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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높은 경지여야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람보다 높은 경지여야 사람을 구도할 수 있다. 이는 내가 13년간 반(反)박해 정법수련에서 법을 실증하고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실천하는 중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다.

수련 전 나는 선량하고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돕기를 즐기며 책임감 있고 신용을 지키며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과 이익에서 충돌이 발생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대가를 지불할 때 나는 늘 입장을 바꿔 사고했고 잃거나 대가를 지불한 사람은 매우 쉽지 않으며, 이 일이 나에게 발생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생각했다. 특히 당시 생활은 매우 어려웠고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했다. 만일 피할 수 없는 예의적인 오고감이라면 이후에 그 배로 선물하고 보상해주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더 점하려하지 않았는데 이는 내가 살아가는 일관적인 원칙이었다. 때문에 무릇 나와 일을 함께 했거나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교제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불성(佛性)이 있는 동시에 마성(魔性)도 있다. 위에 서술된 성격 특징으로 인해 자연히 내 이 원칙과 위배되는 사람을 보게 되면 미워하고 용납하지 못했다. 특히 늘 함께 해야 할 직계 친척들은 끊을 수 없고 피할 수 없어 더욱 마음이 번거로웠다. 그들이 표현해 낸 탐욕, 이기심, 효도하지 않음 등은 보기만 해도 화가 났고 이로 원망과 원한의 마음, 쟁투심,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 억울함 등 많은 좋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생성됐다.

대법 수련에 들어선 후 대법으로 사람 이 층의 표준으로 가늠하니 자신이 매우 멀었음을 발견했다. 과거에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며 소위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으나 그건 단지 도덕이 떨어진 속인과 비교한 것이다. 대법의 신기한 거울로 비춰보니 자신의 경지가 매우 좋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나도 이전에 한번 또 한 번 이런 좋지 않은 것을 닦아버리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한동안 나는 매우 정진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매일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는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법공부 시간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발정념과 연공도 거의 지체하지 않았다. ‘밍후이주간’에서 교류되는 문장은 한편도 빠짐없이 읽었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도하는 일과 일부 협조하는 면에서 늘 바빴으며 매일 매우 적게 잠을 잤다. 보기에는 마치 수련인의 상태인 것 같다. 그러나 문제에 봉착하여 움직이는 첫 번째 일념은 사람의 관념이며 그런 좋지 않은 마음이 남김없이 폭로됐다. 오랫동안 수련했으나 마땅히 닦아 버려야 할 것이 조금도 닦여 버려진 것 같지 않았으며 전혀 실질적인 변화가 없었다. 특히 정법수련 단계에 들어선 후 대법제자의 수련 형식은 변했으며 단지 개인의 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박해를 반대하고 조사정법하는 중에서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서 자신을 수련해야 했다.

끊임없는 법공부 중에서 많은 법리가 명백해졌고 대법제자는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잘 걸어야 함을 알고 있으며 정념정행과 홍대한 자비가 있어야 사람을 구도할 수 있음을 알았다. 확실히 대면하여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도하는 실천 중에서 비교적 좋은 효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유독 자신의 친인척을 구도함은 매우 어려웠다. 나는 법에서 알고 있다. 금생에 대법제자의 친인척으로 될 수 있음은 매우 일반적인 연분이 아니며 그들을 구도하는 일을 더욱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과 말해도 통하지 않고 그들이 그런 귀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할 때는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으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특히 내 마음속은 그런 사람들과는 마치 만개의 산으로 가로막힌 것 같아 전혀 소통할 수 없었다. 매번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머리에는 온통 나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들을 구도하려는 마음이 즉시 사라졌고 더는 그들을 구도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는 속으로 그들을 욕했고 이러한 사람은 도태되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여겼다. 돌이켜보면 이는 어떤 마음인가! 한 수련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선한 마음도 없으며 그 무슨 자비를 논할 게 없었다. 이렇게 나쁜 일이나 나쁜 사람을 원수처럼 증오하는 마음으로 어찌 사람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그들 본성의 일면이 어찌 나의 이런 저열한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는 속으로 매우 명백히 알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구도하려는 것은 단지 사부님의 요구이고 정법의 수요이자 대법제자의 사명과 책임, 그리고 대법제자의 사전의 서약을 실현하려 함이지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구도하려는 게 아니며 더욱이 자비심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어찌할 것인가. 이 자비심은 마음대로 가장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법에서 착실히 수련해낸 것이며 수련인의 경지로서 각자(覺者)의 모습이다.

과거 어머니를 돌보는 일로 언니와 동생들과 모순이 생겼다. 누적된 원망이 매우 깊어지나 나는 남동생이 이기적이라고 원망했다. 부모님의 재산을 얻으려고만 하고 돌보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부모님이 출세하지 못했다고 꺼려했다. 또 자신들에게 값진 유산도 남겨주지 않았다고 원망했다. 나는 또 언니가 마음이 독하다고 원망했다. 자신의 아이들만 돌보고 부모님의 생활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부모님의 잘못만 기억하고 좋은 점은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어려움과 고충을 이해하지 않았다. 또 언니는 어머니의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자업자득이 됐다고 말했다. 동시에 아들도 잘 가르치지 못했으며 아들이 줄곧 어리광을 부리게 해서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눈감아 준다고 어머니를 원망했다. 매사에 아들만 중히 여기고 손자를 돌보느라 병이 생기고 넘어져 다쳐도 그들은 어머니를 우리집으로 보내 치료하게 했고 치료비와 돌보는 일도 전부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채 낫지도 않았을 때 다시 모셔갔다. 우리 남매 넷 중에 그들 셋의 자녀는 5명이었는데 모두 어머니가 키웠다. 단 내 두 아이만은 막내 남동생 아이에 비해 좀 어려서 부모님이 키울 수 없었다. 부모님이 두 남동생과 분가하자 남동생은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드리기는커녕 결혼할 때 빚까지 부모님께 갚게 해서 생활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그때 우리집의 생활도 부유하지 못했으나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태주어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혼자서 이웃도 없고 도처에 비가 새는 낡은 집에서 사셨다. 연세가 있고 허약해서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예 우리집으로 모셔왔다. 지금까지 18년이나 지났다. 가끔씩 원래 집으로 돌아가도 생활비는 전부 우리가 부담해야 했다. 큰 남동생도 죽은지 20년이 되는데 남겨진 자녀 3명의 부양도 내가 감당해야 했다. 남편(수련생)이 불법적으로 4년간 감금당했을 때도 어머니는 우리집에 계셨다. 그러나 남동생과 올케는 만족하지 않고 매정하게 말했다. 어머니도 만족하지 않고 이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셨다. 심지어는 내가 남동생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원망하셨다. 지금 90세이지만 여전히 우리집에 계신다.

비록 수련하기 때문에 속인과 마찬가지로 대하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으나 이 일에 봉착한 나로서는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는 마땅히 누구에게도 좋게 대해야 하며 부모님에게 효도함은 더욱 그러하다. 아마 이것도 사부님께서 나에게 배치하신 수련의 길일 것이다. 이것으로 내 사람 마음을 닦아 심성을 제고시키려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모순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그런 마음에 깊이 침전된 원망, 쟁투심, 억울한 마음,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나도 모르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런 사람 마음에 가로막히고 교란을 받아 나는 친척을 구도하는데 심하게 영향을 받았다. 나는 이미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했고 참답게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이 마음을 착실히 수련하고 있니? 네 경지는 어디에 있지? 사람 마음이 서로 충돌할 때, 모순 중에서 너는 안으로 찾았니?” ‘밍후이주간’ 두 편의 글에서 수련생들이 가정환경에서 봉착한 일은 나와 매우 흡사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법에서 정진하고 자신과 대조하며 뼈를 깎는 아픔으로 사람 마음을 버리고 점차 심성과 층차를 제고해 마침내 자비롭게 친인척을 구도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많은 계발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이 모순에 봉착하면 여전히 조용한 마음으로 안으로 찾지 못했다. 각종 좋지 않은 마음이 뛰쳐나오고 그것을 억누를 때 언제나 눈물을 머금고 참았는데 그 참음은 매우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수련을 이렇게 수년간 했으나 가장 돌파하기 어려운 것이 가정 모순이란 이 고비로 생각됐다. 그것은 줄곧 나를 묶어놓았다. 그리하여 나는 매우 고뇌했다. 이렇게 더러운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가! 늘 곤두박질하고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결심을 내리고 대량으로 법공부를 했다. 법공부와 수련을 더는 표면에 그치게 하지 않았다. 반드시 대법을 생명의 깊은 곳에 들어오게 하여 착실하게 그런 좋지 않은 사람 마음을 닦아버리며 자신 생명의 경지를 제고하고 언제나 상서로운 심태를 유지했다. 내가 마음을 먹고 정말로 그런 좋지 않은 마음을 닦아버리려 할 때 단번에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고 그런 좋지 않은 물질이 없어졌다.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신 것이었다. 나의 흉금도 매우 넓어졌다. 나는 친인척들이 잘못하고 업을 짓는 모습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구도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내심으로 그들이 가련하고 그들을 구도하고 싶어졌다.

최근에 또 늘 있던 일로 어머니께서 화를 내셨다. 어머니는 이를 악물고 한바탕 나를 훈계하셨다. 이번에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화를 내지 않았으며 억울함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수련인의 심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과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전부 대법 법리였다. 어머니도 마치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즉시 잊어버리고 싱글벙글 나와 이야기를 나누셨다. 줄곧 진상 듣기를 거부하던 언니와 조카들, 조카며느리도 사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정말로 한 번의 웃음으로 원한이 풀어졌고 맞이하게 된 것은 고난 속에 광명이었다.

수련의 길에서 사람을 구도하는 실천 중에서 나는 절실히 체득했다. 오직 진정한 자비만이, 사람보다 높은 경지만이 사람을 구도할 수 있다. 신이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지 사람이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

문장발표: 2012년 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3/2650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