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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자료 품질을 높이는데 대해 또 이야기하다

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세인들이 진상자료를 볼 때 만약 진상자료가 세인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고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들을 도와 많은 외래사상과 후천적인 관념이 사람 표면 생각을 좌우지하는 것을 없애줄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의 ‘진정한 자신’이 쉽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내심으로부터 진상자료만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진상을 똑똑히 볼 뿐만 아니라 이때는 쉽게 세인들을 반성하게 하여 ‘진정한 자신’이 사고하도록 이끌 수 있다.

어떻게 해야만 세인들에 대한 이러한 요소의 영향력을 씻어낼 수 있고 진상을 접촉하는 순간에 세인들의 모든 후천적 관념과 좋지 않는 사상을 고요하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세인들의 선한 일면을 일깨워주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한 우리가 진상자료에 많은 심혈을 기울일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의 진상자료도 품질을 제고해야 한다고 여기는데 이 문장에서는 어떻게 진상자료 품질을 높일 가에 대해 여러분들과 교류를 하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재 중국 세인들이 진상자료를 보지 않는 원인과 잘못된 점은 주로 아래 두 가지에 집중되어 있다고 여긴다.

1. 우리의 진상자료는 세인들에게 우리가 표현하는 것이 너무 주관적이고, 너무 극단적이라고 여기게 하는데 세인들이 우리에 대한 인상은 사당(邪黨)과 대항하고 자기말만 한다는 것이다.

2. 세인들은 이익을 챙기는데 바쁜데다 공산사당의 정치투쟁에 익숙해져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무감각과 이익은 세인들의 진념(眞念)을 가로막아 우리들 내용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게 한다.

이상 두 가지가 아마 세인들이 구도 받는 것과 진상자료를 보지 않는 것을 가로막는 주요 매듭일 것이다.

나는 대도시에서 지식인 집단, 즉 이익 집단을 겨냥함에 있어 진상자료가 발휘할 수 있게 하려면 세인들이 우리 관점과 입장을 접수하도록 강제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바른 모습을 통해 세인들의 좋지 않는 생각을 제거해주고 세인들 스스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사고의 공간’을 독자들에게 남겨주는 것이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진상 정기간행물이 높은 수준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인데 이러면 세인들은 쉽게 접수한다. 자료에서 선택한 높은 포부와 문장 풍격을 중시한 문장 자체가 바로 선(善)의 체현이고 진상의 일부분이다. 그러면 세인들이 대법에 대한 오해와 사당이 주입한 원한을 씻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인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선량함과 따뜻함을 일깨워주어 속세의 분주함 속에서 인생의 의의와 귀착점에 대해 조용히 사고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 진상자료가 마땅히 노력해야 할 방향이고 일으켜야 할 작용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우리가 주관적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할수록 어쩌면 바라던 바와 정반대가 되어 효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개변하고 자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언어나 구절을 넣었을 때(혹은 이 방면 요소) 세인들의 표현은 우리의 진상자료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거나 혹은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가 수련을 잘하지 못함으로 인해 제작된 진상자료에는 우리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한 요소가 그 속에 들어있어 세인들을 가로막게 된다. 가끔 우리의 내용에는 오직 자기 생각만 하고 도도하게 자신의 감수와 인식만 얘기하는 것뿐이기에 세인들의 흥미와 공명을 일으키기가 더욱 어렵게 된다.

거대한 업력, 사람마음, 관념, 현실이익 등등은 모두 세인들의 진념을 가로막고 있다. 단순하게 박해의 참혹함만 얘기하면서 세인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는 방법은 전면적이지 않다. 대륙 중국인들은 지금 아주 무감각한데다(마치 얼마 전 자동차에 치인 어린이를 무관심하는 것처럼) 대륙 세인들은 대법제자가 박해받은 진실한 상황을 직접 접촉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쉽게 각종 관념에 박혀 독단적으로 이것은 파룬궁의 ‘선전’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대법 진상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아무 것도 믿지 않기에 우리의 어떤 방법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인정하지 못하고 반감을 가지며 흥미를 갖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대륙제자는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주로 밍후이왕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는데 즉 밍후이왕은 대륙제자가 진상자료를 획득할 수 있는 경로다. 대법제자를 위해 속인들의 집착에 따라 진상을 똑똑히 얘기할 자료를 제공해주는 제공자다. 밍후이왕은 하나의 플랫폼과 마찬가지인데 내보내는 내용은 모두 대법을 대표하고 수련자의 정념을 대표한다. 이것을 세인들에게 나누어줄 때 세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것은 대법의 자료이고 전달한 것은 대법의 진상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와 같이 수많은 좋고, 심도 깊은 소재들을 조직해 진상자료에 사용하면 세인들을 일깨워주는 효과적인 문장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은 현재 속인 매체에 입각해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밍후이 진상자료를 만들 때 반드시 심혈을 기울이고 진정으로 공을 들여야만 비로소 잘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그가 받아들이든지 받아들이지 않든지 당신들은 모두 자비로 대해야 하며, 당신들은 속인과 높낮이를 다투고 속인의 마음으로 중생을 대해서는 안 된다. 그가 받아들이든지, 받아들이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당신은 그저 자비롭게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자비는 수련해낸 것이지 표현해내는 것이 아니고,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영원히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시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진상자료의 품질이 바로 우리의 자비심의 진정한 체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세인들이 진상을 접수하고 마음속으로부터 진상을 명백히 알아 미래를 선택하도록 하려면 우리 진상자료에 대한 요구도 높아야 한다. 진상자료는 오직 진상을 ‘표현’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데 ‘자비’처럼 내심으로부터 세인들을 움직여야 세인들의 마음속에 파고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제작한 진상자료가 마땅히 구비해야 할 수준이다. 만약 우리의 진상자료에 대법수련자가 수련해 해 낸 순수하고 선한 정보를 담게 된다면 세인들의 명백한 일면도 느끼게 될 것이고 세인들이 세속 속에서, 난잡한 세상 속에서 형성된 각종 관념과 파괴된 사상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는 이 ‘진상(眞相)’이라는 말이 포함하고 있는 내포는 아주 크다. 현재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사악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하여 조작한 거짓말에 대한 진상을 알리고 중공사당이 도대체 어떤 물건인가 하는 이런 진상이며,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가 하는 이런 진상이다. 파룬궁이 도대체 무엇인가는, 여러분도 말하고 있지만 이런 진상은 사람이 인식하기가 아주 어렵다.”[2] 나는 ‘진상’을 ‘사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여긴다. 세인들이 대법에 대한 좋지 않는 사상을 제거하고 중공사당의 본질을 똑똑히 인식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다만 세인들에게 ‘사실적인 진상’만 알려주면 안 된다. 동시에 잠재적인 진상을 보조로 해야만 세인들을 일깨워줄 수 있다. 사실적인 것은 사람들 마음 깊은 곳의 양심을 일깨워주고 전통적인 도덕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사실을 이해한 후 세인들은 자기 스스로 ‘잠재적’인 진상을 볼 필요가 있고 그러함으로서 스스로 사고하여 선택을 내려야 한다. 사실적인 진상은 알려주어야 하지만 잠재된 진상은 오직 일깨워주고 인도해 주어야 하기에 이것은 진상자료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세인들은 흔히 우리의 언행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 우리들이 좋다고 확정을 지은 다음에야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른 한 편으로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세인들의 양심을 불러일으키고 세인들을 일깨워주라고 하신 것은 우리들이 진정한 선의 힘을 통해 세인들로 하여금 하늘을 공경하고 명을 따르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관을 느끼게 함으로서 사당의 본질을 똑똑히 인식하고 물욕이 흘러넘치는 세상에서 자신을 되찾아 구도되고 미래가 있기를 희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단순히 기본진상이나 수련의 전형적인 사적만을 얘기하는 것으로 목적에 도달할 수 없는데 우리는 더 제고할 필요가 있다.

“자비는 수련해낸 것이지 표현해내는 것이 아니다.”[1] 진상자료를 편집하는 것 역시 우리가 수련하여 제고되는 과정이다. 세인들이 반영해낸 문제는 마침 우리가 수련에게 제고해야 할 부분들이다. 일부 세인들이 ‘주관적이고’, ‘설교를 한다고’ 여기는 인상 배후에는 우리들이 진정한 자비를 수련해내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표면에서 진상을 알리는 데만 머물러 있을 뿐 속인의 집착을 따라 그들과 입장을 바꾸어, 세인의 각도에 서서 문자와 내용을 편집하지 못하고 있다. 글에서 수련자의 진정한 선의 힘을 체현해내지 못하기에 세인들로 하여금 진상을 볼 수 없게 한다.

오늘날 중국인은 장기간 무신론, 약육강식 등 이익투쟁 가운데서 이미 아무것도 믿지 않게 변했다. 나는 우리의 수련상태가 좋고 나쁨은 주제를 선택하거나 진상자료를 편집하고 제작할 때 가장 직접적으로 체현되어 나온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의 수련상태는 세인들이 진상을 보려 하는지, 진상을 명백히 볼 수 있는지의 관건이라고 여긴다. 만약 우리의 내용이 비난으로 가득차고 사용한 단어들이 모두 자아를 표현하고 ‘자기말만 한다고’ 세인들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면 세인들이 이러한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이 어떻게 해독할지 상상해 보았는가?

위의 내용들은 수련생에게 시정과 참고로 제공해주는데 공동으로 우리 진상자료의 품질을 제고해 더욱 많은 세인들을 구도하도록 하자.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4-2003년 워싱턴DC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12년 미국수도국제법회설법’

문장발표: 2013년 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2675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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