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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련생이 ‘버림’을 깨닫다

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2년 11월에 법을 얻은 신 수련생이다. 법을 뒤늦게 얻어 탄식한 적이 있으며, 정법 노정을 따라 득도하고 원만하지 못할까 봐 근심한 적이 있다. 끊임없이 세 가지 일을 하고 정진함에 따라, 나는 법에서 법을 깨닫고 느슨히 하지 않으며, 심혈을 기울여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일을 잘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부님께 맡기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나의 상태는 다음과 같다. 일사 일념, 일언일행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법의 요구에 따른다(언어와 표정을 포함). 매일 매 시각 느슨히 하지 않는다. (인간세상은 단지 수련 장소로 여길 뿐, 휴가를 보내지 않고 휴식하지 않으며 세속 인정이 없다.) 매일 반드시 시간을 내어 자성하고 누락을 보충한다. (누락이 쌓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정진의 길에서 쓰레기와 장애를 즉시 청리한다.) 심혈을 기울여 세 가지 일을 잘하고(이것은 나의 가장 큰일이고, 인간세상의 그 어떤 일도 이 일과 비길 수 없으며, 속인의 상태를 위배하지 않은 상태에서 속인의 일은 반드시 이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 일체 버리고 싶지 않은 것, 버리기를 꺼리는 것, 버릴 수 없는 것을 닦아버린다. (모두 명·리·정에 대한 집착심일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자비로우시다. 층차가 제한된 이 층면에서 우리가 안심하고 수련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그렇게 많은 부동한 층차의 법과 요구를 말씀하셨고, 또한 자비롭게 우리를 격려해 주셨다. 위대하신 사존의 제자로서 우리는 다그쳐 정진해야만 비로소 틀림이 없다. 수련 중에 많은 관을 넘어야 하는데, 그중의 기본적인 관은 되도록 빨리 넘어야 한다. 이것 역시 버림의 강도와 정도이다. (여지없이 내린 결정은 득도 원만할 수 있는가 하는 층차의 요구이다.)

나는 색·욕·리·명을 버리는 과정에서 인간세상의 일체,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가장 버리기 어렵고, 심지어 버리려 할 때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으며, 그 일체의 일체를 버리고 싶지 않아 한다. 마치 상점에서 판매하는 조화처럼 진짜인 것 같고 완벽하며 비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실질은 가짜이고 환상이다. 인간세상의 이런 명·리·정 앞에서 여전히 망설일 때 나는 다음과 같이 자신에게 주의를 준다. 이미 법을 얻고 진리를 얻었는데 왜 아직 이런 것을 동경하고 이런 가상을 죽도록 놓지 않으며,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제도하시기 위해 무수한 고생을 하시고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는데, 나는 몸이 이 더러운 세상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면서도 왜 아직 이 더러운 물건을 붙잡고 놓지 않는가? 이것은 분명히 진리를 알면서도 아직 가상을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누락 없이 버린다면 그것은 더욱 높은 버림이 아닌가?” [1]라는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격려한다.

층차의 제한이 있다. 허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무루’

문장발표: 2013년 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 마당>안으로 찾고 심성을 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5/2678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