서 빠져 나갔다. 기차를 탈 때 층계가 너무 높아 올라갈 수 없었다. 자료를 넣은 큰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주변을 보니 제복 입은 열차 승무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가운데 서 있는 키 큰 승무원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힘이 세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승무원장이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말했다. “책입니다.” 그는 “그러니 이렇게 무겁지요.”라고 말하면서 나를 도와 열차에 실었다. 그때 나의 마음에는 오직 일념뿐이었다. ‘사람을 구도하는 자료는 검사받을 수 없다.’ 열차에서 과연 그 가방을 검사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한길로 안전히 진상자료를 목적지에 가져가 순조롭게 연분 있는 사람들 손에 쥐어주었다. 정말로 사존께서 ‘홍음 2-사도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였다.

이때 누군가에게서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됐다. 나는 속으로 우연한 일이 발생할 수 없음을 알고 전화에 대고 재빨리 말했다. “아홉 글자를 기억하기 바랍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4) 정념으로 신의 위풍을 떨치다

(1) 경비원은 순간 생각을 잊어버렸다

1999년 7.20 박해가 시작된 후 나는 더는 설을 쇨 수 없었다. 명절일수록, 섣달 그믐날일수록 나는 중생 구도의 절호의 시기를 놓칠 수 없었다. 바삐 큰길과 골목길에 자료를 배부하고 진상 스티커를 붙이고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다 보니 시간이 늘 부족했다. 밤에 잠자는 시간을 줄여 법 공부했다. 어느 정월 초하룻날 아침 나는 중공 기업의 마당에 들어갔다. 유성펜으로 눈에 가장 잘 띄는 큰 기둥에 진상표어를 적었다. 다 쓰고 머리를 드니 당직 경비원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강대한 일념을 내보냈다. “돌아서, 저쪽으로 가!” 과연 그 사람은 매우 말을 잘 들었다. 순간 아무런 사상도 없는 듯이 즉시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사존님의 가호로 이와 같은 신적(神跡)은 진상자료를 배부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기타 곳에서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2) 검찰원 아파트 단지에 복음을 전하다

몇 년 사이에 매우 많은 일이 지나갔고 또한 모두 담담해졌고 잊혀졌다. 일부 사람을 구도하는 일은 그때 함께 참여했던 수련생이 일깨워줘서야 조금의 인상이 있었다. 어느 한번 젊은 수련생이 나에게 우리 지역 시위원회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검찰원이 있으며 검찰원 빌딩 뒤에 많은 동의 검찰원 주민아파트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의 말인즉, 검찰원들과 그들 가족이 모두 진상을 알게 되면 그들이 더는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아 그들이 대법에 죄를 범하는 경우를 줄일 수 있게 되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지 않겠느냐는 뜻이었다. 그래서 우리 수련생 3명은 진상자료와 9평을 가득 짊어지고 십몇 분 내에 나누어 단번에 전체 검찰원 주민아파트 집집마다 진상자료를 배부했다. 그때 검찰원 빌딩과 아파트 단지 앞 주차장에는 정말로 검찰원과 공안의 경찰차가 가득 주차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정념은 매우 충족했고 또 정말로 사부님의 법신께서 지켜주고 계셨다. 우리가 자료를 배부하는 십몇 분 사이에 전체 주민구역은 조용해졌으며 드나드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가 그곳을 떠난 후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우리를 따라왔다. 나는 두 명의 어린 수련생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발정념 해요.”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그곳을 떠났다.

(3) 시 위원회 내에서 정념정행 하다

어린이 수련생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일깨워주었다. 어느 한번 역시 우리 세 명이 시 위원회 주민아파트 단지에서 진상자료를 배부했다. 나는 아래에서 발정념 했고 두 명의 어린이 수련생이 계단을 올라가 배부했다. 3개 동에 배부했을 때 당직 경비원이 낯선 나를 보고 외쳤다. “당신 여기서 뭘 해요?” 수련생들이 위에서 배부하고 있는 터라 나는 매우 침착하게 경비에게 말했다. “사람을 찾고 있어요.” 그리고 더는 경비원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목청을 높여 울안에 대고 높은 소리로 외쳤다. “얘들아, 친척이 집에 있느냐? 어서 알아 보아라.” 어린 수련생들은 이 소리가 우리가 사전에 의논했던 암호임을 알아챘다. 경비원은 내가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자 어린이 수련생들이 자료를 배부하는 그 동으로 걸어갔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발정념 하면서 경비원을 앞질러 갔다. 마침 두 어린 수련생이 암호를 듣고 이미 계단을 내려왔다. 경비원은 의심되는 얼굴로 큰 소리로 두 젊은이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를 찾는가?” 어린이 수련생들은 나를 보면서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경비원에게 말했다. “우리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경비원은 누구를 찾는지 물었다. 나는 세 글자로 말했다. “나는 그를 구도합니다!(我救他)” 경비원은 벙어리가 된 모양 아무 말도 없이 멍청하게 몸을 돌려 당직실로 갔다. 두 명의 젊은 수련생은 나를 따라 정정당당하게 그곳을 떠났다. 나는 장기적으로 곳곳에 자료를 배부하고 날마다 세 가지 일을 하느라 그 일을 담담하게 잊었으며 어떤 일은 완전히 기억에 없다. 이 이야기는 그중의 어린 수련생이 나를 도와 기억해낸 것이다.

(4) 집에 찾아와 교란한 경찰이 주눅이 들다

우리 구역 내 두 명의 인민경찰(관할구역 경찰)은 줄곧 별의별 궁리를 다 해 대법제자와 현지 자료점을 박해했다. 이른바 증거를 찾기 위해 시장에서 채소를 사고 돌아오는 나를 우리 집 문 앞에서 기다리다 위선적으로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인사하면서 우리 집에 뛰어들어 증거를 찾으려 했다. 우리 집은 자료점이라, 어찌 그들을 들여보낼 수 있겠는가? 이 관건적인 시각에 갑자기 이런 일념이 떠울랐다. “열쇠가 없네요.” 나는 사악의 속임수를 식별하고 엄숙한 눈길로 그 경찰을 보면서 “열쇠가 없네요!” 라고 말했다. 말을 마치고 대범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악한 경찰은 뜻밖에도 내가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것을 알고 그때 주눅이 들었다. 일이 지난 후 잘 생각해보니 내가 한 말은 사실 논리적이지 못했다. 내 집인데 어찌 열쇠가 없을 수 있나! 그러나 그때 나도 어떻게 열쇠가 없다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위대한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제자를 가호해주셨음을 깨달았다! 나는 또 한 번 대법의 위력을 견증했다. 사악의 요소가 해체됐다. 그 뒤로 더는 경찰이 집에 찾아와 나를 교란하는 일이 없었다.

(5) 농촌에 법을 실증하는 환경을 개척하다

남편의 고향은 후미진 농촌이다. 나는 그곳의 중생이 대법의 진상을 알고 있는지 항상 근심하고 있었다. 친척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친척이 말했다. 전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밤에 자료를 배부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강도로 여겨 매우 심하게 구타했으며 배부할 때마다 구타했고 신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대법제자가 신고로 감금돼 있는 상태였다. 몰랐을 때는 괜찮았는데 말을 듣고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으며 마음이 극도로 아팠다. 우리 대법제자가 이곳에 사람을 구도하러 와서 정말로 고생을 겪었다. 현지의 촌민들이 사당의 독해에 깊이 빠져 있었는데, 현지의 중생은 전혀 진상을 몰랐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후 나의 마음속엔 굳건한 일념이 생겼다. 내가 이곳의 중생을 구도하리라!

나는 이미 퇴직했고 남편도 사망했다. 나는 의연히 도시의 나은 생활을 포기했다. 그때 이곳 농촌의 생활 환경은 극히 간고하고 아주 나빠서 전력 상태도 뒤떨어져 늘 정전이었고 마시는 물마저 몇 리 떨어진 곳에서 길어다 먹어야 했다. 남편의 부모가 사망하고 남겨진 낡은 집은 황량한 산기슭에 단독으로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인가가 없고 집은 비어진 채로 보수하지 않아 비가 심하게 샜으며 여름엔 모기와 파리가 기승을 부렸다. 이런 환경이기에 아들딸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아들과 딸은 손자의 정으로 나를 가로막으려 했다. 그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나는 안으로 자신을 찾아 정을 닦아 버렸다. 그들이 더는 말하지 못하도록 나는 일 년의 시간을 들여 아들딸과 손자들과의 관계를 원용했다. 그러나 내 사명은 끊임없이 나를 불렀고 나는 아들과 손자와의 관계를 잘 원용하고 서둘러 2007년 여름에 혼자서 후미진 농촌에 발을 들여놓았다.

더욱 잘 진상을 알리고 이곳의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우선 대법제자의 좋은 형상을 수립해야 했다. 이 후미진 농촌의 공공장소는 더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우선 공공장소의 위생부터 챙겼다. 부집게와 쓰레받기를 사서 촌에서 관리하지 않은 쓰레기를 청소하고 공공장소에 마구 자란 풀을 제거했으며 곳곳마다 촌민을 위해 생각했다. 그곳 일부 젊은 촌민들이 타 지역으로 일하러 가고 농번기에 나는 무상으로 농민들의 일손을 도왔다. 그들은 내가 지긋한 나이에도 건강하게 일을 잘하고 젊은이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미 대법의 초상함을 느꼈다. 채소밭에서 누가 채소를 따가면서 인사하지 않아도 나는 늘 싱글벙글했다. 촌민들도 알았지만 내가 심은 채소는 물만 주었을 뿐 비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또 그것을 관리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채소는 그들이 비료를 주며 키운 채소보다 좋았다. 나 혼자서는 다 먹을 수 없으니 누가 따가도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어느 집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는 묵묵히 도와주었다.

어느 부부는 타 지역에서 일하고 있어 그들의 아이(7, 8세 되는 란란)는 할머니가 돌보고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다른 마을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생겨 란란에게 먹을 것만 남겨놓고 일하러 갔다. 보름 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란란은 집에서 날마다 쌀미음과 라면을 먹었다. 나는 이 상황을 알고 란란을 집에 데려와 밥을 먹이고 머리를 빗기고 씻겼다. 란란의 담임은 아이가 깨끗해진 것을 보고 란란에게 물었다. 집에 어른들이 계시지 않는데 누가 너에게 이렇게 예쁘게 머리를 땋아주었니? 란란은 선생에게 파룬궁 할머니가 땋아준 머리라고 말했다. 란란의 할머니는 집에 돌아와 사실을 알고 감격해 마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파룬궁은 정말로 좋아요!’라고 말했다.

어느 날 란란은 친구와 놀다가 발을 삐끗하여 아래 눈꺼풀이 찢어졌다. 상처가 비교적 커 일반적으로는 바늘로 꿰매야 했다. 내가 마침 그곳을 지나고 있었는데 란란의 할머니와 란란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를 보고 란란의 할머니는 다그쳐 물었다. “이를 어쩌면 좋아요? 바늘로 꿰매 흉터가 남으면 어떻게 하죠? 이를 어떻게 란란의 부모에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란란에게 알려주었다. 어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라고 했다. 란란의 할머니는 이 말을 듣고 란란에게 말했다. “파룬궁 할머니의 말대로 해라, 틀림이 없다. 어서 염해라!” 할머니와 란란은 이 아홉 글자를 염했다. 며칠 후 란란은 회복됐고 아무런 흉터도 없었다. 그들은 대법의 신기함을 체험했고 나중에 그 집 가족은 전부 삼퇴 했다.

사존의 가지로 나는 매우 빨리 도시의 수련생과 연계돼 비정기적으로 그곳으로부터 진상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빨간 색종이를 사다가 진상자료와 주보, 소책자를 잘 포장하여 고무줄로 묶은 후 봉투 겉면에 이렇게 적었다. “인생의 길은 길고 길며 누가 복을 바라지 않겠는가. 진상을 알게 되면 복을 얻게 되나니 대법을 선하게 대하면 끝없는 복을 얻게 되리라. 기억하세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모든 방법으로 대법의 진상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평소 몸에 늘 매직펜을 갖고 다니면서 벽에, 산길 옆 돌에 대법진상을 적어놓았다. 연분 있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렸다. 몇 년간 나는 그곳 농촌의 곳곳에 대법의 복음을 남겨놓았다.

몇 년간 나는 진상을 깊이 알려서 현지의 촌민들은 대법의 진상을 알고 대다수가 삼퇴 했다. 대법의 복음도 이 외진 산골마을에 비쳤다. 이곳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전력설비도 개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수도도 설치되었고 공공화장실도 보수되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집 앞에도 길이 수리돼 전에는 단독으로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주변에 잇달아 여러 집이 이사와 층집을 지었다. 나는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연분 있는 사람을 나의 주변에 배치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혼자서 이곳에 왔을 때를 되돌아 보면 날이 어두워지면 마치 요재지이의 이야기 장면이 재현되듯 했고 늘 정전이었다. 만일 대법제자가 아니고 사존의 가호가 없었더라면 정말이지, 젊은 남자라도 혼자서는 무서워서 감히 이런 환경에서 오래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겪은 고생이란 더 말할 것도 없으나 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오직 고생을 낙으로 여기고 있으며 사부님의 말씀을 듣는다. 나는 사부님께서 보호해주고 계심을 알기에 나 또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문 앞에 길이 생기자 왕래하는 차도 갈수록 많아졌다.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가 길을 물었으나 나는 알지 못해 앞집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고 곧게 갔다.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연분 있는 사람을 저에게 보내 진상을 알도록 하는 것을 놓쳤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구도하지 못해 매우 후회합니다! 그 뒤로 길을 묻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어찌해도 더는 놓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진상을 알려 그들을 구도했다. 길을 묻는 사람은 적었고 나는 아예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들을 가로막고 대법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어떤 때 길을 가다 보면 늘 큰 화물차가 기적적으로 멈춰 섰다. 나는 주동적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화제를 진상으로 끌어왔으며 거의 순조롭게 그는 삼퇴를 했다. 우유부단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나는 곧 사전에 준비한, 비교적 생생한 경찰이 삼퇴 하고 성명을 발표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기사들은 보고 나서 매우 놀랐다. 어떤 기사는 말했다. “공산당은 정말로 너무 부패합니다. 너무나 사악합니다. 경찰이 탈당했으니 나도 평안을 위해 탈당하렵니다.” 잠깐 차를 세워 진상을 알릴 시간이 없는 기사에게는 그들이 아홉 글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게 하고 호신부를 건네주었다. 기사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6) 수련생이 걸어 나오게 돕다

①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이며 수련생 한 사람이 더 걸어 나와도 사부님께는 기쁜 일이며 우리는 사람을 구도하는 힘이 더 많아지게 된다. 일부 수련생이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아 감히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는 곧 주동적으로 그들과 법리에서 교류하여 수련생들을 이끌어 걸어 나오게 했다. 한번은 나와 수련생 갑이 물건을 사는 형식으로 협력하여 진상을 알리게 됐다. 사전에 의논된 계획대로 나는 대면하여 진상을 알린 후 수련생 갑이 대면하여 진상자료를 건네주었다. 내가 진상을 알린 후 수련생 갑은 사전에 잘 준비된 진상 소책자를 꺼내 영업원에게 건네 주려했는데 갑자기 옆에 보안 경찰이 서 있었다. 수련생 갑은 매우 긴장했고 자료를 줘야 할지 도로 넣어야 할지 망설였다. 나는 “두려워하지 말고 주세요.”라고 말했다. 수련생 갑은 내가 정념정행 하는 것을 보고 대담히 진상 소책자를 영업원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발정념 하면서 사존께 가지를 청했다. 그리고 영업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고 나서 주변의 친구에게 전해주세요. 그러면 당신은 공덕이 무량합니다.” 보안경찰은 이 상황을 보더니 발길을 돌려 떠나갔다. 정말로 정념이 나오니 그 힘은 산을 가를 수 있었다! 몇 번의 도움을 통하여 수련생 갑의 정념은 갈수록 강해졌고 우리 지역에서 조사정법 하는 한 입자가 되었다.

② 농촌에 금방 갔을 때 발생한 다른 한 가지 일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6, 7리 떨어진 곳에 수련생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에 희망으로 가득 찼다. 날이 어두워지는 것도 고려하지 않고 나는 상황을 알고 있는 촌민에게 길을 안내하라고 했다. 날도 저물었고 길도 멀어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한 시간은 가야 했다. 그리고 그 촌민은 허리가 아팠고 그들은 일반적으로 밤에 길 걷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길 안내하기를 꺼렸다. 나는 어찌 이튿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나, 나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이번에 다녀오면 선한 일을 한 것으로 허리가 아프지 않을 거예요.” 이 길은 현지에서 유일한 길이라 밤낮으로 각종 차량이 끊임없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날 밤 다니는 차가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달도 없었고 손전등도 들지 않았다. (그들이 밤에 길을 다니지 않기에 손전등은 늘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은 정말로 환히 밝았다. 우리는 반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녀의 허리도 아프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놀랐고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파룬궁은 정말로 신기합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대법의 신기함을 곳곳에 전해주었다. 그녀 가족은 가장 먼저 이 마을에서 삼퇴를 했다.

이튿날 나는 그녀가 안내했던 길을 따라 직접 그 수련생과 연계했다. 그러나 이 수련생은 다년간 박해당했고 감시당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매우 심해 감히 나를 집에 들이지 못했다. 나는 내 주소를 그에게 남기고 수련생에게 우리 집으로 오게 했다. 법리에서 수련생과 교류를 통해 점차 수련생의 두려워하는 마음이 제거됐다. 신경문, ‘명혜주간’ 등 자료가 나오면 나는 언제나 잊지 않고 그에게 전해 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수련생에게 정념이 생겼으며 자신이 거처하는 환경도 바르게 수련해냈으며 또 적극적으로 진상을 알려 중생 구도하는 일에 참여했다.

후기

1996년 대법을 얻으면서 나는 얼마나 행운과 행복에 넘치는 대법제자였던가! 1999년 박해가 시작돼 나는 거의 일 년간 사부님에 관련된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했다. 청원하여 사부님의 청백함을 되돌리고 대법에 공정한 말을 하기 위해 하는 일 외에 나는 그때 정말로 망연했다. 그 한동안 오직 사부님, 사부님을 찾고 싶었다. 밍후이왕에서 사부님의 신경문과 수련생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나는 마치 전에 친인을 잃었던 아이마냥 더는 친인을 잃을 수 없었다! 경문을 보면 마치 사부님을 뵌 것 같았다. 나는 노년 제자이며 문화지식이 많지 않다. 그러나 나는 오직 사부님의 말씀만 들으며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면 나는 곧 그대로 했다. 중생 구도의 길에서 위험했으나 안전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게 다년간 날마다 오직 세 가지 일뿐이었고 마음속엔 오직 세 가지 일뿐이었다.

한길로 걸어오면서 크고 작은 신기한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는 아직 수련이 모자란다. 아직 수련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고 많다. 다만 수련의 기연이 너무나 소중하고 제한되어 있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나는 감히 일분 일초를 낭비할 수 없다. 그래서 젊은 수련생이 나에게 쩐슈(珍修)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는 오직 사부님을 따르고 싶으며 사부님을 바짝 따르고 싶다. 사부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면 마음속은 흐리멍덩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행운과 그리고 행복으로 넘치는 대법제자이다!

이상에서 서술한 것은 단지 개인 수련의 층차에서 적은 것이며 경지의 제한이 있으므로 수련생들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전 세계 대법제자들, 중국대륙 대법제자들, 즐거운 한가위 되기를!’

[2] 李洪志師父詩詞:‘洪吟二- 師徒恩’

문장발표: 2013년 1월 2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20/2637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