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실증’을 말함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수련생 사이에 자주 ‘실증[證實]’이란 단어를 언급한다. 나는 갑자기 한 가지 이해가 생겼고 그 중에 약간의 함의를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을 글로 적어 여러분과 함께 나눠 보려 한다. 수련생께서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우주의 정법의 길은 여태껏 없었던 일이고 구(舊)우주에서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탄생이자, 우리가 신의 서약을 실천하는 길이고, 중생을 구하는 길이며, 또한 우리 위대한 사부님께서 모든 생명을 위해 개척하신 길이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것이 우리가 구세력을 타파하고 해야 할 일이고 어떤 것이 우리가 미래에 남겨야 할 일이며 어떤 것이 마땅히 해야 하고 반드시 해야 할 것인가? 많고 많은 의의는 모두 다 이 ‘실증’ 중에 있다.

일체는 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바, 우리가 물질 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과 혹은 약간 보이는 것이고 또한 신체 범위 내의 정화(淨化)와 승화다. 우주의 역사 과정에서 우리는 사부님을 따라 층층이 내려왔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줄곧 보호해주셔서 비로소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우리는 사부님을 따라 인류의 신전(神傳)문화를 닦았고 우리가 구도할 사람과 인연을 맺었으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세밀한 배치를 해주셨다. 우리는 느낄 수 있지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구세력이 우리에 조성한 상해는 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하셨다. 인연 있는 사람을 하나하나 우리 주변에 데려다 주셔서 우리가 구하기를 기다리고 우리를 점화해 구하게 하신다. 우리가 방황하고 희망을 잃을 때 우리가 가장 받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따스함과 신념을 주시고 깨닫게 하고 격려해 주신다. 길을 빗나간 제자는 사부님께서 지옥에서 끌어내 다시 살아날 기회를 주심 등등이다. 이 일체에 대해 수천수만의 언어로도 제자가 사부님의 대한 은혜를 표현할 수 없다. 위대한 불은(佛恩) 앞에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우리는 스스로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실증’ 이 신성한 함의에 떳떳해야 한다. 증명[證]과 실천[實], 우리는 무엇을 증명하려 하는가? 우리가 우주 중의 어느 층차의 표준에 부합되어야 하는가를 증명해야 하고, 우리는 정법과 동시에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며, 우리는 중생을 구하러 온 생명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오늘 우주의 모든 생명, 층층의 광대한 창궁(蒼穹) 중의 중생에 바로 우리가 있다. 이것이 어찌 증명하는 것인 아니겠는가? 당신이 한 어느 한 가지 일, 어느 한 염두가 어느 층차의 표준에 부합되면 바로 일종의 증명이다. 우리 주변에 배치한 인연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어떤 요소 중에는 우리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과시심이 있다. 만약 우리가 제거하지 않으면 아마 그의 집착심을 건드릴 것이고 그는 이 점 때문에 당신의 건의를 거절할 수 있고 그를 구할 수 없다. 우리의 행위와 마음속에 우리가 마땅히 대법에 도달해야 할 그 한 층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바로 굽은 길을 간다. 때로는 우리는 원망심을 제거해야 하는데 만약 우리가 닦지 못하면 우리의 선하지 못한 요소가 그의 집착심을 건드린다. 그는 바로 당신의 도움을 거절하고 심지어 다른 수련생의 도움을 거절한다. 때로는 우리의 환희심을 제거해야 하는데 초상(超常)적인 상태가 지나쳐 다른 사람의 사상에 혼란을 조성하고 당신을 일종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고 게다가 세인 중에서 대법의 이미지를 파괴한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만약 당신이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당신은 세인을 구할 수 없고 심지어 그런 이미 구원될 수 없는, 구원되지 못하는 생명은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런 하나하나의 마난에서 자신의 하나하나 집착심을 제거해야 약간의 제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미래의 정법과정에서 더욱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다. 우리에게 아주 세밀하게 배치해 주셔서 그 어떤 일에서 정념 그 배후에 바로 하나의 길이 있으며, 심지어 배후에 있는 각종 가능성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전부 우리가 가서 증명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우리가 정법 중에 어떤 한 시기의 표현이든 다 상대적으로 광대한 창궁과 무한한 공간에 연결되어 있으며 모두 우주 중의 무량무계한 생명과 관계가 있다!

나는 아주 큰 굽은 길을 걸은 제자다. 나는 때로 매우 괴롭다. 왜냐하면 구세력의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더욱 정진해 현재를 다잡고 시시각각 정념으로 행하고 증명해야 한다. 제자의 매 하나의 증명과 행위의 표현 배후에는 모두 법의 내포가 있다. 미래의 각종 가능성과 관련되고 우리 경지에 대한 층층 공간의 요구다.

실천을 말해보자. 과거에 실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 중에 우리 생명 일부분이 과거의 방식으로 실증한 것이다. 지금의 인류에게 문화를 남기고 사람을 구하는 지혜와 범례, 경전, 교훈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실증과 우리의 ‘실증’은 일치하지 않는다. 정법제자의 위대한 실천의 길은 무엇인가? 우리는 진정으로 오늘날 자신을 수련할 수 있으며 과거의 그런 주원신을 수련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런 줄곧 잘 하고 있는 정념이 강한 제자, 그들은 미래에 선례를 남겼다. 대법제자가 사악에게 파괴되지 않음을 남겼고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걷는 모범을 남겼다. 그런 굽은 길을 간 제자는 아직 다시 잘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다. 대법제자가 마난에 부딪히면 자신의 능력을 운용할 수 있고 요마(妖魔)를 제거할 수 있으며 사악의 박해를 파괴할 수 있다. 또 우리는 세속을 떠나지 않고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는 환경에서 여전히 수련성취 할 수 있다. 심지어 바로 원만할 수 있어도 가장 평범하고 가장 정상적인 일을 하고 있으며 보통 사람과 같다. 이 모든 일체는 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개창해 주신 것이고 우리가 가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자 미래 생명에게 남기는 길이다. 또한 새 우주가 우리에게 대한 요구인데 우리가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 배후의 의의를 우리가 어떻게 정말로 이해할 수 있는가?

증명은 실천 중에 있고 실천은 증명 중에 있다. 과거를 위해 증명하고 또 미래를 위해 실천하는데 다 우주의 법과 함께 있고, 여태껏 없었던 이 길에서 대법제자와 함께 있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하에 제자들은 다 행복하게 실증하고 있다.

이런 것을 깨닫고 나는 가볍게 ‘실증’을 담론하지 못하는데 내가 과거에 이해한 그런 ‘실증’이 아니다. 수련생 여러분이 최후의 길을 잘 걷기를 바라고 우리의 법을 실증하는 길에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3년 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9/2679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